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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칠갑산 꽃그늘에 묻힌 역사의 땅

충청남도 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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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행]

 

 

칠갑산 꽃그늘에 묻힌 역사의 땅
충청남도 청양

 

 

 충청도 쳥양땅하면 의외로 모르는 이들이 많다. 지리적으로 충남의 중앙내륙에 위치한데다 개발의 손길이 크게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도립공원 칠갑산 하면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로 시작되는 칠갑산 노래가 대중들에게 널리 회자되면서 칠갑산은 일반인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노랫말에처럼 무슨 사연 그리 많이 품고 있을 청양당 칠갑산을 찾아 나섰다.
 서울에서 2백킬로미터 떨어진 청양은 공주로 해서 들어가는 길과 예산으로 해서 내려가는 길이 있고, 대전과 부여에서도 길이 나있어 교통은 그리 불편하지 않다. 이번 답사길은 예산쪽으로 들어가서 공주쪽으로 나오는 것으로 여정을 잡는다.
 예산을 지나 청양 읍내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우산성이 보인다. 우산성은 백제 초기에 지어진 토성으로 지금은 옛터만 남아있으나, 중턱에 있는 고려 전기의 마애삼존불상을 보러 성터로 올라간다.
 원래 읍내에 있었던 것을 옮겨놓았다는 이 삼존불상은 보물 제 197호로서 본존불 높이는 약 3.1미터, 협시불은 2.2미터로서 각각 광배와 대좌를 갖고 있는 독립상이다. 본존불은 당당한 체구에 큼직한 육계와 넓은 어깨와 강건한 인상을 주지만, 얼굴 전체의 미소가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대좌 윗부분에 몸체와 따로 떨어져 양각된 발이다. 이런 예는 10세기 초 잠시 유행했던 것으로 유례가 흔치 않은 것이다. 누구의 짓이지 불상의 얼굴에다 황토 칠을 해놓았다. 부처님 발을 한번 만져보고는 바삐 청양향교로 향한다.
 읍내에서 불과 3분 거리에 있는 청양향교는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 때 중수한 건물로서 대성전, 명륜당을 비롯하여 내외삼문과 동서재가 있다. 특히 새 대성전에는 인조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강선여가 갖고 온 공자의 진영이 걸려있는데 보기 드문 명품이다. 청양향교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구조로서 다소 낡은 상태이지만 고색창연한 맛이 오히려 답사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향교를 나와 칠갑산으로 향한다. 거기서 칠갑산까지는 시골길로 불과 10여 킬로미터, 아직 때가 일러 콩밭 포기마다 눈물 심던 아낙네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는 꽃그늘에서 여전히 청아하게 들려오고 있다.
 차령산맥에 속해있는 칠갑산은 예로부터 "충남의 알프스"로 일컬어진 명산이다. 해발 561미터로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골과 숲이 깊어 금강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또 칠갑산록의 구기자와 송이버섯 등은 예전에 진상되기도 했던 명물, 칠갑산에는 예로부터 일곱 곳에 명당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유수의 신라고찰 장곡사가 앉은 자리이다.
 칠갑산 중턱에 있는 장곡사는 문성왕 12년(850)에 보조선사가 창건하였다. 송광사를 개산하기도 한 보조선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보림산문의 중흥조로서 당대의 선승이었다. 장곡사는  경내에 상하 대웅전이 두 채가 있어서 우리나라 건축사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보물 제 191호로 지정되어 있는 하대웅전은 신라말에 창건된 뒤 조선중기 때 중건된 건물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인 이 건물은 다포게이면서도 맞배를 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이 상 하대웅전에는 국보금 불상이 3개나 봉안되어 있는데, 그것만 보고와도 장곡사 걸음 값은 하고도 남는다.
 칠갑산 정상까지는 거기서 1시간, 등산이 목적이 아닌 바에야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약수 한사발로 목을 축이고 바삐 칠갑산을 내려온다.
 거기서 한치재를 넘어 공주쪽으로 내달으면 정산 삼거리가 나온다. 저만치 논밭 가운데 아주 날렵하게 생긴 석탑 하나가 서 있다. 바로 이 탑이 서정리 구층석탑이다. 고려초기 구층탑으로 보물 제 18호다.
 이 탑은 이미 논밭으로 변해 흔적도 없는 옛 절터 가운데 서 있다. 상류층는 모두 유실되었지만, 탑신부 옥개석의 반전이 많아 마치 여인의 몸매와도 같이 늘씬하고 미려하다. 비록 돌덩이일지라도 한번 껴안고 싶은 충동이 인다.
 공주로 가는 길목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모덕사를 찾는다.
 모덕사는 한말 우국지사인 최익현 선생의 사당이다. 면암 최익현은 한말 마지막 선비요 애국지사다.
 14세 때 성리학의 거두인 이항로에게 학문을 배워 철종 6년(1885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조정으로 출사하였다. 그는 천성이 강직하여 입바른 소리를 많이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873년에 올린 <계유사소>다. 그는 대원군이 마구잡이로 서원을 철폐하자 명성황후 민비를 등에 업고 이 상소를 올려 결국은 대원군을 권하에서 몰아냈다. 그러나 몇 해 후<사호조참판겸진소회소>를 냈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벗어난 후에는 관직을 버리고 위정척사의 기처를 높이 들고는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는 <병자지부소>를 올렸다가다 소혹산도로 유배를 당했다. 위정척사운동에 이어 말년에는 무력적 할일  항일 의병운동을 펼치면서 <창의토적소>를 올린다. 이어 그는 74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적지인 대마도로 유배를 당하여 단식으로 순국하였다.
 그의 사당은 이곳 청양 말고도 곡성, 무안 등 여러 곳에 있다. 이곳 청양과의 인연은 그가 말녀에 이곳에 서 의병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모덕사 경내 춘추가에 는 그의 유품들이 역사에 빛바랜 자태로 전시되어 있다. 경내에는 춘추각 외에도 몇 동의 당우들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조와 분위기는 급하게 조성한 까닭인지 엉성한 느낌을 준다.
 모덕사 앞 호숫가에 늘어진 화사한 개나리꽃그늘을 뒤로하고 아쉬운 귀경길에 오른다.
 차창밖으로 멀리 진달래빛 칠갑산 그림자가 노을에 붉게 타고 있다.

 

 

글/ 김재일 /소설가, 경실련 중앙위원이며 시민모임 "두레"회장이다.

문화역사기행 모임 두레는 수시로 문화유적 답사를 실시하고 있다.

참가할 사람은 서울 02) 712-5812로 문의하기 바란다.

 

작성자김재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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