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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도 나무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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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나무와 함께 했다. 부모님이 과수원 농사를 하셔서 어려서부터 나는 나무를 보며 자랐다. 덕분에 나는 나무에 대해 잘 알았고, 나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부모님이 농사지으시는 사과나무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는 나무이다. 사계절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부모님이 사과나무에 매달려 땀을 흘리고 정성어린 손길을 기울여야 정직하고 풍성한 결실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사과나무 입장에서 볼 때, 농부의 그런 수고와 정성은 아주 미약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더 보기 좋고 맛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한 사람의 욕심에 따른 노력에 불과하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우는 건 오로지 자연과 사과나무의 몫이다.

아무리 사람이 노력과 정성을 기울인다고 한들 자연이 제대로 품어 돌보지 않고 사과나무가 받아들이고 인내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헛수고일 뿐이다. 그 이치는 사과나무만이 아니라 모든 나무들이 다 그럴 것이다. 자연이라는 혹독하면서도 부드러운 품에 안긴 채 나무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나무는 외롭다. 나무를 심을 때 보면 나무는 땅에 심기는 순간부터 외로워 보인다. 사람이 옮겨주지 않는 한 나무는 한평생을 심어진 그 곳에 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나무가 외로워서 좋았다. 아니 그보다 외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여 그 외로움에게서 위로를 받는 나무가 좋았다.

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잎을 피우고 가지를 벌린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고 비가 오면 비에 젖는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로 나무만큼 언제나 수난을 겪기 마련이다. 영혼을 뒤흔드는 고통과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수난, 그러면서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다. 상처를 입으면서.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상처를 입어가면서 살아야 하는 것을. 나무처럼.

상처를 입으면 처음에는 아플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살아가는 동안 상처 입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시간이 가면 상처는 아물 것이다. 때로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채. 그것이 자연이다. 상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그 어떤 시련의 고통도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일들 중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 다시 한 번 말하노니, 어쩌겠는가, 그것이 산다는 것인데.

정확한 곡명과 가사는 떠오르지 않지만, 아무리 임이 그리워도 임에게 갈 수 없어 나무는 혼자 꽃을 피우고 혼자 운다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임이 그리워도 임에게로 갈 수 없어 외로운 나무는 그렇게 살아 있어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한다. 나무는 너무나 외롭기 때문에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외로움에 가슴 시린 사람들에게 자연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나무를 가슴에 심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자연을 닮아갈 것이다. 사람이 자연을 닮아 가면,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내 외로움은 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외로움을 잘 견뎌내는 사람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외로움을 받아들이자. 외로우면 외로워해 버리자. 나무가 더위와 추위, 바람과 비를 고스란히 그냥 맞아버리듯이 내게 다가온 그 어떤 종류의 수난도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그때부터 마음속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리라.

내가 나무를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고,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까지 나 역시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 맸다. 나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온몸이 뒤틀리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걸을 수도 없다. 그로 인해 나는 늘 혼자였고 외로움의 그늘이 깊었다. 그렇게 30년을 살아오면서 나도 어느새 고통스런 외로움과 상처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모든 외로움과 상처들을 타고난 운명인 양 받아들이는 나무처럼.

지금도 나는 가끔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다. 주로 나무를 그리는데, 뒤틀린 손가락에 크레파스를 끼워 안간힘을 쓰며 간신히 그리는 거라서 형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가 가장 그리기 쉽고 나무를 그리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진다. 도화지에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큰 나무를 그리고 그 나무 아래 항상 휠체어에 앉은 나를 그려 넣는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 자라난 나무 곁에 서 있다.

내게 나무와 함께 있으면 행복해짐을 느끼게 해준 나무는 은행나무이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어서 가을이면 노란색으로 황홀하게 물드는 그 은행나무. 예전에 살았던 우리집 마당에 은행나무가 있었다. 두 그루가 마주보고 서 있었는데, 두 그루 모두 수컷이라 그런지 열매도 맺지 못하고 좁은 마당에 자리차지만 하고 있는 바람에 애물단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은행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기다려 주었고, 계절마다 지닌 친근하고 신선한 미소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은행나무와 나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며 소리 없는 대화와 눈물을 나누고 서로에게 큰 위안을 안겨주는 친구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은행나무와 나는 헤어져야만 했다. 우리 가족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세월이 꽤 흘렀음에도 항상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그 은행나무. 어느 책을 통해 은행나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어렸을 적 외로웠던 나를 위로해 준 그 은행나무가 여전히 친근하고 신선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 은행나무가 오늘도 바람결에 내게 속삭인다.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나무처럼 살라고.

은행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단다. 독립수로 태어나 암수 따로 평생을 살다가 바람도 꽃가루를 전하지 못하면 천 년을 열매 없이 살아야 한다. 타고난 성질대로 뿌리도 지독히 내려 주변에 있는 양분이란 양분은 다 빨아들이니 공존하기는 참으로 힘든 이웃인 것이다. 거기에 벌레와 해충을 피하기 위해 제 몸에서 만드는 독이 병충해는 물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내친다니, 외로움을 운명처럼 타고난 나무임에 틀림없다. 헌데 그 독성이 말초 혈액순환제로 쓰이고 특성상 나이테의 구별이 옅으며 뒤틀림이 적고 단단하여 공예품이나 정자나무로 쓰인다니…….

사람이나 나무나 타고난 성질대로 백 년 천 년 사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여러 가지로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나무인 것 같다.

나도 은행나무처럼 살고 싶다. 비록 숲을 이루지 못하고 외로움을 타고난 운명처럼 짊어지고 홀로 서서 천 년을 열매 없이 살지라도, 흘러내리는 내 눈물에 누군가 타는 목을 적시고 갈 수 있다면, 천 년 같은 하루를 다시 천 년을 살아도 좋다.

작가소개: 이현주, 여. 1977년생. 뇌성마비
들소리문학상 본상(2006), 솟대문학 추천완료(2006), 국제펜클럽 신인상(2007), 시흥문학상 우수상, 교과서관련수필공모 장려상, MBC라디오여성시대가족사랑수기공모 가작(2008), 위즈덤하우스 그래도계속가라2 체험수기공모 당선(2009)

작성자이현주 작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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