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떠나는 여행, 자립생활의 완성이다”
[기획] 중증장애인 여행, 어떻게 가능할까...전동휠체어로 떠나는 ‘휠체어배낭여행’ 동호회 운영자 전윤선 씨 인터뷰
본문
장애인여행권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이동권’에 대한 문제다. 목발을 이용하거나 보조기를 착용하는 이들의 경우는 다소 양호한 편이나, 전동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애매한 상황에 빠지곤 한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가자니 차량이용이 불편하고, 수동휠체어를 타자니 누군가 밀어줘야 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여행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휠체어배낭여행’이라는 동호회를 운영하며 장애인관광가이드 양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장애인여행 칼럼니스트 전윤선 씨는 ‘걸림돌’로 인식되던 전동휠체어와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떠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여행 칼럼니스트 이전에 여행마니아 전윤선 씨가 생각하는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
“자립생활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휠체어에 배낭 하나 얹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시절이 온다면, 더 이상 자립생활 정책도 필요 없다고 본다. 몇 년 전 전동휠체어를 타고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이들에게 여행은 일상생활이기 때문에 자립생활에 대한 의미도 잘 모르고 있었다.”
- 여행량이 상당할 듯싶다. 1년에 몇 군데나 여행을 떠나는가.
“생각날 때마다 떠난다.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여행을 다니는 것 같다.”
- 인터넷에서 휠체어배낭여행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장애인, 특히 전동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과 여행을 하고 있다.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들었는데, 동호회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이곳저곳에 여행과 관련한 글을 썼는데, 다른 중증장애인들도 여행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해 막막해하는 것 같아 카페를 만들어 같이 다니면 재밌겠다 싶어 개설했는데, 회원들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카페를 방문해 보니 수많은 곳을 함께 여행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누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행지는 미리 확인하고 찾는가
“그렇지 않다. 물론 장애가 없을 때 다녀본 기억이 있는 곳도 많지만, 편의증진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만들어진 건물은 대부분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큰 틀만 잡고 무작정 떠난다. (웃음)
- 여행 떠날 때 특별한 원칙이 있는가
“특별한 원칙은 없으나 주말은 숙박을 구하기 힘들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공공기관에 도움요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평일에 여행을 떠난다. 가장 우려하는 편의시설에 대한 여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함께 여행간 이들이 주변 관광을 마친 후 다 함께 식당을 구하고, 숙소를 찾는 일이 여행 문화로 정착됐다. 처음 여행에 참가하는 분들은 다소 어려워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들 익숙해 한다. 여행지에 가서 내가 될 수 있으면 나서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회원들에게 ‘일단 알아서 놀라’고 하면, 그들은 놀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대로 못 놀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삼삼오오 흩어져 재밌게 놀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놀고 즐기러 온 이들에게 굳이 ‘룰’을 정해줄 필요는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전동휠체어를 타는 것도 우리의 원칙 중 하나인데, 이는 자꾸 장애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봐야 사회가 바뀐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이 다니는 곳이면 어디든 여행갈 수 있다. 단지 방법을 모르는 것뿐이다.”
-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을 텐데, 소개해 달라
“재작년에 40년 만에 처음 전동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여행 나온 이와 동행한 적이 있다. 소아마비로 인해 하체를 못 쓰시는 분이었는데, 늘 승용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수동)휠체어로는 다닐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다닐 생각을 포기하고 사셨다고 한다. 지하철도 처음 타보는 분이라 그 분을 모시고 지하철 타는 방법부터 가르쳐 드리고는 기차를 타고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묵호항에 갔는데 너무 즐거워하셨다. 묵호항에 들러 어시장도 둘러보고 2~30km되는 망상까지 전동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녔다. 숙소도 척수장애가 있는 분이 묵호항 근처에서 민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번호만 들고 찾았는데, 무사히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다녀왔더니 ‘과연 할 수 있을까’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로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또 한 번은 여수를 찾았는데, 사전 정보를 찾을 수 없어서 ‘가서 부딪히자’고 생각하고 무작정 내려갔다. 무사히 숙소도 찾고 인근을 재밌게 관광했지만 여수 여행의 꽃인 향일암에 갈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여수시청에 전화를 해 ‘장애여성 4명이 여수를 찾았는데, 향일암에 갈 수가 없다’고 사정 이야기를 하자 담당공무원이 수소문해 유류비를 우리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차량을 대여해주고 운전 자원봉사자까지 붙여줬다. 덕분에 향일암도 가보고 오동도도 둘러볼 수 있었다.”
“제주도도 좋아하는 여행지여서 자주 찾는 편인데, 한번은 여러 명이 내려가 봉고차 한 대를 빌려 우리가 타고, 트럭 2대를 빌려 전동휠체어를 싣고 여행했다. 활동보조인이 한 명 동행했는데, 우리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여행하면 활동보조인은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쫓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같이 간 장애인보다 오히려 활동보조인을 걱정한다. (웃음)”
- 여행에 관한 문의가 꽤 많이 들어올 것 같다
“특히 지금과 같은 휴가시즌에 질문이 폭주한다. 최근에는 중증장애인 한 분이 동료들과 강릉으로 여행을 가는데, 묵을 만한 숙소와 열차에 탈 수 있는 전동휠체어 대수, 활동보조인 문제를 물어왔다. 그래서 가능하면 평일에 여행을 떠나고, 열차에는 2대의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으나 자리가 넉넉하기 때문에 보호자 석으로 끊어서 4명이 한꺼번에 여행할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또 강릉에서 경포대까지는 6km 가량 되니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움직이면 되고, 숙박은 새로 지은 시설을 찾아서 해결하고, 활동보조인 문제는 119를 불러 해결하라고 조언해줬는데 그 이후에 잘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이런 편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주는 비법 같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열흘 전 진해에 내려간 일이 있다. 당시 전동휠체어를 탄 친구들 4명이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동대구에서 진해까지 가는 새마을호에는 전동휠체어석이 없어서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역무원에게 ‘우리는 꼭 가야 한다’며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없다면 왜 표를 끊어줬냐’며 강하게 항의하자 안절부절 못하더니 결국 트럭을 준비해줬고, 결국 사람은 기차를 타고 전동휠체어는 트럭으로 내려간 일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편의시설이 갖춰진 숙소가 없어서 119를 불러 철문을 뜯어내고 들어간 적도 있다. 우리도 여행할 권리가 있는데, 우리가 여행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놓은 것은 우리 문제가 아니다. 안 돼 있다고 주저하는 대신 요구하는 편이 훨씬 낫다. 요구하면 상당수 해결된다.”
"우리는 여행을 다녀온 후 장애로 인해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해당 관청에 민원을 넣는다. 대부분 제대로 된 답변을 올리지 않는데, 그러면 또 다시 민원을 넣는다. 이렇게 반복하다보면 굳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 전에 대부분 해결된다. 어떤 공무원은 전화로 답변을 하거나 애매모호하게 말을 하는데, 반드시 이메일 등을 통해 문서로 받아 자료를 남긴다. 카페에 들어와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제기한 민원의 80%는 시정됐다.”
- 여행을 다니려면 필연적으로 돈 문제가 결부될 수밖에 없다. 비용을 부담스러워하지는 않는가
“우리 여행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다수 관광지가 장애인은 무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동진에 여행가면 1박3일로 가는데, 하룻밤은 기차에서 보내고 또 하룻밤은 3만 원짜리 숙소를 구해서 자고, 나머지 시간은 정동진도 둘러보고 삼척도 간다. 이렇게 여행하는 데 밥값까지 포함해 쓰는 총 여행 경비는 8만원 수준이다.”
- 정기여행을 비롯해 번개·정모 등 다양한 모임이 진행된다고 들었다
“정모를 한 번 하면 전동휠체어만 평균 25대가 모이는데다 활동보조인까지 합치면 인원수가 장난 아니다. 이 때문에 식당 잡는 게 보통일이 아니지만 ‘비장애인들이 활동하는 동호회는 식당에서 모임을 갖는데 우리는 못할까’ 싶어 일부러라도 식당을 찾는다. 정 안 될 경우 각자 먹을거리를 싸오라고 한다. 한번은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정모를 했는데, 지하층이 식당이고 1층이 커피숍인데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때도 각자 도시락을 싸와서 먹었는데, 돌아온 후 민원을 넣어 식당과 커피숍의 위치를 바꿨다.”
- 사업화에 대한 주변의 권유도 엄청 많을 듯 싶다
“그렇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전동휠체어를 탄 일본장애인을 가이드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활동하다보니 일본장애인 여행객의 수요는 무척 많지만 가이드가 비장애인다보니 동선이 안 맞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점을 착안해 서울시 장애인 인식개선 사업으로 장애인관광가이드 양성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참가자는 10명이지만 참관인이 많다. 이론-실기-실전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전동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이 가이드북 하나만 들고 있으면 서울시 관광을 할 수 있는 책자를 발간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또 장애인 단체나 기관에서 수많은 교육들을 하고 있지만 직업까지 이어지지 않는 악순환을 끊는다는 생각을 갖고, 교육받은 내용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내년에 설립할 예정이다.”
- 어떤 형태의 사회적 기업일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돌봄여행에 쏟아 붓고 있는 예산이 100억 원이다. 하지만 장애인 이용객은 극히 적다. 그 이유는 사회복지사가 쫓아가야만 하고, 수동휠체어 이용자만 참가할 수 있는 등 욕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가 1대1로 붙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문화부나 복지부 모두 장애인을 주체적으로 안 보고 대상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장애인당사자들이 기차를 타고서도 전국을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보여주겠다. 같은 아이템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가 있다면 모든 정보를 공유할 의사가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사업에 함께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휠체어배낭여행’이라는 동호회를 운영하며 장애인관광가이드 양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장애인여행 칼럼니스트 전윤선 씨는 ‘걸림돌’로 인식되던 전동휠체어와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떠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휠체어배낭여행 운영자 전윤선 씨 ⓒ김라현 기자 |
“자립생활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휠체어에 배낭 하나 얹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시절이 온다면, 더 이상 자립생활 정책도 필요 없다고 본다. 몇 년 전 전동휠체어를 타고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이들에게 여행은 일상생활이기 때문에 자립생활에 대한 의미도 잘 모르고 있었다.”
- 여행량이 상당할 듯싶다. 1년에 몇 군데나 여행을 떠나는가.
“생각날 때마다 떠난다.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여행을 다니는 것 같다.”
- 인터넷에서 휠체어배낭여행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장애인, 특히 전동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과 여행을 하고 있다.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들었는데, 동호회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이곳저곳에 여행과 관련한 글을 썼는데, 다른 중증장애인들도 여행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해 막막해하는 것 같아 카페를 만들어 같이 다니면 재밌겠다 싶어 개설했는데, 회원들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카페를 방문해 보니 수많은 곳을 함께 여행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누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행지는 미리 확인하고 찾는가
“그렇지 않다. 물론 장애가 없을 때 다녀본 기억이 있는 곳도 많지만, 편의증진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만들어진 건물은 대부분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큰 틀만 잡고 무작정 떠난다. (웃음)
- 여행 떠날 때 특별한 원칙이 있는가
“특별한 원칙은 없으나 주말은 숙박을 구하기 힘들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공공기관에 도움요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평일에 여행을 떠난다. 가장 우려하는 편의시설에 대한 여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함께 여행간 이들이 주변 관광을 마친 후 다 함께 식당을 구하고, 숙소를 찾는 일이 여행 문화로 정착됐다. 처음 여행에 참가하는 분들은 다소 어려워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들 익숙해 한다. 여행지에 가서 내가 될 수 있으면 나서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회원들에게 ‘일단 알아서 놀라’고 하면, 그들은 놀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대로 못 놀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삼삼오오 흩어져 재밌게 놀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놀고 즐기러 온 이들에게 굳이 ‘룰’을 정해줄 필요는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전동휠체어를 타는 것도 우리의 원칙 중 하나인데, 이는 자꾸 장애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봐야 사회가 바뀐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이 다니는 곳이면 어디든 여행갈 수 있다. 단지 방법을 모르는 것뿐이다.”
▲ 인도 사막여행 중 ⓒ전윤선 |
“재작년에 40년 만에 처음 전동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여행 나온 이와 동행한 적이 있다. 소아마비로 인해 하체를 못 쓰시는 분이었는데, 늘 승용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수동)휠체어로는 다닐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다닐 생각을 포기하고 사셨다고 한다. 지하철도 처음 타보는 분이라 그 분을 모시고 지하철 타는 방법부터 가르쳐 드리고는 기차를 타고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묵호항에 갔는데 너무 즐거워하셨다. 묵호항에 들러 어시장도 둘러보고 2~30km되는 망상까지 전동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녔다. 숙소도 척수장애가 있는 분이 묵호항 근처에서 민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번호만 들고 찾았는데, 무사히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다녀왔더니 ‘과연 할 수 있을까’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로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또 한 번은 여수를 찾았는데, 사전 정보를 찾을 수 없어서 ‘가서 부딪히자’고 생각하고 무작정 내려갔다. 무사히 숙소도 찾고 인근을 재밌게 관광했지만 여수 여행의 꽃인 향일암에 갈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여수시청에 전화를 해 ‘장애여성 4명이 여수를 찾았는데, 향일암에 갈 수가 없다’고 사정 이야기를 하자 담당공무원이 수소문해 유류비를 우리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차량을 대여해주고 운전 자원봉사자까지 붙여줬다. 덕분에 향일암도 가보고 오동도도 둘러볼 수 있었다.”
“제주도도 좋아하는 여행지여서 자주 찾는 편인데, 한번은 여러 명이 내려가 봉고차 한 대를 빌려 우리가 타고, 트럭 2대를 빌려 전동휠체어를 싣고 여행했다. 활동보조인이 한 명 동행했는데, 우리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여행하면 활동보조인은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쫓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같이 간 장애인보다 오히려 활동보조인을 걱정한다. (웃음)”
▲ ⓒ휠체어배낭여행 |
“특히 지금과 같은 휴가시즌에 질문이 폭주한다. 최근에는 중증장애인 한 분이 동료들과 강릉으로 여행을 가는데, 묵을 만한 숙소와 열차에 탈 수 있는 전동휠체어 대수, 활동보조인 문제를 물어왔다. 그래서 가능하면 평일에 여행을 떠나고, 열차에는 2대의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으나 자리가 넉넉하기 때문에 보호자 석으로 끊어서 4명이 한꺼번에 여행할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또 강릉에서 경포대까지는 6km 가량 되니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움직이면 되고, 숙박은 새로 지은 시설을 찾아서 해결하고, 활동보조인 문제는 119를 불러 해결하라고 조언해줬는데 그 이후에 잘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이런 편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주는 비법 같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열흘 전 진해에 내려간 일이 있다. 당시 전동휠체어를 탄 친구들 4명이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동대구에서 진해까지 가는 새마을호에는 전동휠체어석이 없어서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역무원에게 ‘우리는 꼭 가야 한다’며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없다면 왜 표를 끊어줬냐’며 강하게 항의하자 안절부절 못하더니 결국 트럭을 준비해줬고, 결국 사람은 기차를 타고 전동휠체어는 트럭으로 내려간 일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편의시설이 갖춰진 숙소가 없어서 119를 불러 철문을 뜯어내고 들어간 적도 있다. 우리도 여행할 권리가 있는데, 우리가 여행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놓은 것은 우리 문제가 아니다. 안 돼 있다고 주저하는 대신 요구하는 편이 훨씬 낫다. 요구하면 상당수 해결된다.”
"우리는 여행을 다녀온 후 장애로 인해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해당 관청에 민원을 넣는다. 대부분 제대로 된 답변을 올리지 않는데, 그러면 또 다시 민원을 넣는다. 이렇게 반복하다보면 굳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기 전에 대부분 해결된다. 어떤 공무원은 전화로 답변을 하거나 애매모호하게 말을 하는데, 반드시 이메일 등을 통해 문서로 받아 자료를 남긴다. 카페에 들어와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제기한 민원의 80%는 시정됐다.”
▲ ⓒ휠체어배낭여행 |
“우리 여행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다수 관광지가 장애인은 무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동진에 여행가면 1박3일로 가는데, 하룻밤은 기차에서 보내고 또 하룻밤은 3만 원짜리 숙소를 구해서 자고, 나머지 시간은 정동진도 둘러보고 삼척도 간다. 이렇게 여행하는 데 밥값까지 포함해 쓰는 총 여행 경비는 8만원 수준이다.”
- 정기여행을 비롯해 번개·정모 등 다양한 모임이 진행된다고 들었다
“정모를 한 번 하면 전동휠체어만 평균 25대가 모이는데다 활동보조인까지 합치면 인원수가 장난 아니다. 이 때문에 식당 잡는 게 보통일이 아니지만 ‘비장애인들이 활동하는 동호회는 식당에서 모임을 갖는데 우리는 못할까’ 싶어 일부러라도 식당을 찾는다. 정 안 될 경우 각자 먹을거리를 싸오라고 한다. 한번은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정모를 했는데, 지하층이 식당이고 1층이 커피숍인데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때도 각자 도시락을 싸와서 먹었는데, 돌아온 후 민원을 넣어 식당과 커피숍의 위치를 바꿨다.”
- 사업화에 대한 주변의 권유도 엄청 많을 듯 싶다
“그렇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전동휠체어를 탄 일본장애인을 가이드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활동하다보니 일본장애인 여행객의 수요는 무척 많지만 가이드가 비장애인다보니 동선이 안 맞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점을 착안해 서울시 장애인 인식개선 사업으로 장애인관광가이드 양성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참가자는 10명이지만 참관인이 많다. 이론-실기-실전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전동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이 가이드북 하나만 들고 있으면 서울시 관광을 할 수 있는 책자를 발간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또 장애인 단체나 기관에서 수많은 교육들을 하고 있지만 직업까지 이어지지 않는 악순환을 끊는다는 생각을 갖고, 교육받은 내용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내년에 설립할 예정이다.”
▲ ⓒ휠체어배낭여행 |
“예를 들어 돌봄여행에 쏟아 붓고 있는 예산이 100억 원이다. 하지만 장애인 이용객은 극히 적다. 그 이유는 사회복지사가 쫓아가야만 하고, 수동휠체어 이용자만 참가할 수 있는 등 욕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가 1대1로 붙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문화부나 복지부 모두 장애인을 주체적으로 안 보고 대상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장애인당사자들이 기차를 타고서도 전국을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보여주겠다. 같은 아이템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가 있다면 모든 정보를 공유할 의사가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사업에 함께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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