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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 그녀 이야기
그와 처음 데이트하던 날, 만나기로 한 카페에 먼저 도착했다. 처음 가는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계단이라는 장애물이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계단은 그와 내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운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카페 앞인데 여기 맞아요?”
“네 거기 맞아요. 벌써 도착한 거예요?”
“네 좀 일찍 왔어요. 어디쯤이에요?”
“잠시만요. 곧 도착해요.”
 
‘설마, 계단인 줄 알면서 여기로 오라고 한 거야?’
계단 앞에서 투덜거리는 사이 그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인데 왜 여기로 오라고 한거죠?”
서운한 마음과 약간의 부끄러운 감정이 뒤엉켜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던지듯 말을 건넸다.
 
“제가 먼저 와서 기다렸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미안하다며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살짝 무릎을 꿇더니 등을 보였다.
머뭇거리는 나를 돌아보며 튼튼하니 걱정하지 말고 업히라며 다시 등을 내어주었다.
조심스레 몸을 맡기자 그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여기저기서 보내는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사는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다음부터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 만나든지 아님 1층으로 장소를 잡아요.”
“제 등이 불편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카페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1층에만 있지도 않아요. 이곳은 꼭 함께 오고 싶었던 곳이에요. 함께 하고 싶은 곳은, 수아 씨가 제 등이 불편하지 않다면 오늘처럼 장애물도 넘으며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장애인을 향한 시선도 호기심이 아닌 배려가 되고, 인식이 개선되어 장애물이 하나 둘 없어지겠지요.”
 
그의 말에 다른 말을 덧붙일 수 없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민우 씨 같지는 않아요...’ 라고 혼잣말을 오물거렸다. 그는 알까? 우리가 원하는 만큼 세상은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개선되는 시간도 많이 느리다는 것을.
 
계단만 보느라 그 카페가 얼마나 예쁘게 꾸며져 있는지는 보지 못했다. 커피를 받아들고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왜 이곳을 고집하며 함께 오고 싶어 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아 씨가 좋아할 만한 소품들이 가득한 곳이죠?”
그곳은 커피를 마시며 쇼핑을 할 수 있는 예쁜 카페였다.
커피를 마시다 말고 그는 옷과 가방 소품이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예쁜 스카프를 목에 둘러주며 가지런한 이를 또 드러내며 활짝 미소를 보였다.
나도 그에게 액자를 선물해 주었다.
함께 고른 선물을 서로에게 건네며 조금 더 깊어진 마음을 주고받았다.
“어때요?”
“좋아요. 너무 예뻐요.”
“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 시선이 어떻냐고요.”
“......”
“달라진 거 못 느껴요?”
“......”
“처음에는 우릴 쳐다봤는데 지금은 신경도 안 쓰잖아요.
이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거예요.”
 
나는 늘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다르기 때문에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들과 보이지 않는 경계선 하나를 그어놓고 살았던 것 같다. 그가 처음 내 마음에 불쑥 들어오던 그날도 나는 내가 만들어놓은 선을 지키려고 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선을 훌쩍 넘어 나의 세계로 들어온 그는, 카페에서 아주 특별한 또 다른 선물을 주었다.
다르기 때문에 삶의 곳곳에서 장애물을 만나기도 하고 다른 시선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내가 그 속으로 걸어가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는 것을.
 
그가 나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가 내게 주고자 했던 것은 내가 만들어 놓은 경계선을 내 스스로 지우는 거였다. 그가 건넨 커다란 선물을 받아들고 이제껏 시도해보지 않았던 많은 것들 을 그와 함께 한다.
그는 커다란 슬픔 하나를 안고 산다. 문득문득 알 수 없는 슬픈 표정을 보일 때가 있다. 스카프를 목에 둘러주며 아무렇지 않은 듯 꺼낸 이야기로 나는 그의 해석 불가능했던 그 표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아픈 기억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덜 아파하도록 안아주며 그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다. 다시는 깜깜한 방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울지 않도록 함께해 주고 싶다.
 
 
 
 
선물 - 그의 이야기
그녀와 자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데이트다운 데이트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밝고 예쁜 미소 뒤에 숨어있는 그녀만의 장애물을 뛰어넘게 하고 싶었다. 첫 데이트를 약속한 그날,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카페를 선택했다. 그곳은 그녀와 꼭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고.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곳이라 더 고집했던 것 같다.
 
그녀보다 먼저 도착해서 그녀가 불편하지 않도록 그녀의 튼튼한 다리가 되어주려고 조금 더 일찍 출발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그날따라 차가 많이 막히더니 사고 때문에 더 지체되었다. 그러다보니 그녀보다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 덕분에 그녀의 볼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투덜거림 마저도 사랑스러웠다.
그녀다웠으니까.
 
엘리베이터 없는 2층이라는 장애물 앞에 그녀는 돌아서려 했다. 밝은 미소 뒤에 숨어있던 그녀의 경계선이 커다랗게 형상화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늘 이렇게 다름이라는 세상을 만나면 돌아서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내가 등을 보이며 함께 하자고 했을 때, 그녀는 내 등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녀가 세상 어디에서든 당당하기를 바랐고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들고 세상 속으로 나와 세상과 하나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조금 더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어떻게 업어야 그녀가 편안한지를 다 알게 된 건 그 이후 한두 번 더 업고 나서부터다.
 
“무겁지 않아요?”
“밥 좀 많이 먹어야겠어요. 뭐가 이렇게 가벼워요?”
 
그녀를 등에 업는 순간... 가냘픈 그녀를 평생 지켜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커피를 마시며 재잘거리다 보니 그녀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우리를 향하던 사람들의 시선도 제자리를 찾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답답한 게 싫다며 추운 날씨에도 늘 목을 휑하니 드러내더니 조금은 서늘한 느낌이던 그날도 그녀의 목은 추워 보였다. 그녀에게 스카프를 선물했다. 그녀는 내 시선을 따라오더니 내가 멈춘 시와 그림이 있는 액자를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늘 그랬다.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를 건네주고 내가 힘들 때 말없이 손잡아 주는.. 그런 따스함이 좋아서 그녀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첫걸음을 시작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우리를 향하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듯, 그 시선에 마음을 두던 그녀의 흔들림도 안정을 되찾았다.사람들 틈에 살면서도 늘 그들의 호기심과 관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스스로를 내몰던 그녀가 세상 속으로 들어와 하나 되어 살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보고, 조심스레 내민 손을 잡고 따라와 준 그녀가 고마웠다.
 
조금은 낯설어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아도 될 관심을 주는 사람들 탓에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 되고 있다.
무엇보다 내 등을 어색해하던 그녀가 이제는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업히지 않아도 될 곳에서도 자꾸 어부바를 해달라고 해서 다리가 후들거릴 때도 있지만. 하하.
 
어릴 때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간 여동생이 있다. 내 손을 잡고 마트로 뛰어가던 동생의 손을 놓친 그 날.. 그 순간의 악몽이 늘 내 잠자리를 흔든다. 지켜주지 못한것에 대한 죄책감, 어린 동생에 대한 기억과 그 빈자리는 아무때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 같은 거였다. 그녀를 만나고 나는 잃어버렸던 미소를 찾았다. 카페에서 아무렇지 않게 던졌지만 내 심장은 여전히 아팠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그녀는 따뜻한 손으로 울고 있는 내 심장을 만져주었다. 그리고 동생도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랄 거라고 했다.
 
나는 내 슬픔만 생각했다. 하늘나라에서 나를 지켜볼 동생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었다.
여전히 아프지만 이제 웃을 수 있다. 동생의 빈자리까지채워주는 그녀의 사랑이 고맙다.
 
그 사랑은 내게 가장 큰 선물이다. 함께 하는 이 모든 순간이 선물이다.
 
그녀는 나에게 나는 그녀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선물이다.
 
 
작성자글과 그림. 최선영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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