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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세상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까요?

[이영문의 영화읽기] 영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2010)

본문

   
▲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한 장면
다음의 약자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라는 퀴즈를 제가 낸다면 여러분들은 과연 정답을 말할 수 있으실런지요.

자, 문제 나갑니다. T. G. I. F. 각각은 무엇의 약자입니까? 쌩스인 프라이데이. 정답이지만 제가 원하는 답이 아닙니다. 정답은 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의 약자들입니다. 모두 사회적 관계망(모든 언론들이 꼭 SNS: Social Network Service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을 말할 때 쓰이는 용어들입니다. 이 중에서 순식간에 5억 명의 온라인 친구를 만들고,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운영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네트워크의 혁명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는 페이스북(Facebook)입니다. 말 그대로 페이스북은 동아리 활동을 위한 구성원들의 신상을 담은 주소록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 부유층 학생들 동아리의 친교 프로그램 하나가 5억 명(이 글을 쓰는 순간 6억 명으로 늘었다고 합니다)이 사용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늘어난다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2004년 2월 시작된 페이스북은 이제 우리 생활 전반에 파고들어왔습니다.

 과연 페이스북은 무엇일까요? 왜 페이스북은 우리들 생활에 페사모(페이스북을 사용하는 모임 혹은 사랑하는 모임)라는 조직을 만들만큼 중독성이 강한 것일까요? 오늘은 바로 이 페이스북 탄생에 얽힌 뒷배경과 현실의 이야기를 감독 특유의 시간배열에 따라 편집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미국, 2010)입니다.

영화는 사실에 바탕을 둡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2003년 봄, 하버드대학에 외톨이, 재수덩어리(미국에서는 이를 너드 Nerd 라고 부릅니다 : 세상의 물정을 모르는 따분한 녀석이라는 경멸적인 뜻이 있습니다) 학생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 분)가 있습니다. 그는 예쁜 여자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는 말을 골라서 하는 재수덩어리입니다.

컴퓨터 천재이지만, 그는 어느 곳에서든 환영받지 못합니다. 역설적으로 그는 하버드대학 상류층 학생들의 모임인 파이널 클럽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결코 가입하지 못하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 파이널 클럽의 폐쇄적 네트워크 구축을 윙클보스 형제로부터 의뢰받습니다. 이를 이용해 마크는 스스로 또 다른 파이널 클럽을 만듭니다. 바로 페이스북의 탄생입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만든 온라인 클럽의 주인이 됩니다. 어느 곳으로부터도 초대받지 못했던 마크는, 세계 어디서나 13세 이상의 나이면 누구든지 가입할 수 있는 초강력 사회관계망을 만들게 됩니다. 순식간에 억만장자에 오른 그에게 과거의 친구들이 시기와 질투 혹은 당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소송을 벌입니다. 영화는 소송과정을 세밀하게 다루며, 매일 변하는 마크와 친구들의 감정에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떠나버린 옛 여자 친구에게 마크가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요청을 보냅니다. 반복되는 엔터키를 두드리며 영화는 끝납니다. 과연 마크 주커버그는 현실세계에서 받지 못했던 사랑을 온라인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일까요? 영화는 마크 주커버그가 가진 엄청난 부와 명예로도 떠나간 여자 친구를 돌아오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넌지시 가르칩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요즘 들어 시간이 어떻게 사람을 움직여 나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미국)’가 대표적인 영화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어떤 의미에서는 극단적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일은 인과 관계에 따라 시간의 규명이 필요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원인이 옳은 것이지, 결과가 옳은 것인지를 우리는 결코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맞습니다. 사실 시간이라는 변수는 인과 관계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시간이라는 변수 속에 진실이라고 불리는 실체가 왜곡된 형태의 기억들을 계속 쌓여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각기 동일한 일(thing)에 대해 다른 기억을 가진 채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인간이 소통에 목말라 하면서도 정작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존재합니다.

외롭기 때문에 소통하지만, 사회적 관계는 그 자체가 배타성을 기본으로 합니다. 사랑할수록, 소통할수록 사람의 관계는 공허해집니다. 대부분 영혼을 교환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사회관계망에 대한 영화지만, 그 반대로 세상의 외로움을 혼자 지고 가야할 ‘사람’의 본질에 대한 영화입니다.

배울 수는 있어도 결국 혼자서 세상의 법칙을 몸에 익히며 살아가야 할, 인간 본연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이 영화는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가 이 세상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여러분들이 각자 나누시기 바랍니다. 혹시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라는 선문답을 하겠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기원합니다.

작성자이영문 아주대학교 병원 근무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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