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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산문부 대상 수상작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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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 벽시계를 보았다. 11시 49분이었다. 위잉! 위잉! 휴대전화가 날벌레처럼 떨었다. 나는 인터넷 창을 재빨리 닫은 다음,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서류뭉치를 한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후우, 후우 심호흡했다.
“상디! 전화 왔어. 올 게 왔다구!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모니터 속에서 노랑머리의 사내가 담배를 꼬나문 채 나를 응시했다. 그가 내뿜은 연기로 ‘오피스2010’이 뿌옇게 보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의 사내는 정장을 걸치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방만해 보였다. 나는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주인공들 중 이 사내, ‘상디’를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설 속의 식재료를 찾아 망망대해를 누비는 괴짜 요리사 겸 해적이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위잉! 위잉!
‘김수현님으로부터 도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지도를 펼쳐보는 여행자의 심정으로 나는 휴대전화 액정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내가 수현 씨를 처음 본 건 어제 여기, 사무실에서였다. 그때 수현 씨는 사장 앞에서 면접을 보고 있었다. 점심으로 느끼한 설렁탕을 먹고 하릴없이 산책한 후 사무실로 들어서던 나는 발걸음을 멈춘 채 한참 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수현 씨는 색이 바랜 청바지 밑으로 검은색 플랫 슈즈를 신고 있었다. 양 발끝이 안쪽을 향해 살짝 꺾여 있었다. 산 지 얼마 안 됐는지 검정 에나멜에서 반짝반짝 윤이 났다.
“출퇴근은 문제없겠죠?”
사장이 검은색 넥타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적응하면… 문제없게 하겠습니다.”
수학 문제를 푸는 표정으로 수현 씨가 말했다. 나는 갈증이 났다.
“안마는 잘하나요?”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흘깃 쳐다보며 사장이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현 씨가 숙였던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렇군요. 그만 합시다. 면접은 끝났습니다.”
사장이 도장을 찍듯 손바닥으로 근로계약서를 탁 쳤다.
“서로 윈윈합시다. 계약하죠.”
재킷의 금색 단추를 채우며 사장이 말했다.
“그러면 저는 정규직으로 일하나요? 아니면…”
“첫 술에 배부를 수야 없죠. 요즘 같은 때에는 더.”
사장이 고삐를 낚아채듯 하며 말했다. 소파에서 일어난 사장을 향해 수현 씨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나저나 장애인 복지카드 가지고 있죠? 그거 복사 좀 해야 되는데.”
“아, 네… 그런데…”
사장이 복지카드를 받아들었다.
“형식적인 건 패스하고, 계약서에 지장 한 번만 찍으면 됩니다. 인주는 여기.”
사장이 계약서와 인주를 탁자 위에 소리 나게 올려놓았다. 언제 봐도 족발을 연상시키는 손이었다.
수현 씨가 탁자 쪽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흰 블라우스에 어울리는 하얀 손이었다. 피처럼 붉은 인주를 머금은 손가락이 하얀 종이 위에 내려앉았다.
붐비는 식당에서 홀로 허연 설렁탕을 퍼 먹는 나를 봤었다. 가을의 복판을, 울긋불긋 흐드러진 길을 휘적휘적 걷는 나를 봤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도 미워 눈을 감아야 했던 때가 있었다. 까닭 모르게 그때 본 내 표정이 머릿속에서 너무도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궁금한 게 많을 겁니다.”
사장이 사무실 구석에 있는 복사기를 작동시키며 말했다.
“이민호 대리!”
갑작스레 이름이 불린 나는 어, 어, 네? 하고 얼빠진 대답을 흘렸다.
“이 대리가 수현 씨를 잘 좀 도와주라구. 할 수 있겠나?”
복사기에서 용지를 빼며 사장이 말했다.
“또 답답하게 군다. 두 사람, 나이도 엇비슷하고, 괜찮을성싶은데 말이야.”
사장이 언제나처럼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인상을 찌푸린 채 사장실로 향했다. 나는 이 모든 걸 기척으로 느꼈다.
“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내가 말했다. 모래를 삼킨 것도 아닌데 목이 깔깔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듯 낯설었다. 나는 기시감 속에서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웬일인지 미열이 느껴졌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날은 모든 것이 생경했다. 매일 보던 10월의 가을하늘도, 매일 피부에 와 닿던 하얀 햇살도, 매일 마시던 모카라떼도, 매일 얼굴을 맞대던 모니터 속 상디도, 또… 또… 난생 처음 접하는 여성 시각장애인을 돕겠다고 선뜻 나선 나 자신까지도.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게 다가온 하루였다.
시곗바늘이 11시 50분을 가리켰다.
‘김수현님으로부터 도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나는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 있었고, 몇 명만이 책상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몇 분 앞으로 다가온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게 뻔했다. 나는 아, 아, 하고 목을 가다듬은 후 ‘수락’ 버튼을 터치했다. 천 피스 퍼즐의 첫 번째 조각을 찾기 위해 손을 뻗었던 그 어느 날 밤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네, 수현 씨!”
“여보세요?”
“네, 저 이민호예요.”
몇 쌍의 눈이 나를 보았다. 얼음을 가져다 댄 듯 한기가 엄습했다. 새삼스레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아서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회사 건물 앞인데요… 출입문을 못 찾겠어요.”
수현 씨의 목소리 너머로 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버스 엔진 소리 등이 뒤섞여 들렸다. 소리로만 이루어진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이며 도대체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봤다. 그리고 그 세계의 시민인 수현 씨를 그려보았다.
“거기 많이 복잡한데… 금방 나갈게요.”
첫 번째 조각을 퍼즐대에 끼워 넣을 때의 각오로 내가 말했다.
“어제 부탁드렸는데…”
비로소 어제 수현 씨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자네는 왜 항상 뒷북질이지? 악취미로군.” 나를 향한 사장의 레퍼토리가 귀를 때리는 듯했다.
어제, 면접이 끝난 후 수현 씨는 내게 앱 하나를 소개했다. ‘엔젤아이즈’라는 이름의 앱이었다.
이 앱을 사용해서 시각장애인이 도우미에게 전화를 걸면, 도우미는 스마트폰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원거리에서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 줄 수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은 그의 가족이나 지인, 혹은 이 앱을 설치한 익명의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저한테만 도움을 주실지, 다른 시각장애인에게도 도움을 주실지 선택하실 수 있어요.”, 스마트폰에 앱 을 설치하고 있는 내게 수현 씨가 말했다. 한 걸음 다가섰을 뿐인데, 이름 모를 꽃향이 확 풍겼다.
수현 씨를 돕기 위한 이런저런 방법들을 얘기하던 내게 수현 씨는 “아니요. 그렇게까진 안 하셔도 되요. 도움이 필요할 때 제가 앱으로 연락드릴게요. 그 편이 편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스 모카라떼 속의 얼음을 으그적 씹으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행히 열이 좀 식는 듯했다.
11시 51분이었다. 테이크아웃해온 지 세 시간된 모카라떼를 한 모금했다. 맛이 밍밍했다. 얼음은 다 녹아 버린 지 오래였다. 빨대를 얼음인 양 씹어 봤지만 여전히 몸은 더웠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휴대전화 액정에 떠 있는 ‘영상 보기’를 눌렀다. 그러자 수현 씨의 휴대전화 카메라에 잡힌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송돼 왔다.
“수현 씨, 아홉 시 방향으로 대여섯 걸음 가면 회전문이 나와요. 그 문을 통과하면 회사 로비에요.”
나는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조금 크게 냈다. 안 그래도 이쪽을 흘깃대던 곽 부장이 의자를 아주 돌려 내 쪽을 보며 앉았다. 공 과장과 미스 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표정에 신경 쓰며 허리를 곧게 폈다. 절전 모드로 바뀐 모니터에 내 모습이 비쳤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씨익 미소 지었다.
액정 속에서 사물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어쩐지 물 속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망경에 눈을 댄 채 수조 안을 관찰하던 까까머리 시절, 고등학교 수업 시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만요. 한 걸음 앞에 회전문이 있어요. 오른쪽으로 돌고 있네요. ‘셋’을 세면 걸음을 떼세요.”
육중한 회전문이 수현 씨의 발끝 어림에서 돌고 있었다. 나는 타이밍을 재다 하나, 둘, 셋을 외쳤다.
“잘 했어요. 이제 로비에요. 우리 회사에 들어 온 걸 환영해요!”
긴장이 풀렸는지 수현 씨가 이마를 훔쳤다.
“우리 회사? 대체 언제부터? 별일이군.”
곽 부장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쉰이 넘어서까지 거머리처럼 회사에 붙어 있는 중늙은이였다. 구깃구깃한 와이셔츠를 입은 걸로 봐서 어제도 밤새 퇴근하지 않았던가 보았다. 가정과 가족을 내팽개친 워크홀릭다운 추레한 몰골이었다.
“어머! 듣겠어요, 부장님. 또 왜 그러세요.”
공 과장이 뒤를 따라 가며 말리는 척했다. 직장 일에 더해 열 살짜리 딸아이까지 돌봐야 하는 이른바 직장맘이었다. 바꿔 말하면 회사와 가정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살아가는,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아줌마였다.
“들으라지, 뭐. 내가 틀린 말해? 밥도 우리랑은 먹기 싫어서 만날…”
유리창에 먼지가 짙게 눌어붙은 탓에 창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뚫어져라 사무실 밖을 쳐다보았다. 스모그가 잔뜩 낀 서울 하늘이 특별히 보고 싶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오늘은 두 분이서 드세요. 저 생각 없어요.”
미스 오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모니터 앞에 샌드위치와 주스가 놓여 있었다.
“젊은 것들이 아주!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많이 변했어.”
나는 결코 돌아갈 것 같지 않은 쳇바퀴 앞에 선 햄스터를, 육중한 회전문 앞에 선 수현 씨를, 단두대 앞에 선 해적 상디를, 또 나를… 생각했다. 이럴 바에야 마중 나갈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고집을 부려서 사람을 욕 먹인담, 하는 원망도 들었다.
곽 부장과 공 과장이 나간 사무실에는 미스 오와 나뿐이었다. 미스 오는 또 뮤지컬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거나 값비싼 공연 티켓을 예매 중일 것이었다. 미스 오는 2년짜리 계약직이었는데, 그런 처지에 걸맞지 않은 몹쓸 취미를 가진 여자였다.
회전문을 통과한 수현 씨가 한 시 방향으로 약 스무 걸음쯤 걸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점심시간인 관계로 엘리베이터는 초만원이었다. 그래서 서너 번쯤 엘리베이터를 그대로 보내야 했다. 시각장애인용 케인을 들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모른 척하기 일쑤였다. 수현씨가 마침내 그의 자리, 직원용 휴게실에 도착했을 때 나도 수현 씨도 모두 지쳐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정말 고마워요, 대리님! 언제 커피 한 잔 같이 해요.”
“에이! 뭘요…” 라고 대답하며 나는 ‘정말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나?’ 생각했다. 미열이긴 해도 어제부터 오른 열이 계속 식지 않았다.
어느새 12시 23분이었다. 수현 씨의 근무 시간은 12시 30분부터 16시 30분까지니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아니었다. 굳이 점심을 챙겨 먹을 생각은 없었다. 1층 카페에 들러 커피라도 사서 휴게실에 한번 가 볼 요량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미스 오마저 어디론가 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모처럼 주위를 돌아 보며 천천히 걸었다.
“부장님, 역시 이런 날씨엔 불고기 뚝배기가 제격이죠? 과장님, 뭐니 뭐니 해도 달콤한 크림은 커피의 꽃이에요, 그쵸? 미스 오, 길 건너에 있는 파리바게트에서 할인행사하던데 가봤어?”
오늘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쓴 약을 삼킨 듯 입이 썼다.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불현듯 나는 새로 산 만 피스짜리 퍼즐을 맞춰보고 싶었다. 방 한쪽에 가지런하게 서 있는 피규어들을 쓰다듬고 싶었다.
한편, 그 후 나는 수현 씨를 엔젤아이즈로 두 번 더 도왔다. 통화한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10분이 있어 오후 시간이 덜 죽을 맛이었다.
곽 부장이 야근모드로 들어가든 말든, 공 과장이 딸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전전긍긍하든 말든, 미스 오와 나는 여섯 시 정각에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는 등 뒤에 와 닿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 것쯤은 가볍게 무시할 내공이 단전에 쌓인 지 오래였다.
복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사람들을 비집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떠밀리듯 1층 로비로 나왔다. 로비를 따라 걸었다. 회전문을 통과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 수현 씨가 어렵게 또 지리하게 더듬어 간 길이었다. 내가 데려다 준다니깐… 바보같이… 거듭 생각해봐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한숨 쉬며 올려다 본 가을 하늘은 해적선을 가득 채운 루비처럼 푸르렀고 아침 햇살 속에서 날갯짓하는 갈매기처럼 반짝였다. 어느새 미스 오는
저 멀리로 걸어가고 있었다.(3월호에 계속)

글을 쓴 제삼열 씨는 시각장애인이다.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가작(2010),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금상(2011), 고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문학제 최우수상(2012),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산문부 대상(2016) 등을 수상했다.

작성자글. 제삼열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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