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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공연 보고 희망을 봤다”

[리뷰]지적장애인 극단 ‘무지개’ 정기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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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소리]

“공연이 바로 코앞인데 아직도 대사를 못 외운 친구가 있어. 어떡하니 정말.”

엠마우스산업 정금숙 직업재활생산팀 팀장은 공연 시간이 임박해 오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리허설을 끝내고 본 공연을 앞두고도 배우들의 대사가 술술 이어지지 않는 것.

정 팀장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기실의 배우들은 웃고 장난치며 한껏 들떠있다. ‘관객으로 누가 왔을까’하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 무대 커튼 밖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객석을 엿보는 배우도 있었다.

지난 1일 5.18기념문화회관 대동홀에서는 지적장애인 연극모임 극단 ‘무지개’의 정기 발표회가 열렸다. 시각 장애인의 악기 연주나 난타 공연 등은 매스컴을 통해 가끔 접하긴 했지만 지적장애인들의 연극 관람은 기자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지적장애인 연극 모임 ‘무지개’의 정기공연이 지난 1일 5·18기념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배우 나정문(나르키소스 분), 양정태(미켈로분), 김광중씨(마루아 분)가 사냥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몇 달간 반복적으로 대사를 연습하고 동작을 맞춰왔어도 무대에 올랐을 때 완벽하게 연기를 하는 이가 있는 반면 장애의 정도에 따라 단 한 마디 대사를 내뱉기 어려워하는 이도 있었다.

자신의 순서가 아닌 곳에서 대사를 잘못 말해 머리를 긁적이는 일은 다반사. 시선처리가 매끄럽지 못해 눈동자가 상대 배우가 아닌 천장을 향해 있거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말하면서 ‘국어책 읽듯’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리허설을 한 차례 마쳤지만, 여전히 손동작은 어색했고, 무대에서 위치를 잘못 잡아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나무 분장을 한 연극 강사 채희영씨가 배우들 곁에서 대사를 읊어주거나 자세를 교정해 주어야했다.

극단 ‘무지개’의 배우 16명이 이날 연기한 작품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코와 나르키소스에 관한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 공연은 ‘감동 그 자체’였다. 배우들이 감정 표현이 탁월한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도 화려한 무대 장치가 한몫했다는 이유도 아니다.

연극이 진행되는 40분 내내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 한마디마다에 비장애인보다 곱절은 힘들었을 연습과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허영과 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들의 연기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며 ‘진실로’ 다가왔다.

리허설에서 마지막 대사까지 끝내고 퇴장하는 배우들에게 책임강사 원광연씨(아트컴퍼니 圓 대표)가 “자, 얘들아 이제 공연 준비하자. 서둘러”라고 말하자 한 배우가 “또 해요?”라고 묻는다. 리허설이 본 공연인 줄 알았나보다. 늘 웃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드디어 본 공연이 시작됐다.

본 공연에서는 리허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 다른 상황들이 연출됐다.

나르키소스는 독백 장면에서 자신을 향해 비추는 강한 조명에 눈이 부셔 한 손을 올려 빛을 가리고 대사를 했다. 객석은 이내 웃음바다가 됐다. 리허설 때 대사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미켈로는 본 공연 때 모든 대사를 완벽히 소화해 연극 도중에 박수갈채를 받았다.

딱 꼬집어 누가 잘하고 누가 못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한 줄의 대사든 열 장 분량의 대사든 등장한 배우 16명 모두 자기의 역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정을 보인 주인공이었다.

   
극단 ‘무지개’ 단원들이 공연을 끝내고 단체 사진 촬영에 즐거워하고 있다.
님프 나이아스역을 맡은 김노을양의 어머니 정성경씨는 연극이 시작할 때부터 터져 나온 눈물이 끝날 때까지 마르지 않았다. 집에서 관심 밖의 대상이었고 주목받지 못했던 딸이 연극 무대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어머니의 기쁨이었다. 정씨는 “오늘 공연을 보고 내 딸의 장애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고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가족과 친구, 동료 지인들 모두 비슷한 마음으로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감정과 언어, 몸짓 표현은 다소 서툴었지만 이들도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작성자최유진 기자  choi@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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