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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길로 새어버린 것도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영문의 영화읽기]영화 ‘사이드 웨이(Side Ways, 200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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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날입니다. 고개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지극히 낮아졌고 손가락 끝에 푸르름이 묻어날 듯합니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낍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고 있겠지요.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든지, 새로움을 찾아 나서든지 그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고자 혹은 잊고자 떠나갑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또한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삶의 소소한 일상에 관한 것입니다. 10년 전 개봉했지만 오래된 와인처럼 여전히 우리 마음을 적시는 영화 ‘사이드 웨이(Side Ways, 2004, 미국)’입니다. 두 남자 주인공은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영화 제목처럼, 옆길로 빠지게 되지만 여행의 법칙처럼,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유쾌한 코미디 영화이지만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는, 와인을 통해 인생을 음미할 수 있는 발칙한 로드 무비입니다.  

지극히 불안한 영혼을 가진 두 남자가 있습니다. 성격은 정반대이며 외모 또한 도저히 함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둘은 대학 때부터 단짝 친구입니다. 일주일 뒤 아름다운 신부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랑 잭(토머스 하덴 처치 분)은 마흔이 되도록 여전히 철이 없습니다. 그의 정신세계는 사실 매우 미숙하고 충동적이며 불안합니다. 아름답고 착한 아내와 든든한 처갓집까지 가진 일견 완벽해 보이는 교과서적인 삶이지만, 그에게는 그 자체가 두렵습니다. 지금껏 정형화된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B급 영화배우로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잭에게 결혼, 아내, 자식은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여행 내내 그는 여자 뒤꽁무니만 따라 다닙니다. 그에게 여자는 즐기는 대상이고 불안을 없애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마일즈(폴 지아매티 분) 또한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2년 전 이혼한 그는 여전히 전처를 못 잊어하고(하지만 전처는 이미 재혼했지요.) 아무하고나 쉽게 데이트하지 않는 까다롭고 소심한 남자입니다. 사실 그는 별다른 능력이 없습니다.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벌어둔 재산도 없고, 그나마 심혈을 기울여 쓴 소설은 출판사로부터 늘 거절당하고 있습니다.  여행 경비 또한 엄마 저금통에서 살짝 훔친 ‘찌질남’이지요.

   
 

잭의 총각파티를 빙자한 두 남자의 가을여행에 운명적인 두 여자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웨이트리스인 마야(버지니아 매드센)와 와인 양조장에서 일하는 스테파니(샌드라 오)가 그들의 여행에 합류하면서 영화는 네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과 일탈을 유쾌하게 그립니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은 마일즈와 마야 사이에 전개되는 감정의 혼선이며 그들의 대화에 초점을 둡니다. 포도주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고 가고, 햇발에 비치는 와인의 빛깔이 영화의 주요 색감이 됩니다. 

고뇌하는 삶의 주인공 마일즈는 와인에 거의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와인 시음과 같은 고상한 취미를 가진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그는 우울한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에 가깝지요.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 따위를 읊조리지만, 정작 와인을 즐기지는 못합니다. 영화 내내 고상한 척 와인을 음미하다가, 불쑥 화가 난 얼굴로 와인을 통째로 벌컥벌컥 마셔대는 마일즈의 모습에 중년의 남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실 겁니다. “지 맘대로 가는 인생이 어디 있는감. 꼬이니까 인생이지. 마음 접고 살면 그만이여.” 단언컨대 이렇게 이야기하셨을 겁니다.

   
 
까칠한 마일즈는 포도 품종 중 유달리 ‘피노 누아(pino noir)’에 집착하는데,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재배가 힘든 품종이지요. 껍질은 얇고, 성장이 빠르며, 아무 환경에서나 못자라고, 끊임없이 보살펴 줘야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만 자라고, 인내심 없이는 재배가 불가능한 품종이니까요. 그렇지만 시간과 공을 들여 돌봐주면 포도알이 굵어지고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향이 태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마일즈가 좋아했던 것은 와인만이 아니라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피노는 품성 자체가 정확히 사람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싼 와인에 집착하지만, 사실 와인은 유럽의 민중들이 즐겨 마시는 술입니다. 우리의 막걸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포도넝쿨은 땅속의 온갖 나쁜 것들을 흡수하면서 성장합니다. 척박한 땅이라도 포도를 심어 살아남게 된다면, 그 땅은 비옥한 땅이 되는 것이지요. 마치 포도나무는 세상의 악을 받아들여, 선함으로 내뱉는 동네어귀의 느티나무를 닮았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시간을 기다려 와인을 땁니다. 영화 속 마일즈가 61년산 귀한 와인을 결혼 10주년에 따려고 남겨두었듯이 막연히 미래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와인은 특별한 시간대에 따는 것이 아니라, 마야가 말한 것처럼 그 와인을 따는 순간이 특별하게 됩니다. 마야 또한 이혼을 했지만, 그녀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와인이 언제 특별한지, 와인이 왜 소중한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와인은 모든 농부들의 땀과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날, 와인 한 잔의 여유(막걸리 한잔도 물론 좋습니다.)와 함께 각자의 인생을 생각해 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야 하는 것이지요. 옆길로 새어버린 혹은 우회해서 돌아가는 길(side ways) 모두 우리의 인생입니다. 건강하세요.

작성자이영문 국립공주병원 원장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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