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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가치가 없다고? 누가?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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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화요일, 제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어요. 일본 장애인시설에서 일어난 잔혹한 사건. 그 날은 마침 9시 30분부터 활동보조인 마츠무라 씨가 가사를 도와주러 오는 날이었어요. 전날 새벽 2시 반경에 일어난 사건으로 아침부터 뉴스는 난리가 났고,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줄이야 상상도 못 했으니,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정말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가 힘들어 좀처럼 밝히지 않는 일이지만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으면 이 글을 쓰기가 힘들 것 같아서…, 사실 저는 25년 전 한밤 중 일터에 침입한 강도의 칼에 찔렸고 척추신경에 손상을 입어 하반신 장애를 갖게 됐답니다. 그리고 7년 넘게 우리 집에 활동보조로 도와주러 오시는 마츠무라 씨는 중증의 지적/ 신체적 장애가 있는 따님을 10년 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고 해요. 그런 형편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은 이 엄청난 사건을 뭐라 표현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저 일부러 사건에 대해 함구한 채 깊은 한숨만 내쉬었죠.

이 사건은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 있는 ‘츠쿠이야마유리원’이라는 장애인시설에서 벌어진 참상이에요. 이 시설에는 18세에서 75세까지의 남녀 149명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용자 전원은 지적장애인이며 그 중에는 신체장애, 정신장애도 겸한 중증장애인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사건의 처참함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불과 50분간 45명 습격, 그 중 19명 사망”이라는 전쟁터에서 날아오는 기사와 다를 바 없는 신문 헤드라인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이 사건의 범인이 올해 2월까지 이 시설에서 3년 넘게 근무하고 있던 정규직 직원이었다는 것. 호송되는 차 안에서 범인이 보여줬던 섬뜩한 표정이 말해주듯 그는 이전부터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언동이 심했다는 사실입니다.

2월에는 국회의장에게 ‘중증장애인은 살 가치가 없으며 사회에 불행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안락사 시키는 것이 낫다. 중증장애인을 없애는 것이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자신이 그 일을 실행하겠으니 체포 뒤 자신에 대한 가벼운 처벌과 거액의 보수를 약속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다는 겁니다. 제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옮겨 놓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그렇지 않으면 범인이 중증장애인을 집중적으로 골라 처참하게 살해하고, 스스로 경찰에 출두한 이 부조리한 사건의 내막을 제대로 전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적어봤어요.

편지 내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가미하라시는 담당자와 시설대표, 범인 이렇게 세 명이 대면하는 자리에서 편지 내용과 차별언동에 대해 확인했지만 범인이 자신의 주장을 바꾸지 않아 바로 의료조치라는 강제적 입원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2일 후에 범인은 퇴원했고, 행적이 전혀 파악이 되지 않은 채 편지 내용 그대로 범행이 저질러졌다고 하네요.

사건 자체도 충격이지만, 이 범인은 희생자의 가족에게는 갑자기 이별을 시켜 미안하다고 할 뿐 정작 희생당한 장애인에게는 사과는커녕, 조사를 받고 있는 지금도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니…… 기가 막힐 뿐이에요.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범인이 정신질환자가 아닌가 하는 여부, 마약 반응이 나왔으므로 판단능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벌인 범행이 아닌가 하는 점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들이 사건이 표출되게 만든 한 요인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한 때는 교사를 희망했고 고등교육까지 마친 그의 언동에서 드러나는 장애인에 관한 지나친 차별 의식과 범행의 치밀함으로 보건데 충동적,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차별의식이, 곪아 터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소 추상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행복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장애에 대한 의식을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검증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는 범인의 생각, 즉 경제적 노동능력 여부로 존재 가치를 부정해 버리는 편협한 생각이 단지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 어느새 승자만 살아남는다고 가르치는 사회 속에서 길러지고 있는 건 아닐지 되짚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범인은 올 1월에 나치스 히틀러의 사상을 계승 받았다고 말했대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우수한 인종’만 살아남도록 한다는 ‘우생사상’을 내세워 20만 명의 지적장애인과 6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했잖아요. 그것이 나치스만의 만행인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도 그러한 의식이 적지 않았고, 일본에서도 1948년부터 ‘우생보호법’이라는 법률 아래 일부 장애인이나 나병환자에게 강제적으로 불임수술을 시켰고, 그 법이 ‘모자보호법’으로 개정된 게 불과 20년 전인 1996년이라고 하니 ‘장애가 있건 없건, 더불어 산다’는 생각을 넓혀 나간다는 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요.

또 한 가지, 범행이 ‘입소시설’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죠. 150여 명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입소시설이 아니었다면 단시간에 그처럼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에요. 희생자들의 이름은 가족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공표되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입소 장애인 중 30여 명은 집이나 다른 시설로 옮겼지만, 나머지 40여 명은 잔인한 사건의 현장인 그 시설 내 체육관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니, 정말 슬퍼요. 재정 등의 문제와 당장 대처해 줄 시설을 찾을 수 없어 진척이 안 되고 있다네요. 장애인들이나 직원들이 받는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를 생각한다면 무엇보다도 빨리 조치를 해야 하는 일일 텐데, 그 상태로 두고 있는 현실이 바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고, 복지의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논의가 필요할 것 같지만,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는 거의 들리지 않고, 최근 올림픽 분위기에 휩싸여 세상에서 아주 먼 사건이 돼버린 듯 착각마저 들어요. 하지만 깨어나야지요. 외면하지 말아야지요. 아무쪼록 희생당한 한 분 한 분의 명복을 빌면서, 그 분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규명하고, 무서운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바꿔나가야지요. 같이 힘을 내서 말이에요!

 

작성자글. 변미양/지체장애인. 재일교포 남편과 일본 오사카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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