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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 대한 진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영문의 영화 읽기] 영화 프로스트/닉슨(Frost vs. Nixon, 200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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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사실(fact)을 만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사실이 진실(truth)이 아니라는 또 다른 사실에 놀라기도 합니다. 가령, 베트남 전쟁의 원인으로 알려진 통킹만 사건이 북베트남에 의한 미 군함 공격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결과였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사실들이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전남도청 앞 발포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진압군에 의한 발포가 있었다는 것이고,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누가 발포를 명령했는지는 밝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역사 속에 숨어 있는 것이지요.

1972년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은 결국 리처드 닉슨을 1974년 미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합니다. 그는 현재까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 사임을 당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영화들이 있어왔지만(대표적으로 올리버 스톤의 ‘닉슨’이 있습니다), ‘프로스트/닉슨’은 연극을 영화로 만든 경우입니다. 노장 론 하워드 감독의 연출과 프랭크 란젤라(닉슨 역할)와 마이클 쉰(프로스트 역할)의 연기력이 돋보입니다. 실제로 두 배우는 이미 영국에서 초연되었던 동일한 제목의 연극 배역을 스크린으로 옮겨 왔습니다.

닉슨은 사임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자신의 개입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물러났습니다. 그의 사임 생중계를 지켜본 프로스트는 연예담당 MC였지만,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사임 후 닉슨 인터뷰를 기획합니다. 또한 노회한 정치인으로서 닉슨은 이 인터뷰를 이용해 정계복귀를 시도합니다. 두 사람의 사활을 건 인터뷰가 숨가쁘게 진행되고 4일간(실제로는 10일 분량)의 일정이 끝납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닉슨은 자신의 정치적 실수와 대통령으로서의 권력남용(쉬운 말로 거짓말을 지칭합니다)에 대한 부분을 인정하지요.

고통에 가득한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진실에 대한 승리를 선사합니다. 오만하지만, 불안한 눈빛, 떨리는 입술, 권력에 대한 탐욕과 주류사회에 대한 끝없는 열등감 등을 담은 절제된 화면 몇 컷은 닉슨의 성격을 매우 적절하게 묘사합니다.

이 영화에서 프로스트는 닉슨을 둘러싼 진실 공방을 밝히는 인터뷰어이지만, 그 또한 닉슨에게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봅니다. 인터뷰를 통해 닉슨은 역사의 뒷자락으로 물러났고, 프로스트는 방송계에 자신의 존재를 다시 드러냅니다. 분열을 통한 대비, 화면의 분할, 사실에 입각한 시나리오를 통해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진실과 사실에 대한 판단의 공을 제시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미국의 대선에서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닉슨의 재선을 위한 공작의 일환으로,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사상 최대의 스캔들입니다. 백악관의 은폐조작으로 미국민들의 분노가 폭발직전인 시점에 닉슨은 사임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정치스캔들이 일어나면, ‘게이트’라는 단어가 붙어다니게 되지요. 마지막 인터뷰에서 닉슨을 거세게 몰아부친 프로스트와 궁지에 몰린 닉슨의 실제 인터뷰 내용입니다.

은행을 털다 실패해도 그건 유죄입니다. 대통령은 불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대통령은 100% 합법적인 일을 하지 못할 경우도 있소. 내 말은 대통령의 불법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오. 그게 내 신념이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예? 그렇다면, 대통령으로서 하신 일 중에 불법적인 일들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사실에 근거한 이 영화의 힘은 카메라에서 나옵니다. 단순한 인터뷰 내용만으로 채워지기 쉬운 영화의 뼈대에는 줌인(zoom in) 방법을 이용한 클로즈업의 힘이 존재합니다. 실제 인터뷰에서도 닉슨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영화에서도 그러합니다. 사람의 눈동자와 입술의 움직임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시고 나면, 한국의 정치현실이 여러분 머릿속에 교차됩니다.

모든 나라 정치인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짓을 진실처럼 얘기합니다. 아니 보통사람도 거짓말을 합니다. 문제는 거짓말에 대한 스스로의 자각과 부끄러움이 동반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짓말 덩어리들은 민중들의 삶을 짓밟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민중들은 계속 유린당하고 불신과 의심에 익숙한 사람들이 됩니다. 삶이 거칠어지고 세상이 비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에 대한 진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각료들이 이 영화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진실과 사실은 다르지 않다는 평범한 명제가 성립되기를 소망합니다.
작성자이영문 (아주대학교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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