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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학회]신장장애, 질환인가? 장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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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범주 밖 신장장애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신장장애를 비롯한 대부분의 내부 장애가 장애의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나라 법정 장애인의 범위는 장애인복지법에 의거해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의 5가지 장애의 종류로 한정돼 있었으며, 1999년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2000년부터 장애의 범위가 내부 장애와 발달장애로 확대되게 됐다. 법정장애로 인정받아야만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신장장애인을 비롯한 많은 내부장애인들은 그동안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전혀 제공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많은 내부 장애인들은 과중한 의료비 부담과 취업의 곤란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해왔고, 또한 사회적 편견에 의해 그 고통이 더욱 가중돼 왔다.

신장장애인들의 장애경험은 외관상 드러나는 장애인의 경험과는 큰 차이가 있으며, 외부적으로 장애를 식별할 수 있는 이들의 경험과는 달리 장애 관련 연구 분야에서도 역시 주요한 영역으로 주목받지 못했음이 사실이다. 신장장애인들은 주로 만성신부전 혹은 혈액투석환자로 분류되고 있으며, 실제로 만성질환을 경험하며 삶을 살아야 한다. 만성신부전은 완전히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계속 조절해 나가야 하는 어려운 적응과정이 요구되며(신미자, 1996), 질환을 얻은 이후는 그 이전의 일상과 크게 달라져 대부분의 경우 삶의 질이 낮아져서 심한 절망감을 경험하게 된다(김효빈, 2002).

이에 따른 신체적・사회적・심리적 문제들은 장기혈액투석 환자들의 효율적인 치료와 적응, 그리고 사회로의 성공적인 복귀를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강성례・이병숙, 2001).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만성신부전 환자에 관한 연구는 1980년대 정도부터 시도됐으며,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내・외과 전문 연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연구가 이들의 스트레스 요인과 대처, 사회적 지지, 삶의 질, 우울, 자아존중감, 자가 간호이행과 교육 등에 관한 양적 연구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외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따라서 사실상 신장장애인에 대한 연구는 국내와 국외 모두 의료적 치료나 간호 등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에 집중돼 있었다. 만성기능장애에 대한 치료법, 질병에 대한 적응방법 등이 대부분을 차지했고,그나마 간호학의 영역에서 이들의 치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돌봄의 문제를 주목하면서 ‘신부전질환이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혹은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삶의 질은 어떠한가?’ 등 삶의 체험에 관한 주제들이 연구되기 시작해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당사자 및 가족의 체험을 듣고 간호학적 시사점을 찾는 질적 연구가 소수 수행되기 시작했다.

 

4개 영역으로 분석된 생애경험

저자가 최근 수행한 신장장애인 관련 연구 역시 신장질환을 가진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장애를 경험하는지에 대한 질적 연구이다. 연구의 내용을 살펴보면 신장장애인들의 삶의 경험을 상세히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수행된 본 연구의 내용을 이해하자면, 연구 참여자들의 생애경험은 신장장애를 얻게 된 경위, 투석과정, 삶의 과정에서 깨닫게 된 가족과 직장의 의미, 질환 이후의 삶, 4개 영역으로 분석됐다.

 

신장장애를 얻게 된 경위

신장장애를 얻게 된 경위에서는 신장장애를 얻게 된 이유를 분석했다, 신장장애인들의 질환을 얻게 되는 경위는 장애경험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중도장애인들의 장애를 얻게 되는 과정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질병을 얻으면서 시작되는 생애경험을 통해 이들이 개인적·사회적으로 장애를 경험하게 되는 맥락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 때문이다. 즉, 장애를 경험하는 과정은 장애가 단순한 건강의 문제가 아닌 여러 다양한 사회적·환경적 요인이 개인의 몸 안에서 질병의 형태로 드러나게 됨을 보여주는 중요한 메커니즘이기 때문에(Wendell, 1996),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환경적 요인이 개인적 맥락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바로 생애경험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에(Thomas, 2007) 장애연구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본 절에서는 참여자들이 질환을 얻게 된 경위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과 생각을 분석해 참여자들이 질환을 얻은 시기에는 전문가들조차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질환의 특성 등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무리한 노동과 가난으로 인한 지병 등으로 질환을 얻게 됐음을 알 수 있었다.

 

투석과정

투석과정에서는,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신장질환으로 인한 투석이 시작된 이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거나 그것이 변질돼, 참여자들은 마치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옮겨간 사람처럼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함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Murphy(1987)는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는 만성질환자들을 “아픈 것도 아니고 건강한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사회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묘사했다. Murphy가 묘사한 것처럼, 연구 참여자들은 마치 두 세계의 문턱에서 질환이 주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박탈과, 차별, 그리고 소외라는 맥락에서 강도 높게 경험한다. Abberley(1987)는 이러한 경험을 ‘손상의 구조화’라고 설명했다. 즉, 물질적 요소와 심리적 요소는 사회적 맥락에서 작동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가 여러 사회적 의미를 가졌을 때 비로소 손상은 그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연구 참여자들의 경험과 이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은 질환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험돼 부정적인 의미로 형상화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의 과정에서 깨닫게 된 가족과 직장의 의미

삶의 과정에서 깨닫게 된 가족과 직장의 의미에서는, 가족이 어떻게 질환이라는 생애사건으로 인해 와해되는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가족과의 삶,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자리, 그것들 속에서 만들어진 인연과 관계는 혼자서 견뎌야 하는 삶에서 하나씩 없어져 갔다. 신장질환을 얻게 된 이후 어려운 삶과의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감과 지지, 그리고 지원은 찾기 어려웠다. 연구 참여자들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가치들 즉, 가장 중요한 지지집단인 가족과 사회생활의 중심에 있는 직장, 그리고 동료를 모두 잃어버린 것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라고 한다. 결국자신의 이름과도 같았던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과 삶의 주요 기반이 사라져버리는 과정을 분석했다.

 

질환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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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 이후의 삶에서는, 질환이 반드시 삶의 가치 상실로 이어지는 것만이 아니며, 예상하지 못한 불행한 생애사건을 맞닥뜨린다 해도 현명하게 견뎌 내온 사례들을 분석한 부분이다. 참여자들은 가족이 붕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 사회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과정은 질환으로 인한 자신의 무기력(powerless)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고(정덕진, 2004), 자기 내부의 힘을 찾아 자신의 삶을 더욱 나은 것으로 개발하는 임파워먼트의 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Brown(1995)이 강조했듯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상실한 권리를 되찾고 자원을 활용해 개인적 발전과 심리적 강인함을 키우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경험 공유를 통해 우울을 극복하고, 동료들의 이해와 지지를 바탕으로 삶의 새로운 의미를 구축하며, 그들의 공동체에서의 이상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사회적 맥락에서 재구성되는 장애 이들의 생애 경험을 아우를 수 있는 스토리의 결말은, 얼마나 고통스럽든 간에 참여자들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생애 한 가운데의 어느 날 신장질환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망망대해를 떠나야만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됐다. 혼자서 배를 타고 간 바다는 거센 풍랑의 연속이었으나, 지금도 어딘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꿋꿋이 바다 위에서 견디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스토리를 관통하는 본질은,

이들의 장애가 분명 질환이라는 의료적 조건에서 시작했으나, 그 경험은 대부분은 사회적 맥락에서 그 의미를 부여받고 구성하는 동시에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가족관계, 직장생활, 동료 등 사회관계의 경험들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생애경험을 통한 질적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질환은 개인적 맥락에서 드러나는 현상이지만 이는 사회적·환경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연구 참여자들의 경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질병은 가난과 정보 및 대처방법의 부재, 낮은 사회적 인식 등의 결과로 비롯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Taylor(2003)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주장해왔듯이, 병원균, 유전자, 외상 등 질병은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명확히 드러나며, 이의 본질은 물질적・비물질적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내부장애인의 경험을 통해 분명히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연구 참여자들의 경험은 장애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 즉, 질환이 장애로써 경험되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들의 경험은 손상이라는 단순한 의료적 측면보다 가족 관계 및 동료 관계, 실업과 빈곤의 문제, 그리고 사회적 편견과 배제라는 지극히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뤄지며, 동시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가족 및 동료들과의 새로운 관계구축과 의미지우기 등 대부분 사회적 맥락에서 이뤄진다.

이는 장애를 설명하는 사회적 모델의 중심적인 논의를 신체장애뿐 아니라 내부장애인의 경험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임을 시사한다. 즉, 연구의 결과는 대다수의 사회모델 주창자들이 주장하듯이 장애의 많은 문제들은 의지와 방법만 개발한다면 사회적으로 해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신장질환 경험자들의 어려움은 단순한 건강문제만으로 환원하기 어렵다. 이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역시 의료적 지원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현재의 지원방법에 많은 수정이 가해질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신장장애인의 가족들 역시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데, 특히 이들 가족의 와해를 초래하는 원인들을 없앨 수 있도록 실질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가족구성원들의 신장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배우자 및 자녀들 간의 유대 등을 위한 동료상담 및 가족상담 등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이행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직은 신장장애인들의 가족 프로그램은 거의 시도된 적이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경험과 장애인 당사자들과의 실질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신장장애인당사자 협회나 관련 기관 등에서 관련 프로그램을 우선 시작해보는 것도 좋은 시도일 수 있을 것이다

 

본 글은 저자의 ‘신장장애인의 질환 이후 생애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2015)를 수정·발췌한 것임.

 

작성자글. 강민희/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교수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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