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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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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십여 명의 맹인들이 "양동" 골목으로 꺾이는 언덕에 무리를 지어 웅성거리며 몰려 있고, 그들 앞에는 전투경찰들이 땅바닥에 방패를 세운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맹인들 중에는 육교 위에서 앵벌이 하다 쫓겨 온 듯, 낡은 스피커에 기타를 얹어 놓고 서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 틈 사이에는 젖먹이를 품에 않고 있는 맹인 아낙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그들은 몹시도 불안한 몸짓으로 보이지 않는 눈을 껌벅거렸다. 흰자위 가득한 눈으로 무엇을 보려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옷에 흙을 잔뜩 묻힌 채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는 맹인이었다.
 "오늘 노마 교황님이 오시는 날이라 우리가 이리 끌리와갔고 갇히삔기라고마."
 "알싸! 교황님? 님 같은 소리하지 맙시다. 거 머 교황은 밥 안 먹고 똥 안 싸나, 제어미!"
 다른 맹인이 온몸에 열이 뻗친 것처럼 맞받아 치며 불거진 목소리로 말했다.
 "맞다, 맞다. 앞 못 보는 우리들 치고 교회나 성당 안가는 사람 있나 말이다. 노마 교황이 온다쿠면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편해져야 되는 거 아이가! 이건 완전히 거꾸로 된 꼬라지라칸께네. 지기미!…"

 여기저기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마다 한마디씩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자신이 말에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 허공에 대고 "그 말 맞다!"고 외친 뒤 지팡이를 휘두르기도 했다.
 핸드 마이크를 통해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언덕의 양쪽 벽을 때리면서 맹인들 사이를 헤집었다.
 "경고합니다. 여러분, 빨리 해산하십시오! 여러분의 고충은 국가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로마교황님께서 국빈으로 오시는 국가적으로 경사스런 날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잠깐 동안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집단행동으로 나오면 곤란합니다. 빨리 해산하십시오! 여러분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으면 국가적으로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국가에서 여러분들의 편리를 봐주었는데, 단 사흘도 참지 못하겠습니까? 사흘만 집에 있으면 됩니다. 빨리 해산하십시오."

 맹인들의 사흘.
 그 사흘은 그들에게는 의미가 컸다.
 하루만 벌이가 없어도 굶기가 다반사인 그들에게 로마 교황은 예수의 부활기간과 똑같은, 사흘이라는 알 수 없는 선물을 가지고 한국 땅에 나타난 것이다.
 그 시각. 맹인들이 갇혀 있는 곳의 길 건너쪽.
 가전제품 대리점 진열대에 설치되어 있는 칼라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한 달 전부터 예고되어 왔던 특별 생중계 방송의 화려한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로마 교황의 김포공항 활주로 입맞춤. 국악대의 웅장한 빵빠레.
 가전제품 대리점 앞에 모여 서 있던 몇몇 사람 중 하나가 나지막히 말했다.
 "저거, 저런 저런, 아스팔트가 꽤 뜨거울 텐데…"
 사람들은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띠면서 길 건너쪽을 힐끗거리기에 바빴다.

 이틀 전이었다.
 아침밥도 먹기 전인 시각에 동회 직원이 통장과 반장을 앞세워 재발지역으로 공시되어 있는 맹인 동네를 찾아왔다. 그들은 이백 세대가 넘는, 지은 지 수십 년이 되어 더 이상 낡을래야 낡을 곳도 없는 계단식 삼사 층짜리 건물들을 분주하게 오르내렸다. 한 층에 한 평 반에서 두 평짜리 방이 십여 개씩 촘촘히 들어 있는 각 건물에서는, 방 밖에 놓여져 있는 석유난로에 불을 붙이고 식사 준비를 하느라 소란스러웠다.
 동회 직원과 통·반장은 오전 여덟 시까지 약국 앞 공터로 맹인들을 모이라고 했다. 맹인들이 불거진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이유는 모인 다음에 말해 주겠다는 사무적인 대답만 들었다.
 오전 여덟 시가 조금 지나자 맹인들이 하나둘씩 약국 앞 이십여 평 넓이의 공터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자 백여 명 정도의 맹인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맹인들 주변에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한 채 동네 주민들이 귓속말을 나누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동회 직원과 통·반장은 약국 안에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맹인들이 거반 모인 것을 어림짐작으로 확인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통장은 미리 동회 직원의 지시를 받은 듯, 사람들 앞으로 나섰다.

 "동네 주민 여러분들, 잠깐만 조용들 허시고 여그 이 사람으 말을 쪼깐 주목혀 주심 고맙겄슴요, 여러분. 공사다망험에도 불구허시고 이렇게 국가시책에다 협조적으로루다 나오는 것을 보니, 그 머시냐, 선진 조국 창조에 앞장 스는 선진 국민이 따루 읍는 그 겉어서, 통장인 나 김송필, 참으루다 가심이 뿌듯헙니다요, 여러분."
 뜬금 없는 소리 듣다 못 듣겠다는 듯, 욕쟁이라고 별명이 붙은 맹인 전씨가 고함을 지르는 것처럼 한마디 탁 뱉아냈다.
 "거, 무신노메 개씹에 보리알 탁탁 튀는 소리 해쌌노, 퍼뜩 본론부터 씨부리지 않고! 그라모, 통장 말대로 해삐면 우리는 고마 선진 맹인이 돼삐는 거 아이가?"
 와하하, 폭소가 터져 나왔다. 통장은 바퀴벌레 씹은 얼굴로 욕쟁이 전씨를 째려보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좋슴다. 여러분으 뜻이 정히 그러시담 본론으루다 직접적으로다 들어가겄슴다, 여러분. 그러문 또 머시여, 낼 모래 아츰 비앵기루다 로마 교황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시는 거, 다들 이미 알구 기시리라 생각흠다. 따라서, 우리가 협조적으루다 협력혀서, 로마 교황님께 우리나라으 발전된 모습을 사직 박아 주드끼 머리 속에다 남겨드리자 이검다. 내 말을…"

 맹인들은, 집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감이 잡히지 않는 통장의 말을 듣다 말고, 마치 옆사람의 얼굴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서로를 바라다보며 웅성거렸다. 보다 못한 동회 직원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앞으로 나섰다. 그는 사회정화위원회 표지가 붙어 있는 모자를 벗고 나서 차분하게 말해 나갔다.
 "동회에서 공무수행 차 나온 사람입니다. 조용히 좀 해주시고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신기하달 정도로 웅성거림이 뚝 그쳐버렸다.
 "다름이 아니라 주민 여러분께, 특히 맹인 되시는 분들께 알려드릴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상급관청으로부터 하명 받은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일부터 사 일 동안은 거리질서 확립과 환경미화를 위해 일체의 노점상 행위 등 여타 행위를 못하도록 단속지시를 하명 받았습니다. 강제적인 사항은 아니지만, 국가적으로 중대한 교황님 방문이기 때문에 협조를 구하는 차원에서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별다른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 널리 해량하시기 바랍니다."

 맹인들은 동회 직원의 말뜻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맹인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일부 맹인들 얼굴에 분노의 감정이 나타났을 뿐이다. 한 맹인이 앞으로 나와서 동회 직원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보고 나흘 동안 앵벌이 나가면 즉결에 넘겨 벌금이나 구류를 살게 하겠다는 얘긴데… 그건 그렇다 치고, 묻지 마라 갑자생이라고 뻔한 질문에 뻔한 답이 나올 건 불을 보듯 하지만, 어쨌든 하나만 물어봅시다. 우리 맹인들이 무슨 돈병철이를 조상으로 모신 것도 아닌데, 나흘 동안 먹을 것도 없이 어떻게 지내란 말이오? 또, 어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애들은 어쩌라는 거요?"
 맹인들 사이에서 "거, 말 한번 잘한다." "우리가 무슨 홍어 좆이냐?" "동회 양반, 대답해 보시오."
 "지금 구청에 여러분들께 드릴 구호양곡을 신청 중에 있습니다. 지시가 떨어지는 대로 빠른 시간 내로 통반장을 통해 배급해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맹인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믿어 볼 도리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잘됐다며, 나흘동안 이나마 편히 쉬게 된 것을 반가워하는 맹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오후 늦게까지도 구호양곡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못 견딘 맹인들은 통·반장을 다그쳐 동회로 몇 번 보냈다. 그때마다 매인들에게 들어온 것은 구청으로부터 아직 배급 지시를 받지 못했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러고는 그만이었다. 로마 교황이 오긴 전날, 많은 수의 맹인들이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들은 잠자리에 누워 생각했다. 내일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면 앵벌이를 나가야만 될 것이라고.

 맹인들과 전투경찰들이 대치하고 있는 광경은, 눅눅한 초여름의 습기를 흠뻑 뒤집어 쓴 채 답답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은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상태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악을 쓰는 것처럼 질러대는 비명소리가 그러한 짜증스러움을 싹 걷어내 버렸다.
 "떨어졌어! …아, 뭐해요! 영철이가 떨어졌어요!"
 모든 눈동자가 목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병원… 구급차 불러요! …비켜요, 비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댓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를 두 팔에 안고 엎어질 듯 뛰어오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맹인들 주변에 멀찌감치 몰려 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질겁을 하면서 비척비척 물러섰다.
 아이는 흰자위가 깔린 눈을 반쯤 뜬 얼굴에다 사지가 축 늘어진 채 머리와 코에서 피를 쏟고 있었다.
 청년의 옷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청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핏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김씨 아저씨! 김씨 아저씨 어디 계세요? 영철이가 옥상에서 떨어졌어요! 아저씨… 구급차…"
 사람들은 멍하니 청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맹인들의 육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우왕좌왕하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다.
 "워메에, 이참엔 또 언 집으 아그가 떨어져 죽었는갑네. 화이고메, 복장 터져야!"
 "김씨? 영철이? …워메, 이걸 워쩌! 구멍가게 삼 층 사는 김씨 아들 영철이를 말하는 거다여? 화이고메, 그 아그까정?"

 말을 하다 말고 이 맹인 여인은 쿨척쿨척 울기 시작했다.
 그 사이 청년은 헉헉거리는 숨결을 다잡으며 전투경찰들 앞에까지 뛰어갔다. 그는 비켜달라는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한 전투경찰들은 가슴 높이로 방패를 들어올리면서 청년의 앞을 가로막았다.
 청년은 그들을 뚫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아이를 추스린 뒤 전투경찰들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땅바닥만 보는 전투경찰도 있었다.
 그때 전투복 차림의 경찰 책임자가 나타나서 청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빽 질렀다.
 "어이! 이봐, 이봐! 상부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거기 서 있던가, 저 위쪽 언덕으로 돌아가든가 해!"
 청년이 움직임을 멈추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봐요! 애가 죽는데 상부지시가 뭡니까? 빨리 비켜주세요. 병원엘 가야잖아요!"
 "어허 참! 글쎄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아야지. 젊은 친구가 왜 그리 말이 많아! 나중에 무슨 사고라도 나면 책임질 거야!"
 사고는 이미 벌어져 있었다.

 달동네에도 상·중·하 계층으로 분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일진대, 달동네 하층 빈민들처럼 "오늘 하루 벌어 내일 하루 먹는" 맹인들의 일상생활이란 뻔한 것이다. 거기에다 의지가지가 되고자 이런저런 이유로 모여 사는 곳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날마다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맹인들이 생계를 꾸려 가는 방법은 몸으로 때우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한 원시적인 방법이다 보니, 그들은 스스로를 "사회의 기생충"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맹인들의 생산양식은, 현대인의 의식 속에 뿌리 박혀 있는 자본주의 생산개념으로 따진다면 GNP 상승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던 천대받고 홀대 당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맹인들이 살아가는 방법?
 요령소리가 나도록 안마를 해주고도 오히려 도둑으로 몰리는 일 정도는 아예 이야기거리가 되지 않는다. 안마를 해주다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약점 때문에 강간을 당하고도 빈손으로 허부적거려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분한 마음에 강간죄로 고소를 하는 때도 있지만, 되레 무고죄로 입건 당하기가 일쑤다.
 육교 위나 지하도 입구에서 하루 종일 기타 치면서 노래 불러 앵벌이 해놓은 돈 통을 들고 튀어버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해 보지 않은 맹인은 맹인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맹인들이다.  
 뜨거운 국을 쏟는 바람에 아이들의 몸 군데군데에 시커먼 흉터를 남기는 일은 너무나 많다. 맹인 부모가 앵벌이 나간 사이에 끓는 물에 빠져 죽거나, 온몸이 데쳐 놓은 시금치처럼 늘어져 신경이 마비되는 바람에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도 많다.
 옥상에서 놀다가 떨어져 죽는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맹인자녀들을 모아 기초적인 교육을 해주는 곳이 다만 몇 군데만 있어도 사고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백여 명의 맹인 중에서 전날 저녁을 라면으로 때운 이백 명에 가까운 맹인들은, 자식들을 굶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다음날 아침 집을 나섰다. 환경미화 단속반원에게 적발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은 그들 모두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로마 교황이 돌아가는 날까지 사흘동안-동회에서 준다던 구호양곡조차도 나올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라면으로나마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면 어쨌든 오늘 하루를 행인들의 자비심에 기대에 보는 도리밖에는 다른 방법이라곤 없었던 것이다.
 욕쟁이라는 별명이 붙은 맹인 전씨도 앵벌이를 하러 나갔다. 그는 굳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이유만으로 앵벌이를 나선 것은 아니었다. 무슨무슨 이름이 붙은 벌거죽죽한 국제적인 행사가 벌어지거나, 외국에서 누가 옵네 하는 날만 되면, 어김없이 맹인들에게 날아드는 "거리질서 확립과 환경미화 단속지침"에 반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반발심 때문에 맹인 전씨는 단속반원과 육두문자를 싸가며 대판 싸우기를 수십 차례나 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즉결재판 회부였다. 그래도 맹인 전씨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떤 때는 법정에서 즉결담당 판사에게 온갖 육두문자를 내지르다 과료 오천 원 선고로 끝날 사건을 법정을 모독했다 해서 구류 칠 일을 살고 나온 적도 있었다.
 맹인 전씨의 표현인즉슨, "똥토칸(변소)에 앉아서 강세이새끼(개새끼) 부리듯, 툭하면 맹인들을 우습게 아는 인간들이 미워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전씨가 맹인이 된 것은 나이 서른두 살 때였다. 이십대 초반에 부모를 여윈 그는 경남 창원에서 스물다섯 살 때 결혼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던 평범한 농투산이었다. 살아가기 고달프기야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했지만, 적어도 전씨는 그때까지 남한테 해꼬지는 않고 살아왔다.
 그러던 것이, "수출만이 살길이다!" "공업입국"을 미친년 널뛰듯 밀어붙인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이 전씨의 논밭에 팻말을 꽂았다. 마산 수출자유지역공업단지 건설에 이어 창원에도 공업단지 건설의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일반 매매가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부의 일방적인 지가(地價) 결정에 따라 강제나 다름없는 농지매입이 시작되었다. 전씨와 몇몇 농투산이들은, 죽어도 논밭은 팔 수 없다며 마지막까지 버팅겼지만 쫓겨나다시피 당하고 말았다. 정부가 <토지수용법(土地收用法)>상의 "강제수용(强制收用)" 조항을 발동한 것이다. 강제수용 절차에 따라 아야 소리도 해보지 못한 채, 전씨는 정부공시 지가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결국 논밭을 빼앗겼다.
 쥐꼬리만한 토지수용보상금을 받아 쥔 채 길바닥에 나앉은 전씨 부부는 마산이나 진주 등지로 전전했다. 그러나 농사일밖에는 해본 적이 없었던 탓에 토지보상금으로 받은 도만 야금야금 없어질 뿐, 도무지 생활이 나아질 기미는 전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전씨는 홧김에 밤에만 조금씩 마시던 술을 낮밤 가리지 않고 마시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 여파로 부부싸움이 더욱 잦아졌다.
 전씨 부부는 상의 끝에, 엎어져서 죽으나 드러누워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일 바에야 대처에서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부부는 남아 있는 토지보상금을 탈탈 털어 중랑천변의 판자촌 동네에다 하꼬방을 사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일 년도 되지 않아 정부의 대대적인 판자촌 철거 지시에 밀려 경기도 광주(성남)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서울 물정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전씨 부부가 하꼬방을 살 때 여러 사정을 알아보지 않고 복덕방 말만 믿은 것이 불찰이라면 불찰이었다. 죽었으면 죽었지 또다시 쫓겨날 수는 없다며 악다구니로 버텼지만, 전씨에게 돌아온 것은 철거반원의 무자비한 몽둥이 찜질이었다. 그 때문에 전씨는 온몸에 골병이 들고 말았다. 다른 철거민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전씨 부부는, 이주비용과 보상금조로 나온 병아리 눈물 같은 몇 푼을 달랑 쥔 채 가재도구와 함께 청소차에 실려 허허벌판인 경기도 광부에 쏟아 부어졌다.

 사람의 목숨은 참으로 질기고도 질긴 것인가. 상·하수도의 기본적인 주거환경은커녕 진흙 밭이나 다름없이 질퍽거리는 맨땅에 팽개쳐진 전씨 부부는, 맨손으로 흙벽돌을 찍어 허름하게나마 몸을 기댈 곳을 마련했다. 사람들과 힘을 합쳐 고랑을 내어 하수도를 만들고 공동우물도 팠다. 정부는 남의 초상집 구경하듯 단 한 푼의 지원금도 보내주지 않았다. 그러는 도안에도 전씨는 골병 든 몸을 이끌고 서울로 날품팔이를 다녔고, 그의 아내는 과일이나 사탕, 김밥 등을 담은 찌그러진 양은대야를 머리에 이고 하루 종일 공사판을 누비고 다니면서 팔았다.
 그러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쪼들려만 갔다. 가슴속에 덩어리처럼 쌓여 가는 화를 견디기 힘들었던 전씨는 한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그와 비례해서 부부싸움을 하는 횟수도 늘어만 갔다. 술에 취한 전씨의 입에서는 주워담기는 고사하고 새겨듣기에도 힘든 육두문자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전씨는 특히 완장을 차고 다니는 사람(공무원)들을 보면, 그가 누구인가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무차별로 욕을 퍼부어 댔다. 그 바람에 파출소나 경찰서에 끌려가 수없이 곤욕을 치루면서도 그 짓을 계속했다.

 견디다 못한 전씨의 아내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헤어지자"는 쪽지를 남기고 떠나가 벼렸다. 정신이 번쩍 든 전씨는 만사 젖혀놓고 아내를 찾아 나섰으나 허사였다. 전씨는 이제 홧병까지 겹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흔히 "광주 대단지 폭동사건"이라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터졌다. 그때까지 이방인을 대하듯 나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가 슬그머니 세금고지서를 발부한 데서 사건이 발단된 것이다.
 강제철거로 쫓겨와 그 도안 죽지 못해 살아왔는데, 이제 그나마 간신히 한숨 돌리나보다 하니까 세금고지서를 보내? 지금까지 박정희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길래 이런 개수작이냐! 사람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차곡차곳 쌓여왔던 원한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정부에서 일당을 주고 동원한 깡패들과 철거민들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그때 전씨는 곡괭이 자루로 깡패 몇 놈을 죽지 않을 만큼 작신 패버렸다. 철거민들의 엄청난 분노에 놀란 정부는 군인들까지 동원했다. 철거민들과 군인들의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으나, 잘 훈련받은 군인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전씨는 군인들이 휘두른 진압봉에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서야 풀려났다.
 진압봉에 머리를 맞을 때 시신경이 손상된 것을 몰랐던 전씨는, 그 일이 있은 지 이 년 뒤 맹인이 디고 말았다.
 "지기미! 나가(나이가) 삼십이 넘어가꼬 눈깔이 안 보인께네 고마 딱 미치뿔겠는기라."

 맹인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 어쩌다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나면, 전씨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껌벅이며 신세한탄을 했다. 전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누구라고 하는 인식 즉,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맹인이 되어버리는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기간이 어느 정도 단축된다. 그러나 전씨 같은 나이에 맹인이 되는 경우는 산다는 것에 대한 고통과 함께, 예전엔 무엇이든지 볼 수 있었는데 하는 기득권(?)에 대한 향수가 겹치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맹인 동네에 몰려 살고 있는 맹인들은 전씨와 같이 사고로 인해 실명한 사람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맹인 즉, 배냇봉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배냇봉사는 주로 임산부의 잘못된 약물복용이나 음주, 흡연, 영양부족, 의사의 양수검사 실수 등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두고두고 회한이 생기는 것이다.

 경찰 책임자를 잠깐 노려보던 청년은 아이를 안은 채 언덕을 뛰어올라갔다. 아이의 아버지 김씨는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맹인들은 허탈감에 젖어 하나둘 땅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아예 다리 사이에 고개를 파묻거나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실제로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한 대치상태는, 길 건너쪽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구경꾼들과 전투경찰들이 마주 보고 있는 이상한 모습으로 비쳤다.
 청년이 다시 돌아온 것은, 주변 건물의 사무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쏟아져 나올 때쯤이었다. 청년은, 피칠갑이 된 얼굴로 추욱 늘어져 건들거리는 아이를 두 팔에 안은 채였다. 청년은 등허리에 흘러내린 땀과 피가 범벅이 되어 옷을 흥건히 적신 모습이었다.
 불어난 구경꾼들이 청년의 모습을 보고 웅성거렸다. 전투경찰들은 발 앞에 내려놓았던 방패를 앞가슴께로 끌어올렸다.
 청년은 그들의 방패를 쏘아보면서 한동안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구경꾼들 숫자는 자꾸만 불어났고, 웅성거림도 점차 커져갔다. 그들은 맹인들의 다음 행동에 대해 갑론을박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맹인들은 구경꾼들의 예상과는 달리, 청년이 돌아왔을 때 그들 특유의 유감으로 상황을 감지하고 있었다. 맹인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구경꾼들의 웅성거림만 안개 밑을 흐르는 습기처럼 깔리고 있을 뿐이었다.

 청년은 안고 있던 아이를 전투경찰들의 발치에 내려놓은 뒤 맹인들과 구경꾼들을 향해 돌아섰다.
 "병원엘 갔더니요, 의사가 하는 말이 이미 죽었다고… 큰 병원으로 가면 안되겠냐고 했는데… 가진 돈이 없어서 그냥 데려왔습니다."
 청년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가 아이의 주검을 껴안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때였다. 나일론 보자기가 쫘악 소리를 내면서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언덕의 침울한 분위기를 한달음에 밀어내고 말았다.
 "영철아! …영철아! …내 새끼, 어이구 내 새끼!"
 구경꾼들의 시선이 일제히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쏠렸다.
 여인은 맹인이었다. 더듬거리면서도 마음이 다급한 듯한 동작으로 맹인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여인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죽음의 냄새를 맡은 것처럼 주검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청년이 여인에게로 달려갔다.
 "아줌마, 저, 구멍가게집 아들 형우에요. 안 넘어지게 조심하세요."
 여인은 형우라는 청년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동작으로 앞으로만 걸어내려 갔다. 청년은 여인의 팔을 붙잡아 천천히 아이의 주검 쪽으로 이끌어주었다.
 여인은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아이의 몸 이곳 저곳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다리와 가슴을 만져보고는, 손끝에 불길이 닿은 것처럼 화급해 하며 자꾸만 아이의 다리와 가슴을 더듬었다.
 그 동작을 반복하는 여인의 눈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아이의 주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인의 몸이 햇볕에 서서히 녹아 내리는 눈사람처럼 동그마니 오그라들면서 아이의 가슴에 귀를 갖대 대는 자세로 변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엎드려 있던 여인이 고개를 흔들면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얼굴 가득 마른눈물 자욱이 얼룩져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듯한 여인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면서, 언덕 여기저기에 패어 있는 웅덩이에 고여들었다.
 "……이 애가… 아버지가… 아버지가 세 번이나… 그려여, 세 번씩이나…"
 여인은 중얼거리다 말고는 한쪽 손으로 아이의 주검을 자꾸만 어루만졌다.
 청년은 여인의 다음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맹인 동네에 살고 있는 다른 주민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영철이는 유달리 눈치가 빠른 아이였어. 나이에 맞지 않게 되바라진 부분도 많았고, 어떤 때는 얄밉기조차 한 경우도 있었어. 두 살 때부터 허리에 줄이 매어져 어머니 길 안내를 하면서 앵벌이 다닌 녀석… 별명이 뺀질이였지. 난 꼬마 악마라고 불렀어. 어머니가 세 번씩이나 남편을 바꿔가면서까지 영철이를 키워 왔는데, 이렇게 죽고 말다니.
 여인의 중얼거림은 계속되었다.
 "영철아, …철아, 나가 말이여 응, …으쨌든지 니를 잘 키워볼라고… 놈에 손가락질도 모른 척허고 …니 성(姓)을 세 번식이나 바꿔가면서 살았지러… 응? 그려그려, 응… 그려…"
 여인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사람들 눈에 들어왔다.
 "니기, …니기 애비는 이것도 몰르지야… 몰르지야… 워디서 우리처럼 갇혀 있는지도 몰르지야. 노마, …노마 교황이 오믄 믓헐거! …예수가 오믄, …예수? 그려, 예수가 오믄 믓헐겨! 믓헐겨!"
 여인의 몸이 모로 엎어지면서 추욱 늘어져버렸다. 청년이 황급히 여인의 어깨를 싸안듯이 일으켰으나 흔들거림만 일렁일렁 일어날 뿐이었다.

 맹인들은 앉거나 선 채로 나직하게 울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비슷한 사고로 자식을 잃어버린 사람이 몇 있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전투경찰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헛기침을 뱉아내곤 했다.
 여인의 몸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여인은 안간힘을 쓰면서 일어서려다 스르르 무너져내리 듯 그 자리에 드러눕곤 하는 동작을 계속했다. 여인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청년이 여인의 팔꿈치를 잡아주면서 몸을 가누게 해주었다.
 "내 새끼가! …내 새끼가!…"
 여인이 다시 까무려버렸다. 맹인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져가고 있었다. 한 무리의 전투경찰들이 황급한 군화발 소리를 내면서 뛰어왔다. 그들은 동료들 뒤에 이열횡대로 늘어섰다.
 "노마 교황이 머하는 작자고! 그노마 자석, 일로 오락캐라!"
 욕쟁이 전씨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전투경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방패를 치켜 올렸다.
 그 광경을 바라다보고 있던 구경꾼들 사이에서는 얼굴 가득히 냉소가 피어올랐다. 간간이 "나쁜 놈들"이라는 말도 튀어나왔다.
 욕쟁이 전씨의 악받친 목소리를 다른 맹인이 이어 받았다.
 "홧따메, 참말로 요상시럽소잉! 먼놈으 씨불놈들이 오는 날만 되면 꼭 우리 아그들이 죽어나가뻔지니, 이게 먼 놈으 요상시런 조화다여?"

 "맞다, 맞다고마. 무신 씨발노메 교황인지 그 자석은 우리 영철이 직일라꼬 온기라! 머라꼬, 사흘? 사흘 억수로 좋아하고 자빠졌네! 아나, 사흘 동안 뱃창새기에 똥덩어리 꾹꾹 눌러담아가꼬 눈깔이 고마 뺑글뺑글 돌아삘 교황노메 새끼. 지는 사흘 동안 밥도 안 처묵나! 한 끼만 안 처묵어도 상갓집 강쌨이 새끼맹키로 샛바닥 빼물고 헷소리 해가면서 힛떡 디비질 새끼가, 머라꼬? 사흘이 어떳타꼬! 아나, 이 똥물에 팍 티기가꼬 너거 애비 제사에도 몬쓸 새끼야! 니가 예수가? 예수 숭내 내사크로!"
 구경꾼들이 키들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홤메, 나가 혈 소리 욕쟁이 전씨가 다해뻔지내이. 아, 고것만 있간디. 나도 말이시, 보이진 않어도 눈깔 있응께 볼 건 다 보고, 콧구멍 귓구멍 모두 있응께 알 건 다 안단 말이시. 쩌번에 성당엘 간께, 젊은 신자들이 쑤군쑤군 대더란께. 노마 교황이 지기 집구석으로 빠꾸 혈 때 거 머시여, 백삼위성인(白三位聖人) 인정해 주고 몇백억 챙겨 갈 꺼라고 떠들어쌌등만. 예수 폴아 장사허는 수뻡이 아님 머다여?"
 그동안 아이의 주검과 실신한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청년이 주변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또다시 확성기에 실린 경찰 책임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해산하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경고한다, 해산하라! 이후에 벌어지는 사태는 경찰 책임자의 얼굴에 대고 주먹을 날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구경꾼들의 입에서 가느다란 비명이 새어 나왔다. 청년이 미끄러지면서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곧 이어 우루루 몰려든 경찰간부들의 군화발 세례를 받고는 비명을 지러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청년은 다듬이 방망이에 흠씬 두들겨패진 광목처럼 늘어진 채 질질 끌려가버렸다.
 경찰 책임자는 잔뜩 화가 난 듯한 모습으로 맹인들을 쏘아보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 언덕 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빨리 해산 않으면 연행하겠다! 해산! 해산!"
 대부분의 구경꾼들은 슬금거리며 몇 발자국을 움직일 뿐, 흩어지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죽은 아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랬지러. 오 년 전이었제. 그 날도 난 영업이 끝나 남편허고 포장마차를 끌어가고 있었당께. 등더리엔 갓 태어난 영철이를 업고 서부역 앞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지러. 그란디… 오메 징한거! 머신가 쿠당탕 허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시아. 몇 달 뒤 내 손엔 달랑 사백만 원이 쥐어지등만. 영철이 아배 목심값이었제. 그걸로 영철이를 키워볼라고 살림방이 딸린 양품점을 시작혔지라. 그란디… 사고 후유증 땜시 자꾸만 앞앞이 뿌우얘지는 걸 워쩐댜. 그라등만 그여… 화이고!

 전투경찰들의 무전기에서 칙칙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듯, 맹인들이 수런거리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죽음? 그려요, 영철 아부지. 글안혀도 몇 날 며칠을 두고서 생각혔다니께요. 친척집에 영철이를 맥끼놓고, 죽어뻔질라고 열흘동안 곡기 한 술도 안묵고 지내봤당께요. 웬걸요. 살아도 산게 아닌 목심, 뭐가 그리도 두고 못 갈 게 많이도 남았는가 영철이가 자꾸 꿈에 나타나쌌는 걸 으짠다요. …아이고메, 이 야속헌 양반아! 워디 북망산천 한지락 따땃헌 곳에 자리나 지대로 잡으셌소? …나 말이요? 영철이 땜시 성당에 나가기 시작혔고, 영철이 땜시 맹인 동네로 이사혔고, ―동네 아그들이 영철이를 맹인 자식이라고 놀려쌌는 바람에 날마다 울고 들어옵디다요. 그려서 이사혔지라. ―영철이 땜시 재혼했당께요. ―나처럼 앞 못보는 사람과 살았당께요. 그저그저 살 붙이고 살다 보믄 정이 들지 않을까 생각혔등만, 나가 못전디겄습디다요. 다아 내 탓이지요. 정도 없이 산다는 게, 오메 왠지 징그럽다는 생각뿐이고, 그러구저러구 살다봉께 하루하루가 징헙디다요. …잊을라고, 당신을 잊어뿔라고 술을 마시기 시작혔지라. 그러다봉께 그 사람허구 헤어지게 됩디다요.

 전투경찰들의 군화발 소리가 길바닥에 바쁘게 흩어지고 있었다.

 ―먼 술을 고로코롬 징허게 마셨냐고 묻고 싶지라? 그렇게 묻지 마시쇼. 당신도 속이 상헐 땐 술 마시지 않았던감요. 술 심부름? ―아이고 글씨 말이요, 영철이 이놈이 시 살이 채 되지도 않었는디 지기 허리에 줄을 매고는 이 에미 길 안내를 허드랑께요. 넘들은 지나는 말로 똑똑허다고 헙디다만, 그거이 아니지라. …그러다봉께 내 가심엔 가난과 설움의 보따리 말고 못질당한 마음 담는 보따리가 한나 더 늘었지러.

 "사과탄 준비!"
 경찰 책임자의 명령이 떨어졌다. 맹인들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그들 나름대로 설마 맹인들에게까지 취루탄을 던지랴, 괜히 겁을 주려고 그래보는 것이겠지 하는 마음에서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느물거리는 사람까지도 있었다.
 욕쟁이 맹인 전씨가 조용히 일어섰다.
 "자, 우리가 안있습니꺼,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기도 에렵다 아입니꺼. 우쨌든 우리 당달봉사들을 고마 딱모아주신 노마 교황한테 고맙다는 인사치레나 하입시더."
 자그마한 웃음소리가 사람들 사이로 흘렀다. 전투경찰들 중에서도 고개를 숙이면서 입을 움찔대는 모습이 보였다.
 욕쟁이 전씨는 자신의 기타를 집어들고 찬송가 곡조를 뜯기 시작했다. 반주곡조에 따라 그가 노래를 부르자,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맹인들이 여기저기서 따라 불렀다. 앵벌이 맹인들의 주제곡처럼 되어버린 찬송가였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야곱이 잠 깨어 일어난 후
 ………………………

 ―영철이는 인자 죽어뻔짓소. 당신이 데불고 가신 것으로 알랍니다. …인자 남은 건 나 한 목심빼끼 읍응께 맴이나 팬허게 지내라구라? 보씨요, 영칠이 아배. 괜시리 가심이 찌아헌께 한마디 혀보는 것이겄지라. 오늘 겉은 요런 날이 우들에겐 너무도 많이 닥쳐와쌌는디, 그때마다 복장이 터져 못살 거 같당께요. 보씨요, 영철 아배. 난 말이요, 지금 머가 머인지 알 수가 읍당께요. 노마 교황이 오는 날 영철이가 죽어뻔짓소…

 여인은 눈을 뜬 뒤 몸을 가누려고 애를 썼다. 생각대로 몸이 말을 듣지 않자, 허리를 펴면서 죽은 아이를 끌어안으려 했다.
 최루탄이 언덕의 양쪽 벽을 때리면서 펑 펑 터지기 시작했다. 맹인들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방향 감각을 잃고 나뒹굴었다. 구경꾼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맹인들의 기타와 앰프가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언덕 아례로 굴러가고 있었다. 전투경찰들이 언덕 위로 우루루 몰려가서 맹인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저녁.
 각계 명사들이 빽빽이 들어찬 만찬장. 군계일학처럼 인자하게 웃음을 띤, 화려한 제의(祭衣)를 입은 로마 교황의 모습이 칼라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났다.
 교황은 두 팔을 펼치면서 서툰 한국말로 "캄싸합니"를 연발했다. 그는 만찬장에 모여 있는 외교 사절들과 한국민들, 그리고 그 자리를 마련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차고 흔들어 넘치도록 축복기도를 내려주었다.
 교황의 만찬 축복기도 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얼굴 하나 가득 축복 받아 희열에 들뜬 모습을 잔을 높이 치켜들기도 했고, 세련되고 우아한 자태로 뷔페식 요리를 먹기도 했다.
 교황은 눈길이 가는 사람마다,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옆으로 다가오는 사람 모두모두의 머리머리 위에 다시금 축복을 내려줄 듯, 얼굴 가득 인자한 웃음을 띠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 시각.
 털털거리는 환풍기 옆에 흑백 텔레비전이 파리똥 섞인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져 있는 맹인 동네 선술집. 이곳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화면의 변화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웃음소리와 고함소리, 닭갈비 굽는 냄새가 한데 어우러지며 환풍기 날개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밤은 가난한 이곳 사람들에게 생기를 찾게 해준 것이다.
 "좌우간 죽일 놈들이야! 아무리 개지랄 같은 세상이래도 그렇지, 앞을 못보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 사람들한테다 최루탄을 던지다니!"
 "그 사람들, 육교 위에서 앵벌이 하다가 끌려 온 얘기 들어보니까 괜히 나까지 화가 나더라니까. 맹인 한 사람에 전경들 셋이 달라붙어 허리띠를 움켜쥐고 질질 끌어다 놓더래. 욕쟁이 전씨는 따지고 싸우다가 골목으로 끌려가서 두드려 맞았다두만."
 "예나 지금이나 가진 거 없고 힘없는 사람들 눈에서 눈물 나오게 만든 놈 치고 잘된 놈 못봤어."
 "…최루탄 쏜 거야 잘못했지만, …그래도 나라 잘되게 하려고 그런 건데…"
 "뭐야? 이런 젠장! 누가 자네 이 동네 정화위원 아니랄까봐서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건가! 빌어먹을, 그놈의 정화위원횐지 똥통위원횐지, 술맛 확 떨어지네! 씨부랄!"
 "아니, 뭐야?"
 "그럼, 내 말이 틀렸어? 그 맹인들, 앵벌이조차도 못하는 바람에 어제하고 오늘 라면만 먹었다는데, 그게 잘된 거야? 더구나 어린애까지 죽었는데."
 "……"
 "그 사람들 말이야. 거의 다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험하게 당하고도 기도가 나올까? 아무리 종교가 좋아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데. 나 같으면 입에서 욕밖엔 안 나올 거야. 젠장!"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녁 아홉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는 흑백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만찬장 분위기를 전해 주고 있었다. 몇 잔의 술이 오갔다.
 "…다른 사람들은 교황이 갈 때까지 거리에 나오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났는데, 영철이 엄마하고 형우만 아직 못 나왔잖아."
 "최루탄 터지고 나서 경찰들이 영철이 시체하고 계 엄마를 끌고 가던데… 형우 그놈은 어디 한군데 부러지지 않았나 몰라. 개 밟히듯 밟혔는데…"
 "영철이 아버진 경찰서에 데려다 달라고 꺽꺽 목이 쉬어 울어도 경찰이 안 보내주니까 술만 마시고 있더라구. 어이구 …이 개쌍놈의 세상. 그 사람, 저기 남산 쪽 언덕 아래서 붙들려 있었다두만."

 이틀째 밤이 가고 사흘째 아침이 왔다. 여인과 청년은 동네에 나타나지 않았다.
 로마 교황은 자신의 보금자리로 날아갔다. 여전히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연도의 많은 사람들은 1984년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를 신의 이름으로 차고 흔들어 넘치게 축복해 준 로마 교황의 떠나감이 못내 아쉬운 듯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저녁은 찾아왔다.
 맹인 동네 선술집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닭갈비 굽는 연기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었다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쓴 흑백 텔레비전에서는 "교황 방문의 의의와 한국의 위상"이라는 제목의 특별좌담 생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맹인들은 여전히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켜 놓은 텔레비전 "특집 쇼"에서는 "아아,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무희들의 가랑이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여인과 청년은 교황이 돌아간 날 밤 늦게 경찰서에서 풀려났다 청년은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입술이 터진 채였다. 영철이 장례는 행정당국에서 치루어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청년은 넋이 나간 것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인을 부축하여, 명동성당 앞 골목길에 늘어서 있는 작고 허름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여인이 술을 마시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술집은 텅 비어 있었다.
 소주를 몇 잔 마신 여인은 조금은 생기가 도는 듯 자꾸만 중얼거렸다.
 "영철아, …영철아…"
 "영철이 어머니, …그만 가셔야조. 댁으로 가서 좀 쉬셔야잖아요."
 "……"
 청년은 여인을 부축하고 술집을 나왔다. 사람들이 두 사람을 흘끔흘끔 바라다보면서 지나갔다. 여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형우 총각, …미안허지만, 나, 돌팍 한나만 주워다 주어. 안 큰 걸로…"
 "돌멩이요? 그건 뭐하시게요?"
 "글씨, …부탁이여, 돌팍 한나만…"
 여인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사정하는 투였다. 청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여인을 벽 쪽으로 이끌어 세워둔 뒤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한참만에 성당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서 동그랗게 다듬어진 어른 주먹 크기의 돌멩이 하나를 찾아 여인에게 가져다주었다. 여인은 그 돌멩이를 두 손으로 감싼 뒤 가슴께에 갖다 대고 꼬옥 안았다.  
 "…부탁이 한나가 더 있는디…"
 "……"
 "성당 앞마당까장만 좀 데불고 가줘. 부탁이여."
 "뭐하시게요. 시간도 늦었는데 그만 댁으로 가시죠. 아저씨가 기다리고 계신 텐데요."
 "아녀, 아녀!"
 여인은 고개를 좌우로 심하게 흔들고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하냥 그렇게 서 있겠다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가슴에 안은 돌멩이를 자꾸만 어루만졌다.
 청년은 여인을 성당 쪽으로 천천히 이끌기 시작했다.
 여인은 성당 앞마당에 도착할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자세 그대로 청년을 따라갔다. 성당 주위는 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첨탑 바로 밑에 붙박힌 커다란 시계만이 뿌여 형광을 발하면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성당 앞마당에 도착한 여인은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예수의 모습을 만들어 세워 놓은 석상 앞으로 걸어가서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가슴에 안고 있던 돌멩이에 얼굴을 묻었다.
 "내 아들 살려내―"
 여인은 성당 구내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처절한 소리를 지르며, 가슴에 안고 있던 돌멩이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렸다. 그것은 마치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가 영성체를 하기 위해 잔을 높이 들어올리는 모습과도 같았다.
 "뎅― 뎅― 뎅―…"
 자정을 알리는 성당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인이 예수 석상의 발치를 있는 힘을 다해 돌멩이로 내려쳤다.
 "퍽! 퍽! 퍽!…"
 돌과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송곳처럼 끝을 세우면서 성당 구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상 밑 부분이 조금 부스러졌다. 종소리는 계속 울려 퍼졌다.
 "뎅―…"
 "내 아들 살려내―"
 성당 관계자들이 몰려나왔다. 그들은 여인에게서 돌멩이를 빼앗은 다음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고는, "일일이에 신고해!"하고 외쳐댔다.
 잠시 후 여인은 경찰의 손에 끌려갔다. 성당관계자들은 부서진 석상의 이곳 저곳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며 분주하게 왔다갔다했다.
 저 멀리에서 여의 마지막 목소리가 마지막 종소리에 묻히며 들려왔다.
 "내 아들 살려내―"
 청년은 망연자실 그대로 서 있었다.
 성당 첨탑 꼭대기 십자가 위에 꽂힌 피뢰침에 별이 하나 걸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길군화(折芯): 임진왜란 이후에 생긴 말로서, 단지 조선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왜놈들에게 죽임을 당한 민중을 일컫는 말. "꺾어진 동심초"라는 뜻이다.

글/정희수

 

작성자정희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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