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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볼래씨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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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볼래 씨는 분노했다.
안 그래도 시절이 하 수상타했더니 드디어 갈 데 까지 간 모양이었다. 평온하던 사회 분위기를 거스르며 난데없는 민주화 태풍이 불더니 노동자 농민 장애인이 생존권 운운하며 들고 일어서고 하나도 아쉬울 것 없다 싶은 석사, 박사, 기자, 심지어는 공무원에 학교 선생들까지 노동조합을 만들며 세상을 시끄럽게 휘저었어도 다볼래 씨는 그런 대로 참을 만했다.

내심 불쾌했지만 그럴 수도 있으려니 접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다볼래 씨에게 다가왔다. 다볼래 씨는 마치 믿었던 도끼가 발등만이 아닌 온몸을 난타질 하는 참혹한 기분을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드디어 좌경 용공 세력이 농간을 부리기 시작한 거야..."

다볼래 씨는 터질 듯한 분노 때문에 부르르 몸을 떨어야 했다. 조짐은 그 망할 놈의 민주화가 주범이었다. 전씨 성을 가진 지도자가 그렇게 맥없이 물러날 줄은 다볼래 씨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사회분위기가 위대한 새 시대를 연 지도자가 물러나자 마치 미친 년 날뛰듯이 제멋대로 춤추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설마 했던 방송국에까지 덜컥 노조란 괴물이 들어선 것이다.
처음 다볼래 씨는 노조가 그저 월급이나 올려 받으려고 지랄을 떠는 조직인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괴물이 간덩이가 부었는지 월급인상 같은 본연의 직무는 제쳐두고 방송국 프로그램에 떡 하니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잘됐네 못됐네, 감내라 팥 내라 성명서를 내며 시시콜콜 간섭하기 시작하더니 좌경세력을 비호하는 프로를 만들어 서슴없이 방송하는 것은 물론 직속상관을 어용으로 몰아붙여 하극상을 일으키기 일쑤였고 그것도 모자라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며 데모까지 벌이는 데는 기가 차서 말이 제대로 안나올 지경이었다.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이 안하무인격으로 커져만 가는 이 괴물에 불안감을 느낀 건 비단 다볼래 씨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볼래 씨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방송국 동정에 애태워야 했는데 결국 이런 사태가 닥친 것이었다.
저간에 노조측이 주장하는 편성국장 직선 운운을 텔레비전 화면 자막으로 읽게 되었을 때 다볼래 씨는 충격은 받았을지 언 정 그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채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며칠 전 사장 직선 운운을 화면 자막으로 또다시 읽어야 했을 때 비로소 다볼래 씨는 확연하게 사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좌경 용공 세력이 방송국을 말아먹으려 공작하고 있는 작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호를 부르짖는 정부의 공권력은 어디서 낮잠을 자고있단 말인가, 다볼래 씨는 며칠을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애태워야 했었다. 그 예감의 끝에서 다볼래 씨는 바로 어제 노조측의 요구가 전격적으로 받아 들여져 방송국이 사장 직선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여느 때 같으면 늘씬한 팔등신의 미녀와 날렵한 첩보원이 엮어 가는 스릴만점인 외화가 방송되어야 할 시간에 외화대신 난데없이 등장한 도수 높은 안경을 걸친 반우민 사장이란 작자가 지껄이는 앞으로 일주일 간 방송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일방적인 조치를 통고하는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원자폭탄으로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겠다는 선전포고에 비길만한 엄청난 공갈협박이었다.
방송을 중단하겠다니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란 말인가

반우민 사장이란 작자 왈
"이제 우리 방송은 그동안 정권의 시녀로 전락해 일방적인 지배 이데올로기 주입과 국민을 기만할 우민화 정책에 동원된 잘못을 깊이 반성하면서 새 경영진 출범을 계기로 사과한다는 의미에서 일주일 간 방송을 중단한 채 자성의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아무쪼록 국민 여러분께서는 거듭나기 위헌 우리의 뜻을 널리 헤아리셔서 방송의 중단을 수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운운하며 그럴듯한 이유까지 대는데는 더더욱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만약 전국 텔레비전 시청자 협회가 있다면 회장 자리는 당연히 차지할 자격을 겸비한 다볼래 씨이고 보면 이번 사태는 어느 모로 보나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시청자의 권리를 짓밟은 폭 거요 대다수 선량한 국민을 보모로 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다.

이 삭막한 시대에 텔레비전마저 볼 수 없다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이게 다볼래 씨의 분노하는 이유라면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매력을 느껴 아예 방송국 모니터요원으로 나선 고명딸 추자 에게는 직장을 상실할지도 모를 고비가 닥친 셈이며 오로지 연속극을 보는 재미하나로 바가지 한 번 긁는 일 없이 가계를 꾸려나가는 착한 마누라에겐 어쩌면 정신병이 생길지도 모를 심각한 위기가 닥친 것이다. 가장으로서 어찌 이러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지도 모를 불행한 사태를 두고만 볼 것인가,

다볼래 씨는 심사숙고 끝에 드디어 칼을 빼들기로 마음먹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보통사람들의 꿈과 희망인 방송을 지키기 위해서 반우민 사장과 한 판 승부를 내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반우민 사장과 다볼래 씨는 그 며칠 후 마주앉아 설전을 벌이게 되었다.
다볼래 씨는 어느새 급조해서 만든 그 이름도 긴 「방송 시청 권리 쟁취를 위한 전국 위대한 보통사람들 모임」 대표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다볼래 씨는 반우민 사장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에 또, 국운이 상승하여 세계만방에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열어 가는 이 시기에 불행히도 이러한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대역죄에 해당된다 아니할 수 없는 것이요,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의 방송을 시청할 권리를 짓밟은 이러한 폭 거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단 말이요 방송국 노조란 한 줌의 무리가 일으키는 이 같은 혼란을 보통사람들로 하여금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끔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본인은 반우민 사장이 취한 금번 방송중단 조치를 전면 철회하지 않을 경우 이번 사태는 현저히 적을 이롭게 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 시청 권리 쟁취를 위한 전국 위대한 보통사람들 모임」대표 자격으로 부득불 당신을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준엄하게 경고 하고자 하는 바이요"

더 이상의 위협이 필요 없는 적절한 발언이라고 다볼래 씨는 흡족해 했다.  반우민 사장이 말을 받았다. 반우민 사장은 자신은 방송국 사장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방송을 연구해온 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볼래 씨의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다볼래 씨께서 진정 방송을 아끼신다면 이번 조치의 불가피성 또한 인정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의 방송이 보여준 역기능을 헤아려 보십시오, 현실을 왜곡, 거짓되게 전달하여 대다수 국민들의 현실 감각을 흐리게 만들기 일쑤였으며 지배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주입, 사회의 민주화를 지연시킨 주범이 바로 방송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다양한 놀이문화를 말살시켰음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몰 개성화를 촉진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도 바로 방송의 그동안의 행 태였습니다. 퇴폐적인 상업성은 또 어떻습니까, 그거도 모자라......"
"그만 두시오 우리 위대한 보통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식하지만은 않소, 반우민 사장 당신은 지금 우리 보통사람들을 모욕하고 있어요."
"제가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외국의 예를 들어 안됐지만 문화가 발달하고 국민의식이 높은 나라 일수록 텔레비전 시청이 현저히 적습니다. 그들은 개인마다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고 취미를 즐기며 독특한 문화를 발달시키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경우를 보십시다. 이건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오로지 한 가지 텔레비전 보는 취미 밖에 안 가지고 있다 이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방송에 의해 획일화 될 운명에 처해 있어요.."
"당신의 말은 궤변에 지나지 않소, 도저히 승복할 수 없는 사대주의란 말이요"
"저의 충정을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무조건 방송을 속개 시키시오. 우리 대다수 보통사람은 어찌됐던 텔레비전을 보기를 원한단 말이오 아시겠소!"
"그렇게는 못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기회에 방송의 진실을 기필코 사수할 것입니다."
"뭐요, 어디 두고 봅시다!"

다볼래 씨는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다볼래 씨가 아니었다. 다볼래 씨는 방송국을 나오자마자 즉각 고소장을 써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사장의 처벌을 정식으로 촉구했다.
며칠 후 다볼래 씨는 반우민 사장이 구속 기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다볼래 씨는 물론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다볼래 씨의 불행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전혀 해소 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방송국 노조원들이 사장구속에 대한 반발로 당초의 일주일간의 기한을 무기한 파업으로 연장 시켰던 것이다.
다볼래 씨에게는 참으로 잔인하기만 한 불행의 나날들이었다.

작성자이하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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