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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자기 부정은 영혼을 잠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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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부끄러운 기억 한토막이 있습니다. 부엌에 있는 각설탕 두 개를 누가 먹었냐는 어머니 말씀에, ‘저는 안 먹었어요’ 라고 즉각 답을 했지요. ‘그럼 쥐가 먹었나’ 하시며 찬장 안을 비춰 보시던 어머니 얼굴에 옅은 미소가 있었습니다. 사실 각설탕은 제가 먹은 것이고, 그 사실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이지요. 그렇게 인간의 거짓말이 시작됩니다. 어떤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마음속 긴장감은 더해지고, 인간은 즉각 사실을 뱉어버리지요.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부정’이라는 방어기제로 설명합니다. 반복되는 자기 부정은 또 다른 사실의 왜곡을 낳고, 결국에는 자신의 영혼마저 부정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우리는 뉴스를 통해 자기 부정을 일삼는 정치인, 공무원, 교수들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6, 영국)는 참혹한 역사적 사실 앞에서 자기 부정에 의해 작동되는 인간의 거짓심리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영국인 사이비 사학자 데이빗 어빙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입니다. 그는 ‘히틀러의 전쟁’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직접 지시한 적이 없으며, 홀로코스트는 막대한 보상금을 노린 유대인 생존자들이 지어낸 망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에 맞서는 에모리 대학의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데이빗 어빙이 히틀러 광신도이며 역사 날조자라고 묘사했습니다. 영화는 어빙이 립스타트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시작됩니다. 문제는 법정이 미국이 아닌 영국이라는 것인데, 영국 법정은 고소를 당한 피고인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입장에 놓인 립스타트 교수는 자신의 감정논리로서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이야기 하지만, 이는 역사적 문제일 뿐 법정의 증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스스로 유대인이며,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책을 쓴 립브타트 교수에게 법정에서 참관만 해야 한다는 것과 생존자들을 법정에 절대로 세울 수 없다는 영국 변호사들의 전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심지어 영국의 유대인 사회는 법리 싸움을 하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라는 주문까지 합니다. 영화는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사실에 기대지 않고, 어빙교수가 왜 자기 모순에 빠졌는가를 입증해가는 법정 상황에 집중합니다. 바로 이 대목이 기존의 홀로코스트 영화와 대별되는 관점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실과는 달리, 히틀러는 철저하게 홀로코스트의 기록을 없애고 물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독일 문서에 ‘학살’이라는 용어는 ‘최종 해결책’이라는 표현으로 남겼고, ‘강제 이송’ 이 아니라 ‘이동’으로, ‘가스실 살해’는 ‘특별처리’ 등의 용어로 위장했습니다. 이런 대목은 마치 5.18민주화항쟁에 대한 발포명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추악한 전두환 일당의 거짓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점차 시간이 가면서 립스타트 교수는 자신의 감정논리만으로 법정 싸움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홀로코스트를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 문제로 보던 자신의 시각을 인간의 역사적 문제로 확대해나갑니다. 안개에 둘러싸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회색빛 아침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가를 일깨웁니다.

데이빗 어빙과 독일의 신나치주의자들의 홀로코스트 부정은 결국 자기 부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많았지만,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모른척하며, 자신들의 무지를 방어했지요. 자신들은 결코 공범자가 아니라는 부정을 통해 그들은 생존해나갔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무리를 혐오의 수단으로 복종하게 하고, 서로 싸우게 합니다.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독일 나치에 의한 전쟁범죄만이 아닌 인류가 인류에게 가한 씻을 수 없는 혐오범죄라는 오명으로 남을 것입니다. 2005년에 베를린 브란덴브루크 문 근처에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자그마치 60년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여전히 홀로코스트는 진행형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느낍니다.

8주 동안 진행된 영화 속 재판을 보면서 지난 3월의 대통령 탄핵재판 과정이 떠올랐습니다. 피고인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정미 재판관의 판결이 생중계됐을 때의 감정은, 아마도 이 영화 속 립스타트 교수가 낯선 영국법정의 무뚝뚝한 재판관의 ‘어빙의 역사날조를 인정한다. 피고 립스타트의 승리를 선언한다’라는 판결을 들었을 때의 감정과 같은 결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부정으로 일관하는 ‘피고인 박근혜’를 보면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외면하는 그의 얼굴을 봅니다. 인간은 부정의 감정을 스스로 수용하면서 진화합니다. 진정한 자기실현은 자신의 맨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원합니다.

작성자글. 이영문/아주대학교 인문대학 특임교수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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