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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한 짝은 어디에?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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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 귀퉁이의 작은 술집 앞에 재미있는 그림이 있더라고요. 지난 9월 24일부터 일본에서 개막한 럭비 월드컵, 일본 팀은 예상 밖으로 선전해 4연승을 거뒀고, 목표로 했던 8강까지 진출해 큰 뉴스가 됐죠. 저는 럭비 경기의 룰도 모르고 관심이 없었지만, 좀 들어보니 공을 잡고 앞으로만 돌진하는 우직하고 파워풀한, 선수들에게 국적 조항이 없으며 시합이 끝나면 서로를 격려하며 같이 어울리는 ‘열려 있는 경기’라고 하네요. 그래서 한국, 미국,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가가 함께 건배하는 그림이 장난스럽기도 하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요. 11월 2일 열릴 결승전의 우승팀이 누구일지보다는 시합은 격렬하게, 결과는 담담하게, 그리고 건배는 시원하게! 그림처럼 간단하지 않은 게 세상 일이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바람을 담아 희망 한 잔 따르고 싶네요.

험난한 건 시합이나 정치뿐이 아니에요. 지난주까지 연이어 관동, 동북 지역을 할퀴며 지나간 태풍 15호, 태풍 19호, 집중호우로 하천이 범람해 엄청난 피해가 잇따르고 있어요. 피해 지역이 넓어 날마다 수정된 희생자 수와 되풀이되는 재난에 힘겨워하는 이재민들의 가슴 아픈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보기가 어려웠는데, 모처럼 맑은 날씨에 밀렸던 빨래를 돌렸어요. 빨래를 너는데 양말 한 짝이 영 눈에 띄지 않는 거예요. 찾아보려니 귀찮아 나중에 찾으면 그때 하지 싶어 그만뒀어요. 방에 앉아 한숨 돌리는데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봤던 시각장애인 부부 이야기 한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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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의 일상을 담은 화면이었는데 빨래를 널던 시각장애인 엄마가 양말 한 짝을 찾아 베란다 바닥 여기저기를 손으로 짚어 보고 있었어요. 구석구석을 아무리 찾아도 없자 소파에 앉아 있던 아들에게 부탁했는데,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여기저기 찾다가 빨래바구니를 올려 놓았던 에어컨 공조기 뒤편 좁은 틈 사이에 떨어져 있던 양말을 주워 엄마 손에 쥐어주더라고요. 볼 수 있으면 떨어뜨렸을 때 바로 알아채겠지만, 보이지 않으니 감각만으로는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겠죠. 나는 볼 수 있어도 보행에 장애가 있으니 양말 한 짝 찾아다니는 게 이리 번거로운데, 그 엄마는 볼 수가 없으니 작은 양말 한 짝 찾기도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생각난 김에 그 부부를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까 많이 알려진 시각장애인 부부인지 소개된 기사도 많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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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와 아들, 딸 네 식구에 맹도견. 남편 오코다 마코토(大胡田誠) 씨는 1977년생의 전맹 시각장애인으로 출생 후 6개월 무렵 선천성 녹내장으로 판명되어 여러 가지 치료를 거쳤으나 12살 때 두 눈 모두 실명됐대요. 중학교 2학년 때 시각장애인 다케시타 변호사의 수기를 읽고 변호사라는 목표를 가지고 게이오대학 법학과에 보결로 입학, 주변의 도움을 받아 졸업할 수 있었어요. 사법고시에 계속 실패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해 ‘칠전팔기’라고 할까요, 여덟 번째인 2006년 드디어 합격했어요. 오코다 씨가 응시 때 요청해 사법고시에서 시험 문제를 읽어 주는 프로그램이 도입됐대요. 전맹으로 변호사가 된 사람은 오코다 씨가 네 번째라고 합니다. 부인 오이시 아야코(大石亜矢子) 씨는 1975년생, 조산으로 태어나 보육기의 고농도 산소에 의한 미숙아망막증으로 시력을 잃어 시력에 대한 기억도 감각도 없어요. 시각장애인 고등학교에 다닐 때 성악가를 꿈꾸게 돼 성악과에 진학했고, 남편과는 중학생 때 처음 만나 마코토 씨가 사법고시 준비할 때 5년 교제하면서 2010년에 결혼했다고 합니다. 의뢰인 중에 장애인끼리 결혼했지만 생활에 지쳐 이혼한 사례를 봐왔기에, 결혼이 진정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인지 자신도 없고 고민이 많았대요. 하지만 결혼 후, 아야코 씨의 친정 어머님의 많은 도움을 받으며 가사, 출산, 육아의 고비를 잘 넘겼고, 웃음 넘치는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고 하네요.

첫째 딸은 고코로(마음), 둘째 아들은 히비키(울림)라는데, 아이들에 대해 “볼 수 없으니까 안고, 쓰다듬고 스킨십을 많이 하고, 너무 말을 많이 하니까 시끄럽다고 생각할 거예요”라고 하네요. 갓난아기 때는 잘 때 질식하지 않을까 염려돼 둘 중 한 사람이 아기를 만져보며 상태를 확인했고, 걸어다니게 됐을 때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묻고 또 물으며 말을 걸었대요. 아이들이 이제는 부모가 볼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뭔가 곤란한 일이 있으면 도망가 버린대요.

마코토 씨는 변호사 이외에도 장애인차별해소를 위한 활동도 하고, 아키코 씨는 피아노를 치며 이야기를 담아내는 연주 활동과 완전히 빛을 차단한 공간에 들어가 시각장애인의 도움을 받으며 내부를 탐색해보는 ‘다이아로그 인 더 다크(어둠 속의 대화)’라는 그룹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도와주시는 친정 어머니가 안 계실 때는 엄마의 눈을 대신해 딸이 옷을 골라 주거나 요리를 거들어 주는 등 아이들의 역할이 늘어나지만, 아이들도 불편하거나 힘든 건 힘들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 같았어요.

이 부부 보통은 아니죠? 얼마나 힘들고, 많이 노력하겠어요. 하지만 “‘그러니까 역시 무리’가 아니라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될까?’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네요. 많은 분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었으면 좋겠어요.

작성자변미양/오사카 거주, 지체장애인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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