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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의 영화이야기]다시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 길버트 그레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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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 길버트 그레이프
가족제도의 붕괴로 인해 정서가 점점 메말라 가는 현대인에게 이 영화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전달해 준다.

<원제, "누가 길버트 그레이프를 먹었는가">
 래씨 홀스트롬(Lasse Holstrom)의 "길버트 그레이프"는 미국의 중서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엔도라"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그레이프 가의 이야기다. 주인공 길버트는 아버지가 자살한 이후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 온 평범한 미국의 젊은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자살로 인한 충격으로 세상을 등지고 살고 있는, 그래서 "고래"(길버트의 표현으로)와 같이 비대해진 어머니와 정신지체아인 동생(의사의 말로는 열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던, 그러나 열여덟 살 생일파티를 앞 둔, 그래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리고 두 여자 형제와 함께 가정을 지켜 나간다. 그의 형 래리는 가출하였고 홀로 정신지체아인 동생 어니의 뒷바라지를 하며 무료한 일상의 질곡이세 벗어나길 바라는 길버트(쟈니 뎁)는 마을의 바람둥이인 카버 부인의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동생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지 못한다.
 동생이 가스탱크탑 위로 올라가기를 좋아하여 번번이 괴로움을 겪지만 길버트는  항상 동생을 달래서 내려오게 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이동주택을 타고 마을에 온 베키(줄리엣 루이스)와 사랑하게 된 길버트는 그녀에게서 위안을 얻지만 사고는 연이어 터진다.
 동생의 빈번한 "가스탱크탑" 오르기에 지친 경찰이 그를 유치장에 보호하게 되자 길버트의 어머니는 코끼리와 같은 거구를 이끌고 경찰서로 간다. 자신이 마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감수하며 아들을 찾기 위해 나선 그녀는 아들을 찾아 돌아오나 심한 모멸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어니의 생일 전 날 어니는 냉장고에 넣어 둔 생일 케이크를 엉망으로 만들고 화를 참지 못한 길버트는 처음으로 동생을 때리고 집을 나간다.
 그러나 베키가 동생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길버트는 동생을 집으로 보내고 그녀와 들판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길버트는 동생의 생일파티에 온 베키를 어머니에게 소개한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올라가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숨을 거둔다. 길버트는 어머니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화장한다. 일 년 후 길버트는 동생 어니와 함께 베키의 이동주택을 기다리다 베키가 도착하자 이동주택에 오른다.

<정신지체아 동생을 둔 길버트의 형제애>
 상술한 것처럼 이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이야기는 어머니의 비극적인 사랑과 길버트의 건강한 가족애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엘렌파커("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버디"를 연출한 감독)감독의 섬세한 대사와 래씨 홀스트롬의 성실한 사실주의적 연출이 단순한 이야기에 사실감과 깊이를 더해 준다. 원제 "누가 길버트 그레이프를 먹었는가?"가 시사하듯 길버트는 그의 실존적 상황에 의하여 그의 청춘을 먹히운 것이다. 길버트의 모습은 자신에게 주어진 실존적 상황과 일상의 질곡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을 상징한다. 홀스트롬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현실에서의 도피(길버트의 형 래리가 한 것처럼)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로 가능하다는 것을 길버트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가정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더욱이 개인주의적 사고가 팽배해 있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므로 미국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관객들에게는 보여줄 만한 영화이다.
 가족이란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관계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많은 사건들을 직접 간접으로 목격했다. 노망이 난 부모를 버리는 패륜과 자신의 유흥비를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부모를 살해하는 천륜을 져버린 사건도 보았다. 어쩌면 이런 엄청난 사건들을 빈번히 접하면서 사회전체의 도덕적 타락에 면역되어 가는지도 모르는 사실이 더욱 무서운 일이다.
 더구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와 폭력으로 얼버무려진 "B 무비"와 코미디를 가장한 저질 영화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정서가 메말라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볼 때 우리의 앞날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고려해 보면 이 영화와 같은 아름답고 건강한 영화의 출현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 시대에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가족"의 의미>
 길버트는 장애를 갖고 있는 두 명의 가족에 대한 자신의 갈등을 통하여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베키가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가족을 위한 새집과 어니를 위한 새 두뇌와 어머니가 에어로빅 레슨을 받을 것과 여동생이 철이 들 것을 원한다고 한다. 베키는 길버트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시 묻는다. 길버트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길버트는 베키와의 데이트를 위해 어니가 혼자 목욕하도록 하고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음날 아침에 되어서야 욕조 속에 그대로 있는 어니를 발견한다. 길버트는 거듭해서 어니를 돌보는 일에 실패한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때마다 문제가 발생된다. 길버트에게 있어서 어니는 인생의 멍에인 것이다. 그것도 자신을 희생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멍에인 것이다.
 두 명의 장애인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가지고 있는 그레이프 가는 축소된 한 사회의 모습이다. 철이 없는 막내딸 엔렌에게는 단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고 장녀 에이미에게는 자신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며 길버트에게는 벗어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굴레이다. 어머니가 이층에 있는 그녀의 방에서 숨을 거두자 길버트는 크레인을 동원하여 어머니를 장사지내 사람들의 조롱거리를 만들 수 없다며 아버지가 지은 집과 어머니의 주검을 화장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슬픈 기억들은 집과 함께 불살라지고 일 년이 지난다. 길버트의 누나는 취직을 하고 엘렌은 학교를 옮기고 길버트와 어니는 베키의 이동주택을 기다린다.
 우리는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역겨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가족의 경우에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요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따뜻한 영화를 통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은 필자의 욕심일까. 이 영화는 가족제도의 붕괴가 심각한 미국 관객에게도 많은 교훈을 줄 수 있는 영화이고 미국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는 한국 관객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영화이다.

지난 1년동안 영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로 지면을 채워주신 이영호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내년에도 더 좋은 영화이야기로 독자와 만날 것을 약속한다.

작성자이영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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