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의 연작소설] 완전한 반<7> 사랑 > 문화


[방귀희의 연작소설] 완전한 반<7> 사랑

본문

  소희는 서둘러 퇴근 준비를 했다. 원아들이 없는 유치원은 온통 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할 일도 없이 오전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이 늘 마음에 부담을 주는 토요일이다.  약속이 없어 집으로 그냥 들어가는 날은 토요일 근무가 더 야속했다. 그냥 쉬라고 하면 이불 속에서 단잠을 잘 수 있을 덴데. 아이들도 없는 원을 지키기 위해 출근을 하는 일이 약이 올랐다.
  그래서 소희는 토요일 출근은 언제나 엉터리이다. 세수나 겨우 하고 옷도 집에서 입던 것을 그대로 입고 나가는 때가 많았다. 그런 차림이라 전화로 갑자기 생기는 약속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곤 했다.
  "나 오늘 엉망이야. 머리에서는 냄새가 풀풀 나고 옷도 땟구정물이 줄줄 흘러. 그렇게 갑자기 나오라고 하면 어떡하니 ? 어제 좀 전화 줘도 좋잖아. 너네들 그렇게 예의가 없니. 뭐? 전화를 했는데 잔다고 하더라구. 입 뒀다 뭐하니, 깨우라고 하지.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 깨워주지 왜 안 깨우니. 시끄러. 이런 몰골로는 도저히 못나가."
  이런 일이 한번 두 번 이어지자 친구들의 그런 소나기 약속도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었다. 친구들을 못 만난 지 왜 오래되었다. 소희는 오직 집과 원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22살의 차녀답지 않게 소희는 겉늙어가고 있었다.
  그런 무력감 속에서 소희는 생전 해보지도 않던 짓을 하게 되었다. 바로 펜팔이다. 펜팔을 자기가 하게 될 줄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날은 정말 이상했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토요일 오후였는데 원에서 퇴근을 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침에 엄마가 분명히 결혼식이 있다고 말은 했지만 그 말을 깜빡 잊고 엄마와 목욕이라도 가야지 하고 들어왔는데 너무 허전했다.

  소희는 낮잠 자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유치원에 들어간 후 소희는 잠이 많아졌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입씨름을 하고 나면 힘이 들었다. 피곤을 푸는 방법이 잠이었다.
  소희는 낮잠을 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와서 누운 것이 아니고 할 일이 없어 청한 잠이어서 그런지 잠이 왔으면 할수록 잠이 달아났다.
  할 수 없이 소희는 낮잠 자는 일을 포기했다. 오래간만에 음악에 푹 젖고 싶어 전축으로 음악을 듣기로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자기에게 신청하여 자기가 틀어주는 형태로 음악 감상이 진행되었다.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났다. 소희는 졸업한지 이제 겨우 1년 밖에 안 되었는데도 마치 10년 정도는 지난 것처럼 학교 다니던 시절이 옛날 같았다. 갑자기 커피 생각이 났다. 소희는 커피를 한잔 끓여 먹으려고 물을 올려놓았다.
  커피를 타려고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레코드판과 씨름하는 일이 귀찮아졌다. 그래서 라디오를 틀었다, 듣고 싶은 방송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용한 것이 싫어서였다.
  그런데 그때 라디오에서 아주 애절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주었다. 내용은 한 장애인이자신의 외로움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소희는 그 외로움이 자신의 외로움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가슴이 저렸다. 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주소를 받아 적었다.  편지를 써주고 싶은 생각에서였지만 당장 실천하지는 못했다. 거의 한 달이 지났을 때 시집 두 권과 함께 간단한 메모 정도의 편지를 보냈다. 그것도 보내려고 해서 보낸 것이 아니었다. 원에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거뒀는데 모르는 사람을 위해 만 원짜리 지폐를 내며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하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그 장애인이었다. 너무 정신이 없어 자기가 보던 책에 주소를 적어두었기 때문에 주소는 챙기지 않았어도 잘 있었다.
  그래서 소희는 그 외로움을 무엇으로 달래줄 것인가를 잠시 생각하다가 시집을 사게 되었다. 얼핏 글 쓰기가 취미라고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답장이 총알같이 날아왔다. 벌써 받았을까 싶을 만큼 빠른 답장이었다. 그의 답장은 타자 글이라 아주 정갈했다. 자기 글씨가 아님을 사과하며 선물에 대한 감사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져 있었다.
  자기가 한 작은 선행에 너무나 고마워하자 소희는 마치 사기를 친 것 같았다. 그래서 답장을 깼다. 지난번보다는 조금 길었지만 감사를 사양하는 사무적인 글이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을 하게 되었다. 필요하신 책이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펜팔이 시작되었다. 그의 글 솜씨는 아주 훌륭했다. 좋은 글이 주는 감동 때문에 소희는 답장을 거를 수가 없었는데 바로 그것이 오늘의 약속까지 이르게 했다.
  편지를 시작한지 꼭 1년만이었다. 그는 편지에 사랑을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편지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차 있었다. 소희도 그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희도 그를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소희는 아침에 치장을 했다.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여자처럼 정성껏 자기를 치장했다. 원에서도 웬일이냐고 놀라워했다. 소희는 그가 그려 보내준 약도와 전화번호를 들고 그를 찾아 나섰다. 꽃을 살까 하다가 왠지 쑥스러워 시집을 몇 권 샀다. 그리고 과일을 샀다.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아주 빈민가였다. 서울에도 그런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가난한 동네였다.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기 원 아이들하고는 사뭇 달랐다.
  "소희 양인가 보다."
  허름한 옷차림의 아주머니 한 분이 소희에게 아는 척을 했다. 반가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낮설어 소희는 그 반가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족집게라니까. 들어갑시다. 지금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 소희 양과 약속을 하고 나서는 잠을 다 못 자더라고 어제는 몇 년 만에 목욕을 다 시켜줬어. 소희양이 온다고 몸단장을 단단히 했지."
  그녀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는데 그 말들이 소희의 어색함을 더해주었다.

  미로였다. 너무나 꼬불꼬불해서 나을 때 길을 못 찾을 것 같았다. 신종 인신매매 단에 끌려가는 듯한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방문을 여는 순간 그런 의심은 사라졌다.
  그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소희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가 편지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지만 그 설명은 소희로 하여금 그에 대한 연민을 부채질해주었지 실망을 느끼게 하진 않았었다.
  그는 스님처럼 머리를 박박 깎고 있었다. 반갑다고 소희를 향해 씩 웃는데 앞니가 없었다. 소희는 외할아버지께서 틀니를 끼지 않으셨을 때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를 자꾸 깎을 수도 없으려니와 머리가 길면 자주 감겨야 하기 때문에 저렇게 깍은 거라우. 우리 아이는 자꾸 앞으로 넘어져. 그래서 이빨도 저렇게 왕창 나갔지. 그래 요즘은 아주 묶어 놓았어."
  그 말을 듣고 나니까 휠체어 앞이 끝으로 막혀있었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서 손과 발을 자꾸 버둥거렸다.
  "소희양하고 악수를 하고 싶대."
  그의 모친은 통역을 아주 잘 했다. 그제야 소희는 그와 첫 인사를 나누지 않은 사실이 생각났다. 소희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끝에 자기 손끝을 살짝 얹었다. 아주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소희를 조금은 안심시켜 주었다.
  편지로는 그렇게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건만 막상 만나니까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모친이 주스를 들고 들어왔다.
  잔 때문인지 오렌지 주스가 마치 먼지가 끼인 듯이 탁했다. 자꾸 마시라고 해서 한 모금 마시기는 했지만 생목이 올랐다. 도저히 더 이상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의 모친이 목욕을 시켰다고 했지만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하실 방이어서 햇빛 한줄기도 없었다. 캐비닛 장롱은 무슨 색깔인지도 모르게 상처가 많았고 서랍장 위에 이불이 쌓여 있었는데 하얀 이불 청에 때가 꼬질꼬질했다. 그 옆에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저 책상하고 타자기는 복덕방 영감이 주고 간 거야. 처음에 준다고 했을 땐 싫다고 했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아서 말야. 근데 저걸로 시간을 소일하고 있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치는지 몰라. 잰 아무튼 천재야. 글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다 알고. 아주 희한한 아이야."
  그의 모친은 아들 칭찬에 여념이 없었다. 그 책상 위에 자기가 보내준 책들이 가지런히 꽃 혀 있었다. 반가웠다. 유일하게 낯설지 않은 것은 그 책들뿐이었다.
  "처음에 낳았을 때는 얼마나 실했는지 몰라. 아주 잘 생겼었지. 황달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저렇게 됐어."
  그의 모친은 눈 주위를 자꾸 훔쳐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모양이었다.
  "지 아버지만 살아있었어도 사람 만들어 놓았을 텐데. 아유, 다 내 팔자가 사나워서 그렇지."
  그의 모친은 콧물까지 팽 하고 풀어댔다. 그가 드디어 소리를 냈다. 외마디 외침이었는데 그의 모친은 알아듣고 대답을 했다.
  "뭘 그만 해. 소희 양도 다 알아야지."
  아마 그만두라고 한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시라나 뭐라나 하는 것을 쓰고 있는데 걱정이야. 나도 이제 늙어서 일을 더 못해. 부자 동네에 가면 돈을 더 준다고는 하지만 갓난아이 같은 아이를 때어놓고 어떻게 멀리 갈 수가 있어야지."
  남의 집 이불 빨래를 해주기도 하고 부업거리를 갖다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 같았다.
방구석에 큰 고무다라이가 있었는데 그 속에 철사 고리가 잔뜩 쌓여있었다. 그것이 부업거리인 것 같았다.
  "저걸 두고 어떻게 눈을 감을지 모르겠어, 같이 죽어야지 뭐,"
  그가 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그만 할게."
  그의 모친은 그 고무다라이를 들고 나가버렸다.
  소희는 그의 모친이 나가는 것이 싫었다. 다시 말해 그와 둘이 있는 것이 싫었다. 그의 모친이 나가자 그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말을 한마디하려면 목줄기에 핏발이 서고 머리를 이리 저리 흔들고 손과 발도 어지러울 만큼 버둥거렸다. 소희가 알아듣지 못하자 그 중상이 더욱 심해졌다.
  "왜 이렇게 오늘은 말을 못해. 흥분하지 말고 잘 해봐. 나도 못 알아듣겠다."
  그의 모친은 바로 방 밖에서 철사 고리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참견을 하고 있었다. 소희는 차라리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마음 편했다. 알아들었으면 대답을 해야 할 테니 말이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것을 사양하는 일도 진땀을 빼게 했다. 소희는 탈출을 하다시피 그 방을 빠져나왔다.

  "자주 좀 놀러 오래요."
  그의 인사를 그의 모친이 대신해주었다. 소희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란 결심을 했지만 "네"라고 대 답했다.
  그의 모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소희는 뛰기 시작했다. 누가 자기를 잡을 것 같아 있는 힘을 다해 큰길까지 뛰어 왔다. 소희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편지를 시작한 일, 아니 그의 분홍빛 사연에 자기가 동조를 했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하지만 없었던 일로 하면 그만이었다.
  어김없이 그에게서 편지가 날아왔지만 소희는 뜯어보지 않았다. 차마 버리지는 못해 방치해 둔 편지가 열통 가까이 쌓이자 소희를 위협하는 무기가 되었다. 소희는 뜯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이 실망하였죠. 당신의 눈빛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눈빛을 바라보며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내 자신이 더욱 비참해지더군요.
  당신은 천사이기에 이런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당신을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정말 많이 실망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당신의 답장이 이렇게 늦었던 적이 없었어요.
  당신에게서 답장이 안 오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부탁이에요. 나에 대한 실망을 인정하는 글이라도 보내주세요. 당신 신변에 무슨 변화가 있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어머니께 부탁을 드려 전화를 걸어볼까도 했었지만 실수할까 봐 참고 있어요. 제발제발 부탁이에요. 소식 좀 주세요‥‥‥

  ‥‥‥당신의 답장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질 않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편지를 주지 않아도 좋아요. 내 편지를 읽어만 주세요. 내 편지를 당신이 읽지 않고 쓰레기통에 그대로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자신이 없어집니다.

  ‥‥‥오늘은 당신께 이런 감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내 편지를 되돌려 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날 행복하게 합니다.
  만약 당신이 내 편지를 거부해서 그 편지들이 그대로 나한테 되돌아온다면 난 부끄럽고 비참했을 거예요.
  당신은 정 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오늘 갑자기 우울해졌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편지조차 쓸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가버리면 내 편지를 받아줄 사람이 없지 않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나 슬퍼 눈물이 나옵니다‥‥‥

  ‥‥‥난 참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내 편지를 못 받게 된다 해도 난 당신을 생각할 수 있는 한 행복합니다. 만약 당신이 없었더라면 생각할 사람도 없었을 테니까요.  내 삶에 당신은 등불입니다.
  한때는 당신을 소유하는 어처구니없는 꿈도 꾸었지만 이제는 당신을 가슴속에 간직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소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속물근성으로 그를 판단했던 것이 죄스러웠다. 당장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희는 전화는 걸지 못했다.  소희는 사과의 뜻으로 시집을 보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도 그에게 시집을 보내는 일은 멈추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소희는 아주 짧게 답장을 썼다.
  답장이 늦어 미안합니다.
  이것이 전부였다. 실망을 했다는 것은 당치 않다든지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주지 말라든지 하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런 설명이 그와의 관계를 자기가 원치 않는 쪽으로 몰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기를 여자로 생각해주는 것은 닭살 돋는 일이었다.
  그도 그것을 알았든지 소희의 답장에 대한 감사함 정도로 그쳤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하루 생활을 아주 자세히 적어 보냈다. 그 날이 그날일 그였지만 글로 표현이 된 그의 생활은 어느 철학자의 하루 같았다. 그것은 소희에게 그를 아주 가깝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소희는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장애인 소리만 나오면 귀가 쫑긋해졌다. 활동하는 장애인을 보면 부러웠다. 그도 저렇게 사람들 틈에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니 말이라도 할 수 있고 휠체어에 반듯하게 앉아있을 수만 있으면 아니 이빨이라도 그대로 다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정말 장애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장애인스런 장애인이란생각을 했다. 그보다 조금만 상태가 좋았어도 그에게 자기 마음을 허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그런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틀이 멀다하고 날아오던 편지가 일주일이 되도록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궁금해졌다. 무슨 오해가 있었을까 하며 자기의 행적을 더듬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해할 거리가 없었다.
  문득 며칠 전 뉴스에서 봉양하던 아들이 유치장에 갇히는 바람에 장애인 아버지가 굶어죽었다는 보도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잘못되는 바람에 굶고 있을 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스치자 소희는 초조하고 불안했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 그의 집으로 향하였다. 정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었는데 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소희는 주인을 부르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갑작스런 방문에 모자는 너무 놀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소희는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정말 그의 모친은 앓고 있었다. 겨우 밥을 끓여 먹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편지 심부름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희는 그냥 갈 생각이었지만 따끈한 밥이라도 지어주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밥을 짓기 시작했다. 쌀을 있는 대로 긁어 밥을 안치고 시장에 갔다. 고기도 사고 야채도 사고 과일도 샀다. 그리고 쌀도 한말 들여놓았다.  소희는 집에서 일을 안 하기로 유명했다. 시집 어떻게 가려고 그러느냐고 그녀 엄마가 성화를 부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소희는 너무나 정성껏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방안에 있는 사람 귀에는 부엌에서 덜덜거리는 소리가 대단히 크게 들렸다. 그의 모친은 없는 살림 다 부셔놓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했지만 그에겐 그 소리가 너무 큰 행복감을 주었다. 소희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냄새가 큰 즐거움을 주었다.
  드디어 소희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그의 모친은 허발을 해서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밥을 먹는지를 알 수 없어 소희는 안타까움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모친이 야속했다. 어쩜 자기 아들은 먹든 말든 내버려두고 자기 혼자 돼지처럼 먹을 수 있나싶어 얄미웠다.
  "어머니. 인호씨는 어떻게‥‥‥‥"
  "갠 포크 갖다 줘야 돼."
  소희는 얼른 나가서 포크를 가져와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씩 웃었다. 그 웃음이 그의 의사표시의 전부였다. 소희는 포크만 쥐여주면 자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는지 알았는데 그는 헛삽질만 하고 있었다. 그릇 밖으로 음식을 다 떨어뜨리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음식을 씹는 소리도 요란했고 목구멍으로 넘길 때도 꾸르륵 꾸르륵 꺼억 꺼억 정말 난리 법석이었다.

  소희는 그가 그래도 밥은 자유롭게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먹는 자유마저 없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어머니. 인호씨는 고기 못 먹나요?"
  "왜 못 먹어 ? 잘 먹어."
  소희는 밥만 먹고 있는 그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고기를 손으로 잘게 잘게 찢어서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는 밥을 먹을 때보다 더 요란한 소리로 고기를 넘기고 있었다.
  그가 외마디 소리를 했다.
  "소희양도 먹으래."
  그의 모친이 통역을 해주었는데 통역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소희도 배가 고팠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그의 모친이 어찌나 싹싹 긁어먹든지 반찬이 없었다.
  "고마워. 이제는 눈앞이 번하네.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까 더 기운을 못 차렸나 봐."
  그의 모친은 정말 기운이 솟는지 일어나 앉았다.
  "저걸 두고 어떻게 가야하나 싶어 눈앞이 캄캄했어."
  그의 모친은 눈 깊숙이에 있는 눈물까지 쪘어내려는 듯 눈을 후벼팠다. 소희도 정말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가 외마디를 했다. 그만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 외마디에 이어 그는 무슨 말인가를 계속했다.
  "집에서 걱정하시겠대, 너무 늦어서. 여자가 밤길 다니는 것은 위험하니까 더 늦기 전에 어서 가래."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오늘 너무 고맙대. 생각지도 않던 일이라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대."
  그의 마음 씀이 너무 고마웠다. 그는 여느 사람들 못지 않게 사리가 바르고 생각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려고 일어서는데 그의 외마디가 소희를 멈추어 세웠다. 그는 소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희는 그것이 악수를 청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소희는 그에게 다가가 그전과는 달리 그의 손을 깊숙이 잡았다. 그의 손은 무척 부드러웠다. 그와 눈동자가 부딪혔다. 그는 웃지 않았다. 맑은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꼭 다문 입술이 아주 단정해 보였다. 그 얼굴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남성다운 얼굴이었다.
  소희는 그에게 미소를 보냈다.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소희는 그에 대한 부담감을 갖지 않게 되었다. 때때로 그를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를 다시 찾아갈 계획은 없었다. 원에서 돌아오니 그에게서 온 편지가 소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움에 옷도 벗지 않고 편지를 뜯어읽었다.

  ‥‥‥당신의 미소에 나는 눈까지 멀어버렸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씨가 고운 여인입니다. 그런 당신을 알게 된 나는 정말 행운아입니다.
  하느님이 나한테 그 어떤 형벌을 내렸다 해도 당신을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충분히 보상받았습니다.
  더군다나 당신의 나에 대한 실망감이 조금은 엷어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런 느낌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욕심을 내게 될 것 같아서 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를 찾아오진 마십시오.
  이성이 무너진 내 모습을 당신에게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날 당신의 손을 잡으며 난 당신께 수없이 사랑을 고백했고 이어서 안녕 이라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께 편지를 보내지 않겠습니다. 당신께 편지를 쓰는 일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멈추지 않겠지만 당신께 편지를 보내는 일은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당신의 행복을 죽는 날까지 빌겠습니다‥‥‥

  소희는 던졌던 가방을 다시 어깨에 둘러맸다.
  "얘 어디 가니?"
  그녀의 엄마가 날카롭게 물었지만 소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는 혼자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동안 못한 일을 하기 위해 그의 모친은 늦도록 일터에서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몹시 놀라는 기색이었지 만 침착했다. 안정을 잃은 것은 오히려 소희였다. 소희는 그에게 분명히 할 말이 있어서 왔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소희는 천천히 다가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그를 응시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너무나 뜨거워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듯했다.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희의 눈에는 이제 그의 장애가보이지 않았다. 그저 남자였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남자였다. 그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소희도 천천히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대로 다가갔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다.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세상에 사람일이란 알 수가 없어요. 그 애한테 그렇게 예쁜 색시가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요. 유치원 선생이었대요. 얼굴은 또 얼마나 예쁜지 아세요?"
  "집안도 아주 좋대요. 아버지가 교감선생님이래요. 아무튼 땡잡았다니까."
  "그래두 여자 꼬시는 재주는 있었나봐요. 여자가 아주 사죽을 못 쓴대요."
  "그거 봐. 세상에, 재주 하나씩 들은 다 있다니까."
  "아유 얼마나 살겠어요. 괜히 우쭐해서 그러는 거지. 철이 없어서 불쌍한 마음에 저러고 사는 거지 서방 맛을 알면 살겠어요? 아 그러구 여자 집안에서 알면 가만히 있겠냐구요. 집에는 머리 깎고 중 되겠다고 하고 나왔다던데. 알아봐요. 당장 머리채 잡아끌고 갈 텐데 안 그래요?"
  주위에서는 이렇게 걱정이 많았지만 당사자들은 전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단칸방이라 밤에는 곤란하므로 그의 모친이 일을 하러 나간 낮에 그들은 사랑을 나누는 일을 했다. 그는 그녀에게 그녀를 닮은 예쁜 딸을 낳아 달라고 했고, 소희는 그에게 그를 닮은 아들을 낳고 싶다고 했다.
  머지않아 그들 사이에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문제들이 공연한 걱정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작성자방귀희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