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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학회]장애 공연예술은 장애 정체성과 어떻게 공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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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릭쇼' 공연

장애정체성은 몸과 손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세상을 이해하고 장애인/비장애인 집단과 결속감을 갖도록 하는 장애인의 자기 인식을 의미한다. 장애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한 많은 모델들이 소개되었고(농 정체성 변화과정에 대한 Glickman의 모델, 신체장애인의 장애정체성의 형성과정을 다룬 Gill의 모델 등) 이 모델들은 ‘장애의 개인적 수용-집합적 장애정체성 변화-비장애인과 장애인 집단에 대한 동시 수용’이라는 단계를 거쳐 ‘집합적’인 장애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개인이 위치한 특수한 맥락이 장애 정체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장애인 개인은 장애 정체성을 어떻게 ‘선택’하는지 설명하지 못하여 비판을 받아왔다.
Darling(2003)의 장애정체성 유형론에 대한 논의는 장애정체성의 변화 양상이 서로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어떠한 상태를 ‘완성형’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가정한 데에서 앞선 논의들과 차이를 보인다. 또한 하나의 정체성이 다른 정체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다른 상호작용 상황을 만나거나 의미 있는 타자와 교류하는 것이 전환점이 되어 장애 정체성이 여러 양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Darling의 주장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생애에 걸쳐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수많은 계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결혼이나 질병 경험 같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장애인권 활동이나 장애인 집단과의 교류를 통해 사회적 모델을 접하는 것은 모두 장애인 개인에게 ‘터닝 포인트’로 작동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장애 정체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터닝 포인트’로 연극, 무용 등 장애 공연예술의 가능성을 살펴볼 것이다. 장애 공연예술 활동이 장애인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터닝포인트’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사실 아주 사적인 경험에서 싹튼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휠체어를 타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혼자 힘으로 계단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축구를 할 수 없다는 것 그 이상이다. 나는 직립보행하는 사람들을 1m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정수리로 내려꽂히는 시선에 맞서는 일에 삶의 아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왔다. 그리하여 타인의 시선이란 삶의 가장 큰 화두였다. 휠체어를 타고 거리에 서 있을 때 나를 향한 시선은 ‘다름’에서 기인하는 이질적인 시선이었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참여하게 된 연극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이십 몇 년 간의 경험을 송두리째 바뀌어놓았다. 분장과 의상을 갖추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서 있을 때 사람들은 내가 다른 몸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무대 위에 배우로 서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대 위에 내 모습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갈채를 보냈다. 매력적이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장애를 가진 동료 배우들이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서서 반짝 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많은 장애인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되는 경험이 무대 밖의 세상에서도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몇 번의 공연 경험을 통해 나는 장애 공연예술이장애정체성과 공명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하나는 장애예술의 한 장르로서의 장애 공연예술이 장애인의 경험을 다른 장애인과 공유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하여 장애인의 긍정적 정체성을 획득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나와 같이 신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과 맞서는 새로운 대응 방식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장애 예술과 장애의 사회적 모델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 의하면 장애인이 사회가 만들어낸 억압을 공통적으로 경험하게 되므로 이 경험을 정치화하는 것이 곧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장애 운동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등의 성과를 이루어냈으나, 물리적 힘을 강조하거나 남성화된 방식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남성적이고 과격한 운동 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장애 여성 단체에서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대안적 운동 방식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보다 수십 년 가량 앞서 영국에서 태동된 장애예술 운동 역시 정치적 장애운동과 연결되어 진행되었다. 즉 시, 음악, 춤 등을 장애인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느끼는 좌절과 화를 ‘집합적’으로 표현해내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이 장애인의 경험을 집합적으로 ‘표현’해내는 수단이 되는 것을 넘어서, 비장애인의 문화와 분리된 새로운 장애 문화를 창조해 나갈 수도 있다. 비장애인 중심의 문화와 구별되는 ‘장애 문화’는 긍정적인 장애 정체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즉 장애인은 장애인으로 겪게 되는 독특한 경험을 공유하고 표현하는 활동에 참여한 과정에서 장애인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도 있지만, 긍정적인 장애 정체성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장애 문화’의 창조자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장애 문화’를 받아들이고 장애 문화의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문화가 비장애인의 문화보다 열등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장애 자부심’을 필요로 한다.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의 적극적인 생산자로 참여하는 과정을 통하여 긍정적 장애정체성, 더 나아가 장애 자부심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 공연예술이 만드는 시선의 역동
장애를 가진 몸은 대다수의 장애가 없는 몸과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다. 특히 장애가 겉으로 표출되는 신체장애인의 몸을 향해 공공연하게 시선이 가해진다. Goffman(1963)은 그의 책 「스티그마 : 장애의 세계와 사회적응(Stigma :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에서 장애인이 자아개념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데 있어서의 ‘낙인’의 역할에 대하여 설명한다.
낙인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을 지닐 때 그 개인이나 집단에게 부정적인 꼬리표와 고정관념을 부여하여 부당한 평가와 처우를 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가 제시한 세 가지의 낙인 유형은 신체적 혐오에서 오는 낙인, 성격상 결함에 의한 낙인, 인종, 민족, 종교에 대한 종족 낙인으로, 그의 책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장애인의 낙인은 주로 신체적 혐오에서 오는 첫 번째 유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혐오를 일으키는 몸’을 가진 신체장애인은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과 마주함에 따라 자아개념이 서서히 침식되어 부정적 자아인식을 보이게 된다. 자신이 요구하는 자아(self-demands)와 실제 자아(self)의 괴리가 점차 강화되어 자기 혼자 거울을 대하고 있을 때에도 자기혐오 혹은 폄하를 경험하게 된다.
Goffman의 분석은 장애인의 부정적인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낙인의 경험에 대해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지만, 장애인의 몸과 여기에 가해지는 시선의 역동에 대하여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며 장애인이 시선에 도전하는 방식을 낮추어 평가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장애인의 몸에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시선을 역전시켜 새로운 역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안을 장애 공연예술 연구자들이 제안한 바 있다.
나처럼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길에서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향한 시선은 새로운 대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시선은 이내 장애인의 몸에서 ‘이야기’를 찾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몸’은 가장 내밀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나와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어쩌다가 장애를 갖게 되었느냐”,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느냐”고 내 ‘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이들은 “내가 아는 좋은 한의원이 있는데…”라며 고맙게도 원치 않는 정보를 전해주기도 한다. 이 일방적인 질문에는 장애인의 손상을 오롯이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의료적 처치나 재활이 필요하다고 보는 장애의 의료적 관점이 녹아 있다.
장애 공연예술 연구자들은 장애인의 정체성이 장애인의 몸에 대한 내러티브로부터 구성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공연예술은 장애인의 몸에 가해지는 질문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내러티브를 만들어 보여주는 활동으로 정의한다. 공연예술은 문학, 음악, 미술 영역과 같이 예술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예술가의 몸이 작품의 ‘매체’이자 ‘내용’으로 사용된다.
장애 공연예술 연구자인 Eisenhauer는 장애인의 몸이 작품의 주요한 소재이자 매체로 이용된 공연예술 작품의 예를 들어 장애인의 몸과 이를 향한 시선의 역동이 공연예술을 통하여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설명한다. 척수장애를 가진 공연예술가 Carrie Sandahl의 작품 ‘상호적 시선(The Reciprocal Gaze)’에서 그녀는 붉은 글자가 가득 적혀진 흰 레인코트를 입고 무대 위에 선다. 레인코트 위에는 장애를 입고 나서 받은 의료적 기록과 함께 일상에서 그녀가 일상에서 자주 받는 질문들이 적혀 있다. (“당신의 병은 전염성인가요?”, “~단체가 당신에게 도움을 줄꺼에요”, “혹시 정상이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와 같은 질문들이다.) 또한 무대 위에서 그녀가 원할 때마다 불을 점멸하여 원하는 순간에만 본인을 응시하게 만든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공연 작품이 소개된 적 있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의 연극공연 ‘프릭쇼(2014)’에서 저신장장애를 가진 한 장애 여성 배우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가 음악이 멈춘 순간 “힘드시죠?”, “당신을 보며 용기를 얻어요!” 등 일상에서 늘상 들어왔던 질문들을 관객에게 역으로 던진다. 이렇게 장애인 예술가는 일상에서 원치 않는 순간 무자비하게 가해지던 시선을 무대 위에서나마 통제하게 된다. 이렇게 뒤바뀐 ‘시선의 역동’은 장애인을 향한 시선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 예술가는 몸에 가해지는 새로운 시선으로 몸에 대한 새로운 자기 인식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경험을 하였고 극적인 가능성과 조우하였다. 그러나 공연예술이 기획, 연출, 동료 배우, 그리고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예술 장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배우의 신체적 표현을 극대화하는 표현법과 무대 장치를 만들어내고, 장애로 인해 만들어진 부정적 경험을 넘어설 수 있도록 장애인 배우를 독려하는 연출과 기획이 있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많은 상상력과 창조적 협업을 통해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설 수 있는 더 많은 무대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덧붙여 장애인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수많은 ‘터닝포인트’들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통해 더 많이 발굴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참고문헌
Darling, Rosalyn Benjamin. “Toward a model of changing disability identities: A proposed typology and research agenda.” Disability & society 18.7 (2003): 881-895.
Eisenhauer, J. (2013). Just Looking and Staring Back : Challenging Ableism through Disability Performance Art. Studies in Art Education, 49(1), 7–22.
Gill, C. J. (1997). Four types of integration in disability identity development. Journal of Vocational Rehabilitation.
Glickman, N. S., & Carey, J. C. (1993). Measuring deaf cultural identities: A preliminary investigation. Rehabilitation psychology, 38(4), 275.
Goffman, E. (1963). Stigma :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 Touchstome Books.   


 

작성자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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