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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아니라 이웃입니다

[부제: 그 소리가 그리워]

본문

 
 
“지~~~~잉, 지~~~잉”
“자기야, 저 소리 좀 어떻게 해봐. 정말 너무 힘들어.”
새벽 5시만 되면 어디서 시작되는지 모르는 휴대폰 진동소리에 혜주의 겨우 누인 잠이 또 달아났다.
 

혜주는 임신 7개월이다. 지난달까지 직장을 다니다 몸이 무거워 오면서 육아휴직을 한 상태다. 
늦게 찾아온 입덧 탓에 신경이 몹시 예민해져 있다. 울렁이는 속을 진정시키느라 잠시간을 놓치고 늦은 시간 겨우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휴대폰 진동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한참을 울리던 진동소리가 그치고 혜주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온다.
 
 
“좀 더 자~ 왜 일어나.”
“잠이 안 와.”
"자기가 너무 예민해있어서 더 그런가 봐. 잠을 잘 못 자서 큰일이네…."
"…."
 
 
서진은 인터폰으로 경비실에 하소연해 본다.
 

혜주의 입덧 때문에 서진은 회사 근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겠다며 조금 일찍 집을 나선다.
서진의 배웅을 하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혜주는 위층에서 내려온 정혜를 보고 얼른 서진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저…, 혹시 몇 시에 일어나세요?”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일찍 나섰고요. 보통은 9신데 왜 그러세요?”
혜주는 진동소리 때문이라는 말을 남겼다.
 

“경비실에 얘기해 놨으니까 조금 기다려 봐.”
서진은 혜주를 다독이고 서둘러 주차장을 향했다.
 

서진을 보내고 옆집 한율이 엄마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몇 시에 일어나세요?”
“휴대폰 진동소리 때문에 그러시죠?”
“네, 그 집에도 들리시나요?”
“네, 얼마 전부터 새벽 5시만 되면 울리더라고요.”
혜주와 한율 엄마는 저녁에 함께 위층을 가보기로 했다.
 

그날 저녁, 남편들이 퇴근하고 넷이서 위층에 올라갔다.
만약 위층이 맞다면 단단히 한소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을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린 끝에 얼마 전 새로 이사 온 미영을 만날 수 있었다.
왈왈 짖어대던 강아지는 미영이 문을 열고서야 잠잠해졌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인데요. 혹시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세요?”
 

혜주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만 미영은 뚫어져라 혜주를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머뭇거리다 한율 엄마가 다시 말을 하려는 순간 미영의 남편 지훈이 막 샤워를 마치고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옷만 대충 입고 후다닥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새벽 5시에 휴대폰 진동 알람을 해놓으셨는지요?”
“아…, 네, 맞습니다. 딸아이가 고3이라….”
“그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이렇게 왔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 와이프와 딸이 청각장애가 있어서 소리를 못 들어요. 그래서 진동을 해놓았어요. 제가 직장이 지방이다 보니 주말에 오는 탓에…, 정말 죄송합니다.”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네 사람은 얼음이 되었다.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죄송하네요. 사정을 알았다면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서진의 말에 혜주와 한율 엄마 아빠도 죄송하다는 말을 이어붙였다.
 

지훈의 수어로 상황을 이해한 미영이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지훈의 말에 혜주의 일행은 얼마든지 진동이 울려도 괜찮으니 제발 다른 방법 찾지 말라는 부탁을 남기고 내려왔다.
 
 
 
혜주는 집에 돌아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더니, 어느새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나 왜 그랬을까. 다들 그냥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이집 저집 만나면 몇 시에 일어나냐고 한참 이래봐야 10분도 안 되는 시간인데. 새로 이사 온 것도 모르고 누가 이사왔는지 관심도 없었고….”
“혜주야,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 코로나 때문에 서로 왕래할 수도 없고 알고 찾아간 게 아니잖아. 모르고 갔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했잖아.”
“그래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분 얼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 얼마나 민망하고 속상했을까.”
 
 
혜주는 그날 저녁 내내 미영과 지훈의 고개 숙인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부스럭부스럭’
휴일 이른 시간 혜주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혜주야, 뭐해?”
혜주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서진이 잠을 깼다.
“쿠키 만들어.”
입덧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던 혜주가 마스크 두 개를 겹쳐 코를 막고 주방에서 쿠키를 만들고 있다.
“갑자기 아침부터 쿠키?”
“있다가 위층에 가져다주려고.”
서진은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는 혜주가 예뻐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과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잠시 쉬려는데, 미영과 지훈이 왔다.
입덧에 도움이 될 거라며 누룽지 물과 백김치 그리고 새콤달콤한 각종 과자류를 건네주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혜주도 아침에 만든 쿠키를 건네며 죄송하다는 말을 또 했다.
“우리가 죄송한데 자꾸 죄송하다고 하시니 더 죄송합니다.”
“이제 죄송한 마음은 서로 접고 좋은 이웃을 만났으니 코로나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개인위생 철저히 하며 자주 뵐게요.”
“네, 그럼 좋죠. 이렇게 이해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휴대폰 진동 소리는 그날 이후 들리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놓던 휴대폰을 미영이 손에 들고 잠을 잔 까닭이다.
그리고 12월 수능이 끝났다.
 

미영은 혜주의 입덧에 도움이 될 만한 음식을 해서 챙겨주기도 하고 출산 준비도 함께해 주고 있다. 미영 덕분에 꼭 필요한 것만 준비할 수 있어서 혜주는 든든하다.
미영을 통해 수어를 배운 혜주는 이제 수어로 미영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언니, 나 가끔 언니 휴대폰 진동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어."
"호호, 설마 그럴 리가.“
혜주는 가끔 그 소리가 정말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소리로 인해 외동으로 외롭게 자란 혜주에게 좋은 언니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힘들고 고단했던 2020년을 함께 떠나보내고 2021년을 함께 만났다.
 

“자기야. 예전에는 장애인 하면 조금 낯설고, 다르게 느껴졌거든. 그런데 미영 언니랑 함께하면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이웃이란 걸 알았어. 지금은 언니가 됐지만. ^^”
“나도 그래. 다름 속에서 만나는 어떤 부분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서로 안아줄 때, 하나의 세상 안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
“우리 이사 가도 미영 언니네랑 좋은 인연 계속 이어가자.”
“당연하지! 하하.” 
 
 
*사람들은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 담을 쌓고 있습니다. 외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우리의 현실이지만 코로나보다 더 단단한 ‘편견’이라는 담이 우리 안에는 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중에도 어떤 불편함 때문에 인연이 되어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이웃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편견이야말로 가장 큰 질병입니다. 다르지만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최선영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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