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우 관장의 몰락 > 문화


정승우 관장의 몰락

본문

[짧은 이야기]

정승우 관장의 몰락

 

우리장애우복지관 정승우 관장은 2층 관장실에서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복지관 앞마당상황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복지관 앞마당에서는 바야흐로 매우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중이었다.
족히 중대병력은 되어 보이는 수십명의 전투경찰들이 벌써 한 시간째 복지관 직원들과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완전무장을 한 전투경찰들은 모두 손에 진압봉을 들고 명령이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직원들을 진압할 태세였다. 그런 전투경찰들에 비하면 복지관 정문에 몰려서 있는 열대여섯명의 직원들은 한눈에 보아도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노조 위원장 김성수만이 "전투경찰 물러나라!"고 핏대를 올리고 있었을 뿐 나머지 직원들은 두려움에 가득찬 눈빛으로 전투경찰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쯧쯧 그러기에 내가 뭐 랬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더니만.... 내가 타일렀을 때 그만 뒀어야지. 아니 복지관에 노조가 왜 필요하다는 거야! 그리고 뭐 나더러 물러나라구! 에이 순 빨갱이 같은 새끼들...."
정승우 관장은 격양된 표정으로 창문에서 눈을 떼고 돌아섰다. 관장실에는 측근인 총무부장 이기준과 사업부장 성준일이 머리를 조아린채 대기하고 있었다. 정승우 관장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두명의 부장을 몰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신들 도대체 월급 받아먹고 한일이 머야! 나라의 녹을 받아먹고 사는 처지면 나라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일을 해야 할꺼 아뇨! 도대체 당신들 정신들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까짓 직원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해 쩔쩔매다니, 내가 경찰을 부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겠어? 당신들 당장 이거라구, 모가지란 말야, 알겠어?"
두 부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벌겋게 붉힐 따름이었다. 정승우 관장은 두 부장을 일별하고 걸음을 옮겨 털썩 소리를 내며 쇼파에 주저앉았다. 그런 다음 담배를 집어 입에 물었다. 그런 정 관장의 입가에 어느새 득의 만만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새끼들 나를 우습게 알더니 한번 당해봐라, 뭐 노조? 웃기고있네, 이 정승우가 있는 한 노조의 그림자도 어림없지. 암 어림 없구 말구...."
정승우 관장은 혼자 중얼거렸다. 정 관장 머리 속에는 잠시후 벌어질 상황인, 전투경찰의 진압봉에 맞아 피를 흘리며 줄줄이 굴비처럼 엮어 닭장차에 실려 끌려가는 직원들 모습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저 관장님..."
그때였다. 이기준 부장이 겸연쩍어 하며 정관장에게 다가섰다. 정 관장은 이부장의 방해로 통쾌한 상상이 지워진게 못내 아쉬워 뜨악한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고 이기준 부장을 쳐다봤다.
"실은 아까 신 서장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진압을 자기가 할테니 빨리 노조위원장 김가를 비롯한 직원들을 고발하라고 하는데...그게..영.."
"무슨 말이요?"
"관장님도 아시다시피 노조를 결성했다고 고발할 수는 없는거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죄명을 찾는게 영 마땅치 않아서..."
"이봐요. 이부장!"
정승우 관장은 울화가 치밀어 탁자를 내리쳤다.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요? 지금 당장 당신 사무실에 가서 유리창 몇 장부수고 와요. 그리고 성부장 당신은 책상에 있는 서류 몇장 없애고 오고, 그러면 기물파손과 업무방해, 절도죄까지 포함시켜서 줄줄이 엮을수 있는거 아뇨! 머리를 써야지. 왜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원..."
정 관장의 태도는 어느새 부드러워져 있었다.
"어쨌던 노조 위원장 김가를 비롯한 몇 놈은 손을 봐야해,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지 당신들도 살고 나도 사는 거요. 내말 알아들었으면 시간 없으니 빨리 나가봐요"
정관장은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미소를 지으며 손짓으로 두 부장을 재촉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관장님만 믿고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결심이 선 듯 먼저 사어부장 성준일이 정 관장에게 머리를 조아린 다음 문을 향해 돌아섰다. 이기준 부장도 황급히 성 부장을 따라나섰다.
"잠깐, 부장님들, 내가 한가지 잊은게 있는데......."
갑자기 정관장이 불러 세우자 문손잡이를 돌리려던 두 부장이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두 부장의 표정에는 정관장이 또 무슨 엄청난 일을 지시할까라는 두려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아 그렇게 놀란 표정 지을 거 없어요. 방금 기가 막힌 생각이 하나 떠올랐는데, 내말은 일이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철저하게 끝을 보자는 거요. 거 뭐시냐, 업무 마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있잖소, 그것도 준비하도록 해요"
두 부장은 정관자의 치밀한 각본에 충격을 받은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내 지시는 끝났으니 빨리 나가서 일 보도록 하세요"
정 관장은 두 부장을 내몰고 나서 다시 담배를 빼어 물었다. 정 관장의 표정은 다시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 내 이놈들 잘근잘근 씹어서 끝장을 볼테다. 어디 두고보자..."
입술을 앙다문 정승우 관장의 머리에 최근 며칠간의 긴박했던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승우 관장의 입장에서 보면 가뜩이나 좁디좁은 땅덩어리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폐단을 낳은 지방자치제 선거가 실시 된지 일년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사회복지계에 난데없는 노동조합 설립 붐이 일어났다. 그리고 노동조합 설립의 전국적인 추세는 우리 장애우복지관이라고 예외로 지날칠 수는 없었다.
정 관장은 측근들의 보고를 통해 정확히 한 달여 전부터 직원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직원들은 퇴근후 별도의 모임을 갖고, 사회복지 전문가입네 설치는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정 관장은 사태를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 인생 오십을 넘게 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흐르기 시작한 물을 막는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흐르는 물을 막으려다가 결국 물결에 휩쓸려 실종되는 사람들을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럿 보아왔다. 그래서 내심 탐탁치는 않았지만 정 관장은 직원들의 노조 설립 움직임을 묵인하고 있었다.
때마침 정관장의 지시로 직원들 동태를 감시하고 있는 측근인 총무부장 이기준의 보고도 긍정적이어서 어떤 때는 오히려 자신이 나서서 노조 설립을 부추기고 싶을 정도였다.
이기준의 보고에 따르면 직원들은 복지관에 노조설립이 필요한 이유로 "신분 보장"과 "예산확보"를 들더라는 것이었다. 서비스 대상자인 장애우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통한 신분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대폭적인 사회복지비의 증액이 필요한데 정부가 뒷짐만 지고 모른체 하고 있으니 이제 사회복지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노조를 만들어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고 입에 개거품을  물더라는 것이다.
충실한 애국자로 자부하고 있는 정관장의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언급 중에서 정부와 싸워야 한다는 말은 마음에 걸렸지만, 처우개선과 예산확보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특히 다른 어떤 것보다도 월급 얘기가 나오면 그도 할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관장도 비슷한 연대의 친구들은 회사 사장입네, 기관장입네, 하다못해 구멍가게 경영자네 어쩌고 해서 족히 한달 수백만원의 수입들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소외된 사람들을 내몸처럼 생각하고 돕는 고귀한 일을 하는 자신은 한달 월급으로 겨우 1백만원이 넘는 돈을 받을 뿐이었다.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정관장은 그동안 입만 살아서 떠드는 불평불만자들이 사회의 가치관이 전도되었네 어쩌네 하면서 떠들 때 콧방귀를 뀌었지만 사회복지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형편없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어 사회의 가치관이 뒤바뀌었다는 주장을 할때에는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해 왔다.
정말 큰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아니 십년을 넘게 고귀한 일에 종사해온 자신이 이제 갓 회사에 들어간 젊은 놈들의 초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를 월급으로 받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래 빨리 노조를 설립해라. 나도 노조 덕좀 보게...."
정관장은 어느새 노조 설립을 학수고대하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관장의 노조에 대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니까 보름전의 일이었다. 출근하던 정관장은 복지관 정문 유리창에 붙어 있는 대자보를 보게 되었다. "아하 이제 노조 설립이 본격화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치려던 정관장의 눈을 "정승우 관장은 하루속히 물러나야 한다!"라고 붉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쓴 대자보 제목이 붙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돼먹지 않은 소리야?"
정승우 관장은 충격에 부들부들 떨며 대자보를 노려보았다. 우리장애우복지관 노동조합 설립 추진위원회 명의로 된 대자보는 "정 관장이 측근들을 장기 근속자를 제치고 부장으로 승진 발령을 하는 등 편파적인 인사를 실시했으며, 전문가들 의견을 무시하고 프로그램을 제멋대로 조정하는 등 독선적으로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관장 판공비를 친척 결혼식에 부조금으로 사용하는 등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며 정관장을 성토한 다음 "단체교섭을 거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해 내자"고 결의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마 정관장은 뒤에서 싸늘한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는 몇몇 직원들의 눈만 없었다면 그 자리에 쓰러져 실신했을 것이었다. 그 정도로 정관장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노조를 설립해 정부를 상대로 싸워 예산확보를 한다더니, 그건 하지 않고 이 정승우가 비리를 저질렀다고 물러나라고, 그럼 상대가 정부가 아니라 나였다는 거야, 이런 우라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정승우 관장은 치욕감에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대자보를 지나쳐 관장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대로 이기준 총무부장을 호출했다. 잠시후 고양이 앞의 쥐처럼 사색이 된 표정으로 이기준부장이 관장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정 관장은 총이라도 있으면 이기준부장을 쏘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역시 오십 인생을 헛살아온 건 아니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정 관장은 잊지 않고 있었다.
"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요?"
"사실은....직원들이 관장님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관장님께 심려를 끼쳐 드릴 것 같아서....그리고 제가 어떻게든 무마시켜 보려고...."
"무마시킨 게 이거요?"
"죄송합니다. 관장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거 왜이래요. 이부장! 죄송하다면 다요. 문제를 해결해야지. 사람 이렇게 창피를 줘도 되는거요. 당신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 있는거 아냐!"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저는 다만 관장님을 위한다는 생각에서..."
"그만둬요. 입에 바린 말 듣기도 싫어! 내가, 당신같은 사람 믿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바보지..."
정 관장은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비로소 정관장은 간과하고 있던 노조의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을 덮쳐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 이래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놈들이 결사적으로 노조 서립을 막으려고 애쓰는 구나, 참 내 기가 막혀서, 뭐 나더러 편파적인 인사를 실시 했다구, 아니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인사를 실시한 게 왜 편파적인 인사야? 그리고 내가 쓰라고 책정된 판공비를 내맘대로 쓴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돼먹지 않은 놈들, 이건 순 깡패놈들 아냐, 지들이 뭐라고 나더러 물러나라는 거야, 갈데 없어 사회복지판에 들어온 주제들에 뭐가 잘났다고, 오냐 어디 두고보자 누가 밀려나나....
"이봐요. 이부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조 설립을 막아! 노조 설립을 못 막으면 당신 끝장이야! 알았어?"
정승우 관장은 이부장에게 으르렁댔다.
그 날부터 우리장애우복지관은 팽팽한 긴장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복지관에 노조를 설립하려는 직원들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조 설립을 막으려는 정관장 사이에 힘겨운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정 관장은 먼저 이기준 부장으로 하여금 직원들, 특히 노조설립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성수 대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한편으로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직원들을 불러놓고 어느 재벌회장을 본따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노조가 있을수 없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비리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면 "나는 깨끗하다. 법대로 하자"고 묵살했다. 그리고 나아가 "복지관에 노조가 섭립되면 그 날로 복지관 문을 닫을 것이다"라고 위협도 불사했다.
그런데 사실을 놓고 보면 정 관장의 이런 위협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정 관장은 보건복지부 고위 간부로 재직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회복지판의 보이지 않는 실세 중의 한 사람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존재였다. 비록 떡값을 받은게 빌미가 돼 보건복지부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그의 동기 김아무개가 보건복지부에서 사회복지 정책을 총괄하는 국장 자리에 앉아 있는 것에서 보듯 정 관장의 인맥은 요소요소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런 이 인맥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정관장은 이까짓 장애우 복지관 하나쯤 문을 닫게 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굳게 믿고있었다.
정 관장의 복지관 폐쇄 발언이 공공연하게 가시화되자 직원들은 한동안 주춤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조 설립을 포기할 직원들이 아니었다. 사회복지가 사는 길은 종사자들이 단결해서 노조를 설립하는 길밖에 없다고 역시 굳게 믿고 있는 직원들은 일요일을 택해 모임을 갖고 정 관장에 맞서 은밀하게 속전속결로 노조를 설립할 것을 결의했다.
그런 다음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전격적으로 일주일 후에 노조설립 총회를 갖는다고 공고를 복지관 정문에 내걸었다.
방심하다 허를 찔린 정 관장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하고만 있을 정관장은 아니었다. 정관장은 곧바로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우연히 여직원 한명이 복지관 엘리베이터 입구에 노조 총회를 알리는 전단을 붙이려는 걸 목격하게 되자 정 관장은 주저하지 않고 여직원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야! 누구 허락받 고 불법전단을 붙이려는 거야? 이런 개수작 나는 허용 못해, 알겠어!" 정관장에게 머리채가 휘어잡힌 여직원은 파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넌 오늘자로 해고야, 당장 나가!" 정관장은 강제로 여직원을 복지관 밖으로 밀어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정 관장은 내친김에 노조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김성수 대리를 손봐주기 위해 김대리를 호출했다. 그런데 김성수 대리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직속 부장인 성준일의 보고에 따르면 노조 설립건 때문에 외출했다는 것이었다. 정관장은 옳다구나 싶어 그 자리에서 총무부장 이기준을 불러 김대리를 무단외출과 명령불복 사유로 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렇게 정관자의 초강경 대응이 있었음에도 그 날은 별탈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음날 일어났다. 직원들이 정 관장의 여직원 폭행과 김대리에 대한 불법해고를 이유로 전면 파업에 돌입했던 것이다. 사태가 겉잡을수 없이 확대되기 시작하자 정 관장으로서도 승부수를 띄우지 않을 수 없었다.
정관장이 생각하는 승부수는 그동안 관계를 맺어둔 인맥을 활용해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정 관장은 먼저 구청 사회복지과장 김찬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찬섭에게는 그동안 워낙 공을 많이 들여왔고, 이런저런 일로 집어준 돈도 수월치 않았기 때문에 김찬섭은 틀림없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정관장은 믿었다.
"이봐요 김과장, 내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소, 나좀 도와주시오"
"복지관 사태에 대한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거요? 내 생각은 복지관을 폐쇄해서라도 노조를 설립하려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조금 어렵겠습니다"
김찬섭 과장이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소 김과장, 어렵다니, 이봐요 김과장, 피차 아는 처지에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합니까? 노조가 들어서면 복지관을 폐쇄하겠다고 엄포를 놔달라는데 그간의 정으로 봐서 그게 무리한 부탁이란 겁니까?"
"제말은 그 문제는 제가 단독적으로 결정할 수가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 거요?"
"참 답답하십니다. 정 관장님,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관장님도 아시다시피 지자제 선거로 야당 민선 구청장이 들어섰지 않습니까? 민선 구청장이 워낙 깐깐한게 아닙니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 구청장에게 불려갔는데 나 더러 우리장애우복지관 관장이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립디다"
"뭐라구, 뭐 그따위 자식이 있어! 내가 문제가 있다니, 아니 지가 구청장이면 다야!"
"감정을 가라앉히고 제 말을 들으세요. 옛정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옛날 생각해서 강경하게 밀어 붙이지 말고 직원들과 화해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까짓 노조 들어서게 놔두세요. 제발 조용히 계시란 말입니다"
"이봐 김과장, 너 지금 나한테 훈계 하는 거야? 너 같은놈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거야! 알아들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이 나쁜 놈아!"
정승우 관장은 호통을 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보통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고분고분했을 김 과장조차 자신을 무시하는 게 분명했다.
"이걸 뇌물수수죄로 집어넣어 버려...."
정 관장은 순간적으로 김과장에게 앙갚음 할 것을 고려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당할 창피를 생각하니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그동안 복지관 관리 감독권과 예산을 쥐고 있는 구청 사회복지과 직원들과 정관장 자신과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에 놓여 있었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한  정 관장이 비록 한단계 낮은 구청 공무원이었지만 같은 공무원의 심리를 모를리 없었고, 적어도 어떻게 대해야 공무원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정관장은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 관장은 누구보다 구청사회복지과 직원들에게 많은 공을 들여왔다. 정 관장은 사회복지과 직원이라면 말단에서 과장까지 생일을 줄줄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회복지과 직원들의 경조사에는 단 한번도 빠진적이 없었다.
"그랬는데 이놈들이 나를 배신해..."
정관장은 배신감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김찬섭 과장의 반응으로 보아 더 이상 구청 사회복지과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결국 움직이려면 구청장을 움직여야 했는데 정 관장은 아쉽게도 민선구청장과는 끈이 없었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일년전 취임식때 악수를 나는 적은 있지만, 충실한 애국자를 자부하는 정 관장이 야당 인사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곰곰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정관장은 마지막 방법으로 자신의 동기인 엄인재 보건복지부 국장에게 전화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 국장만큼은 자신을 모른체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 엄국장, 나 정승우요. 그간 별고 없었겠지. 내가 전화를 넣은 건 다름이 아니라..."
정 관장은 국장에게 구구절절이 그간의 복지관 사태를 설명했다. 그런다음 전화 말미에 "복지관에 노조가 들어서면 틀림없이 불평불만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감내라 팥내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니 골치아프기 전에 훗날을 생각해서라도 싹을 잘라야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잠시 후, 뜸을 들인 엄 국장이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정 관장이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듣겠소. 하지만 어떡하겠소, 지자제 시대인데, 감독권이 구청측에 있는 이상 나로서도 어쩔수가 없구려, 이거 미안하게 됐소"
몇마디 의례적인 위로의 말을 건넨 후 엄인재 국장은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돼서 정관장이 생각하는 숭부수는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저 관장은 자신이 사면초가에 몰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랬는데, 불현 듯 정관장 머리에 한가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다름아니라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올려보자는 것이었다. 정 관장은 그 즉시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장문의 탄원서를 작성했다.
정 관장의 탄원서는 "불순분자인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해 사측인 자신을 탄압하려 하고 있으니 대통령각하의 너그러운 은혜로 본인을 구해 주시고 복지관을 불순분자들에게서 지켜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런 내요의 탄원서를 보낸후 정관장은 며칠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기대했던 대통령에게서는 아니었지만, 관할 경찰서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관할 경찰서 신 서장은 정관장이 전화를 받자 대뜸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는데 탄원서대로 노조에 불순분자가 있느냐?"고 물어왔다. 정 관장은 앞뒤 재지 않고"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 다음 그 대답만으로 부족해 정 관장은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놈들은 모두 온통 빨갛게 물이 들어 있으며, 그들은 노조를 설립해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다"며 "나중에 국가 전복을 꾀할 위험한 불순분자들이 분명하다"라고 시키지도 않은 말을 침 튀기며 일러바쳤다.
정 관장 말을 들은 경찰서장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덧붙여 신서장은 "내일 진압하러 갈테니 안심해라"고 통고했다.
그리고나서 오늘, 드디어 전투경찰들이 복지관 직원들을 진압하러 온 것이었다.
직원들을 고발할 근거를 만들기 위해 두 부장을 내보낸 정승우 관장은 내친김에 자신도 뭔가 근거를 만들어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만있어봐, 이거 관장실이 너무 멀쩡하잖아. 그러면 안되지.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뭔가가 부서져 있어야지. 그래 우선 컴퓨터를 내다 꽂고, 책상서랍 몇 개도 망가뜨려야 겠구먼..."
정 관장은 서둘러 담배를 부벼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정 관장은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함성을 듣고 멈칫했다. 정 관장은 깜짝 놀라 창문가로 다가섰다. 창문 밖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백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장애우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복지관으로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우들은 "관장 물러나라!" "전투경찰 물러나라!"고함을 내지르며 마치 물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직원들과 대치하던 전투경찰들은 겁을 먹었는지 어느새 장애우들을 피해 한쪽 구석으로 대피해 있었다.
정 관장은 순간, 앞이 노래지는 충격에 휩싸였다. 장애우들의 기세라면 당장이라도 이 관장실로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나는....아아 틀림없이 상상하기도 싫은 참상이 벌어질 것이었다. 정승우 관장은 다급해져서 복지관을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문 외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었다.
"이봐요. 이부장! 성부장! 거기 아무도 없어요?"
정승우 관장은 복도로 뛰쳐나가 측근인 두 부장을 애타게 찾았다. 그렇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대신 복도 끝에서 직원들이 우루루 자신을 향해 몰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승우 관장은 어쩔수 없이 다시 관장실로 대피했다. 관장실 문을 등지고 선 정관장의 눈에 순간 핑- 눈물이 돌았다. 정 관장은 너무 억울했다.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승우 관장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건 아니었다. 그 긴박한 순간에도 정 관장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정관장의 눈길은 아까부터 내내 창문에 붙박혀 있었는데,
정승우 관장이 생각해낸 복수의 방법은 다름 아닌 자신의 몸을 창 밖으로 던져 중상을 입은다음, 그 책임을 직원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래 이놈들. 어디 콩밥좀 먹어봐라..."
정승우 관장은 주저하지 않고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하진 / 자유기고가

작성자이하진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후원하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연월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 : 함께걸음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태흥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