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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이영문의 영화 읽기]김기덕의 스무 번째 영화 ‘일대일(2014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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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계절은 한여름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짙은 그림자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권력과 유착된 부패의 증거가 도처에서 쏟아지고 있고 사건의 진실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람의 문제인지, 두 가지 상호작용의 문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월호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집단 무기력감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점차 자본과 권력을 무기로 새로운 수직사회가 되어가는 우리나라의 맨 얼굴을 보여주었다는 것 또한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화두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런 암울한 시기에 맞춰 지난 5월 한 편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물론 흥행은 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바로 김기덕 감독의 ‘일대일(2014)’입니다.

‘오민주’라는 여학생이 괴한 7명으로부터 무참하게 살해당하면서 영화는 시작합니다. 검은색 테이프로 눈과 코, 그리고 입이 봉인된 채 이유를 알 수 없는 채 살해됩니다. 용의자 7인에 대한 복수가 그림자 7인에 의해 차례로 이루어지고, 그 과정 속에 또 다른 폭력이 가해집니다. 김기덕 특유의 기법처럼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이 사라지게 됩니다. 위선과 위악이 겹쳐지고 과거의 가해자가 현재의 피해자가 됩니다. 용의자와 그림자 조직 내부의 균열이 발생하고 혼란에 빠지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끝납니다.

용의자 7인 모두 자신의 행위를 처음에는 부정합니다. 시킨 일을 했을 뿐 나는 모른다는 식의 애매한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누가 왜 무엇을 지시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마비되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그림자 조직 또한 경찰, 공수부대, 국정원 직원 행세를 합니다. 심지어는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로 위장하지요. 마치 부패한 세력을 쓸어버리겠다는 은유와도 같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평소 영화와는 달리 대사량이 매우 많고 내용도 거칠고 직접화법이 대부분입니다. 감독은 작정한 듯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그대로 대사에 담습니다.

“독재는 국가만 하는 게 아니야. 가족, 애인, 친구 사이에도 독재가 있어. 네가 당하면서 사는 것은 네가 원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야. 병신아. 네가 이러니까 또 당하는 거야.”

비겁한 그림자 조직 내부의 균열에 대해 대장 마동석은 육두문자를 날리며 응수합니다. 적당히 겁만 주고 말자는 그림자 조직원들의 대사는 우리 모두의 권력과 부에 대한 양가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세속적 권력과 성공과 부를 쫓아 시키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나약한 국민의 한 명일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이 불편합니다.

‘오민주’라는 여학생의 죽음 또한 어떤 특정한 사건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민주’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김기덕 감독은 이 시대가 소통부재와 공동체의 파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왜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걸일까요? 관료주의가 팽배한 곳에는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책임 있는 행동을 누구도 하지 못합니다. 집단 무기력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납니다. 평소 보였던 상부의 명령만을 전달받고 시행하는 일에 익숙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율성은 억제되며 창의성은 실종됩니다. 현장을 책임질 수 있는 누군가의 소신 있는 행동이 존재하지 못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그러합니다. 결과적으로 사건 발생 두 시간 이내에 누군가는 선실의 유리창을 부수며 진입을 시도했어야 했습니다. 아무도 결정하지 못했지요. 책임을 감내할 여백 있는 사람이 부재한 탓입니다.

이 불편한 영화를 그래도 권하는 이유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설이 아닌 역설로 보면 답이 있을 것입니다. ‘일대일’은 우리가 도착해 있는 현실이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에 대한 우리 모두의 고백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마치 긴 연극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가질 겁니다. 감독의 뜻대로 이 시대에 진정 일대일로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하려면 반드시 답을 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바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며 수도승의 자세로 죽음을 기다리는 마동석의 강인하면서도 슬픈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 세상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처절한 복수에 대한 스스로의 폭력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파괴된 영혼들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놓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작은 수직사회에 큰 바다 같은 수평사회를 꿈꾸며 만든 영화입니다. 열악한 제작비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가는 김기덕 감독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성공한 개인 한 명이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는 고답적인 생각에서 이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강한 개인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갑니다.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라며, 293번째 희생자로 발견된 윤민지 양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 미안합니다. 우리들의 잘못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편하게 쉬세요.

작성자이영문 국립공주병원 원장  aery727@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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