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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의 렌즈에 비춰진 모습들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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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입시, 장애학생 우대정책은

며칠 전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의 또래 아줌마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어요. 이른바 한류(한국 드라마나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계기로 몇 년 전부터 친하게 됐는데 마침 저를 제외한 네 명은 이번에 자녀들이 대학교 입학을 앞둔 수험생 부모였어요. 한국은 입시도 다 끝나고 이제 곧 새학기 입학을 맞이하게 되지만 일본은 1월 중순에 전국적인 대학입시가 실시되고, 그 후 2월에 수험생이 지망하는 각 학교별 입학시험이 실시(복수지원이 가능)돼 이 무렵 그 결과가 발표됩니다. 지금은 추천 등 아주 다양한 입학제도가 있지만 진학에 최종적인 결정은 3월 중순이 돼야 확정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신학기는 4월 초에 시작되고, 저도 작년 4월 2일 큰아이의 대학교 입학식에 다녀왔답니다. 한국하고 일본, 여러 가지 제도가 비슷하다고 하지만 이렇듯 약간씩 다른 점도 있죠.

당일, 네 명 중 세 명의 자녀는 어느 정도 지망했던 대학의 합격통지를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어요. 하지만 한 명은 기대보다 시험성적이 좋지 않아 지원한 학교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고, 마지막 후기 선발 대학교를 찾아 마지막까지 시험을 치르게 됐다는 거예요. 본인의 원하는 대학 진학을 위해 어쩌면 재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아주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합격한 엄마들이 안도하는 표현을 애써 절제하며 그 엄마를 위해서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 이야기한 엄마들의 수고는 치열한 입시경쟁의 한국의 사정과 그리 다르지는 않지만 사실 장애가 없는 자녀의 일반적인 대학입학을 치르는 거니까, 장애를 가진 자녀의 가정에서 고민하는 대학입시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요.

일본에서는 장애아에 대한 교육보장이라는 문제가 60년대부터 과제가 돼 왔고, 오사카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지원학교와 일반 공립학교에서의 분리교육에 대한 문제가 많이 지적되면서 지금은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에 진학하는 기회도 열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장애의 정도와 지역의 학교에서의 수용 자세가 천차만별인 것은 사실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지체장애인의 경우 일반학교에서의 학습은 꽤 일반적이 됐고, 중복장애와 지적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의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의 효과적인 학습지도와 기능재활을 위해 지원학교를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요. 그런 가운데 대학입시에 있어서는 장애인에 대한 특별선발 인원을 설정하는 것은 현재까지 없다고 해요. 입시를 위한 시간 연장이나 별도의 장소에서 치르게 하는 조치는 실시되지만 장애인을 위한 우선취학은 없다고 하네요. 사회로 나가는 대학이라는 문을 통과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특권이고, 우대되는 조건이라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대학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대학이라는 잣대만으로 세상을 보게 만드는 교육과 사회가 투영하는 세상의 모습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은 저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다운 끈’ 사토 후유코 사진전을 보고

그런 중에 제가 인상적으로 느꼈던 사진전이 있었기에 몇 줄 소개할게요. 오사카의 미노시에 설치된 교류센터의 작은 카페에서 열린 사진전입니다.

오늘은 [‘정다운 끈’ 사토 후유코 사진전]을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사진전은 저의 작은 실타래 같은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기획을 생각할 무렵 제 생각에 공감해 주실지, 정말 실현될 수 있을지 아주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께 반년 동안 제가 보고 들어온 세상을 사진을 통해서 보여드릴 수 있게 돼 정말 기쁩니다. 마지막까지 천천히 봐 주세요.

카페 입구에 전시된 작가의 인사말입니다. 30여 장의 인물사진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 사진전을 주최한 작가는 17살,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군요. 그리고 그 사진에 소개된 사람들은 한부모 가정의 엄마, 외국인 노동자, LGBT, 한센병 경험자, 장애인 등 이른바 사회의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사진에 제목을 붙이고 있었어요. 제 가슴에 와 닿았던 건 17세 어린 여학생이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물음이었어요. 그녀의 말인즉 왜 세상에서는 누군가를 소개할 때 재일동포 ㅇㅇ씨, 시각장애인 ㅇㅇ씨, 지적장애인 ㅇㅇ씨, 동성애자 ㅇㅇ씨라고 이름을 붙이는지 위화감을 느꼈대요. 사회적으로 평가되는 속성이 아니라 그 사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성을 가지고 그 사람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눈에 보이는 선입견이 아닌 그 사람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끼면서 세상과 이어지는 정다운 끈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사진 속에서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ㅇㅇ씨” “요리를 좋아하는 ㅇㅇ씨”하고 이름을 붙였고, 사진에 소개된 분은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나”라는 제목이었어요. 아직 어리고, 미숙하고, 미흡한 점이 많이 있겠지만 그것이야 말로 앞으로 펼쳐나갈 꿈의 크기가 아니겠어요. 전시회를 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준 엄마와 가족, 그런 자리를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는 미노시 교류센터라는 터, 많은 분들의 작은 수고 덕분에 17살의 렌즈에 비춰진 얼굴들의 환하고 당당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시회였어요.

답이 뭔지 찾아 헤매는 세상은 오리무중이라지만 젊고 어린 그 눈빛이 찾아보려 하는 다양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쑥쑥 커가기를 바랍니다

 

 

작성자글. 변미양/지체장애인. 일본 오사카에 거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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