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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희의 연작소설] 이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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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쁘니네 신축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쁘니네 목소리가 점점 더 우렁차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쁘니네는 자기가 마치 노가다 반장처럼 인부들을 닥달했다.
  "지발 빨랑 빨랑 좀 혀. 우째 그렇게 굼뱅이여 누구 망하는 꼴 볼라구 그랴? 장사 못한 제가 몇 날인지도 모르겠구먼. 지발 곤조부리지 말구 일들 좀 혀. 내가 이렇게 빈다 빌어."
  이쁘니네는 정말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냈다.
  "아, 이쁘니네가 빌지 말구 진짜 이쁘니한테 나와서 빌라구 해유. 그러면 팔랑개비 단 것처럼 해치울 테니까유."
  그렇지 않아도 느려서 밉상인 충청도치가 이쁘니를 들먹거리자 이쁘니네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그래서 있는 대로 욕을 해대며 씩씩거렸다.

  이쁘니네는 이쁘니 얘기를, 아니 이쁘니 이름만 들먹거려도 혈압을 오렸다. 수치심이 끓어오르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쁘니를 보호하려는 본능에서이기도 했다.
  이쁘니네는 젊었을 때부터 여자 장사를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창녀의 수명이 끝난 후 바로 포주로 전업을 했다. 그녀가 그렇게 억척을 떨며 돈을 벌어온 것은 그녀의 딸 이쁘니 때문이었다.
  한 몫 잡으려고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는 시세 없는 딸인데다 설상가상을 기형아였다. 그래서 한몫 미끼로 삼을 수 있는 상품 가치가 없었다. 그녀는 아기를 죽일 듯이 미워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모성애는 있었다. 그녀는 그 아기를 이쁘니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했다.
  이쁘니한테 이상하다는 듯한 눈길만 보내도 그녀는 "눈깔을 확 뽑아 버릴까부다"라고 협박을 했다. 그래서 그녀 앞에서 아무도 이쁘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이쁘니에 대해 뭔가를 말하려고 하면 주위에서 눈을 찔끔거리거나 옆구리를 쿡쿡 찔러서 막았다.
  잠시 방심하여 막아내지 못했다가는 이쁘니네의 지랄병이 도지기 때무에 주위 사람들이 신경을 무척 썼다.
  이쁘니네는 이쁘니를 공주처럼 키웠다. 이쁘니는 정말 잘 먹고 잘 입고 컸다. 하지만 그녀는 딸을 밖에 내놓지 않았다. 아주 친한 사람 외에는 그녀의 성장한 모습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쁘니는 철저하게 갇혀 살았다.
  이쁘니는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어린이 공원이 어떤 곳인지 극장이 어떤 형태인지 아무 것도 모른다.
  가장 조용한 시간에 툇마루에 앉아 보는 하늘과 마당에 심겨진 몇 줄의 꽃들이 그녀가 대하는 자연의 전부이고 바깥 세상은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쁘니는 불평을 하지 않는다. 자기는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할 사람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머리가 뛰어나 그녀는 배우지 않아도 한글을 다 깨우쳤고 산수 실력도 어머니보다 월등해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
  이쁘니네 여자들이 자기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는 모두 이쁘니 작품일 정도로 글을 잘 썼고, 함께 얘기를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말이 천상유수였다.

  그래서 이쁘니는 인기가 있었다. 이쁘니네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다. 또 효성이 깊어 이쁘니네는 성한 자식 부럽지 않다고 언제나 당당히 말했다.
  그런데 정말 이쁘니가 성한 자식 못지 않은 큰 일을 해냈다. 지금 집을 수리하게 된 것도 모두 이쁘니 덕분이니 말이다.
  이쁘니네는 사시 그 동네에서 가장 장사가 안 되는 집이었다. 돈이 없어서 좋은 아이들을 데려올 수도 없었고 시설도 제일 후졌기 때문에 한번 온 손님들이 다시 찾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이쁘니네가 일약 소문난 집이 되어서 돈방석에 앉게 되어 경쟁자들을 물리치게 되었다.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날 따라 손님들이 밀려들어와 정신을 쏙 빼놓았다. 방이 꽉꽉 찼을 때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이쁘니네는 아침부터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술기운에 그 손님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쁘니 방에 넣어버렸다.
  "내 딸인데 애기야 애기. 여자는 필요 없다고 했으니 얌전히 자구 가라구."
  손님은 여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 돈을 올리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했기에 여자가 필요없다고 한 것이었는데 정말 꼼짝 없이 잠만 자고 가게 되었다.
  이쁘니는 이불을 있는 대로 뒤집어 쓰고 자는 척하고 있었지만 낯선 침입자에 가슴이 있는 대로 뛰었다.
  그것도 모르고 손님은 방에 들어오자 마자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곤 물을 있는대로 들이키더니 벌렁 누웠다.
  손님은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는 모양인지 이쁘니네를 불러 잠깐이라도 좋으니 여자를 불러다 달라고 했다. 드디어 여자가 왔다. 속옷 바람인 것으로 보아 손님이 잠든 사이에 살짝 온 것 같았다.

  "아유 그냥 좀 자고 가면 어디가 더나요?"
  여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로 옥선이 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썩,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칠어지는 숨소리,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며 이어지는 신음 소리, 개가 닭뼉따귀를 뜯어먹을 때 나는 앙앙거리는 소리, 이쁘니는 처음 듣는 소리이지만 그것으로 그들이 행복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모습일까 보고 싶었지만 잘못 움직였다가는 산통을 깰 것 같아서 꾹 참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소리가 자기 호흡까지 거칠게 했다. 소리가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잠에서 깨었을 때 그녀는 너무 답답해서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다. 깊은 밤이어서 잠 속에 푹 빠져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었다. 이쁘니는 살며시 일어나서 낯선 침입자의 얼굴을 보러 다가갔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했다.
  옥선이 언니는 가고 없었고 손님 혼자 누워있었다. 빨간 불빛 속에서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얼굴에 기름기가 번들번들했다. 젊은 남자인 것 같았다. 입술이 두껍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얼굴 아래로 시선을 돌렸을 때 이쁘니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것이라 이쁘니는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이상하게 온몸이 찌릿찌릿해다. 이쁘니는 한번 만져보고 싶었다.
  이쁘니는 살금살금 기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찌릿한 전류가 더 세졌다. 온몸이 타 버릴 것 같았다. 손이 내밀어지질 않았다. 그러다 심호흡을 하며 팔을 간신히 뻗어 그의 울퉁불퉁한 상두박근에 손끝을 갖다대었는데 그가 몸을 뒤척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쁘니의 손을 덥썩 잡았다. 이쁘니는 너무나 놀라 가느다란 경악을 질렀다. 그는 이쁘니 손을 잡아 끌었다. 워낙 몸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뺄 사이도 없이 쉽게 끄려갔다.
  그는 한 손으로 이쁘니를 아주 가뿐하게 감싸쥐었다. 그리곤 이쁘니 얼굴 여기 저기에 입을 맞추었다. 이쁘니는 갑작스런 사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반항 없이 그저 순응했다.

  손님은 왕이라는 것이 머리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손님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싫지 않았다.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이쁘니는 그의 가슴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여자의 얼굴과 달랐다. 콧구멍도 크고 코밑과 턱에 수염이 뾰족 뾰족하게 나 있었다.
  어깨를 감싸 안은 팔의 손이 이쁘니 얼굴 위에 지붕을 만들고 있었는데 손가락이 몹시 굵었다. 이쁘니는 가슴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원숭이처럼 배 가운데 줄이 쳐져 있었고 양 옆으로 털이 북실북실했다. 그 털은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털의 양이 많아졌다. 이쁘니는 더 아래까지는 관찰할 수가 없었다. 눈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이 가장 보고 싶었다. 그곳에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작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하늘 색이 점점 엷어지고 있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 해가 뜨는 것에 맞추어 그도 깨어나고 있었다. 자꾸 몸을 뒤척이더니 드디어 눈을 떴다.
  "누- 누구야?"
  그는 이쁘니를 벌러지 떼듯이 떼어냈다.
  "죄송해요."
  이쁘니는 그의 태도에 놀라 이렇게 사과를 했다.
  "이 집 딸인가?"
  이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쁘니 구석 구석을 살폈다.
  팔과 다리가 몸통에 그냥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개구리 같았다. 목이 없이 몸통에 어굴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아주 이뻤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애기 같지는 않았다.
  "몇사이니?"
  "스물 한 살이에요."
  그는 또 한번 놀랐다. 몸집으로 봐서는 대여섯살 정도밖에 안 되 보이는데 스물 한사이라니 끔찍했다.
  "많이 놀라셨지요? 손님이 저를……"
  "미안하오."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사실을 깨달은 듯 이불을 끌어 당겼다.
  "아침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더 주무세요. 저는 상관치 마시구요."
  이쁘니 목소리는 너무나 고와 마치 천사의 음성 같았다.
  "알았소."
  그는 정말 등을 보이고 누웠다. 이쁘니는 서운했다.
  "이름이 뭐요?"
  등 뒤로 그가 물었다. 반가웠다.
  "이쁘니에요."
  "……"
  "왜 웃지 않으세요? 다른 사람들은 내 이름을 얘기하면 웃던데요."
  그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쁘니도 손님을 받나보지"라고 불쑥 물었다.
  "아- 아뇨. 제 방에 손님이 오신 건 손님이 처음이세요."

  대화가 이어져 갔다. 이쁘니도 그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쁘니는 그의 이름과 직업 등을 물어보았다. 이름은 김덕호이고 나이는 서른 다섯 살, 직업은 막노동 인부였다. 고향은 거제도인데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명일 제사 때도 다 모이기가 힘들다고 했다. 학교는 중학교 중퇴이고 그동안 안해 본 일이 업이 이것 저것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했다. 그러고 다니다 보니 장가를 못갔다고도 했다.
  이쁘니는 그의 삶에 연민이 생겼다. 사지가 멀쩡해도 못하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쁘니는 건강하기만 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덕호는 이쁘니와 얘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여자하고 있을 땐 대화를 하지 않았었다. 그저 몸으로 부딪힐 뿐이었다. 그리고 얘기를 한다 해도 대개 얼마를 버느냐, 얼마나 모아두었느냐 하는 재산조사였기 때문에 덕호를 질리게했었다.
  이쁘니와의 대화는 진솔한 이야기였고 더구나 자기 얘기를 충실히 귀를 기울이고 크게 공감하며 위로해 주었기 때문에 좋았다.

  이쁘니도 덕호와의 대화가 즐거움을 주었다. 갇혀서 살던 이쁘니에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덕호는 버러지처럼 떼어내었던 이쁘니를 다시 잡아당겼다. 그녀가 작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스물 한 살의 순결한 처녀라는 것이 덕호의 군침을 돌게 했다. 이쁘니를 사정 없이 먹어치웠다.
  이쁘니에게는 아픈 경험이었지만 이쁘니를 스타로 급부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덕호는 이쁘니를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고 덕호가 어찌나 선전을 잘 했는지 이쁘니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
  이쁘니네는 처음에는 덕호 따귀를 갈길 정도로 화를 냈지만 이쁘니가 원하기 때문에 할수 없이 이쁘니를 매춘무대에 데뷔시키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쁘니가 어떻게 손님을 받을 수가 있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구 머리를 흔들었지만 실제로 이쁘니와 자고온 남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자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이쁘니의 거기는 양귀비 뺨 친다는 소문이 퍼지자 남자들이 양떼처럼 몰려들었다.
  "병신 딸 덕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아주 살판이 났더라구."
  "아이구 얼마 못 갈 테니 두구 봐. 성한 사람도 힘드는데 조막댕이만한 것이 얼마나 버티겠어."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프대요. 이쁘니네가 약 지어 나르느라고 정신이 없더라구."
 "약 지어 먹이면 뭘해. 쉬게 해야지. 어디 그게 약 갖고 될 일이야. 돈에 눈이 멀었지."
  "아냐. 이쁘니네는 못하게 말린데. 이쁘니 고년이 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데는구먼. 아니구, 피는 못 속인다니까. 에미를 닮아서 화냥끼가 있어."
  이쁘니에게  화냥끼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이십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쁘니 가슴 속을 꼭 메운 것은 뭔가 할 수 있었다면 하는 욕구였다.
  그 뭔가가 매춘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못했지만 그 매춘마저도 할 수 없었다면 이쁘니는 더욱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쁘니는 기쁜 마음으로 매춘을 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이 정말 소문대로라고 칭찬을 하도록 손님에게 최선을 다했다.
이쁘니는 상업적으로 매춘을 하지 않았다. 팁을 원하지 않았고 상투적인 행위로 시간을 떼우지도 않았다.
  이쁘니는 대화로 상대방을 휘어잡았고 손님이 방문을 나서 때 편지 한 장을 건네주었는데 그 편지 사연이 이쁘니를 다시 찾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들었다.
  "이쁘나, 비결 좀 가르쳐주라" 하며 마실 겸해서 찾아 오는 동료들이 많았다. 그러면 이쁘니는 "비결은요"라고 웃어 넘겼다. 딱히 말할 비결이 없어서인데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서운해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 동네 여자들은 않았다 하면 이쁘니 얘기를 했다.

  "이쁘니가 밑구멍은 큰가 봐."
  " 그 몸집에 크면 얼마나 크겠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가."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희안한 일이야."
  그건 정말 미스테리였다. 이쁘니네조차도 그걸 의문점으로 갖고 있었다. 그런 신비감 때문에 이쁘니의 인기는 날로 상승했다. 그 인기 속에서 청혼을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쁘니도 이쁘니네도 결혼은 절대 반대였다. 서로 반대 이유는 달랐지만 반대 자체는 같았기 때문에 결혼은 성사가 되지 않았다.
  이쁘니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장애의 불행이 자기 혼자로 끝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고 이쁘니네는 돈을 바라고 일시적으로 달라붙는 것이지 결국 이쁘니를 버리고 도망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청혼을 한 사람 가운데 가장 끈질긴 사람은 덕호였다. 덕호는 이쁘니는 자기 여자라고 주장했다. 이쁘니의 첫 남자가 자기이기 때문이었다. 이쁘니도 덕호가 다른 손님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쁘니네도 덕호가 제일 미더웠다. 하지만 조건이 너무 나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경제력만 조금 있어도 덕호를 사위로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쁘니는 덕호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직업도 괜찮고 웬만큼 배운 사람이 좋았다. 만약 그런 사람이 청혼을 하면 짧게라도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덕호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이쁘니를 차지하려고 했다. 이쁘니가 다른 남자와 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이쁘니는 자기 여자라고 소리를 고래 고래 지르기도 했고, 몰래 숨어 들어와 이쁘니 방을 왈칵 열어 영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못 하는 지이 없네그려. 너 훈장 달고 싶으냐. 콩밥 좀 먹어 볼래. 네가 이쁘니 기둥 서방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어. 누가 너 같은 놈한테 우리 딸을 내줄지 아냐?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냉수 먹고 속차려."
  이쁘니네는 덕호를 개 쫓듯이 몰아냈다.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죄다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오고갔다.
  "달라고 할 때 주지. 허우대 멀쩡하고, 아 저런 남자가 어대 있다고 복을 차나 그래."
  "지 딸아 양귀비라고 되는 줄 아나보지 주제에."

  이쁘니네는 한 때 이쁘니 앞날을 걱정하며 이쁘니를 좋다고만 하면 코가 비뚤어졌어도 싸서 보내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쁘니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많아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이쁘니가 부럽다 부러워. 난 원 같이 살자고 하는 놈팽이 하나 없는 데, 아 근데 남자들이 눈들이 뼜나봐. 이쁘니 어디를 보고 그렇게 환장들을 하는지 모르겠어. 정말 기분나뻐 죽겠네."
  이쁘니가 미인들의 경쟁자가 디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우스운 일이었다.
  이쁘니네는 덕호 사건도 있고 이쁘니가 불편해 하고 또 여유도 생겼고 해서 집 수리를 하게 된 것이다. 집 수리를 할 동안 이쁘니는 쉬기로 했다. 정말 오래간만의 휴식이었다.
  일을 할 때는 몰랐는데 쉬니까 온몸이 쑤셨다. 그 일이 이쁘니에게는 벅찼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숨이 가빠 오르는 것이었다. 손님과 행위를 할 때 숨이 가빴었는데 그때는 그것을 오르가니즘이라고 생각했는데 행위 중이 아닐 때도 숨이 가쁜 것은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쁘니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 쉬면 나을 것으로 믿었다.
  손님 대신 엄마와 함께 잘 수 있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엄마하고 누워있는 것이 그 전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전에는 피곤한 몸으로 누워있는 엄마에게 미안함 밖에 없었다. 공연히 태어나서 엄마를 힘들게 한다는 죄책감에 숨도 제대로 못 쉬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꺼꾸로가 되었다. 이쁜니네는 피곤에 지쳐 누워있는 딸을 보면 못할 짓을 시키고 있는 것 같아 죄스러웠다. 빨리 자리를 잡아 이런 장사하지 않고 인간답게 편안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면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은 자기가 살아있을 때이고, 자기가 죽은 후에는 돈만 있어도 안 되고 누군가 보살필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요즘 와서 뼈저리게 느꼈다. 이쁘니네는 좋은 사람이 있는지 살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쁘니는 이쁘니 나름대로 빨리 돈을 벌어서 엄마를 편안히 쉬시도록 하고 싶었다. 어쁘니는 자기 걱정은 전혀 안 했다. 자기 때문에 평생 마음이 편치 않은 엄마에게 어떻게하면 효도를 할까만을 생각했다.
  "이쁘나, 네 방에 가구들 새로 들여올까?"
  이쁘니네는 딸 방에 변기를 들고 들어오며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이쁘니는 변기만 보면 우울해졌다. 이쁘니는 지금까지 방안에서 소·대변을 해결했다. 소·대변 뿐만이 아니라 세수나 목욕도 방안에서 해야했다. 그 모두가 이쁘니네의 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쁘니는 나이가 들수록 엄마한테 미안했다. 이번 공사의 주요 목적은 이쁘니가 사용 할 수 있는 변기와 목욕 시설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이쁘니는 무척 힘이 들었다. 손님 때문에 소·대변을 제때에 볼 수가 없었다. 특히나 그 행위를 할 때는 소변이 자주 마려웠는데 참느라고 진땀을 뺐었다. 손님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얼른 볼일을 보곤 했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해 그 시기를 놓쳐 탱탱해진 배로 손님과 씨름을 할 때가 가장 괴로웠다.
  육중한 무게가 짓누르면 터져벌릴 것 같아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그녀가 위로 올라가 앉아서 하는 체위였다. 새로운 기법이기 때문에 손님들이 무척 좋아했다. 이쁘니는 가벼워 손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쁘니르 스타덤에 올려놓아였다.

  이제 화장실이 생기면 그 문제는 해결이 될 테니까 훨씬 덜 고통스럽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이쁘니는 화장실이 생겨 마음대로 배설물을 뽑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그 소망은 해결이 될 참이었다. 그보다는 엄마가 그 변기를 들고 남의 눈을 피해 몰래 갖다버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기뻤다.
  공사가 끝나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동안 쉬었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이쁘니는 하루에도 몇탕씩 뛰었다. 그리고 이쁘니는 그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손님들이 더러 술을 권하긴 했어도 완강히 거절을 했었는데 이제는 이쁘니가 먼저 술을 제안했다.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술이 겁나지 않았다. 이쁘니는 술 힘에 의지해 초인적으로 일을 했다. 술을 마시면서부터 이쁘니는 더욱 능숙한 솜씨로 손님을 매혹시켰다.
  "손님 가려서 받는 집도 있습니까? 왜 이래요. 나 손님이에요, 손님. 돈 왕창 벌어가지고왔다구요. 사람 무시하지 말아요."
  덕호가 왔다. 이쁘니는 덕호를 들여보내라고 했다. 사실 이쁘니는 늘 마음 속에 덕호가 있었다. 쫓겨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올 줄 알았던 덕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자 서운했다. 때때로 그를 떠올렸는데 그럴 때마다 그에 대한 그리움이 생겼다. 이쁘니는 그제야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다시 찾아온 것이 너무 기뻤다.
  덕호는 방에 들어서자 이쁘니를 째려 보았다.
  "앉으세요. 고개 아파요."
  그제야 덕호는 털썩 주저앉았다.
  "저녁 식사 하셨어요?"
  "……"
  이쁘니는 인터폰을 눌렀다.
  "여기 수상 좀 부탁해요 아주 잘."
  5분도 안 돼 멋진 수상이 들어왔다. 덕호가 이쁘니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하고는 사뭇 달랐다. 그것이 덕호를 거북하게 만들었다.
  "자, 제 잔 받으세요."
  이쁘니는 잔을 내밀었다. 잔을 든 이쁘니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덕호는 너무나 가련해서 얼른 잔을 받았다. 이쁘니는 역시 떨림이 있는 손으로 잔을 채워주었다.
  "저두 한 잔 주세요."
  덕호는 그녀에게 술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자, 건배해야죠. 돌아와 주어 고마워요."
  이쁘니는 덕호를 빤히 쳐다보며 자기 마음을 전했다.
  "보고 싶었어요"라고 덕호도 고백했다.
  "저두요."
  "결혼해요. 우리."
  "……"
  "왜 대답 안 해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해요. 오늘은 우리가 다시 만난 것만 축하하기로 해요."
  이야기를 하면서 마셔서 그런지 취하질 않았다. 잠자리에 들 때는 언제나 거나하게 취해있는 상태였지만 오늘은 아주 맑은 정신이었다. 둘은 나란히 누웠다. 누워서도 계속 얘기를 했다. 덕호는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쁘니는 할 말이 없었다. 매일 밤 다른 남자들과 잔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휠체어를 선물할게, 하나 봐 둔 게 있거든. 당신 몸에 맞는 것을 찾으려고 안 가본 제가 없는데 크기가 다 똑같더라구. 좀 클 거야. 내일 당장 사다줄게."
  "휠체어는 왜요?"
  "당신한테 바깥 세상 구경시켜 줄려구."
  "바깥 세상을요?"
  이쁘니는 너무나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엄마도 생각하지 않은 것을 그가 생각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이제 당신도 안에만 있지 말구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해. 당신 그때보다 얼굴이 많이 상했어. 화초도 햇볕을 쐬야 무럭무럭 자라듯이 사람도 햇볕도 쐬고 그래야 한다구."
  이쁘니는 너무나 감격해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일 오전에사 올 테니까 외출 준비하고 있어. 손님 받지 말구."
  손님 받지 말라는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쁘니는 알겠다는 대답 대신 그의 가슴에 파고 들었다.
  "왜 옷 안 버어요? 제가 벗겨드릴까요?"
  "아니, 결혼하기 전까지는 당신 몸에 손 안 댈거야."
  덕호는 계속 이쁘니를 감동시켰다. 자기를 너무나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덕호가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더욱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어갔지만 그날 밤 덕호는 진짜 이쁘니를 건드리지 않았다. 이쁘니가 오히려 몸이 타들어 왔지만 그녀도 꾹 참았다.
  덕호는 아침 일찍 이쁘니네 집을 빠져나갔다. 이쁘니에게 예쁘게 차리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가버렸다. 이쁘니는 왠지 불안했다. 아침 밥도 먹지 않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나가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마치 그가 멀리 도망을 가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더욱 든 것은 오전 중에 오겠다던 덕호가 점심때가 지나도록 오지 않아서였다.
  예쁜 옷을 차려 입고, 손님도 거절하고 기다리고 있는 이쁘니를 보고 이쁘니네는 한숨지으며 덕호를 원망했다. 이쁘니네는 덕호가 이쁘니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쁘니는 덕호에게 불길한 일이 생겼기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옷을 벗어버리고 손님이나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었을 때 덕호가 나타났다. 그는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다.
  "미안해. 늦었지. 내가 팔지 말고 두라고 점 찍어 놓은 것을 그 자식들이 팔았지 뭐야. 그래서 똑같은 것을 사려고 찾아다니다가 늦었어. 자 한번 타 보자."
  덕호는 이쁘니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이쁘니를 번쩍 안아서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곤 뒤에서 밀어주며 계속 물었다.
  "어때, 편해? 마음에 들어? 덕수궁에 가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으니까 오늘은 동네 한바퀴 돌고 내일 가자."
  덕호는 그녀를 데리고 대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쁘니네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쁘니는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대문 밖을 나갔다. 주어서나 그 대문 밖을 나갈 줄 알았는데 살아서 세상 구경을 하게 되어 너무나 감개무량했다.
  어느 사이에 동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이쁘니는 꽃가마를 탄 듯이 자랑스럽게 구경꾼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정말 꿈 같은 행진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작성자방귀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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