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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사랑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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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소설]

 

사랑 만들기

 

S시의 톨게이트를 벗어나자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으로 합류한 철만은 고속버스 전용차선으로 비집고 들어섰다. 그리곤 터보추진을 이용 고속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표대리님 평소에 운전이 과격하다는 얘긴 많이 들었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봐요?"
"불안해요?"
"불안한 것 보다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는 방법이 색다른 것 같아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편안하게 모실테니 참! 혜정씨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 좋아하세요?"
"석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싫은 편도 아니에요"
 철만은 시디플레이어의 버턴을 눌렀다. 가슴을 파고드는 감미로운 음악이 흘렀다.
 에어콘에 의해 시원해진 차안과는 달리 차창밖은 이미 8월의 태양에 의해 한껏 달구어져 있었다.
 외형적으로 보기에 표철만은 은행의 대리라는 비교적 안정된 자리에 있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가정불화로 아내와의 헤어짐이 철만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되었다. 결혼 초부터 도벽의 증세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아내는 결혼 3년째로 접어들고 나서는 도벽의 중세가 더욱 더 심해져 철만이 앉아 있는 대리의 자리까지를 위협해오고 있었다. 몇 차례에 걸쳐 정신과 전문의의 검진을 받은 결과 우울증이란 것 외엔 별다른 증세가 없었고 또 그에 대한 진료도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처음에 동네 슈퍼마켓부터 시작한 도벽 행위는 날이 갈수록 심하여 보석상, 심지어는 백화점까지 넘나들게 되었다. 철만으로썬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본인의 마음도 그러했지만 양가의 의사결정으로 결혼 3년 만에 이혼이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혜정씨와 이렇게 여행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표대리님이 은근히 원하신 게 아니었나요?"
"그렇지만 혜정씨가 응해주지 않았었더라면 어디 꿈이나 꾸겠어요?"
 J은행 xx지점에 근무하고 있는 표철만과 조그마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임혜정은 같은 상가 내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언제나 함께 하고 있었다.
표철만과 임혜정 두 사람이 같은 건물 내에 있다는 이유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가 남다른 관계로 바뀐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표철만이 아내와 헤어지기 두어 달 전의 어느 날 아침 승용차를 몰고 평소와 같은 방향으로 출근하던 그는 추돌사고를 당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던 초보운전의 임혜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황색신호를 발견하고 오백 미터 전방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임혜정의 승용차를 뒤에서 안전거리 미확보로 추돌시킨 사고였다. 피해자는 분명 임혜정이었지만 노련한 가해자에게 초보인 임혜정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뒷 트렁크가 반쯤 찌그러진, 접촉사고 치고는 꽤 큰 사고여서 순간적 충격으로 인해 임혜정의 얼굴엔 혈색 하나 없었고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표철만 그도 초보운전 시절에 이와 같은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너무나 똑같은 장면이었다. 순간 철만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차를 세워놓고 사고 현장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고, 쌍방 간의 명확한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가해자의 전액 비상처리로 사고는 일단락 지어지게 되었다.
 대개 인연의 맺음은 어떤 계기가 있게 마련인데 이들의 관계도 이렇게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몇 시간은 쉬지 않고 논스톱으로 달려 승용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혜정씨 그만 일어나요?"
"여기가 어디에요?"
단잠에서 깨어나기가 아쉬운 듯 혜정은 눈을 비비며 조용히 하품을 머금었다.
"어디긴 합천이죠! .. 무슨 잠을 그리 깊이 자요? 미안해서 말도 못 붙였네. 대체 어제 밤에 뭘 했길래...?"
"열대야 때문에 잠이 와야죠. 게다가 오늘 여행할 걸 생각하니 더군다나 잠이 안 오더라구요!"
"그래도 그렇지 혜정씨가 무슨 사춘기라고 밤잠까지 팽개쳐요."
"어머머, 대리님도 제가 어때서요? 제 마음이 이정도로 상큼하고 푸르니깐 대리님을 사모하죠. 제 말이 틀려요. 틀리면 틀리다고 말씀해 보세요?"
"맞아요 맞아! 하하하.."
 철만은 나이 서른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발랄함과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그 누구보다 한껏 지닌 혜정이가 마음에 들다 못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대리님!"
"혜정씨, 잠깐, 나와 단둘이 있을 땐 대리님이란 단어를 빼고 부르세요. 그 단어가 자꾸만 혜정씨와 나 사이에 큰 둑을 쌓고 있는 것 같아 마음 쓰여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철만씨? 보세요 얼마나 자연스러워요."
"지금까지 대리님이라고만 쭉 불러왔었는데 하루아침에.. 쑥스럽기도 하구..!"
"자 나 따라 해보세요. 철만씨?"
"....... 철만씨"
"거봐요. 되잖아요"
"에이 쑥스러워요.."
 혜정은 웃으면서 철만의 어깨를 뽀얀 주먹으로 콩콩 두들겼다.
"혜정씨! 어떡할래요 식사부터 먼저 할까요?"
"아니에요. 기왕 점심식사를 건너뛰었으니 스님부터 찾아뵙도록 해요."
"그럽시다."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해인사 경내를 메우고 있었다. 송광스님은 철만의 어머니와 함께 자라났던 분으로 해인사에 수십 해를 계시는 동안 매년 한번 정도는 찾아오곤 했었다. 철만에게 송광스님의 존재는 육친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누군가 철만이가 아니던가. 나무아미타블"
"예 스님 저 철만이예요. 그간 안녕하셨어요?"
"나야 늘 편안하지 그래 집안은 다 무고하시지?"
"예"
"스님, 요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면서요?"
"어차피 생노병사 아니던가. 그래도 그렇게 크게 염려할 거는 아닐세"
"다행이세요"
"그동안 자네 마음고생 많았었네. 다 업보인 것을"
"스님 지난 일들을 다 잊고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잘했네. 나무관세음보살"
"여기 제 아내 될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혜정씨! 인사드려요"
 갑작스런 청혼인사에 혜정이는 준비도 없이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철만이 자네 재주도 참 좋은 이렇게 참한 규수를 언제 또 얻었나.. 부디 부처님의 은총이 나무관세음보살!"
"철만씨?"
 혜정이의 표정이 뾰르퉁하다 못해 잔뜩 부어있었다.
"혜정씨! 진작 그렇게 하시지, 나 부르는 호칭이 이제야 정상으로 됐잖아요."
"철만씨? 나 지금 화났단 말이에요!"
"네 알아요. 알구 있다고요. 그렇지만 어차피 우리 결혼할거 아네요?"
"그래도 그렇죠 결혼하잖 말 내내 않다가 거기서 느닷없이 그러면 나더러 어떡하란 말이에요"
"혜정씨, 우리 잠깐 쉬었다가 내려갑시다."
 우람한 아름드리의 활엽수로 뒤덮힌 해인 해인국민학교의 교정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들었다.
"철만씨"
"왜요?"
"한가지 드릴께 있어요"
"뭔데요?"
 혜정은 핸드백에서 예쁘게 포장한 자그마한 꾸러미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그리곤 철만에게 내어 밀었다.
"한번 풀어 보세요"
철만은 몹시 궁금했다.
"대체 뭐기에?"
"남자들한테 꼭 필요한 거예요"
 정성이 포장지에 그대로 배어 있는 것 같아 함부로 뜯을 수가 없었다. 철만은 조심조심 포장지를 벗겨내었다. 그 속에는 정말 필요한 물건이 들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전기면도기였다.
"혜정씨! 내가 전기면도기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 정도쯤이야 척하면 알아 맞추죠. 하루는 턱수염이 말끔하고 하루는 수염이 조금 자라있는 걸 보면 하루는 면도를 하고 하루는 안한다는 거죠. 다시 말해 길지도 않은 수염이 귀찮기 때문에 매일 면도를 안한다는 거예요. 어때요 제 말이 맞죠."
"이야 귀신이네"
철만은 혜정이가 너무 고마웠다
"혜정씨!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요"
"혜정씨!... 그동안 이말 하려고 벼르다가 무척 망설였어요."
"무슨 말을요?"
"혜정씨, 사랑해요"
"피..!"
 못들은 척 혜정은 먼 산마루에 걸려있는 뭉개 구름만 쳐다보고 있었다. 철만은 혜정이의 손을 꼭 쥐었다.
"혜정씨 저기 좀 봐요"
"어디요?"
 고개를 돌리는 순간 혜정이의 허리를 안은 철만은 그녀의 입술에 사랑의 키스를 쉼 없이 주고 있었다. 한여름의 사랑은 추수의 열매를 맺기 위해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글 / 김영익 (소아마비 장애우)

작성자김영익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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