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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알카트래스의 고독한 전쟁

일급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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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트래스의 고독한 전쟁
일급살인


영화 일급살인(Murder in The First)은 제소자인 헨리 영(케빈 베이컨 : Kevin Bacon 분)과 하버드법대를 갖 졸업한 신출내기 변호사인 제임스 스텐필드(크리스찬 슬레이터 : Christian 분)의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이다. 오랜만에 독자들에게 좋은 영화를 소개할수 있어 필자도 흐뭇한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마크 라코(Marc Roco)의 연출도 훌륭해서 이야기의 감동을 점진적으로 쌓아간다.
현실 속에서 헨리의 이야기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들을 목격한 우리 관객으로서는 영화 "일급살인"의 스토리는 그렇게 충격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1940년대의 미국사회에서 벌어졌던 한 병아리 변호사와 재소자의 미국의 교도행정에 대한 무모한 정면도전이 정치적 압력을 견디고 승리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매료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년동안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스캔들을 지켜보면서 완전한 무력감에 빠져있다. 선량한 백성을 수 천명이나 살해한 살인마가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도 어떤 징계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급살인"은 패배주의의 나른함에 빠져있는 우리에겐 여름날의 소나기와 같은 시원한 청량제이다.
우리가 이 영화에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다. 미국 교도행정을 맡고 있는 법무성의 관료이면서 제임스(변호사)의 형인 바이런은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임스, 네가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은 미국의 교도행정인데 그렇다면 미국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미국은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형인 바이런은 이렇게 말하면서 동생의 재판 서류 중에서 간수로 일했던 새로운 증인인 심프슨의 서류를 몰래 가지고 가서 검사에게 넘겨준다. 이 때문에 스텐필드는 재판 도중 당혹하게 된다.
검사가 증인인 심프슨이 근무태만으로 해고된 사실은 밝혀내고 심프슨의 결정적인 증언은 재판기록에서 삭제된다. 분노해서 찾아온 동생에게 형은 "Grow up" 이라고 말한다. 어른이 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철이 들거나 정신차리라는 말이다. 즉 세상과 타협하라는 말이다.
정의라는 것은 무엇일까? 법대를 갓 나온 변호사 제임스 스텐필드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당연한 일인데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교도행정의 담당자들에겐 제임스의 행동은 사회정의 실현의 걸림돌인 것이다. 제임스는 알카트래스 감옥의 부소장인 글렌을 증인심문하면서 그의 비인도적 행위를 폭로한다. 글렌은 당황하여 항변한다. "나는 공복이다. 나는 선량한 미국인이다. 재판을 받고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항변은 이미 공허한 넋두리가 된다. 제임스는 소장인 햄슨을 형의 경고도 무시하고 증언대에 세운다.
햄슨은 헨리 영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교동행정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지만 헨리 영이 탈옥미수로 지하독방에 삼년이 넘게 갇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풀어줄 것을 지시한 장본인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어쩔수 없는 낭패를 맛본다. 실제로 비인도적인 행위를 자행한 것은 하수인이지 명령자가 아니지 않느냐는 한국적(?)패배주의가 고개를 들 수있다.
그러나 제임스는 그의 변론을 시작하면서 알카트래스의 행정자들을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고발한다고 천명한다.
열 세 살의 헨리는 동생과 생존하기 위하여 우체국의 일도 하고 있는 가게에서 5달러를 훔친죄로 연방법을 어긴 죄인이 되어 알카트래스에 투옥된다. 그가 연방법을 어긴 중죄인이 된사실은 우리 관객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나 미국의 법으로는 우체국의 업무를 수행하던 가게에서 돈을 훔친 것은 서부 개척시대의 역마차 강도처럼 취급될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건 당시 담당검사의 과욕이 그런 엄청난 합법적 만행의 주범일 것이다.
그리고 스물네살이 되던 해 탈옥에 가담하게 되고 동료의 배신으로 미수에 그친다. 삼년여의 지하독방에서 30분의 산책을 제외하곤 빛도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갇혀 지낸 헨리는 지하감방에서 나오자마자 배신자를 식당에서 숟가락으로 살해한다. 헨리는 자신이 배신자 루퍼스를 살해한 사실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는 분노의 화신이 된 것이다. 변호사인 제임스는 배고파서 5달러를 훔친 어린 고아였던 헨리를 살인자로 만든 미국의 교도행정을 고발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교도행정과 미국의 그것을 같은 시점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의 교도소를 목격한 적이 있는 관객은 "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라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사회의 정의란 한 개인의 힘으로 실현될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적 패배주의하면 우리 사회의 앞날엔 희망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 목격하고 있는 수많은 불의와 부정으로 만연된 사회가 개인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탈주기차와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이 시대를 산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항상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의 한 구석에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 구석에서 제임스 스텐필드와 같은 철들지 않은 선량한 고집쟁이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일급살인"은 우리에게 다시금 막연한 희망을 갖게 한다. 이미 돌아가고 있는 거대한 톱니바퀴와 같은 사회제도의 개선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 톱니바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기득권자들의 편의에 따라 사회가 변해가게 방관해서는 안 된다. 헨리는 알카트래스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유죄를 인정하고 처형당하겠다고 한다. 제임스는 헨리를 설득하기 위해 어려서 헤어진 그의 누이 로잔나를 찾아 그와 통화하게 한다. 언도 공판일이 되자 제임스는 헨리를 증언대로 운다. 제임스는 헨리가 왜 자신이 유죄언도를 받기를 원하는가를 헨리의 입으로 증언하게 한다. 배심원들은 그의 일급살인에 대한 기소는 무죄로 심판하고 도발적 살인만을 유죄로 인정한다. 그리고 알카트래스의 교도행정 전반에 대한 연방정부의 감사를 제안한다.
제임스는 헨리에게 자신이 그를 알카트래스에서 꺼내주겠다고 약속한다. 헨리는 알카트래스로 가는 배를 타며 제임스에게 말한다. "우리가 이겼지, 제임스?" 알카트래스에 돌아온 헨리는 부소장 글렌에게 말한다. "나를 지하감옥에 넣어도 또 개처럼 때려도 좋다. 이제는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제임스의 내레이션은 이 장면에 앞서 헨리가 돌멩이로 "Victory"라고 쓰고 자살한 것과 알카트래스 감옥이 얼마후 폐쇄된 것을 설명한다.

영화 일급살인(Murder in The First)은 제소자인 헨리 영(케빈 베이컨 : Kevin Bacon 분)과 하버드법대를 갖 졸업한 신출내기 변호사인 제임스 스텐필드(크리스찬 슬레이터 : Christian 분)의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이다. 오랜만에 독자들에게 좋은 영화를 소개할수 있어 필자도 흐뭇한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마크 라코(Marc Roco)의 연출도 훌륭해서 이야기의 감동을 점진적으로 쌓아간다.현실 속에서 헨리의 이야기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들을 목격한 우리 관객으로서는 영화 "일급살인"의 스토리는 그렇게 충격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1940년대의 미국사회에서 벌어졌던 한 병아리 변호사와 재소자의 미국의 교도행정에 대한 무모한 정면도전이 정치적 압력을 견디고 승리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매료하는 것이다.우리는 수년동안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스캔들을 지켜보면서 완전한 무력감에 빠져있다. 선량한 백성을 수 천명이나 살해한 살인마가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도 어떤 징계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급살인"은 패배주의의 나른함에 빠져있는 우리에겐 여름날의 소나기와 같은 시원한 청량제이다.우리가 이 영화에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다. 미국 교도행정을 맡고 있는 법무성의 관료이면서 제임스(변호사)의 형인 바이런은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임스, 네가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은 미국의 교도행정인데 그렇다면 미국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미국은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형인 바이런은 이렇게 말하면서 동생의 재판 서류 중에서 간수로 일했던 새로운 증인인 심프슨의 서류를 몰래 가지고 가서 검사에게 넘겨준다. 이 때문에 스텐필드는 재판 도중 당혹하게 된다.검사가 증인인 심프슨이 근무태만으로 해고된 사실은 밝혀내고 심프슨의 결정적인 증언은 재판기록에서 삭제된다. 분노해서 찾아온 동생에게 형은 "Grow up" 이라고 말한다. 어른이 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철이 들거나 정신차리라는 말이다. 즉 세상과 타협하라는 말이다.정의라는 것은 무엇일까? 법대를 갓 나온 변호사 제임스 스텐필드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당연한 일인데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교도행정의 담당자들에겐 제임스의 행동은 사회정의 실현의 걸림돌인 것이다. 제임스는 알카트래스 감옥의 부소장인 글렌을 증인심문하면서 그의 비인도적 행위를 폭로한다. 글렌은 당황하여 항변한다. "나는 공복이다. 나는 선량한 미국인이다. 재판을 받고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항변은 이미 공허한 넋두리가 된다. 제임스는 소장인 햄슨을 형의 경고도 무시하고 증언대에 세운다.햄슨은 헨리 영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교동행정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지만 헨리 영이 탈옥미수로 지하독방에 삼년이 넘게 갇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풀어줄 것을 지시한 장본인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어쩔수 없는 낭패를 맛본다. 실제로 비인도적인 행위를 자행한 것은 하수인이지 명령자가 아니지 않느냐는 한국적(?)패배주의가 고개를 들 수있다.그러나 제임스는 그의 변론을 시작하면서 알카트래스의 행정자들을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고발한다고 천명한다.열 세 살의 헨리는 동생과 생존하기 위하여 우체국의 일도 하고 있는 가게에서 5달러를 훔친죄로 연방법을 어긴 죄인이 되어 알카트래스에 투옥된다. 그가 연방법을 어긴 중죄인이 된사실은 우리 관객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나 미국의 법으로는 우체국의 업무를 수행하던 가게에서 돈을 훔친 것은 서부 개척시대의 역마차 강도처럼 취급될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건 당시 담당검사의 과욕이 그런 엄청난 합법적 만행의 주범일 것이다.그리고 스물네살이 되던 해 탈옥에 가담하게 되고 동료의 배신으로 미수에 그친다. 삼년여의 지하독방에서 30분의 산책을 제외하곤 빛도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갇혀 지낸 헨리는 지하감방에서 나오자마자 배신자를 식당에서 숟가락으로 살해한다. 헨리는 자신이 배신자 루퍼스를 살해한 사실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는 분노의 화신이 된 것이다. 변호사인 제임스는 배고파서 5달러를 훔친 어린 고아였던 헨리를 살인자로 만든 미국의 교도행정을 고발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교도행정과 미국의 그것을 같은 시점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의 교도소를 목격한 적이 있는 관객은 "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라고 얘기할지도 모른다.사회의 정의란 한 개인의 힘으로 실현될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적 패배주의하면 우리 사회의 앞날엔 희망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 목격하고 있는 수많은 불의와 부정으로 만연된 사회가 개인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탈주기차와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이 시대를 산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항상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의 한 구석에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 구석에서 제임스 스텐필드와 같은 철들지 않은 선량한 고집쟁이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일급살인"은 우리에게 다시금 막연한 희망을 갖게 한다. 이미 돌아가고 있는 거대한 톱니바퀴와 같은 사회제도의 개선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 톱니바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기득권자들의 편의에 따라 사회가 변해가게 방관해서는 안 된다. 헨리는 알카트래스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유죄를 인정하고 처형당하겠다고 한다. 제임스는 헨리를 설득하기 위해 어려서 헤어진 그의 누이 로잔나를 찾아 그와 통화하게 한다. 언도 공판일이 되자 제임스는 헨리를 증언대로 운다. 제임스는 헨리가 왜 자신이 유죄언도를 받기를 원하는가를 헨리의 입으로 증언하게 한다. 배심원들은 그의 일급살인에 대한 기소는 무죄로 심판하고 도발적 살인만을 유죄로 인정한다. 그리고 알카트래스의 교도행정 전반에 대한 연방정부의 감사를 제안한다.제임스는 헨리에게 자신이 그를 알카트래스에서 꺼내주겠다고 약속한다. 헨리는 알카트래스로 가는 배를 타며 제임스에게 말한다. "우리가 이겼지, 제임스?" 알카트래스에 돌아온 헨리는 부소장 글렌에게 말한다. "나를 지하감옥에 넣어도 또 개처럼 때려도 좋다. 이제는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제임스의 내레이션은 이 장면에 앞서 헨리가 돌멩이로 "Victory"라고 쓰고 자살한 것과 알카트래스 감옥이 얼마후 폐쇄된 것을 설명한다.


이영호 / 시각장애우, 영화인이며 시각장애우 극단 "소리" 대표로 있다.

작성자이영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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