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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래 사고 이후 인터뷰 기사분석

본문

 

 

 

“여러분들의 의사는 충분히 알았으니까 일단은 이 쇠사슬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버스를 막고 차도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이거는 명백한 불법입니다. (중략) TV속 드라마에 나오는 그곳을 한 번 가보는게 우리들(우리네) 꿈이라오. 이대로~ 우린 살수 없소. 이대로 난 이렇게 난!” - (클론 5집 ‘소외된 외침’ 中)

 

 

2000년 11월 9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클론 멤버 강원래의 교통사고 소식이다. 댄스가수로 정상에 서 있던 그가 평생을 휠체어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고 알려졌을때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사고 이후 국민들은 두가지 상상을 했다. 언젠가는 일어서서 다시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장애를 비관해 은둔생활을 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도 했던게 사실이다. 아직 우리에겐 한국의 크리스토퍼 리브를 겪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상은 모두 틀렸다. 그는 일어서는 대신 휠체어에 앉아 춤을 추고 있고, 화려했던 날을 돌아보며 생을 갉아먹는 대신 세상 밖으로 나와 ‘장애우 강원래’로의 새 삶을 알리고 있다. 지난 5년동안 그에게는 변화가 있었을까?
그날 이후, 5년의 생활
한 인간의 삶에서 장애의 발생은 큰 밑줄을 긋는다. 특히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느닷없이 발생한 장애는 그 여파가 더욱 크다. 이에 장애가 발생한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삶은 크게 달라진다. 사고가 불행의 시작이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터닝포인트였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장애우도 있다.
흔히 장애의 발생 후 겪는 정서적 변화의 과정을 충격 → 부정 → 우울반응 → 독립에 대한 저항 → 적응 단계로 표현한다. 강원래도 이 단계를 하나씩 거쳤다. 한때 휠체어 뒤에 “뭘봐?”라고 씌여져있었다고 알려질 정도로 세상에 대해 날카롭게 반응하던 그에게 오늘날이 오기까지의 길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동안 이러한 심정의 변화를 숨김없이 전해왔다. 
 
“그는 최근 대만에서 병문안 온 팬들의 면회도 거절했을 만큼 대인기피증세를 보여왔다. 인기가수로서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놀라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하반신 마비로 앞으로 가수로서의 활동이 아직 불투명하기 때문이다.”(경향신문/2001.02.05)

기사에서도 드러나듯 사고발생 초기 강원래에게는 지금과 같은 여유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후에 여러 매체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심정을 밝혔다.

“인터뷰할때마다 말하는 건데 지금은 다시 노래부르겠다는 생각은 없어요.(중략) 저도 마비가 되었을 때 노래를 다시 불러야겠다, 무대에 다시 서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들었어요. 영화는 어떻게 보러 가나, 휠체어 타고 넘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부터 들더라구요. 휠체어 타고 가수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폐활량이 안되는 걸요. 지금 제 상태는 여자의 기본 폐활양에도 못미쳐요. 사람들은 다 그러죠. 힘내라고, 가수활동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제 속도 모르고 하는 얘기들이예요. 폐활량이 안돼서 소리도 못지르는데요.”(함께걸음/2001.6)

“의사에게 ‘(걷게 될 텐데) 굳이 휠체어를 사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평생 타야하니까 좋은 것을 사라’는 말을 듣고 너무 황당해 눈물도 안나왔다. 그는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어둠 속에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그는 어느날 밤 ‘울고 있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아왔으니 이제 좀 쉬어야지’라며 마음을 잡아나갔다.”(조선일보/2002.4.17)

사고 후 1년쯤의 시간이 흐르자 그는 조금씩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2001년 8월 김송 씨와 혼인신고를 한 이후 2003년 10월에는 결혼식을 올렸다. 2001년 10월에는 두산·현대의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 시구를 맡아 한결 밝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이어 그는 KBS <사랑의 리퀘스트>로 방송에 복귀하더니, KBS <사랑의 가족>, KBS 라디오 <강원래노현희의 뮤직토크>, iTV <강원래의 미스터리 헌터〉등에서 활약을 해왔다. 장애인의 날 관련 각종 행사에도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댄스학원을 열어 춤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다.
그리고 2005년 7월 클론은 다시 무대위에 올랐다. 휠체어를 타고 나란히 등장한 클론의 춤과 노래는 5년전보다 한결 깊어졌다. 30대 클론의 춤은 20대 댄스가수들에게 보여지는 열정과는 다른 색을 띄고 있다.
이번 음악의 주목할 만한 점은 클론 특유의 밝고 경쾌한 곡과 함께 장애인이동권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컴백과 함께 장애우의 이미지를 줄이고 ‘댄스가수’로의 강원래를 각인시키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고 이후 그가 했던 고민과 장애인권의 문제를 그의 방식으로 비장애우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쓴다.
만약 사고가 없었다면 클론이 노래와 춤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댄스가수가 될 수 있었을까?

▲강원래 씨
“흉추3번 밑으로 하반신 마비 가슴 이하로 느끼지 못하고 혼자 스스로 움직일 수 도 없는 지금 이 상태로 예전에 나는 어디로 무대를 휘젓고 다니던 강원래는 어디로 그 때는 그랬었지 마치 꿈만 같다 끝이 보이지 않던 죽음의 터널을 지나 이렇게 난 살아있구나 하지만 난 이렇게 살아서 내 소중한 사람들을 슬픔에 살게 하는구나 다시 보니 정말 참 좋구나 다시 보니 정말 참 반갑다 내 친구야 오랜 나의 친구야” (클론 5집 ‘슬픈 사람들’ 中)

“다 잊어 다 잊어버리자 내게 갑자기 찾아왔던 절망의 그 시간들 잊자 잊어 다 잊어버리자 나의 화려했던 그 지난 날의 그 멋진 날들을 일어나 다시 부르지 못다한 노래 언제나 내가 니 곁에서 함께 할테니 일어나 다시 부르자 흥겨운 노래 세상에 모든 절망을 다 쓸어보자” (클론 5집 ‘세상 밖으로’ 中)

“차별과 편견 변치 않는 사람들의 고정관념 20년 30년 이렇게 집에만 처받혀 살아가고 있는 난 답답한 마음에 소리쳐 외쳐 인간답게 살아 보자 이동권 보장하라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내 몸둥아리 썩어 가는 냄새를 맡으며 살 순 없다 목숨 걸고 투쟁하자 싸워 이기자! 높으신 양반들은 뭐하시나? 모두가 복지예산 깎아먹기 바쁜가? 이렇게 우리들은 죽으라는 말인가~서로가 눈치만~모두가 핑계만~” (클론 5집 ‘무언의 발걸음’ 中)

“하반신 마비라는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난 아무런 저항도 못 한채 받아 들여야 했다 (중략) 울었다 이제 나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두려워 울었다 타들어가는 입술을 깨물며 움직일수 없는 몸을 마음으로 끌어안은채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화려했던 지난 날의 추억의 끝을 잡고 다시 일어날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두려워 나는 내 자신을 속여가며 너무 많이 울었다” (클론 5집 ‘2001.4 병상일기’ 中)


이처럼 그는 5집을 통해 지난 5년의 삶을 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또 그는 각종 컴백기념 인터뷰와 공연에서 장애인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매번 놓치지 않는다. 중도장애우에게 자신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KBS <폭소클럽> ‘바퀴달린 사나이’(8.1)의 클론 특별출연편은 절정이다. 클론이 ‘장애’에 대해 쿨하게 적응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휠체어의 장점을 ‘줄 안서 좋아’라고 말했고, 박대운은 ‘주차 편하게’라고 응수했다. 구준엽도 ‘신발 안닳아’라고 말해 관객들을 웃겼다. 휠체어의 불편한 점도 능청스런 웃음으로 얘기한다. 강원래가 ‘애들 따라와’라고 말하자, 박대운은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한테 휠체어 한번씩 태워주며 100원씩 받았다는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구준엽은 ‘계단 무서워’라며 편의시설의 부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 가운데 구준엽이 ‘휠체어’에 대해 입을 연것은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사고 이후 강원래 만큼이나 관심을 모은 것은 구준엽의 행보였다. ‘언제쯤  솔로 활동을 시작할 것이냐’에 주목되는 세간의 호기심은 구준엽을 더욱 움추려들게 했을 것이다. 
춤꾼이 춤을 추지 못하는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는 지난 5년을 강원래만큼이나 고통스럽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솔로활동=친구의 배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대에 오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2003년에 발표했던 솔로 앨범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느날은 의류소매업자로 변신하기도 했고, 드라마에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춤을 추지 않는 구준엽은 더 이상 구준엽이 아니었다. 강원래가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다시 손을 잡았다. 휠체어는 그들에게 이동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노래를 표현하는 훌륭한 도구가 됐다. 구준엽은 이제 강원래의 친구일 뿐만아니라 장애인권을 외치는 동지로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

“클론, 데모 안나와도 좋다,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라”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지난 5년동안 언론을 통해 한 비장애우가 장애인우로 새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강원래처럼 사고로 갑작스레 장애가 찾아온 이들에게는 그가 하나의 모델이 됐을테고, 비장애우들에게는 장애가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언론은 가수 강원래가 아닌 장애우 강원래로의 삶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그 안에서 사회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거꾸로 강원래의 컴백을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상징처럼 묘사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클론에게 데모 나오라고 말하지 말자. 그는 이미 노래와 춤으로 매일같이 이동권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대신 다른 요구를 하자. 더 신나고 즐거운 춤을 춰달라고 말하자. 9시 뉴스보다 음악프로에서 그를 만나자. 그리고 클론CD사자. 그가 얼마나 많은 중도장애우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가. 음반판매 1위로 장애우들이 그만큼 이런 노래에 목말랐음을 보여주자. 또 집회 때 마다 부르는 ‘장애해방가’, 이제 식상할 때도 되지 않았나.

글 황지희 객원기자 

작성자황지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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