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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불가능한 꿈을 꾸시는 지요

[이영문의 영화읽기] 다큐멘터리 영화 ‘맨 온 와이어(Man on Wir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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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불가능한 꿈’을 기억하십니까? 아니면 노무현이 꿈꾸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생각해보셨는지요? 물론 200년 전 정약용이 그리던 ‘수원화성의 꿈’도 있습니다. 꿈을 꾸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특별한 이유 없이 시작된다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두 가지 모두 뼈아픈 고통이 동반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사라져 버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요즘 어떤 꿈을 꾸고 계시는지요? 오늘 말씀드릴 영화는 프랑스 출신의 줄타기 곡예사의 꿈에 대한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입니다.

   

팽팽한 줄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허공에서 공중곡예를 펼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요. 그러나 그 발아래 무려 411미터에 달하는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여기는 바로 뉴욕 맨하탄의 110층짜리 빌딩 상공입니다.

1974년 8월 7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몸을 바삐 움직이던 뉴요커들은 한 여자가 외치는 소리에 모두 하늘을 봅니다. ‘저기 곡예사가 줄을 타고 있어요!’ 순식간에 맨하탄 시내는 지독하게 무섭고 위태로운 광경을 쳐다보는 인파들로 마비가 되었습니다. 뉴욕 경찰들이 들어 닥치고 기자들은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취재를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비웃듯 8차례 쌍둥이 빌딩 사이를 오가던 그 남자는 스스로 내려와 경찰차에 수감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더 이상의 질문이 존재할 틈도 없이 그는 웃으며 대답합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게 왜 중요하지요?’ 25세 시절의 필리페 뿌티(Philippe Petit)의 해맑은 미소가 화면에 가득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62세가 되었고 여전히 혼자서 줄을 타고 있습니다. 현실이 되어버린 꿈을 우리는 더 이상 ‘꿈’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필리페는 이제 더 이상 꿈이 없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영화를 통해 다시 나타나고,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모습을 우리는 담담하게 지켜봅니다.

   

그렇습니다. 맨하탄 끝자락에 쌍둥이 빌딩이 있었고, 2001년 9월 11일 아침, 모든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이 무너져 내리듯 무참하게 사라져 버린 그 빌딩을 기억해냅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90분 동안 911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지만, 필리페의 줄타기를 통해 우리 머릿속에는 사라져버린 쌍둥이 빌딩이 새롭게 각인됩니다. 확실히 영화는 인간 마음 깊숙이 꼭꼭 숨겨져 있는,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을 고통스럽게 끄집어내는 마력이 있습니다.

다큐의 전개 방식 또한 고통스럽습니다. 1974년 그해 여름 쌍둥이 빌딩을 야간에 점령(?)했던 필리페와 친구들은 당시를 회상합니다.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그들의 꿈이 새롭게 의식 속으로 올라오는 고통은 희열과 함께 녹아버립니다. 필리페는 17세 때부터 꿈꾸던 맨하탄 상공을 거닐었고, 친구들은 환호했으며, 경찰에 체포된 뒤 모두 추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헤어졌습니다.

34년이 지난 2008년 어느 날. 다큐제작을 위한 인터뷰 카메라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터져 나오는 친구의 울음 속에서 저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구조주의 철학에서 정의했던 풍크툼(punctum)을 느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고통을 스투디움(studium)이라고 한다면, 풍크툼은 회복이 불가능한 너무도 강렬한 아픔이지만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나타날 수 없는 아픔이 늘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지요. 한편, 꿈꾸던 일을 한 뒤에 왜 고통이 동반되는가를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간절했던 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꿈.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뒤에 우리는 더 이상의 꿈이 없다는 것에 절망하게 됩니다.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진 그 기쁨과 절망 사이로 풍크툼이 돋아납니다. 그리고 새살이 돋고 견딜 수 있는 고통이 기쁨과 적당하게 버물린 채 시간이 지나갑니다.

빛바랜 추억, 오랜 추억 따위로 포장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모두 이야기 합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웠다고. 영화를 보고 나서 필리페에 공감하는 관객들을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자체가 위험한 줄타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물론 이 다큐를 포함한 모든 영화에 대한 감상은 여러분 각자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불가능한 꿈과 풍크툼을 펼쳐보실 수 있으신지요.
봄날이 그저 오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작성자이영문 (아주대학교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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