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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잎새에…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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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호우에 시련을 겪는 사람들의 뉴스가 끊이지 않는 9월이었지만, 오늘따라 높고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며 가을을 두 눈 가득 담아 봅니다. 골목길을 지나는데 아직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뚝’ 하고 커다란 마른 잎새 한 장이 떨어지는 거예요. 마르고 휘인 그 낙엽이 묵묵히 보여주는 자연의 섭리가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그리고 문득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그 시인의 시도 떠올랐어요. 너무나 잘 아시는 시인 윤동주, 그가 다녔던 대학이 바로 교토에 있어요. ‘동지사대학’이라고 1875년에 설립돼 1920년 정식대학으로 등록된 역사 깊은 대학이라는데, 얼마 전 ‘한국 작가와의 대담’이라는 행사가 그 곳에서 열린다고 해 처음으로 들르게 됐어요. 말과 글을 잃고, 이름마저 빼앗겼던 시대를 살았던 시인의 슬픈 청춘의 흔적이 깃든 곳, 특히 학교 안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하기에 꼭 찾아가 보고 싶었지요.

동지사대학까지 가는 길을 알아보니 교토역까지 가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이마데가와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해요. 대부분의 역에는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으니 처음 가는 길이지만 그리 걱정은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여유를 갖고 일찌감치 출발했죠. 같이 가는 지인이 휠체어를 밀어주니까 전철 승하차 때 경사로 신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서비스를 부탁하면 친절하게 안내는 해 주는데, 역무원 배치나 연락 등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도와줄 동행자가 있으면 직접 이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 같아서요. 하지만 승하차 역의 편의시설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으면 엘리베이터 등을 찾아서 이동하는 시간이 여분으로 걸리니까 마찬가지일 수도요? 교토 역에서 지하철까지 이동할 때는 역시 엘리베이터 표지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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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지 않도록 역 이름을 확인하면서 드디어 도착. 자, 내리기는 했는데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할지 두리번거리며 개찰구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았죠. 그 때 약간 체격이 좋아 보이는 서양 남성이 일본어로 말을 걸었어요. “엘리베이터, 이쪽이에요.” 거기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단추를 누르고 기다려 주는 거 있죠. 개찰구를 나오기는 했는데 대학 쪽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또 잠시 머뭇거렸죠. 그런데 그 사람이 또 안내를 해 주네요. ‘우리가 어디 가는지 알고 하는 말인가?’ 다시 따라가니 또 엘리베이터 앞에서 단추를 누르고 기다리면서 “언제나 제가 하는 일이에요”라고 하시네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건물로 연결되는 통로인 것 같았고 벽에는 대학 관련 장소를 표시하는 안내판이 보이더라고요. 편리하게도 지하철역에서 곧바로 동지사대학 컨벤션센터 건물 지하로 연결되어 있던 거예요. 대학까지는 잘 찾아왔지만 행사가 개최되는 회장을 확인해서 가야 하니까 그 자리에 멈춰서 표지판을 살펴보고 있으려니 그 분이 또 “이쪽이에요”라면서 엘리베이터 타는 쪽을 가리키는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감사합니다. 잠깐만....” 하면서 화장실 쪽 표시를 가리켰어요. 참 친절한 분이셨죠. 아주 유창하게 일본어를 하는 분 같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처음 마주친 휠체어 장애인에게 뜸도 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안내해 주고, 단추를 누르고 기다려 주는 몇 걸음이나 앞선 그 친절함 앞에서는 전혀 막힘이 없더라고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통하는 배려야말로 가장 바탕이 되는 마인드겠죠.

행사를 보고 난 후 윤동주의 시비를 찾아갔어요. 그는 1942년 4월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의 릿교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지만, 그 해 10월부터 동지사대학 영문과로 옮겨 다니게 됐고, 1943년 7월 14일 우리말로 시를 써 민족운동을 선동했다는 빌미를 들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마지막 학창 시절을 보낸 이 곳. 조국의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옥중에서 의문사한 그가 다녀간 자취가 학교내 교회 앞에 시비로 세워져 남아 있었습니다. 윤동주의 이름이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된 건 1986년 아사히신문에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씨가 ‘한글로의 여행’이라는 글을 통해 윤동주를 소개한 것이 주목을 끌었고, 그 후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그 글이 실리게 되며 더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윤동주의 시비는, 1995년 동지사대학 출신의 재일교포들을 중심으로 뜻을 모은 일본인과 학교의 전면적인 협력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시비의 오른쪽에는 무궁화 나무도 심어져 있고 화병에는 꽃이, 그리고 방문자들의 방문록도 놓여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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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가 자유를 빼앗겼던 70여 년 전, 그리고 얼마 전 나고야에서 개최된 ‘아이치 트리엔날레2019’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라는 기획 전시에서 철거된 ‘소녀상’.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지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데, 9월 26일 일본 정부 문화청에서는 교부하기로 결정했던 보조금 7,800만 엔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이후 재판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보며, 일본 정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눈길이 노골적으로 강화된 것 같아 심히 우려되는 바입니다. 그 시대의 힘을 가진 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자유, 오만함과 이기적인 판단에 의해 쌓아지는 그 장벽이 더 높아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찌 해야 할런지요? 재판 동향이 주목되네요.

작성자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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