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면 감사할 일들이 생겨납니다 > 사람 사는 이야기


욕심을 버리면 감사할 일들이 생겨납니다

화가 신동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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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신동민의 '할아버지 기도'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인생의 순리라고 표현하고 싶다. 절대자는 모든 걸 빼앗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하나가 부족하면, 절대자는 다른 하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놓는다. 무언가에 단점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남다른 강점을 심어놓는다. 전제조건은 그걸 스스로 발견하느냐의 여부가 된다.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 독특한 화풍을 펼치며 미술계의 큰 기대를 받고 있는 한 젊은 화가와 만나면서, 스스로 발견하는 강점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를 되새기게 된다. 화가 신동민 씨가 이번 ‘사람 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나만의 느낌, 나만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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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신동민 (사진 함께걸음)

“그림 그릴 때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 뭐예요?”

“동물!”

“동민 씨, 앞으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화가!”

한 단어 이상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자신과 엄마 앞에 앉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이 그에게선 보이지 않았다. 편안한 얼굴로 나누던 대화 분위기 탓인지, 처음 마주하는 낯선 이가 나쁜(?) 사람이 아님은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나이로 23살인 1994년생 신동민 씨는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었다. 보는 이들마다 감탄사부터 내지르게 만드는 화제의 작품들을 직접 그린 화가라기보다는, 우리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젊은 이웃의 외모였다. 그런데 그가 가진 ‘달란트’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어떻게 그만큼이나 세밀한 묘사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그릴 수 있는 걸까?

“어릴 때 여러 교육기관을 다녔었는데, 그 수업을 기다리는 동안 수첩을 펼치고 뭔가를 그리곤 했어요. 어린 나이인데도 진짜 예쁘게 잘 그린다는 게 신기했지만, 더 신기했던 건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독특했다는 점이에요. 앞면에 호랑이 얼굴을 포함한 전면의 모습을 진짜처럼 그린 다음, 그 종이 뒷면에는 호랑이의 엉덩이와 꼬리를 그리는 거예요. 그 특이한 발상에 내심 많이 놀라곤 했어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호랑이의 전체를 다 묘사하는 거잖아요.”

한 단어의 대답 이후로 스마트폰에 시선을 집중한 동민 씨 대신, 곁에 앉은 엄마 김완옥 씨가 대화를 이어받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거의 말을 안 한다는 신동민 씨, 그런데 엄마한테는 말문을 연다고 한다. 그런데 기준이 자기중심인 모양이다.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거, 오늘과 내일 해야 할 일정 등을 묻고 확인하는 선이 대부분이란다. 그런 그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을 먼저 물었다. 왜 모든 그림의 중심이 동물일까? 동민 씨의 대답이 뒤따르지 않아, 질문을 엄마한테 돌렸다.

“그건 저도 안 물어봤던 것 같네요. 어렸을 때부터 동물만 집중해서 그렸으니까, 그냥 그걸 당연하게만 생각했었나 봐요. 정말 집요할 만큼 집중해서 그렸어요. 그동안 그린 코끼리와 호랑이만 해도 수천 마리는 될 거예요. 그런데 제 눈에는 별다른 구별이 안 되는데, 동민이 눈에는 그게 다 보이나 봐요. 정말 똑같이 생긴 코끼리가 없어요. 다 다르게 그리거든요. 아프리카 코끼리가 있고 아시아 코끼리 같은 다양한 종류의 코끼리가 있다는 거, 그 모든 코끼리들의 귀 모양이 그렇게 다양한지는 저도 동민이 때문에 알게 됐으니까요.”

완벽하게 똑같이 그린다면, 그런 실력을 가진 이들은 적지 않으니까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화가 신동민’의 가치는 다른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자신만의 상상력이 매번 새롭게 투영된다는 점이다.

“실제와 같은 얼룩말을 그리다가, 자기 상상만의 무늬를 덧씌우며 처음 보는 얼룩말을 만들어요. 펜더처럼 커다란 점이 있는 코끼리를 본 적은 없으시죠? 사각형 모양의 젖소, 그런 식으로 항상 동민이만의 변형이 들어가요. 본 대로, 있는 그대로 그리다가, 그 다음 그림에선 뭔가가 달라지는 거죠. 언어, 그러니까 말로 표현하지 않는 동민이의 상상력이 끊임없이 화폭에 포함되는 거예요.” 낯선 곳 아닌 자기 자리 되찾기 자폐성 발달장애 2급인 동민 씨, 그는 살아오면서 몇 년에 한 번씩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그 힘든 검사 과정을 왜 이렇게 반복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다음 다시 또 받게 됐을 때, 엄마는 담당 의사한테 하소연을 겸한 불만을 토로했단다. 이걸 언제까지 계속 받아야 하느냐고 말이다.

의사의 답변은 짧고도 간결했다고 한다. 성인이 됐기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이번 심사 결과로 평생의 등급이 정해진다고 말이다. 10년 넘게 동민 씨를 마주했던 담당 의사의 소견은 1급에 맞춰졌지만, 서류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해당기관은 2급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단다.

“초등학교는 일반학교를 다녔어요. 어떻게든 적응을 하며 생활하는 줄 알았죠. 1,2학년 때까지는 괜찮았거든요. 한글도 다 알고 육하원칙의 문장도 인지를 하며, 체육시간과 음악시간도 나름 즐기는 아이였으니까요. 그런데 4학년 때 제가 학교에 가서,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동민이를 보게 된 적이 있었어요. 제가 직접 바라본 동민이는 그냥 멍하니…, 엄마만 알 수 있는 그 눈빛으로 하염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거예요. 몸은 여기에 있지만, 생각과 정신은 딴 데로 가 있는 게 확실한 자세로 정지해 있었던 거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화장실로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절대 울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막 쏟아지는 거, 정말 혀를 깨물면서까지 안 울려고 했는데도 오열이 그치지를 않는 거예요. 억지로 눈물을 참고 닦고 수습을 한 뒤, 6,7교시 수업까지 있던 날 2교시가 끝난 뒤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오늘은 동민이를 데리고 먼저 집으로 가야겠다고요.”

그날이 초등학생 신동민의 마지막 등교와 하교였다고 한다. 엄마는 결심했단다. 아들을 위한다고 했던 모든 게 엄마의 욕심이었음을, 아이의 행복을 위해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엄마만 알 수 있는 자식의 눈빛, 우리의 표현으론 ‘멍하다’고 적을 수밖에 없는 그 눈빛 안에 아들의 모든 언어가 다 담겨 있었다는 뜻이 된다. ‘여긴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발달장애 자식을 둔 엄마들의 심정은 다 똑같잖아요.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고, 얼마만큼 부담이 되건 사회성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답을 확신으로 얻게 됐어요. 엄마의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 스스로의 행복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게 최종 결론으로 내려진 거죠.” 그 결론을 내린 뒤, 엄마는 동민 씨를 대안학교로 전학시켰단다. 새로운 환경에서 얼마간 숨통이 트일 무렵, 지명도가 높았던 그 대안학교는 서울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가평에 대규모의 공간을 보금자리 삼으며 이전을 해갔다고 한다.

엄마 입장에서 당장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안 막힌다면 1시간이지만, 일단 막히면 다른 대책도 없는 국도가 유일한 접근법이라서 가평의 학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는 동민이의 그 ‘멍한’ 시선을 본 이후로, 다른 엄마들한테 늘 얘기하며 강조했어요. 그냥 맡겨놓지 말고, 매번 아이를 찾아가서 관찰을 하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학교라 해도 편도 기준으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의 학교에 아이를 맡긴다는 건…, 아, 그건 안 되겠다는 답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강조했던 게 아이를 언제든지 바라볼 수 있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즉각 찾아가서 해결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잖아요. 아쉬움은 있지만, 저는 동민이를 멀리 두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새로운 학교를 찾게 됐던 거예요.”

 

비운 만큼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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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학교 입학이 1년 늦어졌고, 대안학교에서 현재의 학교로 옮기며 다시 1학년으로 입학한 까닭에, 동민 씨는 동년배들보다 2년 늦은 나이로 해당 과정을 올해 모두 마치게 된다고 한다.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 진짜 사회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이 지점에서 본질적인 문답이 등장해야 한다. ‘신동민’이라는 1인이 미술에 가능성이 있다는 걸, 어느 누가 처음 판단해서 끌어올렸다는 걸까?

“늦은 나이로 다시 중학교 1학년이 됐을 때, 당시 장애인의 날 행사를 위한 준비가 막 진행되고 있었어요. 행사 내용에 그림 전시가 있었는데, 동민이가 속해 있는 팀만 거기를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 책임자였던 목사님이 무척 아쉬워했죠. 그래서 우리 학생들 중에 그림을 잘 그리는 이가 누구인지 찾기 시작했고, 여러 엄마들의 의견으로 동민이가 선정이 됐던 거예요. 당시 동민이는 3년여 그림에 손을 놓고 있던 시기였거든요.”

그림에 손을 놓고 있었다? 화가 지망생이던 그가 왜 그림을 멀리 하고 있었다는 걸까? 그 답을 설명하는 엄마의 의견 안에, ‘화가 신동민’의 정체성이 다 드러나는 것 같다. 그의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공개되는 것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죠. 대안학교에서 미술대회를 자주 나갔는데, 그럴 때마다 교사들이 동민이한테 ‘이렇게 그려라, 저렇게 그려라’ 하며 계속 지적과 지시를 했었나 봐요. 동민이는 자기 마음대로 그리고 싶어 하고, 그래야만 동민이만의 그림 세계가 완성되거든요. 자신이 표현하고픈 구상에 간섭하는 걸 참지 못하고, 그림 자체를 아예 멀리하게 됐어요. 가장 좋아하고 집중하던 일에서 상처를 받았던 거죠.”

엄마는 절실하게 깨달았단다. 좋아하는 일에서마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 무엇이든 욕심을 내면 동민이도 엄마도 불행해진다는 것, 그 욕심을 내려놓으면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지는데, 욕심을 내는 순간부터 불행이 찾아든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르고 부탁하며 회유해도 꼼짝하지 않던 동민 씨는, 엄마의 요청에 따라 학교 선생님을 만난 이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단다. 선생님이 A4지에 인쇄해서 보여준 고갱의 그림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즉석에서 고갱의 그림을 쓱쓱 그리는데, 저는 정말 제 눈을 의심했어요. 동물 말고 다른 건 전혀 그릴 줄 모른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구도를 잡는 준비 같은 것도 없이, 단번에 고갱의 그림을 똑같이 완성해내는 거예요. 다들 깜짝 놀랐죠. 저는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그때 동민이가 그렸던 그 그림을 지금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동민이가 그림으로 다시 돌아온 거고, 무엇보다도 동민이의 안에는 동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 확인한 증거가 됐기 때문이에요.”

11편이나 되는 커다란 그림을 ‘뚝딱’ 그려낸 그의 작품은 큰 호응을 얻었고, 그 다음해엔 발달장애 당사자들 중심으로 전시회를 열게 됐단다. 엄마는 지금도 당시의 그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동민 씨가 그림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계기와 기회와 응원을 계속 전해줬기 때문이란다.

“동민이가 지금의 실력과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건, 모두 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이끌어준 거예요. 구체적으로 누군가한테 배운 건 없죠. 대신 자기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끄집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어요. 욕심은 버려야 하지만…,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그냥 무난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좀 더 업그레이드된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게 되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좋은 파트너를 만나게 되길 기원해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게 제일 좋겠지만, 동민이는 워낙 자기 색깔이 강해서 다른 의견을 듣지 않거든요. 그래서 좋은 파트너를 원하는 거예요. 같이 작업하면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긍정의 영향을 동민이한테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건 제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꿈이겠죠. 그렇지만 그렇게 하려고 발버둥치지는 않을 거예요. 그마저도 욕심을 버려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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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신동민의 작품 세계

신이 열어놓은 문을 찾으세요

‘신동민’이라는 이름은 이젠 점점 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가장 고무적인 건 그의 작품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전문 화가와 큐레이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그만의 구성, 그만의 표현법, 그만의 상상력이 전문가들과 대중으로부터 공인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2016년, 그의 미술 인생에서 한 계단을 더 밟고 올라서게 된 활동이 그의 이력에 추가됐다.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보건복지부의 ‘함께 사는 세상 만들기’ 기획 사업으로 넷마블과 함께 제작, 출간하는 동화책이 그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2016년 장애인권교육용 동화책인 <황금 깃털 앵무새를 찾아서> 표지에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새겨졌고, 책을 펼치면 이젠 ‘이건 신동민의 작품’이라고 알아볼 만한 그의 세상이 가득 펼쳐져 있다.

“겉으로 표현은 잘 안 하지만, 동민이도 정말 기뻤을 거예요. 동화책 그림 섭외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제 마음은 표현할 방법이 없을 만큼 기쁘고 행복했거든요. 정말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에 부닥쳤죠. 동화 원고 내용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동민이는 자기가 생각하는 그림을 그리잖아요. 그게 가장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작가님께서 그림에 맞게 원고를 일일이 수정해주셨어요. 동민이 그림과 꼭 함께하고 싶다 하셔서, 오히려 저희가 감사해야 할 작업이 된 거죠.”

엄마 곁에 앉은 동민 씨는 무관심한 듯 자기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앉아 있었지만, 엄마와 나누는 대화 내용을 모두 다 듣고 있는 얼굴이었다. 즐거운 얘기가 나오면 혼자 빙그레한 표정이 됐고, 불편한 내용이 언급될 때는 괜한 헛기침과 함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민 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상황을 엄마한테 살짝 귀띔하니까, 엄마는 “얘 눈치가 100단이에요.” 하는 한마디 말로 모든 걸 정리했다.

“저의 좌우명은 ‘늘 우리 동민이 데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거’예요. 어릴 때는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했는데, 모든 걸 내려놓는 마음으로 사춘기 때부터는 운동만 하게 했어요. 그 결정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저도 놀랄 만큼 동민이의 운동신경이 좋거든요. 다 잘해요. 수영도, 마라톤도, 스키도 좋아해요. 농구는 던지는 대로 림에 들어가고요. 참 신기한 건 평균대 위에서 너무 편하게 균형을 잘 잡는다는 거예요. 동민이한테 부족한 부분의 에너지가 다른 곳에서 발산되는 것 같거든요.”

한쪽 문이 닫혔을 때, 신은 다른 한쪽 문을 열어놓는다고 했다.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충만함을 찾고 느끼려 하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닌가. ‘화가 신동민’의 작품세계가 무한의 미래를 향해 활짝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우리의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낼지도 모른다.

동민 씨의 새로운 구상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건지, 그걸 아직은 아무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 대목을 덧붙인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와 녹음된 내용을 정리하는데, 만남의 자리에선 듣지 못했던 엄마의 혼잣말이 작은 음성으로 담겨 있었다. “정말 말 좀 했으면 좋겠어. 우리 동민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얼 떠올리고 있는지, 그게 난 너무너무 궁금하거든.”

엄마의 독백에 동민 씨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속으로 말이다. “엄마, 사랑해요!”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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