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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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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쪽으로 가면 되나요?”
“백신 접종하러 오셨죠?”
“네.”
“저도 백신 맞으러 왔으니까 따라오세요.”
“감사합니다.”
 
시청각장애가 있는 정우에게는 백신 예약부터 접종을 하는 당일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접종하는 곳이 처음 가는 곳이라 길을 찾느라 혹시 늦을까 봐 백신 맞기 하루 전에 미리 가서 길을 익혀두기도 했습니다.
 
접종 당일,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하는 정우는 폰에 있는 음성인식기능 앱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음성인식기능 앱은 누군가 말할 때마다 말하는 사람에게 폰을 가까이 가져가면 그 말이 폰에 글자로 나오는데, 마스크도 쓰고 있는 상태라 완벽하게 번역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백신 접종하는 곳은 자원봉사자도 잘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류 접수를 도와주는 봉사자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름을 적어야 하는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는데, 그 칸의 공간이 너무 작아서 저시력인 정우는 다른 칸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랬더니 봉사자는 정우가 들고 있던 펜을 확-하고 빼앗아서 자기가 대신 정우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런 무례함을 만나서 불쾌하고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접종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은 너무 친절하셔서 좀 전에 만났던 무례한 봉사자에 대한 서운한 마음마저 녹아내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신 접종 후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저 모르시겠어요?”라고 하며 의사 선생님이 말을 건네셨습니다.
“저를 아세요?”
“이정우 선생님 저 소영이에요.”
소영이라는 말에 얼굴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아, 그 소영이?”
유난히 예쁘게 반짝이는 소영의 눈을 보자 정우도 그제야 알아봅니다.
소영은 몇 년 전 대학교로 진로체험을 온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대학 내 다양한 학과로 진로체험을 온 학생들은 장애학생지원센터에도 오게 되는데, 그곳은 정우가 강사로 활동하던 곳입니다. 장애체험프로그램에서 장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론과 체험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소영이 의사가 되어 정우 앞에 있습니다. 주말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에 정우는 몇 년 전 소영을 만났던 그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정우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실로 향합니다.
복도 저 끝에서부터 통통거리는 소녀들의 재잘거림은 정우의 마음을 더 긴장하게 만듭니다.
정우가 강의실을 들어서자 소녀들의 재잘거림은 탄성으로 바뀝니다.
 
“와~ 정말 잘생겼어요!!”
“고마워요. 오늘 즐겁고 유익한 시간 함께 만들어봐요.”
“목소리도 너무 좋아요.”
“저도 잘 안답니다. 하하.”
정우와 학생들은 어색하지 않게 첫인사를 나눕니다.
 
이론 강의가 끝나고 시각, 청각, 지체장애 세 팀으로 나뉘어 돌아가며 체험을 합니다.
이론과 시각 파트를 맡은 정우는 이론 강의가 끝나고 시각장애체험을 위해 학생들이 안대를 착용하게 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한 학생들은 두려워하며 조심스레 움직입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을 몸으로 직접 느끼며 이해하게 됩니다.
소영은 평소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안대를 착용하면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자 시각장애인들이 얼마나 생활에 불편함이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접했던 시각장애인에 대한 불편함을, 생각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막연함이 체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해가 되면서 어떤 것이 불편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청각장애체험 시간에 소영은 또 다른 언어, 수어를 배우며 사람은 입술의 소리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손으로 표현하는 소리도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아름다운 언어 뒤에는 들리지 않는 답답함과 불편함도 무척이나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외국인과 소통하기 위해 영어나 중국어를 배우듯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수어를 배우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이렇게 여기서만 끝나지 말고 학교에서도 수어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러게 그럼 청각장애인을 만나도 쉽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 텐데...”
소영의 말에 해진이 방긋거리며 대답합니다.
 
“야 팔이 너무 아파.”
“그러게 이거 되게 힘든 거구나... 그런데 계단은 어떻게 올라가지?”
“맞아 계단은 어떻게 오르지? 정말 불편한 게 너무 많을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는 계단이었는데 휠체어를 타니까 계단이 장애물이라는 걸 알겠어.”
소영과 친구들은 휠체어 체험을 하며 평소 아무렇지 않게 오르내리던 계단을 떠올리며 장애인들은 가고 싶은 곳, 가야 하는 장소에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불편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영은 장애체험프로그램을 다 마치고 소감문과 설문지를 작성하는 시간에 지금까지 막연하게 ‘불편하겠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잠깐이나마 직접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 불편함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간을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남겼습니다.
 
소영과 친구들은 정우 선생님이 시청각장애라는 생소한 장애를 가졌음에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강의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투덜거리기만 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며 장애인에 대한 다름을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쓰고 싶다는 예쁜 생각을 품어봅니다.
 
모든 체험을 끝내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소영은 정우에게 쪼르르 달려갑니다.
“선생님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정우는 티 없이 밝은 소영의 편견 없이 다가오는 모습이 예뻤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만져주고, 상처 난 마음에 위로를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소영은 시청각장애인이면서 멋진 강의를 해준 정우를 보며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소영은 힘들 때마다 정우 선생님을 떠올리고 다시 파이팅을 외치곤 했습니다.
 
소영은 자신이 원하던 의사가 되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많은 환자를 대하는 직업이라 늘 아픈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환자 중에는 장애를 가진 환자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장애체험프로그램에서 했던 활동을 떠올리며 더 세심하게 배려하며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환자로 병상이 모자라고 일반 환자들도 병원 진료받는 것이 어려웠지만 장애가 있는 환자들은 더 큰 어려움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영은 정우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셨죠? 다시 뵙게 되어 정말 반가웠어요.”
“소영이가 의사가 된 걸 보고 진짜 반갑고 또 대견하고 그래.”
주말에 다시 만난 소영과 정우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반가운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2022년 정우는 3차 백신을 맞기 위해 가까운 병원을 갑니다.
소영을 통해 소식을 들은 그날의 또 다른 학생이었던 해진이 간호사로 근무하는 병원입니다.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많은 보람된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통해 장애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정우의 마음은 행복해집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하는 경우도 많고 회사에서는 법정의무교육으로 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무엇보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은 대면으로 하는 것이 전달력이 크고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강의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정우는 소영과의 좋은 만남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깁니다.
작성자글과 그림. 최선영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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