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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화가에서 장애 예술의 맹아로 ‘화가 고야’

한국장애학회 : 장애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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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앉은뱅이를 위로하는 베드로와 요한

렘브란트와 고야의 장애인

렘브란트의 판화 <사원 문전에서 앉은뱅이를 위로하는 베드로와 요한>(1659년)과 고야의 드로잉 <스스로 돌아다니는 보르도의 거지>(1824~1828년)에는 장애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림 속 두 장애인이 전달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는 사뭇 다르다.

렘브란트의 장애인은 땅바닥에 앉아 베드로와 요한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그를 두 성인이 자애롭고 위엄있게 내려다보고 있다. 이 판화가 보여주는 시선의 방향과 높낮이는 화가가 의도한 구도일 것이다. 성경 이야기를 옮긴 이 판화는 교회가 장애인을 궁휼히 여기고 치유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면, 등을 보이고 있는 장애인은 교회의 은혜로움을 보여주기 위한 어떤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그는 불쌍하고 비루해 보인다.

고야가 드로잉한 장애인은 남루한 차림의 거지지만 렘브란트의 장애인보다 적극적인 모습이다. ‘스스로 돌아다니는’ 그는 독립심이 강한 존재일 것이다. 조잡해 보이지만 충분히 제 기능을 함직한 휠체어가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일까? 거지임에도 그는 당돌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를 정면에서 응시한다. 벌리고 있는 그의 입은 “나에게 적선하는 건 당신의 자비가 아니라 의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림 속 장애인은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정신적으로는 당당한 ‘주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는 옹골차고 떳떳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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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돌아다니는 보르도의 거지

고야는 어찌하여 저토록 당돌한 장애인을 화폭의 중앙에 배치할 수 있었을까? 장애를 비정상성의 핵심 표지로 삼았던 18~19세기, 그래서 그 누구도 장애인을 ‘주체’로 포착하지 못했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고야의 삶과 예술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1746~1828년)의 예술은 그가 겪은 삶의 변천과 연동한다. 그의 미술 세계는 그의 삶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통상적으로, 그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왕족과 귀족의 초상화나 가족 그림을 전문으로 그리는 궁정화가로서 부와 명성을 쌓은 예술가였다. 하지만 1792년을 전후로 그의 미술 세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해 고야는 콜레라에 걸려 청력을 완전히 잃은 데다 신경쇠약까지 겹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됐다.

당시 그는 몽환적이고 악몽을 표현하는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 판화집 <광인수용소 Madhouse>(1794년), <카프리초스 Caprichos>(1799년)가 이 시절 그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들은 만년의 고야 미술을 대표하는 ‘검은 그림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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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 벗은 마야

5~6년 뒤 건강이 회복된 고야는 다시 밝고 화려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화가로서 그의 대표작인 <카를로스 4세의 가족>(1800년), <옷 벗은 마야>(1800년), <옷입은 마야>(1803년)가 바로 이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고야는 말년에 또 다시 극심한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에 시달린다. 그는 환청과 환영, 분노감과 불안감, 우울증에 가득 찬 여생을 보냈다. 시쳇말로 농인에다 심한 정신장애인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 시절 그린 <격분한 광인>(1824~1828년)은 고야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 초상화일지도 모른다. 벌거벗은 채로 ‘우리’에 갇혀 분노에 찬 눈으로 프릭쇼(freakshow) 구경꾼들을 응시하는 광인의 모습이 고야의 말년과 닮았다.

스페인 왕족은 물론 화단에서조차 외면 당한 고야는 1924년 이후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자기 집을 ‘퀸타 델 소르도(Quinta del Sordo)’라고 불렀는데, 우리말로 ‘귀머거리의 집’이란 뜻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검은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지, 장애인, 고아, 죄수, 광인 등을 검은색 한 가지로 거칠고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궁정화가로서 화려한 유화를 그리던 고야가 검은색 판화로 불안한 인간의 내면을 묘사했던 것이다. 그의 삶과 정신 세계를 그대로 그림에 옮긴 것이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판화집 <검은 그림들 Black Paintings〉(1820~23년)은 그가 농인이자 정신장애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고야의 장애 경험이 그의 화풍을 그렇게 바꾼 것이다. 그의 ‘검은 그림들’은 20세기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화풍이 등장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고야는 장애인이 된 뒤로 자신의 장애 경험을 토대로 전혀 다른 미술 세계로 진입했다. 자신의 장애 경험이 예술적 영감으로 작용했고, 근대 화가들 중에서 장애인을 가장 많이 그렸다. 우리가 고야의 후기 작품에서 장애 예술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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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분한 광인

장애예술

장애예술(disability art)은 단순히 장애 당사자가 수행하는 모든 예술 활동이나 작품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어느 구족화가가 빼어난 솜씨로 난초를 그렸다고 해서 그것을 장애예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런 것은 단지 장애인의 예술 활동일 뿐이다. 김기창 화백은 장애 당사자였지만 그가 그린 동양화의 내용은 장애인의 경험과는 무관하다. 그는 훌륭한 (장애인)예술가였지만 그를 장애예술가(disability artist)로 부르기는 어렵다.

반대로,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은 장애예술의 ‘내용’을 충실하게 담고 있지만, 비장애인이었던 그를 장애예술가로 부를 수는 없다.

장애 예술에 대한 명확하고 권위 있는 정의는 아직 제출된 바 없지만, 장애학이 일반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장애 예술의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애인 당사자가 생산한 예술이다. 비장애인의 작품이라도 장애인 운동과 문화를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라면 장애 예술로 봐야 한다는 입장도 있지만 소수의 주장에 불과하다. 둘째, 유형 또는 무형의 창작물이 미학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반드시 전문가적 기술과 수준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 비록 아마추어라도 얼마든지 장애 예술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셋째, 장애 경험 또는 정체성을 반영해야 한다. 이것이 장애 예술을 다른 예술과 구분시켜주는 핵심일 것이다. 장애 예술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고 또 그 내용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요소가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이처럼 장애예술은 그 주체가 당연히 장애 당사자여야지만 그 내용이 장애 경험이 반영된 것이어야 한다. 장애학과 장애예술이 고야를 주목하는 것은 그의 삶과 예술이 장애예술의 내용과 경계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윤삼호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정책위원

작성자윤삼호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정책위원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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