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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밤중에 바나나라니…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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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밤중에 어디 갔다 오니?” 자정을 넘은 시간, 현관문이 열리며 큰아이가 들어오더라고요. 스물한 살이 됐다고는 하지만 온다간다 말도 없이 오밤중까지 어디를 쏘다니다가 오는지…. 다음 날 저녁을 먹는데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를 보면서 큰아이가 말하더군요. “어제 저 영화 보고 왔어요. 심야영화가 싸니까 마지막 편을 보고 오느라 늦었어요.” 방송에서는 <이 오밤중에 바나나라니>라는 영화를 소개하더라고요.

<이 오밤중에 바나나라니>는 20년도 훨씬 전 북해도에서 출판된 책이에요. 근이영양증을 가진 중증장애인 시카노 야스아키(鹿野靖明) 씨와 활동지원 제도가 없던 시절 그를 지원하던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으로, 그 작품이 이번에 영화화돼 지난 12월 말부터 전국에서 동시상영 되고 있다고 해요. 중증장애인과 활동지원인의 이야기가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된다는 것이 반가웠어요.

주인공 시카노 씨는 1959년 북해도 삿포로에서 태어난 선천적 근이영양증 장애인으로 15살까지는 국립요양소에 입원해 있었대요. 보통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함께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놀며 공부하고, 가끔 싸우기도 하면서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게 되죠. 그런 생활을 함께하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웃고,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끼는 방법을 배우지요.

하지만 시카노 씨는 쭉 입원 생활을 했기에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배움의 기회가 없었고, 자립생활을 하게 된 이후 봉사자에게 아주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주문하는 태도가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진심으로 표현하는 모습에 공감하고, 적극적이고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책의 제목 〈이 오밤중에 바나나라니〉는 봉사하던 남학생이 참다못해 “이 오밤중에 바나나가 먹고 싶다니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라고 항의한 장면에서 유래했대요. 영화 속에서는 이 남학생과 더불어 사이키라는 여성이 중요한 파트너로 나와요. 사이키 씨는 일정 정도의 비용을 받으면서 전속으로 활동지원을 하던 사람으로, 기관총처럼 수다를 쏟아 붓고 주위 분위기를 밝혀주는 등불 같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고 하네요.

시카노 씨는 눈치 보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상관없이 원하는 걸 주문했다고 해요. 장애인인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 비굴해지지 않으며 지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당당한 태도가 오히려 뒤끝 없이 느껴지고, 심하다고 화내던 봉사자도 당사자의 씩씩함과 강한 자세에 많은 것을 배우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듯 그와의 만남을 통해 생각이 바뀌고 삶의 가치관을 찾아가는 봉사자가 많았다고 하고, 나중에도 그에게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요.

순간순간 스스로의 생명이 깎이는 듯한 절박한 삶이지만 주변 사람에게 사랑과 용기를 느끼게 해준 시카노 씨. 책에 쓰인 그의 만년의 모습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 아프지만, 그것은 단지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람들끼리 기대며 살아가는 삶의 위대함, 장애가 있어도 자신의 의사를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의 어려움과 중요함을 느끼게 하는 최후였다고 합니다.

“중증장애인이게 있어서 활동지원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을 통한 서로의 관계는?” 장애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영화라는 대중성 높은 매체로 소개해 누구나 스스럼없이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네요.

작성자글. 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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