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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연재] 동정은싫다 <제3장> 청각장애은 또 다른 문화다(3)

본문

[번역연재] 미국 장애우 운동사

 

동정은 싫다


제 3장 청각장애는 또 다른 문화다(3)
(The Deaf Celebration of Separate Culture)

 


세계의 장애우 관련법 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법이 바로 미국의 ADA(장애를 가진 미국인을 위한 법)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ADA가 제정되기까지 미국 내 장애우들이 펼친 장애우 운동을 기록한 운동사이다.

 

 

  저자 : 조셉 피 쉐피로
    이 책을 쓴 조셉 피 쉐피로는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인 유에스월드 리포트지 기자로서

   사회정책에 관한 다수의 기사를 썼다.
   그는 미국 알리샤 페터슨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 장애우 인권운동을 연구해서

   이 책을 썼다.

 

  역자 : 서동명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다.

 

 

 

청각장애에 대한 공포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라함 벨이 가졌던 청각장애학생들에 대한 교육자로서의 영향력은 수화의 명예훼손(?)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탁월한 교육자는 오늘날 또다른 운동인 우생학의 지지자였기 때문에 청각장애우와 같이 불완전한 인종의 출현을 막아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즉 법으로 청각장애우들끼리의 결혼을 막자는 것이었다. 벨의 주장은 제자들과 마사바인야드 지역의 청각장애우 가운데 많은 수가 청각장애부모 혹은 청각장애우 친척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그 배경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벨은 이러한 법률을 제안했지만 전혀 현실성은 없었다.

  벨의 주장 중 더 영향력이 컸던 것은 청각장애우들이 서로 모이지 않게 하자는 것이었다. 벨은 청각장애우들을 따로 모아 교육하는 것이 잘못된 교육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교육은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청각장애우들만의 모임과 교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어 학교에서 수화교육을 금지시키는 국제적인 운동까지 시작되었다.

  영어나 불어, 독어가 다른 것처럼 수화는 청각장애우들의 독자적인 언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수화의 사용이 청각장애우를 건청인의 세계에 통합시키는 데 가장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을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우선 청각장애우들은 기본 문법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마치 외국인이 말하는 것과 같이 영어를 불완전하게 사용한다고 벨은 주장하였다. 청각장애우들은 영어로 된 글을 충분하게 읽지 못하며 자신들의 정치적인 의견을 제시하지도 못한다고 벨은 과학자들에게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벨의 의견은 결국 잘못된 제안들을 낳았다. 즉 구화법을 사용하고 청각장애우교사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을 금지시키자는 것이었다.

  그의 동료인 뉴 하벤에게 벨은 현재 주류화(Mainstreaming)라고 불리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했다. 장애우들을 어떤 제한된 공간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우와 건청인을 조금씩 함께 교육시키는 것을 제안하였다. 청각장애학생들이 건청인 학생들과 같이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일부 과목은 따로, 또 일부과목은 함께 수업하면서 필기한 것, 그림, 그래프 등의 정보자료를 눈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또 특히 특수교사의 수업이 필요할 때에는 학생들을 이웃학교에 보내서 교육받도록 하였다.

  벨이 이해한 것처럼 청각장애우들의 사회통합에 있어 가장 장애가 된 것은 청각장애에 대한 공포였다. 그것은 "분리"라는 또하나의 불합리한 신화를 창조했다. 벨은 청각장애우와 건청인의 접촉이 이러한 신화를 없애줄 것이라 생각했다. "원인이 무엇이든지간에, 청각장애우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일자를 구하고자 할 때 건청인의 편견에 의해서 거부된다. 많은 사람들은 청각장애우들이 위험하고 병을 옮기며, 성미가 까다롭다고 생각해 피한다."고 벨은 이야기했다.

  벨이 말한 대로 알라바마에 있는 한 청각장애우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보이는 그의 손짓 때문에 총에 맞아죽기도 하였다.

  때문에 벨의 생각은 많은 청각장애우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또한 벨의 발언은 커다란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수화교육을 주장한 토마스 갈라데는 22년 전에 죽었으며, 벨의 구화법은 국제적인 권위를 얻게 되었다.

  1883년에 벨은 청각장애우 교육방면에 있어서 가장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교육방식은 청각장애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청각장애는 동정의 원인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청각장애우의 문화와 언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수화에 대한 공공연한 비난은 1960년대 윌리엄 스톡의 업적에 대한 출판물이 세상에 나오고서야 비로소 변화되게 되었다. 이 젊은 언어학자는 1950년대에 영문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갈라데에 왔다. 그리고 그는 교실 밖에서 여전히 사용되는 수화에 매료되었다. 그는 청각장애우 부모를 가진 학생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갈라데의 행정가들은 그의 이러한 활동에 난색을 표시하였지만 1960년 스톡은 수화가 복합적이며 3차원적인 언어라는 세미나 자료를 출판하였다. 1965년에는 수화사전도 출판하였다.

오늘날 청각장애우들이 수화를 자신들의 모국어로 주장하고 있다. 미국 청각장애우협회는 청각장애우들이 수화와 영어를 다 사용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교실이나 혹은 그밖의 장소에서 그들이 더 좋아하는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갈라데와 몇몇의 다른 학교는 이제 농식 수화를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른 학급에서는 또 건식 수화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1988년 갈라데 항의 이래로, 수업시간에 수화사용은 필수조항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요구가 갑자기 늘어났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논쟁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다른 중심이 있다.


  청각장애우 작가 카롤 패든과 톰 험프리스가 말하듯 청각장애우의 세계는 다른 중심을 가진다.

  듣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는데도 사회는 청각장애를 병리적 현상으로 여긴다. 이는 장애를 질병으로 보는 의학적 정의를 거부하는 장애우인권운동과 똑같은 불만이다.

  이 "또 다른 중심(different center)"은 언어에서 명백하다. 수화에서 누군가가 "듣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 건청인들의 정의와는 정반대다. 청각장애우에게는 듣지 못한다는 것이 표준이다.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적 표준, 즉 잘 듣는다는 것으로부터의 이탈에 다름 아니다.

  장애우 인권운동의 중심 기조는 지역사회로의 완전한 통합이다. 최종목표는 장애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날이 오는 것이다. 통합은 공공시설과 작업장에로의 완전한 접근을 보장하는 시민권리법(civil rights laws)과 일반인학교를 통해 실현될 것이다. 장애우 활동가들은 말한다. "우리에게 기회를 달라.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

  1988년 갈라데의 저항은 지배적인 듣기 문화와 말하기에 대한 요구를 청장장애우 교육에 적용해온 수십 년간의 관행에 대한 불복종의 함성이었다. 그것은 청각장애우가 그들의 차이를 알려야한다는 선언이었다. 학생들은 주장했다. "개인의 장애가 항상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애우를 분리시켜 놓을 것이다. 청각장애우는 그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논쟁은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있었던 지난 30년간의 통합주의 논쟁과 유사하다. 장애우 분리주의에 대해 급진적인 주장을 편 것은 가장 말쑥하고 모든 미국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갈라데의 학생들이었다.

  청각장애우 학생에게 있어서 분리된 세계란, 청각장애우 교장에 운영되는 그들 자신들의 학교에서의 교육을 의미했다. 그들에게 장애우 인권운동의 첫번째 큰 승리인 통합교육법(the mainstream education law)은 큰 위협이었다. 정규학교가 청각 또는 그 외의 장애우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분리된 청각장애우 학교에 대한 기금이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우에 대한 국립정보센터(National Information Center on Deafness)의 데이비드 울프는 통합교육은 마치 "인종문제를 모든 사람을 백인으로 만들어서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고 불평했다. 청각장애우들 통합된 세계에 맞추려는 시도는 단지 그들의 열등감만 강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갈라데 저항 이후, 청각장애우들이 그들 자신의 언어와 청각장애우 문화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분리된 교육을 실시해야한다는 주장이 새롭게 나왔다. 캘리포니아 의회는 청각장애우들이 같은 청각장애우집단에서 교육받고 수화에 능한 교사로부터 배울 수 있게 하자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주지사 피트 윌슨은 분리된 학교와 고립된 학교에서 청각장애우를 분리시키는 입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장애우 인권운동에서 아주 보편적으로 거론되는 통합에 대한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시나리오를 믿을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애우들은 종종 다른 소수집단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반인들과의 공통점을 가진다. 장애우들은 대개 비장애부모에 의해, 비장애형제들과 함께 양육된다. 비장애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비장애자녀를 한두 명 낳아 기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애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자체를 단절시키는 청각장애만큼 고립적이지 않다.

  갈라데 저항 이후 잠깐 동안 청각장애우교육연방위원회를 이끌었던 프랭크 보우와 같은 많은 청각장애우 지도자들 역시 "청각장애에 대한 자부심, 청각장애우 문화"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청각장애우를 장애우 인권운동의 성과로부터 단절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너무 오랫동안 청각장애우들은 혼자 서 있었고, 혼자 힘으로 싸워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시각장애우, 뇌성마비인들과 공유할 것이 많음을 인식할 시점이며, 우리 모두는 함께 일할 필요가 있다"고 보우는 말했다. 실제로 많은 청각장애우 지도자들은 "장애를 가진 미국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ADA)"에서 상세히 기술된 권리의 확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몇몇 사려 깊은 장애우 인권운동가는 청각장애우 분리주의 모델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소아마비 장애우인 쥬디 휴맨은 장애우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투쟁의 역사를 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라면서 그녀는 항상 남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일반인 학교에 다닐 때조차 그녀는 동료들에 의해 완전히 받아들여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장애우들과 함께 있을 때 이러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장애아동들을 위한 캠프에 그녀는 9살 때부터 18살까지 매년 여름마다 참석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참석하는 아동들은 시각장애, 청각장애, 혹은 신체장애 그리고 정신지체 등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서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과 그녀의 궁금함과 의심들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었고, 우리가 겪었던 일과 주어지지 못한 기회들에 대해서 함께 분노할 수 있었다"고 그녀는 이야기하였다. 처음으로 휴맨은 그녀가 그녀의 휠체어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등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기쁘게도 다른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모든 아이들은 이러한 것에 대하여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 장애우들은 댄스파티 같은 곳에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그러나 캠프에서 우리는 춤을 출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댄스, 데이트 그리고 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절뚝거리는 여자는 결혼할 수 있으리라고 전혀 기대할 수도 없었다. 어떠한 소년들도 장애여성들에게 다시 만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캠프에서 그들은 데이트를 했고,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캠프에서 그녀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갈라데의 학생들이 그들의 청각장애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처럼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날 장애우들 사이의 이러한 종류의 유대감을 가지게 하는 장소는 거의 없다. 그러나 휴맨은 장애우의 문화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통합인가 분리인가


  현재 장애에 대한 각종 문학과 시들이 존재하고, 장애연구과목이 대학교에서 교육되고 있다. 잡지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으며, 장애우 코미디언과 연극단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표현은 번성하는 청각장애우예술에 비해서는 뒤쳐지고 있다. 농식 수화에 대한 재발견은 청각장애우문화의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이것은 1972년에 청각장애우들의 모국어인 수화로 공연되는 국립극장의 출범에 대한 결정과 함께 일어났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것들은 깨어졌고 새로운 자신감들이 형성되었다. 모든 종류의 청각장애우예술가들은 이러한 것들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수화의 시, 수화의 유머, 수화노래, 그리고 수화댄스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수화예술은 결코 말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청각장애우의 역사와 문화를 퍼뜨리고 만들어 나갈 것이다"라는 쌕은 적고 있다.

  그러나 모든 장애활동가들이 휴맨의 분리된 장애우문화에 대해서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통합의 철학을 발견한 사람중의 한 명인 로버트 푼크는 청각장애우의 문화는 별개의 언어를 가진 독특한 경험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대부분의 장애우에 대해서 그는 "장애는 이슈에서 사라지게 되며 그들은 쉽게 주류사회에 동화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휴맨은 1960년대에 흑인 인권운동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것이 한낱 꿈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푼크는 이에 대해 장애우들이 장애우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기 때문에 통합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통합이 이뤄지면 기업들이 장애우고용자를 좀더 수용하게 될 것이며, 건축은 보편적인 디자인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접근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날 푼크의 관점이 더 우세하다. 장애우를 위한 시민권운동은 신체적·정신적 제한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모든 소수집단과 같이 장애우들은 그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정치화하는데 많은 억압의 역사를 겪어 왔다.

  푼크는 장애우들이 그들 자신들만이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함정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들은 흑인과 많은 다른 소수집단과 함께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장애우들은 희생자의 역할을 하지 않고 과거의 차별에 대한 분리주의자의 정체성과 자부심들에 대해서 균형을 맞추는데 성공할 것이다. 결국 장애우 권리운동은 장애우들이 동정적인 희생자로서 사회에 던져지는 것에 대하여 반대한다.

  장애우 운동은 ADA에 의해 시민권리의 보호를 찾았지만, 그 법은 확정된 활동프로그램이나 그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지는 못하였다. 장애우들은 낙천적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통합되는 것이고 기회의 평등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것들은 의문으로 남는다. 비장애우인 미국인들이 장애가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장애우들이 과연 사회에 통합된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인가?(계속)

 

글/ 서동명

작성자서동명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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