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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이 겨울, 강화도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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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강화도를 다녀왔습니다.

 

함께걸음은 바깥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우들에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이곳저곳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자 함께 떠나는 역사기행을 계획했다. 제1회 역사기행은 함께걸음과 연화복지학원이 주관하고 광림사 법륜회가 후원해 지난 11월 13일 강화도에서 있었다.


교통체증으로 어렵게 시작한 일정
  11월 13일 아침 7시 "중증장애우의 세상보기"라는 작은 주제를 가지고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자 모인 중증장애우 8명은 장애우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던 강화도를 첫 행선지로 결정하고 짧지만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 날의 여행은 8명의 장애우들과 하루동안 장애우들의 손과 발이 되어줄 자원활동자 15명,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안내를 위해 동행하신 해성스님(광림사 주지)등 24명이 함께 참여하여 이루어졌다.
  강화도는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서울에서 2시간이면 섬과 바다와 산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지리적 조건과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외세의 침략속에 간직해 온 문화유산으로 주말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휠체어에 의지해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우들에게는 강화도가 간직한 역사와 자연경관은 잡지나 TV의 한 장면일 뿐 직접 보고 느끼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 먼 곳이었다.
하루동안 차량 지원과 자원활동을 해준 법륜회 회원들은 청각장애우들을 위한 교육을 주로하는 광림사 신도 중 개인택시 운전사들의 모임으로 쉬는 날을 이용해 이날 봉사를 자원했다.
  출발 전날 미리 자기가 태워야 할 사람의 집을 확인해 두는 등 장애우들의 쉽지 않은 여행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법륜회 회원들은 당일에도 새벽어둠이 걷히기 전에 서둘러 일정을 시작했지만 이른 시간부터 계속되는 교통체증은 기다리는 장애우들과 자원활동자들을 모두 애타게 했다.
  서울시내 각 지에 흩어져 있는 장애우들을 어렵게 태우고 만나기로 한 중간지점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9시, 예정대로라면 벌써 강화도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일행은 아직 서울에 있었다. 그렇지만 일행은 지체된 시간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더욱 즐거워했다.
  법륜회에서 준비한 빵으로 미처 챙기지 못한 아침식사를 함께 한 사람들 모두 다섯 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강화도를 향해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깊어가는 겨울 산사를 찾아서
  휠체어가 실린 다섯 대의 택시는 김포에 넓게 펼쳐진 겨울 들녘을 지나 육지와 섬을 잇는 강화대교를 통해 나란히 섬에 들어섰다. 새벽잠을 설친 탓에 택시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잠들어 있던 장애우들은 강화에 들어서자 겨울풍경을 한눈에 담으려는 듯 잠을 쫓 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갯벌과 들녘을 교대로 지나치면서 서울에서부터 2시간 여만에 도착한 곳은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성에 위치한 전등사.
  절 입구에 도착하자 동행한 광림사 해성스님이 상황을 설명하여 일행은 대웅전 바로 앞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휠체어를 처음 사용해 본다는 법륜회 회원들은 서툴지만 직접 장애우에게 한가지씩 물어가며 분주하게 휠체어를 내리고, 장애우들을 안아 옮기며, 전등사를 둘러볼 채비를 갖추었다.
겨울이 깊어 옷을 모두 벗어버린 나무들과 서울과는 달리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경내를 둘러보는 동안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시던 혜경스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내 왔고, 일행은 스님의 안내에 따라 전등사의 역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전등사는 2킬로미터에 이르는 삼랑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기 372년 우리나라 최초로 지어진 절입니다. 이곳에서 3국으로 불교가 전파되었고,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호국불교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건립당시에는 진종사라 불렸고 1325년 고려 충렬왕때 왕비인 정화궁주가 이 절에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로 개명되었습니다"
대웅전 앞에 설명을 듣기 위해 나란히 늘어선 7대의 휠체어는 다른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낯선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보던 관광객들도 혜경스님의 설명에 조금씩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혜경스님은 전등사의 역사에 이어 5개정도의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건물과 각종 크고 작은 구조물들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였다.
절을 처음 찾은 장애우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절의 구석구석 궁금한 것들을 스님께 물으며 전등사가 간직한 역사를 깊이 되새기고 있었다.
  역사적인 사실 이외에도 근거는 없지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몇 가지 전설은 매우 재미있고 신기한 것이었다. 대웅전 추녀 네 귀퉁이에 있는 조각상은 사람이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듯이 보였는데, 혜경스님은 그 조각상을 가리키며 "옛날에 대웅전을 지을 때 도편수(한 건물을 지을 때 목수와 인부를 총괄하는 사람)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에 한 여자와 사랑하게 되어 결혼까지 약속하고 모든 노임을 다 그 여인에게 갖다주었는데 도편수가 공사가 끝나서 돌아가 보니 이미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가버리고 없었답니다. 도편수는 자기의 노임이 대웅전을 짓기 위해 사람들이 정성껏 시주한 돈인데 그 돈을 가지고 도망간 여인이 매우 괘씸해서 평생 발가벗은 채로 법당을 이고 있으라는 뜻으로 이 조각을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은 일행 중 한사람이 "저렇게 엄청난 저주받았으니, 욕 많이 얻어서 더 오래 잘살았을 것 같다"고 농담을 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한편 일행 중 이현준 씨는 전등사 마당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은행나무 한쌍을 보며 "예전에 이곳에 있는 은행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혹시 전설이 있으면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다. 혜경스님이 들려주신 은행이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의 이야기는 이조말 세금제도가 매우 문란할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당시 전등사 은행나무에는 1년에 석섬에서 넉섬의 은행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은행을 열섬이나 세금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해마다 여기저기서 은행을 모아 모자라는 것을 채워서 세금을 냈는데, 한 해는 흉년이 심하게 들어 도저히 열섬을 채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스님들은 은행이 하나도 열리지 않으면 세금을 걷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백년사라는 곳에 정한선사라는 신통력을 가진 분을 모셔와 은행이 열리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곳의 은행나무에는 한번도 열매가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라며 식물학자들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혜경스님의 설명이 끝난 후 법륜회 회원들과 장애우들은 한사람씩 짝을 지어 함께 경내를 둘러보았다. 오르기 힘든 층계는 여러사람이 함께 휠체어를 들어올려 각각의 건물 내부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장애우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불교신자로서 성의껏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정훈소 씨는 어머니가 약사전에 시주하라고 주신 봉투를 들고 생전 처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시주함에 넣으며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오늘 참석한 장애우들의 건강을 함께 기원했다.
경내를 두루 돌아보고 절 곳곳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을 벌써 12시가 지나있었다. 일행은 혜경스님의 배려로 전등사에서 점심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마루로 되어있는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한사람씩 휠체어에서 내려 신발을 벗기고 자리를 잡고 나니, 식탁 위에는 오랜만에 보는 보리밥에 각종 산나물과 고추장을 얹은 비빔밥과 미역국이 곁들여져 준비돼 있었다.
  산사의 신선함이 가득 배어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자원활동자들은 식사할 때는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다시금 고민하기 시작했다. 함께 한 장애우들은 대부분 밥을 비벼주고 적당한 위치에 수저를 놓아주면 자기가 스스로 식사를 했는데, 자원활동자들은 힘든 몸짓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먹여주겠다고 말하기도 해서 스스로 식사를 하는 몇몇 장애우들을 매우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일행은 바쁜 일정 속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식사시간을 이용해 서로 나누며 겨우 반나절을 함께 지냈을 뿐인데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동기간 같은 친근함 때문에 어느새 "형"이나 "오빠"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법륜회에서 준비해 온 과일까지 먹으며 여유 있게 식사를 마친 일행은 식당을 빠져나와 산사의 신선한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잠시 자유시간을 가졌다.
  박성현 씨는 "절에 와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서울이 아닌 곳에서 맑은 공기를 숨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쁘다"며 함께 참여한 사람들과 겨울이 깊어 가는 절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오후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 일행은 전등사를 방문한 기념으로 혜경스님과 사진촬영을 하고 전등사 주변에 있는 다른 유적지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받은 후 가장 가까운 전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장애우는 다가서기 힘든 역사의 현장

  강화도는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략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병자호란과 구한말 서양 상선의 침투 등의 많은 왜란을 겪은 섬이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위치한 곳곳의 성곽이 그 당시 침략에 대항했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일행은 그 중 첫 번째 전적지로 전등사에서 한 20-30분의 거리에 있다는 "초지진"을 보기로 결정하고 강화도의 들녘을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기대를 가지고 30분이나 달려온 초지진은 성곽의 위치를 살피고 그곳에 있는 대포를 보기에는 들어갈 수 있는 문의 폭이 너무 좁았다. 그 옛날 장애우의 편의시설을 고려하지 않은 시대에 만들어진 문이지만, 21세기가 되었는데도 겨우 허리를 구부리고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문이어서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일행은 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두 번째 전적지인 "덕진포"로 향했다.
  덕진포는 초지진에서 다시 2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 한 곳으로 입구에서 보기에는 휠체어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커 보였다.
일행은 이번에는 반드시 보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휠체어를 내리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내리고 장애우들을 다시 안아서 태우고, 처음에는 너무나 서툴게 움직이던 법륜회 회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꽤 익숙하게 휠체어를 다루고 있었다.
  성곽과 대포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안내판을 따라 이동하던 일행은 더 이상의 진행을 가로막는 너무나 길고 높은 층계를 만나게 되었다. 이곳 덕진포는 그 층계를 내려가야 갯벌과 마주한 대포들과 전쟁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허무하게 길이 막혀버린 것을 보며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다. 한 사람씩 들어서 이 100여개 정도의 층계를 내려가서 보자는 사람과 속상하지만 그냥 돌아서자는 사람, 이렇게 여러 가지로 의논을 하고 있는 사이에 김진옥 씨와 자원활동자가 층계 옆 경사가 심한 흙 길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의논을 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자 두 사람은 "별로 눈에 띄게 볼 것이 없다. 우리가 대표로 봤으니까 내려오지 말아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내려간 길이 매우 위험해 보이는 곳이었고 자원활동자들이 처음 휠체어를 다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장애우들은 안타깝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어렵사리 출발한 길인데 두 군데나 제대로 보지 못한 일행은 오후 2시 반이 넘고 있는 시간을 보며 애써 실망의 빛을 감추고 세 번째 전적지로 향했다.
" 광성돈대"라고 칭하는 이곳을 입구에 경사가 심했지만 층계가 있지는 않아 일단 일행을 안심시켰다. 많은 관광객들이 지켜보았고, 자원활동자들은 이제는 자기와 계속 함께 다니고 있는 장애우의 특성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도움을 주며 가고 있었다.
다행히 이곳에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문도, 100개가 넘는 층계도 없어서, 일행은 무사히 대포 세 대가 있는 성곽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성곽은 바다를 바라보며 쌓여있었고, 대포 세대와 대포를 쏘던 구멍들이 여기저기 나있어 강화도를 지켜온 우리 선조들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 중 송진식 씨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런 대포 몇 개 살펴보는 것은 시시할지 모르지만, 저는 책이나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을 이렇게 직접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직접 만지고 볼수 있다는 것이 의미가 큰 것이죠"라며 이번 여행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이곳에서 일행은 대포와 성곽과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이 높은 성곽까지 함께 올라온 사실을 기념하고 우정을 다지기 위한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주변의 안내판을 자세히 읽거나 성곽너머의 바다를 바라보며 한시간 여를 머문 후 그 곳을 빠져나왔다.
세 군데의 전적지를 돌아보고 광성돈대에 있는 주차장에 모인 시간은 오후 4시경, 태풍을 예고했던 일기예보대로 하늘은 점점 흐려오고 비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었다. 일행은 더 이상의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 예정대로라면 바닷가에서 했어야 하지만 주차장 한켠에서 간식을 먹으며 하루동안의 긴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날 참석했던 장애우들은"법륜회 회원 분들이 친동기간을 대하듯이 편하게 대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저희들이 이동시간이 일반 사람보다 길어서 생각보다 많은 곳을 보지는 못했지만, 전등사 한 곳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 해성 스님께 감사 드립니다. 기회가 허락한다면 자주 이런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 장애우들에게는 멀기만 했던 강화도, 그 짧고도 긴 여행을 함께 한24명의 일행은 다음 기회에 좀더 좋은 곳을 함께 가볼 수 있기를 기약하며 어두워지고 있는 강화도 들녘을 뒤로하고 각자 자원활동자들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김성연/기자

 

 

작성자김성연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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