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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자유의 상실을 노래하는 "블루스" 아메리칸 니그로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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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자유의 상실을 노래하는 "블루스" 아메리칸 니그로의 노래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그 민족의 정서가 깃든 음악이 존재한다. 음악은 자연발생적으로 탄생되는데 그것은 바로 노래하는 이의 정서가 그대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민요가 있듯이 블루스는 아메리칸 니그로의 노래이다. 노동과 핍박과 굶주림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뱉아지던 절규였던 것이다.
 블루스는 일반적으로 기성곡으로 불려지는 외에 가수가 자기의 처지나 괴로움에 대해 하나도 꾸밈없이 즉흥적으로 가사를 생각하면서 노래 부르는 수도 많은데 이것이 바로 블루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블루스는 자기 스스로 반주하며(초창기에는 기타반주가 주류)노래하는 형태를 아주 오랜 기간 유지해왔는데 이것은 후에 재즈의 형태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블루스의 음계적 특색은 유럽음악의 장조에 비해 제3음, 제6음이 반음 정도 낮아져 있어 독자적인 선법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니그로적이고 아프리카적인 스케일의 영향인 것이다. 이러한 블루스의 초창기 형태는 아프리카에서 뿐 아니고 미국에서도 발견되었다.
 그 중에는 "브라더 퍼시 랜돌프"(brother percy randolph)라는 거리행상의 물건 파는 노래 소리도 있고  19세기 루지에너 시골의 민속춤 출 때 연주되는 곡과 비슷한 곡도 있었는데 이는 블루스의 다양성을 예고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미국 맴피스에 있는 핸디공원에는 블루스의 아버지인 "윌리암 크리스토퍼 핸디"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물론 그는 블루스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흑인민요였던 수많은 블루스를 수집, 채보해서 정리하여 새로운 가사를 붙이고 악보를 출판하는 등 블루스를 세상에 내놓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곡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가 있다. 또 그만의 특유 곡들을 "루이 암스트롱"등 많은 재즈 및 블루스 아티스트들이 노래하거나 연주하였다.
 이와 같은 블루스는 흑인들의 생활환경이 조금씩 개선됨과 동시에 여러 가지 장소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블루스는 "칸추리블루스"와 포크블루스"에서 서서히 "시티블루스"로 전환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흑인들이 모이는 싸구려 술집 등에서 방랑시인적인 남성가수가 부르던 것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피아노나 소규모의 재즈밴드의 반주로 부르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여성블루스 싱어도 대거 진출을 시작하였다.
 어떻게 서서히 시작되던 것이 1920년대에 와서는 마침내 시카고를 중심으로 전문 블루스 가수들이 진을 치게 되었다. 이 전문 블루스 가수 중에는 여자도 만만치 않게 끼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전설적인 "배시 스미스"였다.
 이 시기의 블루스를 "클래식 블루스"라고 아는데 이 스타일은 오늘날까지 가장 전통적인 블루스 스타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이후로 "모던 블루스" "록 블루스" 등으로 불리는 것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이 모두는 "클래식 블루스"에 기본을 두고 시대감각에 맞추어 조금씩 변형시켜 불렀을 뿐이다. 바로 오늘 우리의 귀에 낯익게 들려지는 몇 곡의 블루스를 포함해서 말이다.
 1920년대 "클래식 블루스" 싱어들 중에 가장 위대했던 "배시 스미스"다. 이 전설적인 가수의 삶을 훔쳐보게 되면 블루스가 갖고 있는 아픔과 한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음악에는 독특한 개성과 무서운 효과가 숨어 있었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면 청중들은 종교적 체험을 한 듯이 "아멘"을 외치는 것이었다. 마치 교회에서 가스펠송을 부른 후의 상황과 흡사했다고 한다. 마력과도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형언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아마도 그 거친 목소리는 밝고 유머러스한 노래에서도 깊은 비애가 서려 있을 만큼 각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베시는 노예세대를 살아온 국민의 대표자로 노래한 것이다. 베시의 노래에는 "루이 암스트롱" "제임스 리 존슨"같은 일급 뮤지션들이 반주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베시 스미스에 의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 받지 않은 가수들은 없었다고 한다.
 "루이 암스트롱"은 "어떠한 가스도 그녀를 다를 수는 없다"고 했으며 그녀의 음악에서 나오는 진실성은 영가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전 미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던 그녀임에도 두꺼운 인종차별의 벽을 허물지는 못하고 한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37년 베시는 미시시피, 클라크 케일이라는 곳 근처에서 자동차 사고로 숨을 거두게 된다.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곳은 백인환자만을 수용하는 병원이었다. 그 병원에서는 끝내 베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피를 계속 흘리며 흑인병원으로 가는 도중 결국 앰뷸런스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위대한 가스펠 싱어 마할리아 잭슨은 "블루스를 노래하는 사람은 깊은 수렁에서 구원의 소리를 외치고 있다"고 했다. 블루스는 이렇듯 어떤 상실된 것에 대한 호소를 노래로 나타낸다. 거기에는 사랑의 상실, 행복의 상실 그리고 인권의 상실 등이 담겨있다.
 이러한 비애들은 가끔 풍자를 통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있다. 따라서 비애와 유머가 동시에 엇갈리는 것도 블루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정작 "이 정도의 시련은 아직 더 참을 수 있다"는 표현을 노래로 대신하고 있으며 또한 아주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돌려서 위안의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코믹스런 요소가 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의 불행이 너무 엄청날 때는 그 불행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찾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루스에는 항상 희망이 있다.
 "나는 항상 외롭지 않아. 언젠가는 태양이 내 등뒤에서 비춰줄 거야"라는 가사에서 느낄 수 있듯이… 베시 스미스도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노래하였듯이 말이다.

글/김예경

 

작성자김예경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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