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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거기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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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비사로 들어서자 아직 남아 있던 단풍이 문야를 맞이했다. 이렇게 선명한 단풍을 보는 게 얼마만 인지 모른다. 한꺼번에 그 많은 빛깔들을 보자 문야는 아찔하니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뻑뻑하니 가슴이 벅차 왔다.
 하지만 문야의 시선은 단풍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미끄럼을 타듯 빠르게 자비사 경내를 훑어 나갔다.
 "이상하다.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안 오셨나?"
 문야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리로만 만났던 풍경이 댕그랑 댕그랑 아는 체를 했다.
 "너였구나. 맑은 소리를 누가 내나 했더니."
 허공을 헤엄을 치고 있는 작은 물고기를 올려다보는 문야의 얼굴이 햇살처럼 빛났다.
 안에 계시던 스님이 그러는 문야의 기척을 알아채고 말씀하셨다.
 "왔으면 들어올 일이지 왜 그러고 있누?"
 그제야 문야는 법당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똑바로 부처님을 마주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문야를 바라보셨다.
 "스님 부처님이 저를 보고 웃으시네요."
 "그래? 오늘은 문야의 마음이 기쁜가 보구나. 부처님은 기쁜 사람에게는 기쁜 얼굴로 슬픈 사람에게는 슬픈 얼굴로 보이게 마련이니까."
 스님은 일손을 놓고 다가와 문야와 부처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 다시 보는 세상이 어떻던고? 생각하고 많이 어긋나지는 않더냐?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만이 다는 아니지만 하여튼 다 부처님의 자비로구나."
 평소엔 별로 말씀이 없으시던 스님이지만 오늘은 문야의 손을 꼭 쥐고는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으셨다.
 하지만 문야는 마음이 급해 스님에게 잡힌 손을 빼며 말했다.
 "여기서 마술사 아저씨를 만나기로 했어요."
 "인석아, 바쁘기로 치면 오늘은 내가 더 바쁘다. 정성껏 올릴 재가 있거든. 바로..."
 스님은 무슨 말인가를 더 할 듯 하다가 그냥 문야를 놓아주셨다.
 아저씨를 만날 생각을 하면 문야는 마음이 설레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해탈문과 사천왕문 사이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문야는 두 손을 모으고 탑을 돌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스무 번도 넘게 탑을 돌았는데도 아저씨는 오지 않았다. 스님이 몇 번이나 그러는 문야를 내다보며 무슨 말을 할 듯 하다가 그냥 들어가셨다.
 바람의 등을 타고 후드득 날아오르는 나뭇잎들이 꼭 새떼 같았다. 그것을 보며 문야가 말했다.
 "그래, 마음을 다해 간절히 원하면 기적이 생기기도 하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을 마술사 아저씨가 바로 문야에게 해 주었던 말이다. 
 문야가 마술사 아저씨를 처음 만난 것은 꼭 일년 전 오늘이었다.
 문야가 병원에 다녀온 날이었다.
 문야는 눈이 안 좋아 오랫동안 병원엘 다녔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림자 나라처럼 색깔이 사라지더니 사물들이 자취를 감춰 가고 점점 어둠이 짙어져 문야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자꾸 줄어들었다. 엄마는 문야를 데리고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다. 그리고는 꼭 여기 자비사로 와서 오랫동안 기도를 했다. 문야는 그때마다 소용없는 일이라며 짜증을 내었지만 엄마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날도 문야는 짜증을 내며 법당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스님이랑 다른 사람들은 재가 있다며 그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엄마는 그날 따라 기도가 길어졌다. 문야는 너무도 지루하고 심심했다. 엄마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내 법당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야는 엄마려니 하고 서둘러 그리로 향했다.
 "어어어어....... 얘가 왜 이래."
 뭔가에 앞이 탁 막혔고 굵직한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서두르다가 문야가 방향을 잘못 잡고 막 절로 들어오던 아저씨와 부딪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문야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얼른 방향을 바꿔 달아났다.
 "아이쿠!"
 그런데 몇 발짝 못 가 문야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나무를 받혀 놓은 지지대에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아저씨는 그런 문야를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다.
 법당 문을 열고 나오시던 스님이 그것을 보고 쫓아왔다.
 "문야, 다치지 않았냐? 조심해야지. 엄마한테 데려다 주련?"
 얼굴이 단풍잎보다도 더 빨개진 문야는 고개를 저으며 더듬더듬 그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스님과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면서 귀가 더 예민해진 때문이었다.
 "괜찮으세요? 오실 시간이 된 것 같아 나오던 중이었는데......"
 "아, 예. 그런데 저 아인......."
 "예, 눈이 좀 어두워요."
 "아직 어린아인데 어쩌다가."
 "......... 좋다는 것은 다 해보는 모양인데 잘 안되나 봐요. 그보다도 아이가 많이 지쳐서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불신하는 게 더 안타까워요."
 아저씨는 스님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참 동안이나 문야가 사라진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문야는 나중에 엄마의 얘기를 듣고 그 아저씨가 재를 올리러 왔다는 걸 알았다.
 "꼭 너 만한 아이더라. 아버지가 어린 자식 재를 지내는 게 어찌나 안돼 보이던지......."
 엄마는 그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찍어냈다.
 재를 마치고 돌아가던 아저씨가 가을 햇빛 아래 앉아 있는 문야를 보고 다가왔다.
 "얘야, 희망을 잃어선 안된다. 간절히, 마음을 다해 간절히 원하면 기적이 생기기도 한단다. 향가라는 노래에 전해지는 걸 보면 옛날 신라 때의 희명이란 여인도 그랬다는 구나. 믿어 보렴"
 아저씨의 그 말이 문야의 가슴에 범종 소리처럼 깊은 울림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 만남은 병원에서였다.
 문야의 눈은 점점 더 나빠져 또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다.
 마침 오월 어린이날 무렵이었는데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고 했다. 엄마에게 이끌려 문야도 구경을 가기는 했지만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들어야 하는 게 재미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도로 병실로 가려고 하는데 아주 유명한 마술사라고 하는 사람이 무대로 올라왔다.
 "자, 이번에는 아저씨가 아주 특별한 것을 보여주겠어요. 아저씨는 마술사라서 뭐든지 다 할 수 있거든요. 여러분이 아픈 것도 다 낫게 될 테니 잘 보세요."
 문야는 무대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기억을 더듬던 문야가 소리쳤다.
 "엄마, 그 아저씨야!"
 "뭐?"
 "왜 있잖아, 그때 자비사에 재 올리러 왔던 아저씨!"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저렇게 차리니까 나는 영 몰라보겠는데 네가 엄마보다 낫구나."
 그 마술사는 바로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마술을 보일 때마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좋아했다.
 "이번엔 꽃이다! 허공에 대고 손을 흔들었을 뿐인데 꽃다발이 만들어졌지 뭐니."
 엄마가 일일이 설명을 해 주어서 문야도 아저씨가 무얼 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아저씨의 손에서는 수도 없이 동전이 만들어지지도 하고, 비둘기가 날아오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환성을 질렀고 문야에게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느껴졌다.
 "이 꽃다발을 오늘 최고로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드리겠습니다."
 아저씨는 마술로 만든 꽃다발을 들고 문야에게로 왔다.
 "문야, 오랜만이구나."
 "어머, 어떻게 저라는 걸 아셨어요?"
 "너도 아저씨를 알아 봤잖니? 아저씨도 너를 금방 알아보겠던 걸. 한 번 보고도 그런 걸 보니 우리는 인연이 깊은가 보다. 그래 공연은 재미있었니?"
 "네. 소리로만 듣는데도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래? 그렇다면 아저씨가 문야만 볼 수 있는 특별 공연을 한번 해야 겠는 걸."
 "정말요? 언제요?"
 "글쎄....... 문야, 네가 어떤 경우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 그 장소에서 너만을 위한 특별 공연을 해주마. 네가 약속을 지키면 아저씨도 꼭 지킨다. 어때? 할 수 있겠어?"
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저씨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바로 오늘이 아저씨와 약속한 그날이었다.
 그 동안 문야에게는 특별한 일이 있었다. 꼭 문야에게 주겠다는 안구 기증자가 있어서 수술을 받았는데 시력이 많이 회복되었다. 의사 선생님도 기적이라고 했다.
 문야는 아저씨에게 그런 자기의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서둘러 왔는데 아저씨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산 그림자가 소리 없이 밀려오고 숲새들은 바쁘게 제 둥지를 찾아갔다. 나뭇잎들이 부산하게 날아오르자 풍경이 덩달아 댕그랑거렸다.
 문야는 법당 문을 열고 풀죽은 목소리로 우물거렸다.
 "스님! 안녕히 계세요."
 재 올릴 준비를 다 끝낸 스님이 문야를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가려고? 그럴 것 없다. 곧 엄마도 오실 거니까."
 문야는 스님의 그 말을 엄마가 저를 데리러 온다는 걸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단단히 꾸지람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무 말없이 준비해 놓은 재상 앞으로 문야를 데려갔다. 문야만한 아이와 남자 어른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왜, 엄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잖아."
 "너도 아는 분이야."
 "내가 아는 분 누구..."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문야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그런 문야에게 엄마는 차분히 말씀하셨다.
 "마술사 아저씨와 아저씨의 아이야. 우리에겐 더없이 고마운 분이니까 정성을 다해 명복을 빌자꾸나."
 "말도 안돼! 그럴 리가 없어! 나하고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는 걸."
 문야는 엄마 말을 더 듣지 않으려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사람의 발길이 없는 문 앞에서 문야는 오기를 부리듯 고집스럽게 아저씨를 기다렸다. 시간이 갈수록 하늘도 문야의 어두운 마음을 닮아 갔다.
 스님이 다가와 가만히 문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씀하셨다.
 "몸이 많이 안 좋으셨다. 아이를 잃고 나서 희망도 함께 버렸던 탓이지. 다음 세상에서는 그 힘겨운 짐 다 벗어 놓으라고 기도하자."
 그때 어디에선가 희망을 잃지 않으면 기적이 생긴다던 아저씨가 말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저씨가 물 젖은 종이를 손에 쥐고 부채로 부치던 것처럼 사뿐사뿐 눈발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문야는 그 하늘에 대고 소리쳤다.
 "아저씨! 거기 계세요?"
 아저씨가 대답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얀 눈송이가 점점 늘어났다.

글/ 정진숙(동화작가)

작성자정진숙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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