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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보리밭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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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보리밭을 보면서

 

 

  지방에 출장 용무가 있어 열차를 타고 가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보리밭을 보게 되었다. 달력으로, 또는 날이 제법 더워졌다는 체감으로 계절을 가늠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에게 여물어가는 보리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은 새삼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업무수첩을 펴고 날짜를 확인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망종(亡終)이 며칠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망종은 6월 초순의 한 절기로, 벼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 심게 된다는 날이다. 지금은 영농기술이 발달해 절기를 농업에 크게 참고하지 않지만 벼와 보리가 주된 작물이었던 예전에는 절기를 지켜 농사를 짓는 것이 철칙이었다.
 보리, 농촌에서 태어나고 뼈가 굵었던 나에게 보리는 매우 친숙한 작물이요 노동이며 추억이다.
우리집은 가을이면 여남은 마지막 마지기 되는 비탈밭에 보리를 갈곤 했다. 밭 한 귀퉁이엔 마늘이나 파를 심기도 했지만 그것은 약간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쟁기질로 만든 이랑을 형과 나는 쇠스랑으로 골랐고 그 골라진 이랑에 어머니께서 비료와 종자를 뿌리면 우린 다시 어깨가 빠지도록 열심히 휘덮어야 했다.
 이른 봄, 겨울동안 보리가 웃자라기도 한 때에는 온 식구가 줄을 지어 보리를 밟아주었다. 보리밟기는 보리 줄기의 불필요한 생장을 막아 뿌리를 튼튼히 하고 서릿밭에 솟아오른 흙을 다져 봄 가뭄을 예방하기 위해 실시하는데 수백 이랑을 밟고 나면 마치 마라톤을 한 것처럼 다리가 아프고 붓곤 했다.
 보리가 자라 이삭을 내밀 무렵 나는 쇠꼴을 베다 심심하면 뵐 피리를 곧잘 만들어 불었다. 귀리와 깜부기를 뽑던 어머니께서 아까운 이삭 다 망친다고 나무라셨지만 꾸중보다는 피리 부는 재미가 더 커서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나도 어지간한 애물단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보리알이 아물어지면 어머니께선 가끔 아삭 몇 개를 뽑아 불에 그을려서는 손바닥으로 비벼 입 언저리가 까맣도록 고소한 알곡을 먹게 해주셨다.
 그런데 그 맛보다 더 고소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보리를 베다 발견한, 열대여섯 개씩 되는 꿩알이었다. 때론 찾는 꿩알은 없고 까치독사가 똬리를 틀고 있어 질겁을 하기도 했지만,
 보리를 재배함으로서 가장 많은 고생을 하시는 분은 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이삼월의 차디찬 흙을 일일이 호미로 헤집어 풀을 매고 북을 넣는 작업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의 소원은 밭이야 얼마를 매도 좋으니 비탈밭이 아닌 평밭을 매보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비탈밭 푸념은 몇 해 전에야 겨우 끝날 수 있었다. 평밭이 생겨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비탈밭을 팔아버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꼴도 보기 싫은 밭이었다며 시원해 하셨지만 결코 시원하지만은 않았을 심정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을 석 배부르게 보낸 것도 아니다. 밥을 굶지는 않았으되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시커먼 보리밥을 먹었고, 방아를 찧어 나온 죽겨를 반죽해 만든 개떡을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형제들과 다투곤 했으니 보릿고개의 녹색혁명의 중간 세대라고나 할까?
 그런데 어느 틈엔가 보릿고개와 함께 보리밥도 슬며시 사라져버렸다. 모두가 쌀밥을 먹어도 쌀이 남아 걱정이란다. 보리가 쌀에 비해 월등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다지만 그 재배면적은 해마다 격감하는 실정이고 어쩌다 소문난 꽁보리밥집이 별미를 즐기려는 배부른 사람들에 의해 호황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보리는 우리 민족이 가장 오래 재배해온 농작물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생활양식과 입맛이 바뀐 마당에 보리를 안 먹는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아니겠으나 혹시 밀과 목화가 그랬던 것처럼 보리마저 이 땅에서 아주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아쉽고 조바심이 난다.
 다행히 음료업계와 제과업계에서 보리를 이용한 제품 개발에 힘을 쓰고 있어 아직은 보리피리도 만들어 불고, 깔아뭉개지 보리밭을 보고 낄낄거릴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상에 따른 수입개방 압력과 값이 싼 중국 농산물의 무분별한 수입으로 우리 농부들의 한숨소리가 높아가는 이 때에, 외국 농산물 때문에 보리마저도 이 땅에서 씨가 말라간다는 소식만은 제발 들려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김흥선 (62년 전남 영암 출생, 94년 문화일보 문예사계에 단편소설 당선, 현재 농협중앙회 근무)

작성자김흥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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