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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자, 참여하자, 앞장서자!

우리는 발달장애 당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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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당사자들로 구성된 치어리더팀의 율동에 참가자들의 환호와 함성이 함께했다.

무조건 안 된다고 접어두면, 하고픈 의지가 있는 이들마저 의욕을 잃게 된다. 그 대신에 가능하다고, 된다고, ‘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게 만들면, 안 되던 일은 말끔하게 해결이 된다. 모든 건 ‘가능함’을 전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 2016 People First 전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가 지난 10월 8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렸다. 그 자리엔 발달장애인과 비발달장애인의 구분이 없었다. 모두의 축제였기 때문이다. 그 현장의 즐거움과 남다른 의미를 이 지면에 담는다.

 

모두의 긴장, 모두의 성취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거행되는 행사, 특히 전국 각지에서 참가자들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일 경우는 날씨 상황에 굉장히 민감해진다. 일기예보는 전날 오후부터 시작된 비가 당일 오전까지 제법 많이 내린다고 했다. 우려의 마음으로 바라다보던 하늘은 빗방울을 거두면서, 오전 11시 전후부터 밝은 햇살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건 대자연의 환영이다. 우려를 벗어던진다는 건, 남은 모든 일정의 성공을 약속하는 마음의 보증과 같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분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건, 사실 그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잖아요. 시설이나 집에서 갇혀 살다시피 지낸 게 전부일 텐데,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모두가 주인공이니까요.”

이번 행사의 총연출을 담당한 서울장애인 자립생활센터의 김형심 행정부장은, 행사 진행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얼굴로 질문에 답했다. 그가 편안한 얼굴을 뒤늦게 보인 건, 행사 진행이 최종적으로 모두 마무리됐을 때였다.

“이 안에서만큼은 모든 분들이 자유롭고 맘대로 즐길 수 있게끔 설정하는 거, 그게 준비를 하던 저희들의 핵심 과제였어요. 그래서 진행이 좀 어설프고 뒤죽박죽 엉망이 된다 해도, 그 자체가 최고의 모습이 되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남들 보기 좋게 인위적으로 포장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실수하고 서툰 모습들이 반복되는 게 훨씬 더 좋다는 걸 이 공간 안에서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것이었죠. 그런 면에서는 아주 잘 진행된 이번 전국대회였던 것 같습니다.”

순서에 따른 개회식이 진행되면서, 참가자 모두는 행사의 출발을 기대에 찬 모습으로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국대회에 가장 긴장하며 준비했을 인물은, 다름 아닌 이 대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아 오랜 기간 동안 동분서주했던 권현미 씨가 분명했다. 무대에 올라 진행을 하고, 자신의 역할을 모두 마무리한 심정이 어떤지를 물었다. 날아갈 것 같단다. “각 지역의 센터별로 오랜 기간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했는데, 전체가 다 모인 상태에서 최종 리허설을 할 상황이 안 된다는 게 가장 걱정됐어요. 전국에서 오전 일찍 출발해서 여기에 모이고, 행사 뒤엔 모두 다 서둘러 다시 돌아가야 하잖아요. 무대 진행을 위한 최소한의 리허설마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저랑 사회 진행을 같이 하기로 한 광주의 동료가 늦게 도착해서 호흡을 제대로 못 맞췄어요. 잘 마무리가 되긴 했지만, 그게 마음을 내내 졸여야 했던 스트레스가 됐던 것 같아요. 아…, 이젠 정말로 끝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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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바꾸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저희 한사랑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는 당사자 주도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국대회를 준비하면서도 비발달장애인 직원들은 다 뒤로 물러나고, 당사자 중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가도록 설정을 했거든요. 준비하는 중간에는 도와달라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계속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거예요. 정말 저희 센터 직원들이 이렇게 표현했던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뭔가 불안하고 안 될 것 같았던 모든 마음들이 기우였다’고요. 네, 그게 정답이었습니다.”

한사랑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황상윤 소장은 1년 가까이 준비했던 기간 동안, 당사자들의 변화가 무엇이고 성과가 어땠는지를 직접 확인했던 게 가장 인상에 남았다고 했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다 해도, 결국은 본인들이 원하는 걸 스스로의 토론과 좌충우돌을 통해 다 얻어냈다는 것이다.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미리 가지고 있었다는 반성이 듭니다. 이런 전국대회 준비뿐 아니라, 앞으로는 센터 운영 전반에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도록 그들을 전면으로 이끌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준비하는 내내 참 인상적이었어요. 초기엔 서포터라 부르는 활동가들을 찾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전국 각지의 당사자들과 직접 통화와 문자를 나누면서, 당장 필요한 정보의 공유를 시도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각지의 발달장애 당사자들이 서로의 소통을 생활화하게 됐다는 거, 그걸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됐다는 건 아주 중요한 성과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한사랑센터의 황 소장 의견과 마찬가지로, 우리이웃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왕수민 간사 역시 같은 의미의 공감을 표현했다. 센터 차원의 자조모임이 생긴 지는 1년여밖에 안됐지만, 발달장애 당사자들의 변화가 눈에 띄는 걸 직접 경험했다는 확신의 언어를 전한 것이다.

“처음 자조모임을 시작했을 때는 당사자들이 전부 다 서포터만 쳐다봤어요. 본인이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의 의견을 당사자들끼리 나누더니, ‘이제 우리 회의할 거예요’, ‘우리 이런 정보가 필요한데 그 정보를 찾아주세요’ 하는 식으로 분위기가 크게 바뀐 거예요. 제가 처음 만났던 시기엔 가장 소극적이고 매사 수줍게 반응하던 분이 계셨는데요. 그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해 보실래요? 저기 쿠키를 판매하는 부스가 보이시죠? 거기서 ‘제가 직접 만든 쿠키예요. 제가 직접 만든 머핀입니다!’라고 외치며, 손수 만든 제품을 열정적으로 판매하는 저 분이 바로 그 당사자분이세요.

 

능동적인 참여에 답이 있습니다

행사 순서에 따라 본인이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구입하고 참여할 수 있는 ‘부스체험’의 시간이 되자마자, 현장의 분위기는 일순간에 돌변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몸놀림들이 행사장 전체에 가득해진 것이다. 행사 진행 내내 싱글벙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바삐 움직이는 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발달장애 당사자인 서울피플퍼스트 준비위원장 박현철 씨였다. “이전에는 실내에서 했는데, 야외에서 하니까 모두들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 부스행사에 적극 참여했어요. 오늘 행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제일 보람된 건 제가 이 대회를 만드는 데 직접 동참했다는 거죠.”

오후가 깊어지면서 투게더장애인단기보호센터의 치어리더팀 공연과, ‘조금 다른 밴드’ 조다밴의 특별무대가 흥겨운 연주로 이어졌다. 기존에 설치돼 있던 객석의 의자 전체가 모두 옆으로 밀려날 만큼, 마음껏 즐길 무대 공간이 순식간에 마련된 것이다.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원하는 끝을 보려는 당사자들의 춤과 함성이 조다밴의 앙코르 공연과 함께 한참 동안 이어졌다. ‘열린 공간’, ‘해방공간’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등장해야 할 일이다. “당사자 실행위원인 친구들이 6개월 이상 모이고 준비했어요. 사실 저희들보다 이 친구들이 더 스트레스를 받고서 안 되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정반대로 이 친구들 스스로가 굉장한 성취감을 얻으며 자신감을 만끽하더라고요. 곁에서 함께하던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오히려 감탄을 하며 바라볼 상황이 계속 연출됐던 거죠.”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찬오 소장은 전국대회의 시작점부터 관여했던 긴 변화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이런 행사에 당일 하루 방문하는 일반 참가자의 입장에선 단순한 진행으로 보이겠지만, 이 행사의 준비와 진행 자체가 엄청난 내공을 쌓고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이 친구들은 이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기대를 벗어나는 엄청난 열정을 쏟아 부었어요.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 중간에 포기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서로 격려하면서 다시 같이 하자고, 함께 가자면서 서로를 보듬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거든요. 사람이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게 되는 건 ‘자존감’입니다. 이들은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에요. 스스로 일어서고 표현할 방법을 얼마든지 알고 있거든요. 그걸 곁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매번 놓치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장애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의 인권운동은 당사자 중심의 장으로 열어놓아서 스스로 찾고 해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센터 박 소장의 그 견해는 이 전국대회의 지향점을 정확히 되짚어준다. 전국의 많은 활동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놀라움을 밝혔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건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움직인 만큼, 참가하고 활동하는 만큼의 변화는 분명히 생겨난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가든,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나든, 발달장애 당사자들의 변화된 모습이 눈에 띈다는 건, 당사자 중심의 역할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한다. 그리고 비발달장애 활동가 중심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고, 누가 주도적으로 중심에 서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다음 전국대회의 현장을 기다리고자 한다. 지루할 만큼 긴 시간일 수 있고, 순식간이라 느낄 만큼의 짧은 기간일 수도 있다. 10월 8일의 전국대회 마무리는 10월 9일부터 시작되는 다음 전국대회의 출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동적’을 ‘능동적’으로 바꾸는 힘, ‘주변인’에서 ‘중심인물’로 올라서는 반전의 드라마는 당사자 스스로의 도전에서 시작된다. ‘You can do it!(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전국의 모든 활동가들에게도 가장 큰 응원의 함성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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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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