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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눈높이가 나의 눈높이?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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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보면 서 있는 어른보다 눈높이가 훨씬 낮아져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 정도의 눈높이가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눈높이라는 말은 시선의 위치라는 뜻뿐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라는 뜻도 있지만 말이에요.
 

전동휠체어를 타고 슈퍼에 가는 길이었어요. 편의점 주차장으로 검은색 고급 차가 한 대 들어가더라고요. 별 생각 없이 그 차를 보고 있으려니 덩치가 큰 남자가 턱 하고 내리는데 그 순간 반팔 셔츠 아래로 그 사람 팔뚝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팔뚝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고 머리는 스킨헤드. 그 사람이 제 쪽으로 걸어오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휠체어 속도를 늦추게 되더라고요. 일단은 멈추고 그 사람이 먼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저를 보자 먼저 지나가라고 멈춰 서 기다리는 게 아니겠어요?

사실 저는 그 사람에 대해 전혀 몰라요. 그저 일반적으로 검은색 고급 차를 타고 문신을 새긴 야쿠자라는 이미지만 갖고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을 본 것뿐이지요. 그 사람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을 위해 잠시 기다려줄 줄 아는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인데 말이에요. 살짝 목례를 하면서 그 사람 앞을 지나가며 얼마나 미안하던지. 선입견을 갖고 보지 말라고, 차별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제 스스로가 갖고 있는 무의식적인 선입견의 벽이 얼마나 단단한지 새삼 느껴졌어요.

장애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갖지 말라고 하면서도 세상의 시선이 거북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고, 장애인 당사자는 물론이려니와 부모님들의 가슴저리는 아픔을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요.

그러기에 장애 중에서도 선천적인 염색체 이상이 원인으로 발생되는 장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출생전진단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지요. 일본에서는 2013년부터 출생전진단이 실시됐습니다. 임산부의 혈액을 분석해 태아에게 다운증 등의 증세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는 출생전진단이라는 선택권, 하지만 아직 숨결조차 미미한 태아를 진단해 출산여부를 판단한다는 무거운 선택 앞에서 출산을 앞둔 미래의 엄마들이 많은 고민을 하게 됐는데요.
 

장애와 생명에 대한 의식을 묻는 어려운 이야기지만 얼마 전 발표된 출생전진단에 관한 뉴스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3년 전에 시작된 새로운 출생전진단에 대해 일본 산부인과 의사 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5년 12월까지 모두 27,696명의 임산부가 출생전검사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고, 그 중 태아가 다운증장애라는 확정 판정을 받은 임산부는 모두 346명이며 그 중 97%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편 후생노동성(보건복지부) 연구팀이 다운증장애인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지 조사결과에 의하면, “매일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부모님들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2살 이상의 응답자 852명 중 80% 이상이 “네”라고 긍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새로운 출생전진단을 받는 임산부는 사전에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상담 내용에 다운증 장애인들에게 어떠한 지원제도가 있는지, 실제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NHK, 7월2일 뉴스)
 

설문지조사를 실시한 도쿄여자의과대학의 사이토 가요코 교수는 “일반적으로 다운증에 대해 불쌍하다든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러나 본인들은 아주 높은 비율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로, 본인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점은 아주 설득력이 강한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결과를 임신을 하고 계신 분들, 출산전진단을 받을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이 알게 된다면 조금은 안심이 되는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고, 이런 정보를 임산부, 남편, 가족에게 잘 알린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기사도 소개됐습니다. 자신도 아닌 자식의 생명에 대한 어머니의 선택, 그 누구도 대신 판단할 수 없는 일이고, 선택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감히 말하기 어렵지만 선입견이 아닌 다양한 잣대로 폭넓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싶어요.
 

마침 오늘 절박한 처지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던 장애 어린이 부모님에게 반가운 뉴스가 있었기에 곁들이자면, 오사카에 사는 중증 폐질환을 앓고 있는 두 살짜리 가나다 스즈카 어린이 얘긴데요.

증세가 더욱 심각해져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는 이 어린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폐 이식 수술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 국내에서는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없어 미국으로 가고 싶지만 그 수술비가 자그마치 3억1천만 엔(35억 원 정도)이나 든다는 거예요. 그 엄청난 수술비하며 수술을 받아도 심한 후유증이 남는다고 하니 보통이면 부모도 두 손을 들어버릴 것 같은데, 이 젊은 부모는 포기하지 않고 아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모금 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3억1천만 엔의 모금이 달성돼 7월 21일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됐다고 하네요. 저도 일주일 전쯤 아직 1억 엔이나 모자라니 지원을 부탁드린다는 뉴스를 봤는데, 이렇게 빨리 그 많은 성금이 모일 줄은 몰랐어요.

정말 세상에는 남의 아픔을 나누고 덜어주려는 분들이 아주 많이, 많이 계시는 것 같아요. 특히 자식을 살리려는 부모의 사랑과 아픔에 대해서는 더욱 그 공감대가 넓은 것 같고요. 그런 마음들이 일시적인 모금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키우기 쉽고, 자라기 쉬운 사회로 인식과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디딤돌이 됐으면 합니다.

작성자변미양/지체장애인. 일본 오사카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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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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