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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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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소설]

 

"부부싸움"

 

강대리는 문짝이 부서져라고 꽝 소리가 나게 출입문을 닫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어둑한 계단을 우당탕 뛰어 내려오는데, 아내와 어린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뒤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저만치 계단 아래에서 아내와 단짝인 혜영이 엄마가 올라오고 있었다.
 "휴일인데 어딜 가세요?", "아, 예.", "안 바쁘시면 애 아빠와 술 한잔하세요. 슈퍼에 다녀오는 길이예요."
 그녀가 비닐봉지에 든 맥주병을 들어 보였다. 맥주가 서너 병 든 것 같았다. 아내와 그녀는 죽고 못 사는 단짝인지 모르지만, 그는 그녀의 남편과 그리 친하지가 못했다. 구청 말단 직원이라는 그녀의 남편과 마지못해 몇 번 술자리를 가졌을 뿐이었다. "다음에 하지요" 그가 얼른 그녀를 비껴 계단을 두 서너 개씩 뛰어 내려갔다. 그러는 그를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그렇지. 아이들처럼 경망스럽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니,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막상 아파트를 빠져 나왔으나 강 대리는 갈 곳이 없었다. 게다가 급히 나오느라고 자동차 키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미심쩍다는 듯이 다시 한 번 바지 주머니를 이쪽저쪽 만져 보고는 버스 승강장 쪽으로 긴한 볼일이 있는 사람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때 마침 버스가 달려와 승강장에 멈추어 섰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멈추어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올라타고서야 버스가 변두리인 금촌으로 가는 버스임을 알았다. 그러고보니 지난달에 금촌에 한번 가본 일이 있었다. 그때는 버스가 아니고 조 대리 승용차를 타고서였다.
 그 날이 마침 주말이었다. 일찌감치 회사 일을 마치고 강 대리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다가 마침 조 대리와 만났다. 한 회사에 있으면서도 부서가 달라서 그런지 서로가 만나기가 힘이 들었다. 조 대리와는 입사 동기였다.
"어이, 조 대리 모처럼 만났으니 술 한잔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겠나." 조대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강 대리가 허튼 수작을 부렸다.
"술, 그거 좋지." 보나마나 고개를 흔들며 달아날 줄 알았는데 조대리가 의외로 싹싹하게 말했다.
"정말 술한잔 할거야?"
"좋아. 이번에 내가 한잔 사고말고, 대신 나하고 잠깐 금촌에 좀 다녀 다녀오세."
조 대리가 조건을 달았다.
"금촌에?"
"그리 시간이 많이 안 걸릴걸세"
"그럼. 그러세."
 강 대리는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대리가 금촌에 무슨 긴한 볼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에게 동행을 요구하겠는가.
"금촌에 예쁜 여자라도 숨겨 놓았는가?"

 그의 차를 주차장에 그대로 세워 놓고 조 대리의 차를 타고 가면서 그가 농담을 했다. 조 대리가 무슨 말 대신 허허 웃었다.
"이 친구 말없이 웃는 걸 보니 정말 수상쩍은데."
"예쁜 여자가 아니지만 근사한 사람을 만나러 가네."
"근사한 사람이라니?"
 그는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러나 조 대리는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승용차가 도심지를 벗어나 잘 포장된 4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신작로 양쪽으로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실은 심방으로 가는 길이네."
승용차가 금촌에 거의 다 왔을 때야 조 대리가 실토를 했다.
"뭐야! 그런데라면 난 안가겠네, 당장 내려주게."
 그가 일부러 버럭 화를 내었다.  어쩐지 조대리가 시원스럽게 대답을 하더니, 그런 꿍꿍이속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교회, 하나님, 사랑, 십자가, 영생 어쩌고 하는 말에 그는 괜히 질색을 했다. 그런데 심방이라니.
"오해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보게."
 조 대리가 어린아이처럼 버럭 화를 내는 그를 빙긋이 쳐다보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간곡히 부탁을 해서 나도 처음 가는 길이네, 마흔이 다된 사내가 금촌에 살고 있다는데, 어려서부터 이름 모를 병으로 하반신을 쓰지 못해 문 밖 출입을 못한다는 거야, 그러니 잠깐만 만나보고 가세."
 버스가 어느새 질펀한 들판이 보이는 금촌에 멈추어 섰다. 강 대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여기까지 온 김에 그는 지난달에 조 대리와 함께 잠시 만났던 사내를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금촌에 오자 사내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버스 승강장 부근에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빈손으로 남의 집을 방문하기가 멋쩍어서였다. 그는 오렌지 쥬스 한 통을 사들도 나오려다가 말고 아홉들이 소주 두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더 샀다.
 강 대리는 논두렁으로 들어섰다. 탐스런 모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지난달에 왔을 때는 모를 낸지 며칠이 안돼 논바닥 흑이 벌겋게 보였는데, 이렇게 모가 쑥쑥 자라 그의 허리에 닿으려고 하다니, 사내의 집은 저만치 야산 밑의 외딴집이었다. 잡초를 헤치고 논두렁을 이리저리 돌아 야산 밑으로 걸어갔다. 그는 양철대문을 비긋이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이 괴괴했다. 사내와 단둘이 살고 있는 노모가 인근 공단에 다닌다고 했는데, 아마도 사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계십니까?"
 그가 방문 앞에서 사내를 찾았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더 사내를 부르고는 방문을 열었다. 방안이 어두워서 처음에는 사내가 방안에 없는 줄로 알았었다. 체구가 작은 사내가 구석에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또 오셨군요."
 사내가 그를 못 알아 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금방 알아보았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노형 생각이 나서 들렀습니다. 술 할 줄 압니까?"
 그가 비닐봉지에서 아홉들이 소주병과 오징어를 꺼내 놓으며 물었다. 사내가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는 물주전자 옆에 놓인 투깔스런 사기 컵을 가져와 소주를 반절쯤 부어 사내에게 먼저 내밀었다.
"찾아주시어 고맙습니다."
 사내가 어눌한 음성으로 말하고는 단숨에 컵을 비웠다. 그리고 사내가 컵에 술을 따라 그에게 권했다. 그 역시 단숨에 컵을 비우고는 사내에게 다시 컵을 내밀었다. 술이 두어 순배 돌고 나자 술기운이 얼큰히 올라왔다. 사내 역시 얼굴이 발그레했다. 그들은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내 역시 술 한 잔이 들어가자 의외로 말을 잘했다.
"휴일 날 편히 쉬지도 못하고..."
 그가 잠시 말을 끊고 소주병을 기울이었다. 며칠 전이었다. 출근 시간에 쫓겨 급히 차를 몰고 아파트를 빠져 나오려고 하는데 20대 초반의 긴 머리 여자가 앞을 막아섰다. 시내로 들어가는데 차 좀 태워달라는 것이었다. 같은 방향이라서 그는 두말하지 않고 여자를 차에 태워 주었다. 그런데 아내와 단짝인 혜영이 엄마가 멀찍이서 그가 여자를 차에 태워주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그가 퇴근을 하자마자 아내가 차에 태워 준 그 여자가 누구냐고 다그쳤다. 그래서 그는 사실대로 말을 해주었다.
"별일도 아닌 걸 갖고 혜영이 엄만 호들갑을 다 떠네."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자 아내가 안심을 했다는 듯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혜영이 엄마가 엉뚱한 소리를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점심때였다. 휴일이라서 느지막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마침 혜영이 엄마가 찾아왔다. 그는 얼른 수저를 놓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TV를 켰다.
"여보, 잠깐 일어나 봐요."
 아내가 그의 어깨를 사정없이 흔들어 대는 바람에 깨었다. 방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여자가 대관절 누구예요?"
 아내가 다짜고짜로 물었다.
"그 여자라니?"
 그가 영문을 몰라 멍청히 아내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에 혜영이 엄마가 다녀갔더니 그 여자한테서 아내가 또 무슨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 벌서 잊어먹었단 말예요. 엊그제 당신이 차 태워 준 여자 말예요."
"이 여자가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처음 본 여자라고 말했지 않아. 시간 급하다고 해서 차를 좀 태워주었을 뿐이야!"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급기야는 서로가 언성이 높아지고, 말꼬리를 붙잡게 되고 결국은 대판거리로 부부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실은 여편네와 싸우고 나온 길이요. 정말 이젠 참을 수가 없어요. 여편네 꼴도 보기 싫어요. 이런 땐 혼자 사는 친구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강 대리가 술기운을 빌려 사내에게 부부싸움 이야기를 꺼냈다. 사내가 무슨 말 대신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정말 부러운 이야기군요."
 사내가 술잔을 비우고 나서 엉뚱한 말을 했다 부부싸움 이야기를 했더니 부럽다니, 순간 그는 사내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마흔이 되도록 난 여자라고는 어머니밖에 모릅니다."
 한참 만에 사내가 입을 열었다.
"....."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 여자와 무릎을 맞대고 마주앉아 다정한 이야기 한 번 나누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자 손목이라도 한 번 꼬옥 잡고 여자 냄새를 맡아보았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사내가 술기운을 빌려 중얼거렸다. 강 대리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아 아 그렇구나, 그런 사내 앞에서 부부 싸움 이야기를 꺼내다니. 마흔이 다 되도록 여자 손목 한 번 잡아보지 않은 사내에게 부부싸움 이야기란 한낱 배부른 자의 게트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어떻게 사내의 집을 빠져나왔는지 몰랐다. 사실 오늘 낮의 부부싸움 역시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내가 단짝인 혜영이 엄마 말을 듣고 며칠 전의 일을 새삼스럽게 꺼내더라도 그가 침착하게 대처했더라면 조용히 끝났을 일이었다. 그런데 급한 성질에 그만 뻑 소리를 지르다 보니 싸움이 걷잡을 수없이 크게 번지고만 것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강 대리는 모처럼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비록 가진 것은 풍족하지 않아도 무던한 아내와 그리고 귀여운 딸아이와 함께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를 깨달았다. 사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집에 돌아가면 아내를 끌어안고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미안해. 당신을 사랑해


 

글 / 김금철 (전신마비 장애우, 54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제 3회 동양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가파른 계단", "역사앞에서"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작성자김금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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