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가와이 가오리의 「섹스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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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거의 모든 일간지 <화제의 신간> 코너를 장식한 책이 한 권 있다.
일본의 젊은 여성 프리랜서 작가 가와이 가오리가 펴낸 ‘섹스 자원봉사-억눌린 장애인의 성(性)’이 바로 그것.
해외소식이나 장애우의 성(性)이란 주제로 기사를 다룰 때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간간이 소개된 바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제도를 모두 묶어 자세하게 소개한 바는 처음이지 않나 싶다.
이 책은 작가의 목소리를 거의 배제한 채 인터뷰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어 누구든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다. 또한 2년 동안 일본의 중증장애우와 관련 모임, 사회복지사, 섹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합법화되었다는 네덜란드 현지상황까지 취재해 흥미위주에서 벗어나 대안을 모색하는 세심함을 보여주고 있다.
성(性)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지은이 가와이 가오이는 한 흑백비디오를 통해 69세의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자위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지기 시작하니까 비디오 촬영을 하는 청년이 자기 손으로 자위를 도와주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비디오 속에 등장한 다카다가 “성(性) 내 삶의 근원”이라 말하는 것을 보고 중증장애우, 특히 자위행위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 성욕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그래서 섹스 자원봉사라는 것은 유효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안게 된다.
물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가 명확히 결론을 내려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 상황이 어떤지 보여주고 있을 뿐.
그러나 중증장애우들의 욕구와 드러냄 그 자체가 최선이지 않을까.
한 가지 우려스런 점은 성(性)에 대한 일반적인 상황이 여전히 숨기고, 억압받고, 키득거리는 한국 사회라 이들 중증장애우들의 성을 그저 흥미위주로 바라보고 또 왜곡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미리 이야기를 하자면, 자기 자신부터 솔직해지지 않으면 이 책의 내용은 결코 우리 사회 구성원이 안고 있는 진실한 고민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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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69세, 남)는 보행이 어려운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다. 산소통에 의지해 생활,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고 독학으로 글을 익히게 된다. 50세에 업소를 찾아가 처음 섹스하게 된다. 그 이전 업소를 찾았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16번째 성공한 것이다. 처음 벗은 모습의 여성을 보았을 때 동정하는 것 같아 나오고 싶었지만 어렵게 함께 간 시설 직원에게 미안해 끝까지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장애우는 결코 사랑해선 안된다고 했고, 살아오면서 내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지만 한 여성을 진심을 사랑하게 되면서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그녀는 먼저 자살을 했고, 그는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면서도 살고 있다.
“물론 숨 쉬는 건 어렵지만 어린 아이처럼 여자 가슴에 파묻히는 게 좋아요.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그때고. 성은 삶의 근원, 그만둘 수 없어요.”
성인비디오를 볼 때 가장 편안하다고 하는데, 장애연금을 모아 1년에 한번씩 소프랜드(샤워시설을 갖춘 완전 밀실에서 성적인 마사지만 제공하는 윤락업소)가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동작 하나하나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연히 요금도 비쌀 수밖에 없다.
업소에 갈 때 개호인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자위할 때 개호인의 도움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 “개호를 받는 게 사실 우리들에게는 최대의 굴욕입니다. 그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고 있을 뿐이죠”
그는 아무리 중한 장애를 갖고 있어도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솔직히 말하고 있다.
안락사도 나쁘게 보지 않고 있다. 차라리 죽여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을 때가 많다고도 한다. 죽은 여자 친구를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는데, 사랑했지만 섹스는 한번도 안했다. 그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몸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차마 말하지 못했고, 만나면 그저 빨리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라고 했다 한다.
그는 지은이에게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여자랑 데이트하고 싶었어, 결혼도 하고 싶었어. 아이들도 낳고 싶었어. 공부도 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런 건 생각조차 해서도 안됐어요.”
성에 대해 억눌려 있었기 때문에 해결하고자 한 것이지, 결코 집착하거나 그가 원하는 전부가 아니었다.
사토는 장애우 시설 직원이다. 마흔이 넘은 비장애우로 손발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우의 손이 되어 자위를 돕기도 한다. 그는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뿐 지체장애우 개호 현장에서는 흔한 일이예요. 결코 놀랄 만큼 희귀한 일이 아니죠”라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지은이를 다케다에게 소개시켜준 것도 사토다. 그는 장애우들의 숨겨진, 아니 억눌린성의 현실이 제대로 알려져 어떤 대안이 나오길 바라는 사람이다.
남성에게만 도움을 주다가 여성장애우에게도 관심을 갖게 돼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그는 본인이 사정을 하기도 해서 관계가 애매모호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남성에게는 자신이 도구로밖에 여겨지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본인도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개입되는 경우 제공받고 서비스 해주는 관계가 명확해 지지만, 자원봉사라고 했을 때는 어느 선까지 유효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는 여전히 본인에게도 과제라는 것이다.
이오 아오이(38세, 남)는 선천성뇌병변장애우로 장애가 심해 식사, 용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손발 사용도 힘들고 휠체어를 사용한다. 언어장애가 심하고 컴퓨터 키보드는 턱으로 사용, 2줄 치는데 1시간 걸린다. 딱 한번 연애를 한 적 있다고 말하며, 애인과 포옹, 키스는 해보았지만 섹스는 허락 받지 못했다고 하며, 여성들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섹스로 이어지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여자친구가 결코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자원봉사를 해주겠다던 주부 사유리와 만나자 마자 10초만에 사정하기도 한다. 30년 동안 손이 닿지 않아 자위를 할 수 없었다고, 몽정만 했을 뿐 사정은 처음이라고 고백하며, 사유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러나 사유리는 결혼한 여성이고 아이도 둘이나 있다.
남편이나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냐고 하자, 사유리의 남편에게는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다고. 밥 먹여주는 자원봉사, 화장실 함께 가는 자원봉사처럼 섹스 하는 자원봉사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뿐더러 연애감정이 없는 단순한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건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 그는 사유리에게 키스를 요구하기도 했고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말하며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이런 상황에 부담을 느낀 사유리는 섹스 자원봉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더 이상 지속시킬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오이는 이후 유카리라는 비장애 여성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섹스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다며 안식처를 찾은 듯 평상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섹스자원봉사는 끝난 뒤 허무했지만 아내는 허무하지 않은 게 다르다”고 말하는 그에게도 섹스가 필요한 것이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후 그와 결혼한 비장애 여성 유카리는 이렇게 말한다.
“중증장애우 커플의 경우, 옷을 벗겨주거나 콘돔을 끼워주는 등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죠. 애인도 없고 손도 움직일 수 없는 경우엔 자위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런 자원봉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그러면서 그녀는 장애를 가진 여성들도 자위를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면 섹스 자원봉사를 이용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성의 성만 이야기하고 여전히 드러내놓지 못하고 해결 지점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여성에게도 관심과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유카리는 중증장애우라고 섹스에 대해 모두 ‘그럴 것이다’생각하는 건 편견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섹스에 대해 생각과 반응이 다른 것처럼 중증의 장애를 갖고 있어도 취하는 태도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성이 억눌려 있으되 일반화하기보다는 사람의 취향과 특성에 따라,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야마모토 사유리는 마흔이 넘은 가정주부로 섹스 자원봉사를 제공하겠다고 인터넷에 공개한 비장애 여성이다. 사유리는 97년 인터넷에 중증장애우의 자위행위를 돕고 싶다는 글을 올리는데, 이에 응한 아오이를 만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장애우 시설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가족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녀가 단지 컴퓨터 자원봉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인터넷상에서 장애우의 성 고민을 상담해주는 것으로 처음 섹스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손을 움직여 자위를 할 수 없다는 사람에게는 봉을 사용해보라고 조언하기도 했고, 상담을 의뢰한 사람으로부터 좋았다는 답변 받기도 했다. 상담을 의뢰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고 여성장애우의 경우 다리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상담을 받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상담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중증장애우를 받아줄 만한 업소가 어디 있는가?”였는데, 일반 업소에서는 거부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맘놓고 찾아갈 수 있는 곳, 혹은 장애우 전용 업소 같은 것이 없는지 알려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 원래는 받아주지 않는 곳을 직접 함께 찾아가 승낙을 받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소극적인 방식이라 생각해 “직접 섹스 자원봉사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단 한번으로 끝난다면 차라리 모르는 채 죽는 게 낫다”라는 반응이었지만 두 사람이 응해 섹스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그녀는 자원봉사를 시작한 동기에 대해, 이 일의 본질에 대해 “먹거나 용변을 보는 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의견을 말하면서 기본적인 권리인 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 자기들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죠. 성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었어요”라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결국 주변의 이해부족과 아무리 혼자 열심히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 실망해 지금은 하고 있지 않다. 남편에게도 비밀이었는데, 어느 날 슬쩍 떠보니 “욕구불만으로 머리가 돌아버린 미친 여자가 별 짓을 다한다고 하겠지”라고 일축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책 속의 이야기들
책에서 나온 여러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은 지면 관계상 이 정도로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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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사례를 간략히 언급하자면 남자친구가 있지만 상처받을까봐, 관계가 깨질 것이 두려워 성관계는 하지 않는다는 여성장애우, 출장 서비스 제공자로 일하고 있는 청각장애를 가진 여성장애우,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출장 호스트 남자를 자신의 왕자라고 표현하며 만족하고 있는 여성장애우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또 출장을 통해 장애우들에게 섹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들은 업소에 소속된 사람들이고 돈을 받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자면 자원봉사는 아니지만, 그들은 억눌린 장애우들을 위한 복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상황을 제대로 소개한 것도 흥미롭다.
대충 합법화되어 있으며, 민간 섹스 자원봉사 조직이 있고 또 장애우들에게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왜 이런 단체가 조직되었으며, 지자체의 지원 실태, 이용자들의 만족도 등은 문화가 다른 곳의 이야기이지만 대안을 모색해 보는데는 도움이 될 듯 싶다.
왜 소원이어야 할까에 주목하자
지난 2003년 6월호 특집 ‘장애우들이여 성적 권리를 주장하라’는 제목의 기사를 취재하다 한 장애우로부터 들은 “섹스 한번 해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성적 욕구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야 장애 여부에 상관없는 보편적인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섹스를 하는 것이 소원이어야 할까’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우의 억눌린 성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 이웃을 제대로 이해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성(性),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다면 장애우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 홍여준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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