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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의 나라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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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의 나라 네팔

 

 

본지 객원사진기자 조철근씨가 네팔에 다녀왔다. 그의 눈에 비친 네팔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오래전부터 꿈꾸어 온 나의 꿈이 실현되었다.
  히말라야와 설원의 나라, 에베레스트와 신비의 나라 네팔. 내가 네팔을 여행하게 된 동기는 네팔이라는 나라의 신비함과 그 나라의 풍물, 풍속,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카메라 앵글에 잡아보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네팔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추위와 눈보라가 생각나는데 물론 히말라야 산맥 쪽은 추운 겨울이며 며칠씩 눈보라가 치지만 카투만두나 포카라, 치트완 같은 지역은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와 흡사한 날씨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네팔을 가는 일반적인 방법은 홍콩 또는 방콕을 거쳐 카투만두에 들어가서 홍콩 또는 방콕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인 여행경로이다.
나는 서울-홍콩-카투만두-홍콩-서울로 여행계획을 잡았다. 비행기표값은 미화로 920달러이다.
  홍콩 공항에서 "네팔은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비행기를 탈사람이 별로 없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상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항에 나갔더니 온통 네팔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모두들 한 보따리씩 짐을 가지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에 오르니 비행기에서는 독특한 냄새가 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향냄새였다. 네팔인들은 모두 향을 몸이나 집, 가게 등 생활 속에 깊게 간직하고 있었다. 죽어서 화장터에 가는 시신의 몸에도 향은 함께 하고 있었다.
  4시간의 비행 끝에 카투만두에 곧 도착한다는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에 창밖을 보니 칠훍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 도시의 흔적은 없었다. 간간이 보이는 가로등 불빛만이 있을 뿐 그저 어둠만이 있을 뿐 이었다.
  역시 나중에 안 일이지만 네팔에서는 전력난이 심해 일주일에 이틀 월요일과 금요일 저녁 5시부터 7시까지 정전이 된다는 것이었다.
  네팔은 비자가 필요한 나라로 비자가 없으면 입국이 안된다. 그러나 비자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20달러면 즉석에서 비자를 발급해준다. 그러나 만약 20달러가 없어 50달러나 100달러를 주면 거스름돈은 받지 못한다. 잔돈이 없다는 이유로 잔돈을 주지 않는 것이 관습처럼 굳어져 있다.
  네팔에 대해서 알아보면 정식국명은Kingdom of Nepal이다. 카투만두가 수도이며 인구는 약 1900만명이며 아리안 족과 몽골 족이 주요 민족이다. 기후는 우기와 건기가 구분되는 아열대 몬순기후이다. 종교는 흰두교가 전체인구의90%를 차지하며 기타 종교로 불교와 회교가 있으며 기독교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국  토면적은 한반도의 3분의2 정도이다. 한국과의 시차는 3시간 15분이 늦다.
특이한 것은 토요일이 휴일이며 일요일이 우리의 월요일이 된다.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있지만 네팔 숫자가 따로 있어 외국인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네팔의 화제는 루피(Rs) 인도화폐 단위와 같지만 화폐가치는 인도 루피가 1.4배 더 크다.
  물가는 무척 싸50루피가 우리나라 돈으로 800원정도 이다. 네팔 일반인의 월 평균 생활비는 500-1000루피로 생활한다고 한다. 네팔에서 만난 라디오 방송국 PD의 월급이 3500루피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5만 6천원 정도이다. 그러나 그는 가정부를 두고 살고 있었다.
  내가 네팔에서 묵기로 한곳은 빌라 에베레스트라는 모텔로 선배형이 소개시켜 준 곳이었다.
  빌라 에베레스트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나와 반갑게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모텔에다 여장을 풀고 본격적으로 네팔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카투만두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공해의 도시라고 표현할 수 있다. 거리의 자동차는 온통60년대 일제 토로나로 경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동차마다 경쟁적으로 매연을 뿜어내고 있다. 도심의 공해정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을 초월하다. 시내를 나가보면 거리가 온통 뿌연 매연으로 가득하다. 피부가 약한 사람이 시내관광을 할 경우는 피부가 따가와 도저히 다닐 수가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현지 네팔인조차도 마스크를 하고 다닐 정도이다.
  그러나 카투만두를 비롯한 네팔은 정말 아름답고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신비함을 갖고 있는 나라였다. 고대의 불교 힌두문화와 현대 문명이 한데 어울려서 살아가고 있는 나라로 곳곳에는 인간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카투만두는 시내 곳곳에 사원이 많이 있다. 안나푸르나, 마크첸드라나트, 아카시 바이라브,  타레주, 스와암부나트사원 등 시내 전체가 사원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옛날 왕국터인 듀버광장은 사원의 밀집지역이며 중요한 관광코스이다.
이곳은 살아있는 신인 쿠마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초경전의 여자를 원로회의를 거쳐 신으로 모시고 있다. 또 듀버관광의 명물은 비산트풀의 토산품점들이다.
  특별히 가게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광장거리에 펼쳐진 노점은 파는 물건을 포함하여 장관을 이룬다. 그것에서 파는 물건은 희귀하고 예쁜 물건이 너무나 많아 웬만한 자제력이 아니면 구매욕을 억제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곳이다.
  앞서 말했듯이 카투만두는 고대와 현대가 복합되어 있는 도시로 서울의 번화가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현대문명을 만날 수 있다. 비산트풀과 연결된 뉴로드와 현 왕궁 옆의 타멜지역이 대표적인 곳으로 뉴로드는 우리나라의 용산전자랜드와 명동을 합쳐 놓은 쇼핑의 거리이며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주말이면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젊음의 활기가 가득한 곳이다. 이곳은 일제 전자제품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삼성, 대우, 금성제품 등 우리나라 제품들로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타멜지역은 우리나라의 이태원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거리로 외국 관광객과 네팔인들로 가득하여 활기와 국제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네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 이곳은 정보의 교환장소로도 유용하며 암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환전을 할 경우에 은행보다 높은 환율로 환전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호텔, 모텔, 게스트 하우스가 밀집된 곳으로 깨끗하고 편안한 숙소를 원한다면 이곳을 찾는 것이 좋다.
  현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을 중심으로 한 달발마르크는 네팔을 왕래하는 항공사가 양쪽길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최고급 호텔인 안타푸르나 호텔과 야크야티호텔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카투만두에서 외국 관광객이 볼 수 있는 최대의 관광지는 파수파티나트이다.
  이곳은 네팔의 화장터로 관광 필수코스이다. 네팔인들은 힌두교라는 종교적 영향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다르다. 그들은 사람이 죽어서 또다시 새롭게 태어난다고 믿고 있어 화장터에서 우는 상주는 한명도 없으며 가족이 나들이까지 하는 공원의 개념이 강하다.
  우리나라의 화장터와 달리 노천에서 장작을 쌓아 놓고 시신을 태우는데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장례 절차는 물론이고 시신이 타 들어가는 모습 모두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이밖에도 네팔은 모든 곳이 관광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그들의 생활모습 조차도 대단한 관광거리이다.
  나는 네팔에서 여러 명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인은 해외봉사단원으로 네팔에 파견나와 있는 김재광씨(34세) 이다.
  김재광 씨는 네팔의 유일한 뇌성마비 물리치료사로 장애우 복지가 전무한 이 나라에서 새로운 장애문화를 창출하고 있었다. 2년전에  네팔에 왔다는 김재광 씨는 그동안 재활치료를 전혀 받지 못한 네팔 장애우들에게 최신의 재활치료를 실시하고, 치료사가 없는 현지의 현실을 고려하여  치료사 양성교육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었다.
  김재광 씨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래도 작년까지는 구미 선진국에서 원조형태로 여러명의 봉사자가 파견되어 있었으나 너무나 열악한 현지의 복지사정으로 모두 철수하고 이제는 김재광 씨만이 남아 네팔 전국에 있는 뇌성마비 장애우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그를 찾아 갔을 때에도 김재광씨는 셀파족 아이를 치료하고 있었다.  6살인 시링 너브 셀파라는 이 아이는 김재광씨가 치료하기 전에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치료를 받은 지 6개월이 지난 지금은 말도 알아듣고 조금씩 걷기까지 한다"며 옆에 서 있던 어머니의 자랑이 대단했다.
   홀홀단신의 몸으로 오지의 나라에 와 불모의 분야를 개척하며 장애우들에게 새로운 빛과 희망을 주고 있는 김재광 씨의 모습을 보면서 같은 한국인인 게 자랑스러웠다.
15일간의 네팔 방문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속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단순한 호기심과 모험심을 갖고 출발한 네팔여행이었지만 현지에서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보고 나니 느낀 점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장애우들을 위해 헌신하는 김재광 씨에게 격려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조철근/함께걸음 사진기자


 

작성자조철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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