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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팔수씨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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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폐장을 앞둔 증권가의 관심사는 온통 떠오르는 별 코솜기획이 기존의 선두주자 다운기획을 제치고 과연 파워게임에서 승리하느냐에 쏠려 있었다.
전망은 겉으로는 예측을 불허하고 있었다. 그동안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최고 수치를 갱신해 나가고 있는 다운기획이 그렇게 쉽사리 선두자리를 내어 줄리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코솜그룹 차원에서 다운기획을 겨냥해 만든 코솜기획이고 보면 총력전을 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주도 주로서 증권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위치를 선점한 상태에서 어느 회사가 먼저 신선한 상품을 발굴해내 놓은 가격에 파느냐에 따라 그 날의 장세가 좌우되는 요즈음의 증권시장을 감안해 볼 때 다운기획 보다는 코솜기획의 저력이 확실히 돋보이는 데가 있었다.

비교 적 늦게 파도를 탄 신출내기답지 않게 코솜기획은 단 한 번의 폭풍우도 만나지 않고 오히려 군소 회사들을 젖히며 목표점을 향해 순조로운 항해를 계속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이면에는 다른 회사와는 달리 철저하게 양보다 질 우선으로 상품을 개발해 낸다는 코솜기획의 경영방침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내고 있었다.

코솜기획은 절대 물량공세를 펴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확실하게 상품가치가 있는 인간을 발굴해내 시장에 내놓는 것이 주특기였다.
손재주가 뛰어나 무인기계의 고장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술자라든지 날로 번창해 가는 산업인 오락기 개발분야에서 개발에 일가견이 있는 천재 소년, 그리고 비록 얼굴 성형수술을 시켜 내놓긴 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미녀 무희 등, 획기적인 상품들이 바로 코솜기획이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발굴해낸 상품들이었다.
어제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외국 유학파 두뇌 10여 명을 발굴, 새 상품으로 시장에 내 놓아 단숨에 최고가격을 받아내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그동안 청소부를 집단으로 공급한다든지 파출부들을 대량 기획 상품으로 내놓는 등 주로 물량공세에 치중해서 상품을 발굴해내 시장을 석권했던 기존의 다운기획과 신 전술의 코솜기획과의 한판 승부는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언제나 그렇듯 뜬금 없이 증권가를 휘저으며 떠다니던 루머가 폐장을 앞두고 몇 가닥 갈래로 잡히면서 서서히 속내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다운기획의 부도 설과 다운기획의 총 사령탑인 사장 다팔수 씨의 중병 설 등 신빙성이 희박한 루머가 상당수였지만 개중에는 이번 거사가 코솜기획 측에 의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으며 배후에는 정부의 특혜금융이 개입돼 있다는 등 꽤 근거 있는 루머들도 포함돼 있었다. 꼬리를 물고 입에서 입으로 퍼져 가는 이러한 루머들 중에 증권 꾼 들이 확실하다고 믿는 소문은 다름 아닌 코솜기획 측이 이제 곧 그동안 숨겨왔던 비장의 카드를 선보임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킬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는 사실이었다. 코솜기획 중역의 입에서 나왔다는 비장의 카드의 실체는 아직 깊은 내막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지만 어렴풋이 드러난 윤곽만으로도 시장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씨가 말랐다고, 적어도 국내에서는 더 이상 개발의 여지가 없다고 믿어마지 않았던 팔등신 미녀군단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었다. 코솜기획 측이 때묻지 않고 싱싱한 미녀를 그것도 열 다섯 명씩이나 발굴 시장에 선보이리라는 얘기는 확실히 증권 브로커들이 경탄해 마지않을 수밖에 없는 근래 드문 핫뉴스였다.
증권가는 서서히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 석간신문은 일제히 "사라진 미녀들 돌아오다"라는 큼지막한 타이틀 아래 사진으로 보기에도 눈부신 코솜기획의 팔등신 미녀 상품들을 태서특필로 보도하고 있었다. 「국내 시장의 금기를 깨고 마침내 코솜기획의 미녀수입」, 「위락시장의 판도 바뀔 듯」, 「코솜기획 드디어 시장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다」...어지러운 활자들은 한결같이 흥분의 최고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 날 장세는 당연하게도 코솜기획의 주식이 상한가로 최고 수치를 기록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반대로 다운기획의 주식이 폭락을 면치 못한 것은 또한 무척이나 당연한 현상이었다.
다팔수 사장은 죽은 듯이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있었다. 회장의 서슬 퍼런 눈길이 다팔수 사장의 머리 위에 내리 꽂히고 있었다. 바로 며칠 전 만해도 흡족해 하며 극구 치하해 마지  않았던 회장의 자비로움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봐요 다팔수 씨! 그러기에 내가 뭐라고 했오, 코솜기획의 출현에 요주의를 해야한다. 내가 그러지 않았느냐는 말이요, 이게 뭐요, 우습게 당하고 말았잖아요!"
"면목 없습니다 회장님..."
"참 답답하긴 면목 없을 짓을 왜 해! 놈들이 노리는 건 바로 나란 말야 어떻게든 나를 깔아  뭉개려고 그동안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단 말이요 아시겠소! 내 체면이 이게 뭐요....이봐요 다팔수 씨 도대체 로비를 어떻게 한 거요 저놈들이 설칠 동안 당신은 낮잠을 자고 있었소? 에이 당신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하지만 회장님...."

다팔수 사장은 불현듯 억울함이 목 줄기를 타고 넘어와 자신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뭐라고 변명을 하긴 해야겠는데 생각대로 말이 제대로 나와주지 않았다. 하긴 필연적인 이유를 대며 변명을 늘어놓은들 회장한테 통할 리 만 무였다.
기업은 어디까지나 원인이나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집단이었다. 모든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했어도 결과가 나쁘면 한마디로 아니올시다 였다. 때문에 이번 사태의 결과만을 놓고 볼 때 다팔수 사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었다. 그동안 애써 쌓았던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각해 보면 그룹의 주력 업종을 인력 산업으로 대치, 이만큼이나 키운 것은 순전히 다팔수 사장 개인의 선견지명과 탁월한 능력이 발휘되었던 때문이었다. 타 그룹의 전자, 유전공학 다음의 유망분야라며 너나없이 정보산업에만 매달려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을 때 다팔수 사장의 미래를 꿰뚫어 보는 안목은 이미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보산업 보다 더 전망 있는 분야인 인력산업으로 간파해 내고 있었다.

마침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전망에 합당한 근거와 여건을 마련해 주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해소될 리 만 무한 노사간의 첨예한 대립은 불가피하게 대량 실업 사태를 야기 시키고 있었으며 여기에다 급속도로 진행된 무인기계의 산업현장 배치로 떨려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그리고 기존의 고학력 실업자들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사회저변의 실업자 수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었다.
더욱이 정부는 철저하게 무 노동 무임금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으므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연해진 속칭 짤린 노동자들의 식솔들까지 합치면 조만간 남아도는 사람의 처리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은 뻔한 이치였다.
때문에 누군가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다팔수 사장은 굳게 믿었다. 누군가가 결국 자신이 되고 말았지만 다팔수
사장의 선견지명은 예상대로 적중했다.
회장에게 건의해 그룹 차원에서 시험삼아 운영하기 시작한 다운기획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정된 일자리의 희소가치는 필연적으로 그만큼 임금의 급격한 하락을 동반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존의 직업에 대한 통념을 깨뜨려서 새로운 일자리를 무한대로 창출해 낼 수만 있다면 이 장사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임이 분명했다.

사실 대다수 부유층은 더 많은 하인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 중세시절의 영주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향유 할 능력을 갖춘 계층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수십 명의 정원사 수십 명의 경비 그리고 요리사들을 맘껏 부릴 수 있는 부가 그들에겐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고 필요성을 부추겨 주는 작업인데 대대적인 선전을 통해 부유층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줌으로써 구매력을 부추기는 데에 다팔수 사장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음은 물론이다. 코솜기획 측이 저렇게 변칙적인 편법만 쓰지 않았다면 다팔수 사장의 개인적 능력은 상당기간 빛을 발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아무리 위락시장이 큰 시장이라지만 외국에서 여자들을 수입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파렴치한 작태이다.
다팔수 사장은 새삼스레 분노가 끊어 올랐다. "아무튼 알아서 하시오 코솜기획을 꺾지 못하는 한 당신 사표 쓸 각오를 해요. 이거 어디 창피해서 살 수 있겠소"
"알겠습니다.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다팔수 사장은 민망함으로 얼굴이 벌개져서 회장실을 물러 나와야 했다. 회사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다팔수 사장은 언젠가 업계 간담회에서 대면했던 코솜기획의 정 사장을 떠 올렸다.
유들유들하게 생겨먹은 상판 대기로 "다팔수 사장님 정말 존경합니다. 탁월한 경영능력에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어쩌고 해놓고는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치다니 나쁜 자식, 새삼스레 치가 떨렸다.
다팔수 사장은 이제 전면전만이 남아있는 유일한 선택의 길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죽어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앙갚음을 해줘야 한다.
가만있자 그러려면 우선 상품을 점검해 봐야지, 남아있는 상품 중에 단숨에 최고 가격을 받아 낼만한 인간 군상이 있던가...

애석하게도 딱히 떠오르는 상품이 없었다. 기껏해야 밑구멍 핥는 직업이라도 좋으니 취직만 시켜달라고 애걸복걸하는 퇴물 몇 십 명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보유하고 있던 상품을 다 팔아먹은 것 같았다. "공급부장 이 작자는 뭐 하는 거야, 멍청한 자식, 없으면 납치라도 해와야 할 거 아냐....제기랄,"
다팔수 사장은 허허로움에 담배를 빼어 물었다. 요즘 들어 부쩍 부유층 고객의 자기 과시 욕이 한계를 모르고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한번 맛을 보여주자 자신들이 무슨 로마시대 황제나 된 것처럼 사재기를 해대는 데는 능력 있다는 다팔수 사장으로서도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었다. 아무리 누가 고용인을 얼마나 많이 거느렸나 의 여부로 상류층 여부가 판가름나는 세태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애초에 우리도 물량위주가 아니라 정예화 된 고가의 상품을 개발하는 경영방침을 수립하는 건데 판단 착오를 한 거야..."

다팔수 사장은 때늦은 후회를 했다. 차창 밖으로 한 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비껴가고 있었다. 햇살 아래 방치된 길가의 가로수들이 후줄근하게 늘어져서 더위를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따져보면 인간의 본능적인 쾌락의 욕구를 간과한 것부터가 중대한 시행착오였다. 도덕이 타락하면 본능적인 동물적 욕구만이 꿈틀댈 뿐이라는 사실을 감지했어야 했는데,

여기까지 생각하자 다팔수 사장은 갑자기 머리가 한결 개운해 졌다. 우선적으로 할 일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자마자 공급 부장을 다그쳐서 구라파 쪽에 수입 선을 대서 상품을 구입하는 길을 모색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코솜기획이 아시아 쪽에서 여자들을 수입해 왔음에도 저 난리인데 금발에 파란 눈의 미녀들이 라면 오죽 환장 할 것인가, 오냐 맘껏 즐겨라 그러나 최고 가격을 내는 거는 결코 잊지 말아다오, 다팔수 사장은 일이 이미 실행되기라도 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운전기사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운전기사의 손에는 카폰수화기가 들리어져 있었다.  다팔수 사장은 상상이 깨져서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수화기를 받았다.
"누구야?"
"네 사장님 공급부장이 급한 용무가 있으시답니다."
"그리,"

마침 잘됐다 싶었다. 한번 호통을 쳐서 정신을 차리게 해 줄 필요가 있었다.
"아 나 다팔수 사장이요"
"사, 사장님 크 큰일났습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을 떠는 거야"
"다 다름이 아니라 파 팔렸습니다"
"뭐가 팔렸다는 건지 호들갑 떨지 말고 천천히 얘기해 봐요"
"노 놀라지 마십시오 사장님, 회장님 지시인데, 사장님을 오늘 자로 해고시킨다는 지시가 왔습니다...듣고 계십니까 사장님.......코솜기획 측이 사장님을 사상 유례 없는 최고가격으로 사가기로 했답니다....방금 계약이 끝났다고,...이 일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사장님, 사장님....
다팔수 사장은 갑자기 정신이 멍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수화기를 놓치고 말았다.

작성자이하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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