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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전쟁

"남의 전쟁"에 끌려간 한 선량한 미국인이 자신의 전쟁으로 입은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담담하게 조명한 영화라는 점에서 "작은 전쟁"은 볼만한 영화이다.

  존 에브네이(Jon Avent), 이런 이름은 우리말로 표기하는 것이 매우 곤란하다. 왜냐하면 전형적 앵글로 색슨계의 이름이 아닌 경우 미국 내에서도 읽는 방법이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Jon은 미국식으로 읽으면 "쟌" 이라고 읽는 것이 원칙이고 Avent은 불란서 계의 성으로 짐작되는데 이런 경우 원음은 "아브네"이겠지만 미국인들은 위에 표기한대로 "애브네이"라고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비디오나 영화의 자막 또는 스포츠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접하게 되는 이름들은 전혀 다른 이름일 것이다.
이것은 단지 외국어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오랜 관행과 "외국어 표기법"의 문제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뚱 샤우 핑"을 "등소평"이라고 표기하는 어리석음에 익숙해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등소평"이란 인물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작은 전쟁"의 연출자의 이상한 이름(?) 때문에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한마디 더하고 본론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요즈음 외화 수입업자들이 원제를 그대로 우리말로 표기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는데 그 표기가 잘못된 것이 비일비재하다.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중에 "리쎌 웨폰"이라고 소개된 영화가 있다. 이것은 "Lethal Weapon"을 우리말로 표기한 것인데 "Lethal" 이란 영어단어는 "치명적인"이란 뜻이며 "리쎌"로 표기되어야 한다. 물론 "th"의 음가는 우리말로 표현이 불가능하지만 모음의 표기는 가능하니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요즈음 60년대나 70년대와는 달라서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고학력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작과 수입분야만은 예외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은 전쟁"은 미국의 남부 미시시피의 줄리에뜨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생활을 "리디아"라는 여자아이의 내레이션을 통하여 보여주는 잔잔한 영화이다. 영화는 70년대를 시사하는 팝송인 "Who"ll stop the rain?"이 깔리면서 시작한다. 이 노래는 월남전을 반대하는 소위 "반전가요"이므로 팝송에 조예가 있는 관객이면 곧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우리 영화에서도 빈번히 다루어졌던 흔한 이야기이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 스티븐(캐빈 코스트너: Kevin Costner)과 아들 스투, 그리고 딸 리디아는 어머니가 일을 하고 정부의 생활보조금을 받고 살아가는 가난한 가족이다.
아버지 스티븐은 월남전에서 친구인 닷지가 부상당하고 퇴각명령이 떨어지자 헬기로 탈출한다. 그러나 정원초과로 부상당한 친구 닷지를 태울 수 없다고 하자 그를 내버려두고 혼자 헬기를 탄다. 이 사건으로 스티븐은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스티븐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쩌다 구한 학교에서의 일자리도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력 때문에 잃게 된다.
스티븐의 아들은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의 나레이터인 딸 리디아는 아버지와 엄마의 관계를 조율하는 어른스러움을 보이기는 하지만 비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이야기한다. "너의 아버지는 나의 일부이고 그를 헤치는 것은 곧 나를 헤치는 것이다"
  스투와 리디아는 "나무 집"을 지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숙적인 애트킨즈의 아이들과 항상 충돌한다. 학교에서의 일자리를 정신병 치료를 받은 경력 때문에 얻지 못한 스티븐은 농장에서 막일을 하다가 흑인 동료인 모와 함께 폐광에서 일을 하다가 붕괴사고를 당하고 흑인 모는 스티븐의 아들에게 "너의 아버지가 나를 구해주었다"고 말하며 엠블런스에 실려간다.
스티븐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어머니에게서 전해들은 아들 스투는 절규한다. "하나님 난 지금 당신보다 아버지가 더 필요해요"아들 스투는 이웃의 패거리들과 나무 집을 쟁탈하기 위한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그는 자물쇠를 걸고 목숨을 건 내기에서 이기기도 하나 열쇠를 송수탑 위에 놓아 둘 수밖에 없게 된다. 패거리와의 치열한 전투 중에 상대 패거리의 나이 어린 꼬마가 송수 탑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 스투는 따라 올라가서 위험에 처한 꼬마를 구해내지만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꼬마는 깨어나지 않는다.
  스투는 다시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내 아버지를 데려가고도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어린 아이까지 데려가려고 합니까?" 마침 스투의 누나 리디아가 인공호흡을 해서 꼬마 제임스는 깨어난다. 리디아와 스투는 "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있어"라고 얘기한다. 아이들을 불에 타 버린 나무집에 시들해지고 극장 앞에서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스티븐이 오백 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입찰한 집이 낙찰되어 리디아와 스투 그리고 스티븐과 아내는 그들이 항상 꿈꾸어 오던 또 죽은 스티븐이 아들에게 약속했던 집을 가지게 된다. 스티븐은 가족들과 사별했지만 그의 가족에게 집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 전체를 통하여 기독교적 가르침을 전한다. 그러나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그것은 강하게 느끼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 스티븐의 선량함과 올바른 사고방식 그리고 솔직함만을 볼 수 있고 아들과의 대화에서 그가 절대자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들 스투의 신에 대한 원망에서 다음에 올 반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어린 시절 나무 집과 같은 요새를 만들어 놓고 전쟁놀이를 하던 50년대와 60년대에 소년기를 보낸 세대로서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할 것이다.
  우리는 남의 전쟁인 월남전도 아니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나 "작은 전쟁"과 같은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이 영화는 월남전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과는 아주 다른 인식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물론 월남전 참전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미국내의 새로운 역사 인식이나 비판도 당연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남의 전쟁"에 끌려간 한 선량한 미국인이 자신의 전쟁으로 입은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담담하게 조명한 영화라는 점에서 "작은 전쟁"은 볼만한 영화이다.

이영호/ 시각장애우이며 영화인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EBS라디오 "사랑의 가족"을 진행하고있다.

 

작성자이영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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