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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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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한 지음 / 웅진닷컴 펴냄 / 13,000원


"해도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인데요."

온통 새까맣게 칠해놓은 스케치북을 들고 아이는 당돌하게 말했다. 그림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동자가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잠시 선생님은 이내 이제 그만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고 아이는 기세등등 스케치북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놀이터로 줄행랑을 쳤다.

고백하건대 위에 등장하는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의 내 모습 그대로다. 그럴싸하게 둘러대기를 잘했던 나는 그림 그리는 시간만 되면 이렇게 도화지 전체를 검은색 크레파스로 칠한 뒤 "눈을 감고 있는 풍경", "별도 보이지 않는 밤", "이불 뒤집어 쓴 모습" 따위의 제목을 붙여놓고 아주 진실한 얼굴로 선생님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 방법을 동원해 귀찮고 짜증나는 시간들을 벗어나곤 했었다. 이 방법이 효과를 거두자 주변을 기웃거리던 친구들이 재빨리 아류작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이런 초현실적 작품 릴레이는 결국 얄팍한 술수로 낙인찍혔고, 선생님의 불호령과 함께 막을 내려야 했다. 그리하여 위대한 예술의 의지가 꺾인 어린 우리들은 유치원생 본연의 별 볼일 없는 그림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얀 스케치북에 노란 크레파스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규칙처럼 정해진 색깔을 칠하지 않으면 제대로 그리지 않았다고 야단을 맞아야했던 시절. 스케치북 가득 검은색으로 도배한 파격적인 내 그림은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반항이었고 도전이었으며 정서적인 카타르시스였다. 정해진 규칙을 모조리 거부하고 제목을 붙이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상상해낼 수 있었던 검은색 도화지들. 어린 시절의 별 뜻 없는 행동을 두고 자아도취에 빠져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 아니냐고 눈 흘길 독자들이 있을 줄로 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나 역시 부끄럽고 쑥스럽긴 마찬가지니 너그럽게 봐주시라.

만약 그 시절 남들과 다른 심미안을 가진 그림 선생님을 만났거나 어설픈 예술가의 꿈을 스스로 접지 않았다면, 그리고 어른이 되어 다행스럽게도 부끄러운 이름 석자를 화가라는 반열에 올려놓게 되었다면, 어린 시절에 그렸던 검은 크레파스 범벅의 그림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예술혼을 괴기스러우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천재성을 보였다. 그는 너무 일찍 시대를 앞서간 탓에 동시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뭐 이런 식의 뻔한 이야기가 뒤따르지 않았을까?

이 책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웅진닷컴) 는 바로 그런 화가와 그림의 스캔들을 다룬 흥미로운 미술사다. 시대를 앞섰기에, 그 시대의 미적 기준을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했기에, "위험하고 불온하다"고 낙인찍혔던 화가와 그림들.

나체의 여인이 정면을 도발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이유로 온갖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 위대한 성인을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촌부의 모습으로 그렸다고 거절당했던 카라바조의 "마태와 천사", 고전주의의 이상적 풍경화를 거부하고 주관적인 풍경화를 그렸던 화가 프리드리히, 기본도 갖추지 못한 얼치기 화가로 대접받았던 "절규"의 화가 뭉크와 변기 또는 낡아빠진 자전거 바퀴를 예술로 둔갑시켜 세상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뒤샹 등 다섯 명의 화가들이 이 미술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당시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논쟁의 장면들이 지은이의 상상력으로 복원되어 현장감과 흥미를 더한다. 논쟁의 배경과 그림에 대한 설명, 화가의 생애와 사회적인 배경, 당시 미술의 주류적인 흐름 등을 입체적으로 설명해 기존의 인물이나 작품 중심의 미술사들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100여 컷의 컬러 도판과 관련 사진들이 읽는 맛과 함께 보는 맛까지 더한다.

 

글/ 이우일 (웹진 ‘부꾸www.bookoo.co.kr’기자)


 

작성자이우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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