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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의 이어가기글] 사랑 그 짓궂은 이야기(2)-산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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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짓궂은 이야기(2)
산울음

1
 세상의 이치에는 묘한 것이 많다. 흔히 멈춘다는 것(靜淨, 停止)은 잃음, 죽음, 썩음 따위 생명력이 소멸을 상징함이 통상관념이지만 이와는 전혀 반대의 현상인 영생, 부활, 심화라는 체질로 탈바꿈하여 살아남는 비상식적인 경험도 있으니 예컨대 "사랑"이 이울타리 안에 든다.
 내가 열여덟에 장질부사라는 모진 역병에 걸려 청각을 잃고 나서부터 "멈추어버린" 듣는 기능은 소리의 잃음, 소리의 죽음이라는 장애로 나타남이 상식이겠다는데 오히려 잃어버렸던 젖먹이 시절의 소리까지 생생히 "부활"되어 들려오니, 열여덟 살 뒤부터 들어야 할 온갖 지저분하고 잡스러운 소리보다 순수무구했던 유년시절의 소리를 지켜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냐. 소리를 지켜가기보다 그 소리 하나하나를 사랑으로 승화시켜 나아가는 아름다운 심성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으니, 생각하면 장애란 매양 억울하고 서러운 일만은 아니겠다.
 잃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 경험으로 위생관념이 철저한 사람일수록 유난히 병을 좋아하더라. 담배연기나 먼지를 질색하는 사람들은 먼지가 조금만 일어도 코를 싸잡어 쥐며 눈살을 찌푸리는 따위 수선을 곧잘 떨던데 이런 사람일수록 폐병이라는 호흡기 계통의 고질병 앓기를 즐기고, 술이 간에 나쁘다느니 무엇에 해롭다니 하는 미신에 빠져 술을 외면하는 사람 치고 간이 실한 예를 본 일이 드물다. 우리들의 예수님도 "사랑"을 사랑하여 이르되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하셨으니 따지고 보면 담배연기나 먼지를 꺼려하고(꺼림은 사랑이 아니지 않으냐) 술을 싫어하는(싫음도 사랑은 아니지) 사람의 그 냉혹한 정서 속에서는 모든 적을 이기는 사랑이라는 투쟁력의 결여에 의해 병마라는 외적의 침입에 판판이 나가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핸 정의를 구체적으로 설파한 고전이 있는 바 손자병법이 그것인데, 그 속에는 나약하고 겁 많은 군사가 전쟁에서 이겨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엄격히 가르치고 있다.
 이런 근거에서 술을 싫어하고 술에 겁을 내어 술자리를 에도는 친구를 만나면 우선 "저 녀석 얼마 못가 간을 버리겠구나"하는 걱정이 앞서고 사람답지 못한 소심성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니 요즘처럼 간염이며, 간염이라는 괴물이 간을 키워서 간암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이 흔한 것은 그만큼 술을 싫어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겠다. 우리 [함께걸음]의 전기자를 두고 보더래도 그렇다. 전기자의 동동주 사랑은 거의 종교적인 경지에 이를 수준으로 순수한 바가 있기에, 술이 건강을 지키는 데에 얼마만큼의 약리작용을 하는지 그 임상적인 근거를 확인하고 싶은 독자 분이 계시다면 전화 02) 521-5364번으로 연락해서 전홍윤 기자를 만나 보라. 그렇다해서 술을 잘먹기만 하면 다 건강해지느냐 하면 그런 법은 없다 문제는 술을 사랑하는 정도의 차이지 술을 목으로 넘기는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예로서 [함께걸음]에 소설을 연재한 바 있는 정희수 시인(이 녀석은 시인이지 소설가는 아니다. 시인이 소설 따위를 쓴다는 그 사실부터가 시도 소설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인데, 반푼어치 사랑도 없이 쓰는 소설이 무슨 재미가 있으랴. 그래서 나는 정희수의 소설은 읽지 않았다. …이건 나의 속 좁은 옹졸함이니 독자 분들은 정희수의 소설을 사랑해 주라.)이라는 녀석은 술이라면 사죽을 못쓰지만 정희수 시인의 경우 술을 사랑해서 술잔을 안고 뒹구는 애무행위가 아니고 술을 까는(술이 뭔지 모르는 녀석들은 "쇠주병을 깐다"고 한다. "깐다"는 이 말부터가 얼마나 비정하냐) 축이어서 마치 원수의 멱살을 쥐고 이를 바득바득 가는 꼴이 연상되는, 그 풍경이 매우 살벌하다. 그러니 정희수 시인의 건강상태는 보나마나이다. 그 보나마나가 어느 지경인지 확인하고 싶은 미련한 독자 있다면 02) 848-7085번으로 전화해서 만나 보라. 다만 이 경우 자칫 당신을 "까는" 대상으로 삼을지 모르니 요, 주의할 일이다. 각설하고,
 지난번 글에서 이미 "정의"했듯이 사랑이란 이성간에 느끼는 감정적 갈등이다. 이 정의에 비춰서도 술을 사랑한다면 술이 무슨 성기를 달고 있는 사람이더냐 하고 의아해 할 분도 있겠지만 어차피 사랑은 사랑이기에 술도 성적인 매력을 두루 갖춘 이성으로 보아야 한다. 이 이성이란 다분히 형이상학적인 범주에 드는 대상으로서, 감성적으로만 탐닉되게 마련이라 술이라는 사랑에 흠뻑 젖으면 형이하학적인 배설 대상으로서의 이성을 갈구하는 본능이 맹렬한 역동력을 발휘케 된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므로 사랑의 본질에서 술과 사람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겠다.
 이런 이야기를 거침없이 해나가는 나의 배포는, 내가 살아온 지난 생애와 그 생애를 통한 구체적인 경험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이렇다 할 사관도 철학도 삶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두루 거친다는 체험적인 수확이 전제되는 인생관도 없는 소설가들의 그 황당무계한 허구의 나열과는 뿌리부터가 다르니, 이 사랑이야기에 대한 의문이나 반론이 있는 분은 직접 나에게로 오라. 글이 짧아서 채못한 이야기를 통해 불만을 해소해 줄 여유가 있으니. 그렇더라도 몇 가지는 여기서 간증해 보여야 될성싶다. 내가 처음 사랑을 경험한 것은 다섯 살 때의 일이다. 물론 이 사랑은 배설의 쾌감까지에 이르는 철저한 체험이었다.

2
 나 박용수는 1934년 늦가을, 경남 진양군 마천면 오방리라는 두메에서 태어났지. 위로는 형, 누, 형 이렇게 세분의 맏이가 있고 동생들도 있지만 내가 갓 태어나서는 동생들이 없었다는 게 당연한 이치이다. 오방촌이라고 부르는 고장은 둘레가 산으로 에워싸인 전형적인 남도의 두메였지만 화살표의 촉머리에 위치한 오방촌은 새 갈래로 흘러내리는 도랑의 합류지점이어서 그런 대로 조금 넓은 곳인데, 농촌 사정을 아는 사람이면 이해하겠지만 도랑이 모이는 합류지점은 으레 무댐이기 마련이어서 고래실은 아예 찾을 수 없고 따라서 농가라고는 십여호, 그것도 토담집이 대부분인 빈한한 마을이었다. 비가 왔다하면 도랑마다 벌건 황토 물이 넘실넘실, 여기저기서 둑이 터지고 그때마다 "둑 터졌다!"하는 아우성이 메아리치며 골짜기를 맴돌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 또래의 철부지에게는 신나는 "물 구경"이 펼쳐지지만 어른들의 가슴은 억장이 무너지는 참담한 재난이어서 가을걷이는 알곡 반, 쭉정이 반, 늘 이랬다. 그러나 들이 넓다 보니 일손은 또 그리 만만한가. 온 마을이 신 새벽부터 들로 나와 둑을 쌓고 쓰러진 벼포기를 일으켜 세우고 거름기가 씻겨나간 논의 심살을 돋굴 두엄 쌓기에 그야말로 남녀노소의 가림이 없이 온몸으로 덤벼들어야 하니 집을 지키는 식구란 개, 닭과 함께 졸랑거리는 코흘리개들 뿐.
 내 나이 다섯 살 때였다고 기억된다.(당시의 기억은 어머니의 되풀이하던 푸념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온 식구가 들로 나간 뒤라 심심했고 우선 배가 고팠던 나는 군것질거리를 찾던 끝에 방구석에 오도마니 앉아있는 술동이를 발견하고 조건 없이 덮개를 열어제쳤다. 아직은 여렸던 다섯 살배기 코의 점막을 자극하는 알콜내음은 싸하게 독했지만 어른들이 그렇듯 즐기는 음식이니 나라고 먹지 말라는 법은 없겠다 하는 오기가 발동하여 배고픔이 가실 때까지 실컷 퍼먹었으니… 어머니는 뒷날 이때의 이야기를 가끔 하시며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기를 죽여놓고는 매우 재미있어 하셨다.
 "해거름 따라 저녁을 앉히려고 집에 돌아오니 글쎄, 집에 있어야 할애가 온데 간데 없는 거라. 온 동네를 헤매었지만 봤다는 사람은 없지. 나무에 잘 오르는 버릇이 생각나서 혹시 홍시라도 따먹겠다고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진 게 아닐까 싶어 마당가에 듬성듬성 서 있는 감나무 밑을 두루 살폈지만 안 보여요. 날만 이슥해도 늑대가 내려와 염소를 물어가던 시절이라 무슨 짐승에게 당한 게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든단 말일세. 이래저래 가슴이 억장으로 무너져 방으로 들어오니, 이보소. 이놈이 술이 꽉 취해 가지고서는 농짝 안에 자고 있는기라. 옷을 홀랑 벗고 콜콜거리며 코까지 고는데 안아 내려니 온몸이 빨갛게 열이 나서 뜨겁고 오줌을 얼마나 쌌는지 즈그 애비 핫옷 한 벌을 흥건히 적셔놓았지 않나, 글쎄다."
 참으로 글쎄다. 어머니의 이야기만으로는 도무지 기억이 되살지 않던 그 옛일도 나의 청각기능이 마감되고나서 소리에 대한 간절한 추억이 가슴속에 응얼이지면서부터 천천히 되살아났으니 글쎄다. 기억이 되살아났다기보다 어머니의 거듭된 추억담으로 재구성된 영상이 아닐까 싶다. 이런 요령부득한 고증이야 이야깃거리로 쳐서 한바탕 웃고 나면 그만일 테지만 내가 여기서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술이라는 사랑에 만취하여 배설의 쾌감을 마음껏 즐겼다는 딱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쾌감이 오죽했으면 어른의 넉넉한 솜바지저고리 한 벌을 흠뻑 젖도록 배설했으랴. 이 아름답고도 즐거운 기억도 내가 장애라는 완강한 벽에 부딪쳐 모든 꿈이 정지된 상황에서부터 되살아나기 시작한 "부활"의 거룩한 실례였음을 간증할 수 있다.
 "부활"의 기적은 발전을 되풀이하여, 본격적으로 술동이를 기웃거리기 시작한 다섯 살 이전으로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서 젖먹이 시절에 들었던 소리까지도 지금 들을 수 있는 재주까지 터득키에 이르렀으니, 잃는다는 것이 반드시 소멸로 연계되는 전환점이 아님을 알겠다.
 여기서 여러분과 더불어 그 몇 가지 사실을 고증해 보기로 한다.

3.
 집 앞 방천뚝에 올라서면 사면팔방으로 보이느니 어웅한 골짜기들. 남도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드러내며 질펀히 누안 산이란 산은 사람의 비밀스러운 부위를 연상시키는(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조상의 무덤을 지키는 묏갓의 몇 그루 노송을 옷으깨 삼았지만 철부지였던 나는 그 뜻을 몰랐다) 요긴목의 몇 그루의 노성숲을 빼고 나면 그야말로 벌거벗은 알몸의 민둥산. 소나기라도 한차례 스쳐가면 골짜기마다 시뻘건 황토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고, 도랑이 모이는 우리 집 앞 큰 도랑은 이 갑작스런 물 사태를 감당치 못해 번번이 둑이 터져 나간다. 온 마을이 난리를 만난 듯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이 천재지변을 어이 막으랴. 들판은 순식간에 벌물이 넘치는 크낙한 늪으로 바뀐다. 이리하여 한 해 두 해 들판은 기름끼가 씻겨 메말라 가고 마을의 가난도 아울러 깊어 가는 것이다.
 가을걷이는 어차피 반타작, 일곡 반, 쭉정이 반인데 여기서 또 공출을 바쳐야 한다. 살을 져며 담는 마음으로 가마니를 채워 면사무소의 마당에 져 나르면 면서기 놈들이 색대로 공출가마니를 푹푹 쑤시다가 쭉정이라도 좀 가려지면 쌍심지에 불을 켜고 핏대를 세우며 농부들에게 주릿대를 안기는 것이다. 이리하여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설움으로 덕지덕지 얼룩져 있나보다.
 가을이 곧 절량철인데 무슨 재주로 보릿고개를 넘느냐? 한숨으로 지새는 긴긴 겨울밤은 산이 운다. 농부들의 설움이 오죽했으면 산이 울어줄까. 하도 서럽게 우는 산울음을 들으며 자란 나는 젖먹이 때부터 밤잠이 없었다고 한다.
 산은 겨울, 그것도 상고대가 끼는 한겨울밤이라야 운다. 소나무의 바늘잎 얼어 쇠바늘같이 빳빳해진 위로 밤바람이 스치면 웅, 웅 소리를 낸다는데 날씨가 추울수록 산울음 소리도 크게 들리는 것이다. 남도의 한겨울은 밤에도 바람이 자지 않는다.
 그러나 순박한 농부들은 상고대를 스치며 우리는 바람소리를 산신령의 울음으로 믿어왔다. 마을이 가난해지니 영험을 잃은 산신령이 카톨릭에 귀의라도 해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고 하며 가슴을 치는 "고백의 기도"를 드릴 이치야 없겠지만, 산울음 소리는 산신령이 아니면 낼 수 없는 웅숭깊고 무거운 흐느낌의 연속일 뿐이었으니 듣는 이의 가슴을 더욱 싸늘히 떨게 하는 것이다.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을 나이에 이르러서는 어머니를 상대로 같은 말을 되풀이, 되풀이해서 가뜩이나 속이 타는 어머니를 괴롭혔다. 
 "저게 무신 소리고?"
 "산신령이 우는 소리란다."
 "산신령이 와 우노?"
 "추우니까 울지."
 … 사이.
 "저게 무신 소리고?"
 "산신령이 우는 소리란다."
 "산신령이 와 우노?"
 "추우니까 울지. 무신 아아가 이리 청승스럽노? 고만 자거라."
 차마 어린애에게 어른들끼리 하는 얘기야 들려 줄 수 없었으리라.
 "마을마다 양식이 떨어졌으니 산신당에 인절미라도 한 접시 올릴 수 있겠느냐. 산신령도 별 수 없이 이 겨울은 배를 곯면서 지내야 하니 서러워서 우는 게지."
 그러나 나는 운다는 것만 서러워서 훌쩍훌쩍 따라 울곤 했다. 다박솔 한 포기 없는 민둥산에서 올올 떨며 울고 있는 허연 수염의 산신령. 내가 할아버지를 무척 따르고 사랑했던 그 마음으로 한겨울밤은 산신령에 대한 안쓰러운 사랑으로 몸을 뒤채며 훌쩍거렸으니, 이래저래 사랑이란 괴롭기 마련인가 보다… 이번 얘기는 이쯤 해두자. 독자님도 고만 자거라.
 


 

작성자박용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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