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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반가운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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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1950년도는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우리 민족이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해다.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터진 후, 1953년도에 휴전상태로 전쟁은 끝이 났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급속도로 떨어져 먹고 살기 힘든 시기로 역사상 최악의 상태였던 때 중 한 시대였다.

요즘은 들어보기 힘든 말 중에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다. 한번쯤 들어는 봤고, 또 무슨 뜻인가도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겪어 본 국민은 나이가 좀 제법 많이 드신 60대 어르신 이후나 겪어보았을 것이다.

현재 50대들 중 후반은 겪어봤을 수도 있고, 나 같은 경우는 실제로 겪어보진 못했다. 더군다나 농촌과 거리가 먼 도시에서 쭉 살아온 나로선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민들과 달리 ‘보릿고개’를 겪어보질 못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경제가 열악했던 예전의 1960년대 어린 시절을 지낸 적이 있어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대충은 알고 있다. 나는 그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1967년 3학년 때에는 시골에서 지내본 적도 있었다. 그것도 거의 한 달 동안이나 지냈다.

당시, 우리 동네에 내 단짝친구가 있었다. 소아마비에 걸렸기 때문인지 친구가 많이 있지 않아서 나와 제일 가깝게 지냈다. 목발을 짚고 다니진 않았어도 내가 가방을 학교까지 들어다주곤 했다. 거의 매일 그렇게 보내고 학교에 다녀와선 친구 집에서 함께 숙제를 했다. 녀석은 다른 것은 몰라도 공부만큼은 상당히 잘했다. 나도 뒤떨어지진 않았지만, 다정하게 숙제를 하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로 물어보기도 하며 우정을 돈독히 키워나갔다.

그 친구는 덕적도에 외가가 있었다. 3학년이었던 그해 여름방학에 그 곳을 다녀왔는데, 덕적도 북면이라는 곳이었다. 약 10여 년 전에 아내와 그 곳을 다시 한 번 가 볼 요량으로 다녀왔지만 안타깝게 그 곳을 찾지 못했다. 내가 몸을 다치고 갔기 때문에 상상외로 찾기가 어려웠고, 많이 변해 기억해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당시 덕적도에 가는 방법은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약 네 시간 동안을 간 다음, 차가 많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또다시 집까지 한참 걸어들어갔다. 도중에 바닷가가 있었는데, 거의 매일 나와서 놀던 곳으로 모래사장이 펼쳐진 데와 개펄이 펼쳐진 데였다. 개펄이 있는 곳에서 집에 오던 날, 둘째형님이 낙지와 소라를 잡아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친구 친척집은 10여 채의 마을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언덕위로 올라간, 좀 외진 곳이다. 넓은 집터가 시원하며, 대청마루는 없었지만 방이 세 개나 되고, 여러 농기구를 보관하는 광과 닭장도 있었다. 넓은 마당엔 짚으로 만든 두터운 멍석이 있어서 저녁밥은 거기에 쑥을 피워 놓고 모기를 쫓으면서 맛있게 먹었다. ‘보릿고개’란 말이 무색하리만치 밥과 반찬이 푸짐하였다.

친척식구는 모두 여섯 명으로 할머니와 외숙모, 큰형님과 작은형님, 삼촌이 계셨다. 막내형님은 친구네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이 돼 우리와 함께 왔기 때문에 어르신 두 분과 막내형님을 빼고는 모두 20대의 젊은 형님들이었다.

큰형님은 배를 타시고, 둘째형님은 농사를 짓고, 삼촌이란 분은 태권도를 배우러 다니며 뚜렷한 직업은 없었다. 큰형님은 배를 타고 나가 바다에서 사나흘씩 있다가 들어오는데, 민어와 우럭을 잡아와 마당 빨랫줄에 걸어 말리던 소박한 풍경이 생각난다.

둘째형님은 농사를 크게 짓기 때문에 수박과 참외밭 외에 논농사까지 많이 지었다. 언젠가 둘째형님이 농약을 치러 간다고 해서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밤에는 수박밭이 있는 원두막에서 시원하게 잠을 자기도 했는데, 모기장이 있어서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그래도 아침에 눈을 떠보면 피를 빨아먹은 퉁퉁한 모기를 발견해 잡기도 했다.

오전에는 그늘진 시원한 마당 멍석 위에 상을 펴놓고 친구와 방학숙제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을 가지고 그랬는지 아옹다옹 많이 다투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고 있노라면 외숙모께서 가마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를 맛있게 삶아 오셨는데, 하얗게 빛나며 속살이 보이는 감자를 소금에 살짝 찍어먹으면 고소함과 달콤함이 온몸과 뇌리를 자극했다.

낮에는 친구와 바닷가에 나가서 놀았는데, 동네에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 애들이 많아 함께 놀았다. 물이 굉장히 맑아 얕은 곳에서는 물고기가 유영하며 다니는 모습을 보았고, 이름 모를 게가 기어 다니는 것도 보았다. 물에서 실컷 놀다 모래사장에 나와 모래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는 것도 재미중 하나였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 집에 오면 언덕 아래 맑은 개울가에서 몸을 깨끗이 씻으며 가재를 잡았다. 오염되지 않은 개울물은 너무 차갑기 때문에 오래 있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가재 잡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랫동안 개울에서 보내고, 잡은 가재는 전부 닭에게 모이로 주는데 매우 잘 먹었다.

어느 날, 둘째형님과 셋째형님이 부엌에서 납을 녹여 땅에 구멍을 파고 부었다. 그리고 나뭇가지 하나를 가운데 박아두었는데, 완전히 식히고 만든 그 모양을 보니 바로 낚시 뽕이었다. 그날은 뽕을 만들어 가지고 매일 놀던 바닷가가 아닌, 멀리 떨어진 바닷가로 우럭낚시를 갔다.

형님들은 바위 위에 올라가 우럭을 잡고, 나는 친구와 얕은 바위가 있는 바닷가에 낚시를 드리우고 꽃게를 잡았다. 미끼는 움푹 파인 바위 위, 물이 고인 곳에 놓아 둔 작은 물고기다. 그 작은 물고기를 잡아 미끼로 쓴다. 낚싯대 꽃게가 미끼를 물면 살짝 들어 올려 잡으면 된다. 그때 낚시로 꽃게를 참 많이 잡아보았다.

낚시했던 바다와 민물이 접한 곳에 들어가면 뱀장어가 펄을 기어 다니는데 발바닥으로 느낄 수 있다. 뱀장어가 발바닥을 슬쩍 지나갈 때 손가락 검지, 중지, 무명지 세 개를 구부려 재빨리 잡아 올리면 된다. 나는 발바닥에 지나가는 뱀장어를 느낀 적은 있었으나, 손이 작아 잡지를 못했다. 형님들이 잡은 뱀장어를 직접 들어 올리려고 잡아보았으나, 너무 미끄러워 그것조차 잡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 날 저녁은 뱀장어를 손질하려고 도마 위에 올려놓고 못으로 대가리를 꾹 때려 박은 다음 위에서부터 껍질을 홀라당 벗겼다. 뱀장어가 몸에 굉장히 좋다며 매운탕을 끓였는데 나는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몇 숟가락 먹다 그만뒀다.

집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어느 날, 매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올라가보니 나무 밑에 엄청나게 많은 매미가 바글대고, 커다란 웅덩이에 큰 뱀이 떨어져 올라오지 못하고 버둥대는 것을 보았다. 조금 위 숲속에는 보라색의 예쁜 꽃을 자랑하는 도라지도 많이 있었다.

하루는 덕적도란 섬이 궁금하여 집 반대편 위에 있는 산을 혼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산에 오르기 전 입구의 넓은 참외밭에서 나는 아무 생각없이 노란 참외 한 개를 따서 대충 닦고 먹었다. 그런데 맛이 별로 없었지만, 버리기가 아까워 담 위에 올려놓고 그냥 산으로 올라갔다.

산길을 오르다 길 중앙 구멍에 땅벌이 사는 것도 보고 10cm정도나 되는 큰 메뚜기를 잡기도 했다. 방아깨비가 내 손가락 두 배나 되는 무척 큰놈도 보고 숲속에서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신기한 광경도 목격했다. 옹달샘 가에서 알록달록한 무늬를 자랑하는 게가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았다. 그 산에는 큰 동굴이 있었는데, 나중에 거기서 둘째형님이 박쥐를 잡아다 주셨다. 그 당시 ‘곤충채집’이란 방학숙제가 있어서 황금빛을 띄는 ‘황금박쥐’ 를 곤충은 아니었지만, 알코올 병에 담아 가져갈까 생각도 했었다.

나는 산중턱까지만 올라가서 많은 것을 보고 좀 전에 먹던 참외를 깜빡 잊고 그냥 집으로 왔다. 그런데 그 참외밭 주인이란 사람이 들이닥치더니 ‘왜 남의 밭 참외를 서리하냐?’고 큰 소리를 치는 바람에 ‘아하, 이런 게 서리라는 거로구나!’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어찌할 바를 몰라 아무 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외숙모께서 죄송하다며 돈을 주고 돌려보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서리’ 아닌 ‘서리’를 경험하며 시골에서 보낸 한 달간의 즐거운 여름방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일이 아련히 떠오르며 흐뭇한 미소가 입가로 둥글게 번진다. 남들이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서리’를 경험한 나는 어린 추억을 가끔 떠올린다. 그때를 뒤돌아보며 가끔 즐거운 소리 없는 여행길에 오른다.


● ● 김인성
남. 1935년생. 지체장애
전국장애인글짓기대회 수필부문 입상(1999)
솟대문학 추천완료(2004)
작성자김인성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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