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연재] 동정은 싫다 <제3장> 청각장애는 또 하나의 문화이다. > 문화


[번역연재] 동정은 싫다 <제3장> 청각장애는 또 하나의 문화이다.

본문

[번역연재] 미국 장애우 운동사

 

동정은 싫다


제3장 청각장애는 또 하나의 문화다
(The Deaf Celebration of Separate Culture)

 


  세계의 장애우 관련법 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법이 바로 미국의 ADA(장애를 가진 미국인을 위한 법)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ADA가 제정되기까지 미국 내 장애우들이 펼친 장애우 운동을 기록한 운동사이다.

 

 

 

  저자 : 조셉 피 쉐피로
    이 책을 쓴 조셉 피 쉐피로는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인 유에스월드

    리포트지 기자로서 사회정책에 관한 다수의 기사를 썼다.
    그는 미국 알리샤 페터슨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 장애우 인권

    운동을 연구해서 이 책을 썼다.

  역자 : 서동명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다.

 

 

 


손소리의 혁명

 

  1988년도에 있었던 갈라데대학교 청각장애학생들의 항의는 장애우권리 운동의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갈라데대학의 사건은 TV가 만들어낸 한편의 드라마였다. 카메라들은 "청각장애우 학장을"이라는 피켓과 수화의 외침을 계속 카메라에 찍어 화면에 내보냈다. 갈라데는 미국 사람들에게 장애에 대한 새로운 권리에 대한 인식을 제공하였다. 갈라데 이후의 매스미디어에서는 "위대한 절름발이"에 대해 덜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신문이나 입법가들도 "장애"나 "권리"라는 말을 같이 쓰기 시작하였다. 장애우에 대한 국가위원회의 의장이었던 렉스 프리든은 이를 두고 "갈라데가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지 않았다면 이후 일련의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갈라데대학의 작지 않은 움직임은 1987년 8월, 건청인 학장인 제리 리가 12월에 이 학교를 떠나겠다고 발표나 다음에 시작되었다. 1988년 2월달에 6명의 젊은 졸업생들이 만나서 리 학장을 이을 수 있는 후보자들의 명단을 선별하는 위원회에 그들이 생각하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1984년 리가 뽑혔을 때 많은 일자리가 청각장애우에게서 박탈되었는데,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결국 청각장애학생들은 자신들의 총장을 청각장애우 총장으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학교시위를 벌이기 위해 학생들과 교수단, 그리고 동창들을 거대한 연합체로 만들어 후원자로 결성하였다.
  이러한 항의는 동문기업가인 존 예와 데이빗 번봄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이들은 대학교가 그 지역의 청각장애 사업가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에 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 학교 안에서 학생들은 차별이라는 것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지고 있었던 대신 학교 외부의 일에 관심을 많이 쏟고 있었으며, 총장을 교체하는 것은 단지 학교의 행정적인 이슈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청각장애우 총장을

 

  "많은 청각장애우들은 한계를 받아들이고, 듣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믿도록 조건지어져 있다."라고 갈라데대학의 한 학장인 로슬린 로우즌이 설명하였다. 또 갈라데의 학생들은 2천2백만 미국 청각장애우 중 10%에 불과한, 완전히 청각을 손실한 사람들이 아니라 보청기 등의 보조도구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차이들이 때로는 파벌을 조성하고, 보청기를 사용하면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건청인들의 세계에 통합되는 것에 대해서 더욱 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시위의 후원자들의 목적은 시민권 투쟁으로서 총장선출을 결정짓는 것이다. "지금이 그 때다"라고 예는 생각하고, 이러한 항의집회를 더욱더 확산시켰다. "1842년에 로마가톨릭인이 노틀담 대학교의 총장이 되었고, 1875년에 여성이 예시바대학의 학장이 또, 1886년에는 유태인이 총장이 외었다. 1926년에 흑인이 하워드 대학교의 총장이 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 갈라데 대학교 총장은 청각장애우가 된다" 알렌서스만 교수는 다음과 같은 점을 철저히 인식시켰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당신들은 이것을 첫번째 청각장애우 시민권리 행동이라고 부를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집회가 있기 바로 전에, 세 명의 최종 후보자의 이름의 언급되어졌다. 청각장애우면서 갈라데예술대학의 학장인 아이 킹 조단과, 선천적인 청각장애우로서 루이지애나 기숙학교의 교장인 하비 코슨 그리고 유일한 건청인으로서 북캐롤라이나 대학교의 학장인 엘리자베쓰 진저 세 사람이었다.
  5월 6일 일요일, 약 5백 명의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저녁 8시 30분에 학교 정문 앞에 모였다. 이 시간에 이사회에 의해서 신임총장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두 시간 전에 건청인인 엘리자베스 진저가 새로운 총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고 있었다. 이것은 커다란 분노의 물결을 일으켰다.

 

 

이것은 첫 번째 청각장애우 권리행동

 

  시위대는 이사들이 총장선출을 마치고 축하 중이던 메이플라워 호텔까지 연결되었다.
  경찰들은 이들이 호텔입구에서 수화로 외칠 동안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시위대표들은 이사들이 모여 있는 위층으로 초대를 받았지만, 거기서 그들은 이사장인 제인 바셋 스필맨에게서 "청각장애우들은 아직 건청인들의 세계에서 활동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모욕적인 설명을 들었다.
  다음인 월요일 아침, 학생들은 아침 5시 30분에 모든 차를 이용해서 학교의 문을 막았다. 수업은 취소되었고, 흥분한 학생, 교수, 그리고 학교 직원들은 스필맨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스필맨은 사퇴하여야만 하고, 이사들도 청각장애우로 교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학생들과 교직원 항의단에게 어떠한 보복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요구사항이었다. 그러나 스필맨은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였다.
  현장에서는 대홍수와 같은 천여 명의 학생들의 시위물결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들은 "청각장애우의 힘" 표현하면서 "진저 퇴진"을 수화로 주장하였다. 스필맨과 다른 이사들은 보호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집회의 무대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대 위에서 스필맨이 이야기하기 전에, 그 대표단에 참석하고 있던 교수가 나와서 그가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하였다는 것을 수화로 이야기하고, 백악관으로 행진해 나갈 것을 주장하였다. 경찰관들이 이들을 제지하려고 메가폰 등을 사용하였지만 시위대는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경찰관들은 시내까지 행진하는데 뒤에서 호위하게 되었다.
  남아있는 학생들이 그들의 요구사항을 외치는 동안, 행진에 나섰던 학생들 중에 누군가가 화재경보기를 눌렀다. 그리곤 "당신이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들을 수 없다. 이러한 화재경보기 소리도 듣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수화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 학생은 스필맨에게 대답하기도 했다.

 

 

"124년 동안 기다려 왔다"

 

  학생들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화요일날 학교수업은 다시 시작되었지만, 학생들 중 90%는 수업을 거부했다. 시위대는 진저와 스필맨의 상을 만들어서 화형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항의는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많은 다른 청각장애학교 학생들이 지지의 편지를 보내며 관심을 표현하였고, 지역의 상점들은 피자, 과일 바구니, 음료수 등을 보내왔는가 하면 한 회사는 깃발을 만들 40개의 침대시트를 제공하였고, 법률회사는 법률적인 자문을 제공하였다. 학생들은 동문들의 집 밖에서 캠핑을 하였고, 문자전화기를 이용하여 동문들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했다. 또 학생들은 기자들과 그 지역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자금 등의 후원을 부탁하기 위해 방문을 하였다. 약 70명의 수화통역자들이 학교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방문객이 있을 때 통역서비스를 하였다.
  진저는 자신이 이러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며 시위단과 접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기자들 앞에서 밝혔다. 그러나 진저는 결코 캠퍼스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모든 문은 바리케이드가 쳐 있었고, 심지어 헬리콥터가 들어올 경우 착륙을 하지 못하게 할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진저는 학생대표단을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불렀으나 거부당했다.
  이후에 이 학생시위단은 좀더 긍정적인 방법으로 이 시위를 전개해 나갈 것을 결정했다. 우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연방정부에 제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갈라데는 연방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대학교로서, 1988년 현재 학교 예산의 75%를 연방정부에서 받고 있었다.
  수요일 저녁, 하이복과 진저는 한 뉴스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처음 토론하였다. 진저는 여기서 언젠가 청각장애우가 갈라데의 총장이 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하이복은 즉시 이 말에 반박하면서 "이러한 언젠가라는 말을 우리는 지금까지 124년 동안 들어왔다"고 이야기하였다.
  다음 날 이사회는 그들의 결정을 제고하겠다는 것을 밝혔으며, 결국 이날 저녁 7시 30분에 진저는 스필맨에게 사임의사를 밝혔고, 이 소식은 곧 각 언론사로 퍼져나갔다.
  다음 날 아침,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녀는 사임의사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그녀는 "질서를 회복하고,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자신이 사임하고 청각장애우 총장을 뽑는 것"이라는데 동의하였다. 그녀는 수화로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마쳤다.

 

 

청각장애는 또 하나의 문화일 뿐

 

  그러나 이러한 승리 이후에도 항의는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총장이 선출되어야 하고, 학생들의 다른 요구사항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위가 시작된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 17명의 이사들이 다시 총장을 뽑기 위해서 모였다. 그들은 7시간의 회의 끝에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다 들어 주기로 하였고, 여기서 세 명의 후보 중의 한 명인 조던이 이 학교의 첫번째 청각장애우 총장이 되었다. 또 이사회의 새로운 이사장에는 청각장애우인 필립 브래빈이 되었고, 이사들의 반은 청각장애우로 구성되었다.
  조던 총장 수락연설에서 "이것은 전세계 청각장애우의 새로운 역사적 순간"이라고 수화로 연설하였다.
  우리 자신의 권리와 우리의 모든 대표성을 위해서 우뚝 서기 위해서 우리의 망설임을 극복했습니다. 세계는 청각장애우 공동체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제한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목소리를 외쳤다.
  한편 스필맨도 자신의 사임을 발표하였다. 며칠 후에 하이복은 북캐롤라이나의 학교로 돌아간 진저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은 불행한 희생자였고, 우리의 종합적인 분노의 표적이었을 뿐이었다"고. 진저는 답장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수화표현을 그려서 보내주었다.
  1988년까지 이와 비슷한 사건은 발생하지가 않았었다. 197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청각장애우를 위한 자막 방송이 시행되었고, 뉴스는 1973년에 ABC News를 통해서 처음으로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갈라데의 항의가 있은 그 해에, 일주일에 180시간의 방송이 자막방송을 시작하게 되었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휴대가 가능한 TDD(문자전화기)가 발달하게 되면서 청각장애우들은 더욱더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장애우 권리 운동도 역시 새로운 기회를 가져오게 되었다. 더 많은 청각장애우들이 일반학교로 가게 되었고, 1985년에는 44%의 학생들이 일반공립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시민권운동은 청각장애우에게 있어서는 제한되었고, 학교와 회사에서 청각장애우들을 위해서 통역사를 두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이즈음 의료계에서는 학령기의 청각장애 아이들의 수가 1964, 65년에 유행했던 풍진의 결과로 인해 두 배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갈라데 학생들이 시민권운동과 장애우운동을 동일시한 것은 커다란 아이러니였다. 그들에게 듣고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장애가 아니라 유태인들과 같은 하나의 문화였던 것이다. 일부 청각장애우들은 "DEAF"를 대문자 D로 쓸 때는 문화적인 것을, 소문자 d로 쓸 때는 안 들리는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갈라데의 미식축구선수로 영화에도 출연하였던 존 림니즈의 설명처럼. "청각장애라는 것은 장애(handicab)가 아니다. 이것은 문화이고, 언어이다. 그리고 나는 청각장애우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만약 의학이 발달해 내 청력을 돌아오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결코, 결코 내가 죽을 때까지…"

 

글/ 서동명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다)

작성자서동명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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