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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희의 연작소설] 작은 나라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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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서 안을 바라볼 때 그곳은 장애인의 천국이었다. 그 천국을 지키는 사람은 천사였고, 천사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장애인은 그야말로 불쌍한 어린양이었다.  하지만 안에서 올 때는 그곳은 장애인의 지옥이었다. 대표자는 지옥의 마왕이었고 어린양은 노예였다.
  그곳이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환경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퀴퀴한 냄새가 헛구역질을 일으킨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배수 시설이 형편없어 바닥이 질퍽거렸다. 구두를 신고 걸어들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방문객들은 안으로 고개만 쭉 빼고 원장님 계시냐고 확인을 했다.
  원장이 있다고 하면 그들은 할 수 없이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조심조심 건너갔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방문객들은 더 큰 고역을 치르게 된다.
  원생들이 살고 있는 방은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짐승 우리 같은 곳이다. 방바닥은 다 떨어진 비닐 장판이 덕지덕지 바닥을 메우고 있고, 벽도 한 종류가 아닌 여러 디자인의 벽지들이 꼬질꼬질하게 붙어있어 바닥을 보아도 벽을 보아도 어지러웠다.
  벽 위에는 빙 둘러 못을 박아 옷을 걸어놓았고 벽 아래로는 빙 둘러 이불, 휠체어, 텔레비전, 책상 등 생활 용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물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이불은 횐 호청이 거의 잿빛 때가 타 있었고, 휠체어도 녹이 슬어 쇠로 만든 것이 아니고 빨간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았다. 텔레비전도 고물상에 가서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구형이었다. 책상 역시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책상 위에 있는 성경책만이 가장 깨끗한 신제품이었다.
  원생들의 모습도 아주 다양했다. 몸을 있는 대로 비비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을 빳빳하게 쭉 뻗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팔 한쪽이 텅 비어있는 사람이 있었다.
 키가 몹시 작은 사람도 있는데 불균형적으로 작은, 쉽게 말해 난쟁이인 경우와 등에 무게를 실은 척추이상, 그러니까 꼽추인 경우가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 즉 장애인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가 놀랄 정도로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몸의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장애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팔 다리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머리에 문제가 있어 무표정하거나 계속 실실 웃거나 끊임없이 중얼거리거나 어지러울 정도로 머리를 흔들거나 코를 쉬지 않고 훌쩍거리거나 하는 사람이 있었다.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발견될 것이 많다는 생각이들 정도로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온 사연도 기가 막힐 정도로 다양했다. 거리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것을 원장이 하느님의 은혜를 주기 위해 데려온 경우도 있고, 일반 시설에서 장애가 너무 심하다고 받아주질 않아 고민하고 있다가 겨우 받아줄 곳을 발견하여 허겁지겁 달려온 경우도 있었다.
  또 보사부나 서울시 또는 구청에서 처치 곤란한 부랑인들을 부탁하여 입소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부모가 그곳에 정중히 맡긴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연고지가 있는 장애인은 입소가 안 되기 때문에 그럴 경우는 호적에서 그 아이를 완전히 빼버려야하는데 그런 부도덕한 행위를 다른 시설에서는 꺼리지만 이곳에서는 서슴지 않고 들어주기 때문에 소문을 듣고 이곳으로 밀려왔다. 그런데 거기엔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그 아이가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생활비를 한꺼번에 내 놓아야했다. 그 돈이 적게는 3천만 원 많으면 1억이 넘었다.
  그런 아이들 가운데에는 정계나 재계에서 누구 하면 알 정도의 높은 집 자녀도 있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원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원장은 청와대 아니면 상대를 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곤 했다. 장애인 복지의 주무부서인 보건사회부 재활과는 원장의 뒷간 정도였다. 재활과 과장을 부를 때, 그는 늘 과장새끼라고 했다. 과장을 원장의 발톱 사이에 낀 때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남들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청와대를 세 번씩이나 다녀오는 영광을 안았다. 물론 단독으로 들어간 일은 없었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도 매스컴은 대통령이 그에게 악수를 하는 모습만 찍어서 TV나 신문에 실었기 때문에 다른 시설 장들은 완전 들러리였고 마치 원장과 대통령의 단독 회담 같이 보였다.
  매스컴이 그를 그렇게 만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시설장이 그 하나인데다 그는 왕년에 이름을 날리던 레슬링선수였다. 레슬링이 한창 인기 있을 때는 그의 이름이 심심지 않게 나오곤 했지만, 김 일 선수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마치 자기가 다쳤기 때문에 김 일 선수가 빛을 본 것이라고 떠벌렸다.
  그는 연습 도중 목뼈가 부러져 전신마비가 되었다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타이틀매치 시합에서 상대 선수가 고의적으로 자기 목뼈를 비틀어 부러뜨렸다고 장애를 입게 된 동기를 근사하게 각색하여 후원자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도 했다.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술집에서 싸움을 하다가 다친 것이라고 발표된 내용을 부정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운동을 하다 다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설의 주장은 크게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그는 부상을 당한 후 기독교에 몰입하게 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계시가 있어 장애인 복지에 투신하게 되었다고 그 동기를 밝혔다. 그 동기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장애인 복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가장 수입이 좋은 사업이길 때문에 손을 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네들도 같은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러나 그 밖의 사람들은 그가 너무 좋은 일, 더 나아가 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칭송이 자자했다. 광신도들은 그의 간증에 눈물을 홀리며 돈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서 내기도 했고, 또 그 옆에서 그를 도우며 살겠다고 봉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영양사로 와 있는 여자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말이 좋아서 영양사지 그녀는 주방 아줌마였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과부였다. 시집을 어찌나 일찍 갔는지 벌써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까지 데리고 들어와서 100명이 넘는 원생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원장은 처음에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딸려있는 것이 귀찮았다. 군식구인 데다가 아이들이 너무 버릇이 없어서 아이들만 보면 화가 났다. 하지만 그녀가 하나님을 계속 팔았고 주방에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인력난을 겪고 있던 터라 할 수 없이 두게 되었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는 원장 마음에 들려고 일을 가리지 않고 했다. 그녀는 원장 방청소를 가장 열심히 했는데 특히 대통령과 찍은 사진 액자를 깨끗이 닦았다. 그가 그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가 하는 주 업무가 후원자들과의 만남이기에 그녀는 후원자들만 오면 첫인사에서부터 마지막 인사까지 세심한 신경을 썼다. 그것이 원장을 흐뭇하게 했다.
  "양선생은 음식 솜씨만 좋은 줄 알았더니 손님 영접도 아주 잘하는구만. 수고했어요."
  그는 처음에 그녀를 아줌마라고 불렀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고부터는 양선생이라고 불렀다.
  "원장님 하시는 일이니까 그렇게 하지, 저 원래는 그렇게 상냥하지 못해요. 오죽했으면 얘들 아빠가 참나무 장작 같다고 했겠어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나 봐요."
  "오 주여, 주여"
  이것이 그의 최대의 감탄사였다. 그런데 하느님이 그녀에게 별 힘을 다 주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원장 방으로 들어가 그를 일으켜 세워 휠체어에 앉히고 얼굴을 씻겼다. 이틀에 한번씩은 머리를 감겼다.
  그의 소대변을 받아 내는 일도 그녀가 다 했다.
  후원자들이 배추 몇 포기를 주고가도 허리가 아파 배추를 주방까지 나르지 못한다고 엄살을 부리는 여자가 운동을 해서 거구인 그를 그것도 마비가 되어 축쳐진 남자를 어떻게 추스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들도 그를 한번 움직이려면 땀을 뻘뻘 흘리는데 그녀는 어디에서 힘이 생겨 그러는지 정말 신기했다. 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안마 또한 잘 했다. 원장은 팔과 다리를 정기적으로 주물러 주어야하는데 그 일을 그녀가 맡게 되었다.
  그녀는 주방에 있는 시간보다 원장 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원생들에게 밥을 안주는 한이 있어도 그를 위한 뒷바라지는 뒤로 미루지 않았다. 그래서 원생들의 식사는 꿀꿀이 죽 같았다. 후원자들이 고기나 생선 야채 등을 갖다 주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녀는 원장을 위해 조금만 만들 뿐 원생들을 위해서는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음식을 만들 시간도 없었거니와 힘도 들고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후원자들이 음식을 줄 때는 원생들을 먹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양이 많았으므로 그 고기와 생선들은 아깝게도 썩어 버렸다.
  그와 그녀는 물품 후원을 싫어했다. 돈 후원을 좋아했다. 그래서 물건을 갖고 오는 후원자들은 후원을 하고서도 대접을 받지 못했다.
  원생들은 거지꼴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원장은 마누라가 보살펴 줄 때보다 더 깔끔해졌다.
  원장 부인이 아이들과 함께 집을 얻어 나간 후 이상하게 그의 부인은 그를 돌보는 일을 포기했다. 그의 부인이 분가를 할 때는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런 태도로 교육이 아니라 불화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는 유명해지면서 가정보다는 장애인 복지 사업에 더 열중했다.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원장 부인도 남편이 기정보다 일에 더 열중하는 꼴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항간에서는 원장이 남자 구실을 못하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해 뛰쳐나간 것이라고 쑥덕거렸다. 그런데 원장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큰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주방 여자가 원장 방에서 잤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소문은 새벽녘이었는데 그녀의 신발이 원장 방 앞에 놓여있는 것을 본 원생이 무심히 중얼거린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지만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양선생이 내방에서 잠을 잔일도 없지만 또 잤다 한들 그게 무슨 흉인가. 이것이 어디 성기인가 오줌 빼는 호수지. 여러분들이 누구보다도 내 사정을 잘 알면서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릴 해."라고 그는 점잖게 타일렀다.
  그때 마침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와대 방문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은 그쯤에서 끝이 났다. 너무 바빠 거기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원장은 물론이고 이번에는 원생들도 몇 명 데리고 가게 되었다. 청와대에 데리고 갈 원생을 선발하는 작업으로 진통을 겪고 있었다. 너무 똑똑한 놈을 고르면 폭탄선언을 할 우려가 있으니까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바보스러운 아이는 원장이 시키는 말을 머리 속에 집어 놓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나이도 어려야 하고 남보기에 너무 흥하지 않으면서도 장애가 심한 것이 보기 좋았는데 그런 구미에 맞는 원생을 다섯 명씩이나 골라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이구 아이구 그건 걱정하지 마. 걔도 그냥 휠체어를 태우라고."
  다른 조건은 다 맞는데 목발을 짚는 원생이라고 직원이 걱정을 하자 원장은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아, 정말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원장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원장을 닳아 직원들도 다 그 모양이었다. 뜻이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원생을 위해 뭔가를 해 보려는 직원은 어떻게 해서라도 밀어냈기 때문에 그런 인간들만 남게 되었다.
  선발이 끝난 후 바로 교육에 들어갔다. 원생 수, 직원 수, 하루 일과, 식사 내용, 원장 이력서, 원장의 자상한 면모 등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자게 미소짓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연습도 시켰다.
  훈련하는 모습을 원장이 지켜보기도 하였는데, 어느 날 그는 예정에도 없던 이런 교육을 직접 지휘했다.
  "각하에서 여러분께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서 현규 손을 이렇게 잡으시며 지금 제일 갖고 싶은 게 뭐냐 라고 물으실 지도 몰라요. 그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겠어요? 오락기요. 로버트요. 이렇게 대답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거 한두 개 선물 받아오면 뭐 하겠어요. 다른 친구들한테 다 빼앗길 텐데 안 그래요? 각하께서 무엇이 갖고 싶으냐고 물으시면 이렇게 대답하도록 하세요. "대통령 각하. 제가 지금 제일 갖고 싶은 것은 우리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복지관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가건물이어서 겨울엔 너무 추워 다리가 꽁꽁 얼어붙습니다. 대통령 각하, 저희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이렇게 대답해야 해요 알았지요?"
  그는 토씨 하나 빼지 말고 그대로 외우도록 했는데 선발된 원생들 수준으로 그것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외우게 하기 위해서는 강훈련이 필요했다. 청와대에 간다고 좋아하던 원생들이었지만 강 훈련에 지쳐 청와대고 뭐고 다 귀찮아졌다. 아니 고통스러웠다.
  드디어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되어 원장은 원생들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갔다. 자기 입으로는 차마 못했던 얘기를 원생 입을 통해 하게 되었기에 그는 너무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청와대로 들어간 순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큰 실망을 했다.

  자기 원생들은 가장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대통령 얼굴도 잘 안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하도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어 원장도 대통령과는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통령과 악수조차 못했다. 당연히 매스컴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다른 때는 원장 혼자 휠체어였지만, 이번에는 원생들이 초대되었기 때문에 매스컴은 그 원생들에게 초점을 돌렸다. 특이나 대통령이 원생 휠체어를 밀어주는 모습이 연출되었기에 원장은 매스컴의 취재거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버릇이 되어 카메라들이 자기를 향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옷을 단정히 매만지고 필요 이상으로 웃기도 하고 때로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혼자서 주접을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청와대 경호원들이 그를 원생 취급을 한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휠체어를 탄 원장이나 휠체어를 탄 원생이나 다 그게 그거로 보였기 때문에 특별 우대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원생들이 나가는 통로로 나가도록 했고 태도도 불손했다. 자기 원생들이 보는 앞에서 당한 수모여서 그는 사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 새끼들 모가지를 다 짤라 버려야지. 내가 가만둘 줄 알고."
  그는 원으로 들어오자마자 으름장을 놓으며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도 알았다. 자기가 자를 수 있는 모가지는 한 개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울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 불덩이가 직원한테로 떨어졌다. 또 그것은 다시 원생한테로 튀겼다.
  숨만 크게 쉬어도 발길질을 했고, 그 날 저녁은 밥도 굶겼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면 뭘 처먹었기에 싸기 바쁘냐고 뺨을 갈겼기 때문에 그 날 밤 원생들은 먹지도래지도 못하고 그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원생들보다 더 박해를 받은 것은 청와대에 다녀온 원생들이었다. 그들은 목격자였기 때문에 증거를 없애기 위해 그들을 싹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야말로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기에 반 죽여 놓는 것으로 끝냈다.
  원생들이 청와대에서 받은 시계를 압수했다. 아이들은 시계에 대통령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 너무 소중해 정말 오래도록 간직하려고 했건만 빼앗기고 말았다. 너무 "서운해 엉엉 우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그 압수한 시계는 간부급 직원들이 차고 있었다. 사실 그 시계는 대통령이름만 쓰여 있을 뿐이지 아주 싸구려였건만 청와대 운운하며 힘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보물단지처럼 위했다.
  시간이 흐르자 청와대 사건은 가라앉았지만 원장의 체면은 많이 실추되었다. 그때쯤도 사건이 벌어졌다.
  원장 부인이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오는데 원장 부인이 원장 방문을 연 순간 아주 묘한 장면이 목격된 것이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주방 여자는 원장 운동을 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낮이고 밤이고 원장 방에 들어가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 운동의 도가 지나쳐 남들이 보기엔 정사(情事) 같았다.  원장은 침대에 누워서 괄 다리를 짝 벌리고 있고 주방 여자는 그 위에 올라가 두 팔을 폈다. 오므렸다 했는데 팔을 펼 때는 주방 여자도 같이 팔을 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밀착하게 되었다.
  너무 힘들어서 씩씩거리면 원장은 조금 쉬라고 했는데 그러면 주방 여자는 그런 포즈로 한참 쉬었다. 원장의 마비가 가슴까지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 정사였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가슴과 가슴이 맞닿자 그런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의 요구도 없었건만 운동을 할 땐 겉옷을 벗었다. 때론 살과 살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것은 잊고 있었던 원장의 성(性)을 자극했다. 원래 원장은 바람기가 있었던 남자였기 때문에 금방 불이 붙었다.
  그는 다치기 전에는 여자를 만나면 무조건 치마부터 벗겼지만 이제는 아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겐 이제 탐스런 두개의 유방이 그의 성욕을 충족시키는 성기(性器)였다.
  치마를 벗어야, 바지를 벗어야 가능한 성행위와는 달리 그들의 행위는 아주 간편했다. 주방 여자가 단추 몇 개만 풀어 젖꼭지를 그의 입에 대주면 언제나 쉽게 성행위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방 여자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꼭 누워서만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라도 쉽게 할 수 있었다.  원장은 갓난애처럼 보챘다. 그녀가 방에 들어오기만 하면 젖을 달라고 졸랐다. 그녀는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듯이 성(性)이라는 개념 없이 그의 입에 젖꼭지를 물려주었다.
  두 아이를 그 젖으로 키웠기 때문에 그녀의 젖은 볼품 없이 축 늘어져 있었지만 그는 그 젖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떤 때는 그녀의 가슴을 활짝 젖히고 감상을 하곤 했다.
  이 모든 행위들이 그에겐 즐거움이었지만 그 여자에게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자기가 원장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여자가 그에게 젖을 내주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가 원장 다음 가는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원장보다 더 위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정말 눈에 뜨이게 앞에 나섰다.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는 것은 예사였고, 원장이 결정하기 전에 자기가 결정을 내려 지시하기도 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회의에 그 여자가 꼭 참석했고, 원장의 외출을 보좌하는 역할도 그녀가 했다. 따라서 그 여자의 아이 둘은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전에는 맛있는 고기반찬을 그녀가 몰래 빼내 구석에 숨어서 먹였지만 이제는 떳떳하게 아주 당당하게 먹였다.

  자원봉사자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고 해서 직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던 아이들이었지만 이제는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아이들 비위를 맞췄다. 세상이 아주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원장부인 귀에도 그 묘한 움직임의 이야기가 들어갔고 급기야 결정적으로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장 부인에게 목격 당한 장면은 원장의 정사 다시 말해 젖을 빠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운동 장면이었다. 원장이 침대에 누워있고 주방 여자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모습이었는데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더 분명한 정사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했다. 그것은 운동이었으니 말이다.
  원장 부인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 내 이럴 줄 알았지. 나하고는 안 되는 게 이년하고는 되디? 사지 축 쳐져갖고 와서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시키더니 호강은 딴 년한테 시켜주는 건 무슨 이유냐. 어디 그 터진 입으로 말 좀 해봐라."
  원장 부인은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떠들어댔다.
  "너 나한테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어. 네놈의 비리 내가 다 알어. 네놈이 사회사업가야? 흥, 세상이 다 웃는다. 이 강도, 날 강도 도둑놈. 하늘이 다 알어. 그 돈이 어떻게 해서 번 돈인데 저런 년한테 갖다 바쳐 그래? 네가 정신이 있는 놈이야? 저년한테 얼마나 빼돌렸어? 얼마나 줬느냐고? 아, 왜 말을 못해?"
  원장은 아주 대범했다. 자기 부인을 미친 여자 취급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사실은 증거가 없는 데다 원장이 성불구(性不具)라는 것으로 원장부인이 그들 사이를 불륜으로 보는 주장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원장이 돈을 벌어 주방 여자에게 빼돌렸다는 것도 사실 무근의 모함이 되어버렸다.
  원장은 참 운이 좋았다. 고비를 잘도 넘겼다. 그런데 세상인심이 참 무서웠다. 이상하게 그 후론 후원자들도 뜸했고, 청와대는 고사하고 공식석상에서 주목받는 일이 없었다.
  아내하고의 사이는 더욱 나빠졌고, 주방 여자도 그전처럼 그에게 헌신적이지 않았다. 주방 여자는 그를 있는 대로 약을 올리다가 젖을 내주었는데 이상하게 예전처럼 감동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물쑥 이런 선언을 했다.
  "원장님, 저 이제 장사하며 살고 싶어요. 그때 약속하신 가게 내주세요."
  "약속? 가게? 난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원장은 아주 정색을 하고 잡아다.
  "어머머 기가 막혀. 정말 왜 그러세요. 평생 먹고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아줌마, 지금 무슨 말하는 거야?"
  원장은 그녀를 처음 대했던 것처럼 탐탁지 않은 표정과 어조로 더 이상 말을 못하도록 막아버렸다.
  "정말 기가 막혀서 못 살겠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을 수가."
  그야말로 주방 여자는 큰 소리 한번 못하고 원장에게 지고 말았다. 주방 여자는 원에 들어올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상태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원을 나갔다. 그 여자의 속셈은 한 몫 크게 해서 밑천을 잡으려고 했었는데 빈손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여자의 꿈이 너무 켰던 것이다. 그 여자는 원장을 쉬운 상대로 오판을 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불러들였던 것이다.
  그녀는 후회를 짤짤히 하며 이용당했다는 억울함에 몸을 떨었다.
  원장은 거추장스러운 혹 하나를 떼어낸 것 같아 시원했다. 원장은 지난 일은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그 날 저녁 돼지고기 파티를 열었다. 돼지고기가 한 원생 앞에 한 근씩 돌아갈 수 있도록 사고 상추도 푸짐히 사서 돼지고기를 구어 상추에 싸먹게 했다. 오래간만에 원생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고 보니 정말 흐뭇했다. 그는 기분이 좋아 원생들에게 이런 약속을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리에 근사한 복지관을 세울 거야. 그때까지 허리띠 졸라매자."
  이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정말 멋진 복지관을 세우고 나면 원생들에게 잘 해줄 생각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복지관이 세워지면 또 다른 목표를 세워 또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 뻔했다.
  그는 장애인 복지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것은 원장 자신의 세(勢)를 키우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그것을 장애인들을 위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의 뜻에 동조했다.
  원장은 어떻게 해야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원 내에 자립작업장을 세워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준다는 아주 그럴듯한 목표를 내세웠다.
  이제부터 원은 노동 착취의 신종 노예성(城)이 될 것이다. 자립작업장이 화제의 대상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이상으로 또 확실한 것은 원장은 언젠가는 또 자립작업장을 없애지 못해 갖은 모략을 다 꾸밀 것이라는 사실이다. 원장의 머리로는 그 정도의 일밖에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한치 앞도 내다볼 줄 모르기 때문에 희망에 부풀어 껄껄 웃고 있었다. 그 옆에서 직원들도 함께 깔깔거렸다.
  "껄껄껄‥‥‥‥"
  "깔깔깔‥‥‥"
  그 웃음에 작은 왕궁이 무너지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작성자방귀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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