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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의 영화이야기]"서편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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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 현상(?)

 쟝 뤽 고다르(Jean Luc Godard)는 그의 저서 고다르 온 고다르(Godard on Godard)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그냥 하나의 영화에 불과하지만, 일단 흥행에 성공하면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된다." 이 말은 영화의 사회적 파급효과를 적절하게 표현한 명언이다. 또한 영화가 대중의 공통적 관심을 대변하고 그것을 다시 흥행이라는 과정을 통해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표현한 말이다.
 요즈음 한국 영화계는 "서편제"라는 영화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관객동원으로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기대하지 못했던"이란 표현은 필자의 개인적 짐작이 아니라 연출자인 임권택 감독 자신이 모 방송국의 심야뉴스의 한 대담코너에서 "서편제"가 깐느영화제 출품용 영화라고 언급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고, 또한 영화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주지하고 있다.
 각설하고 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어 버린 "서편제"의 엄청난 흥행성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라는 중요하고도 조심스러운 과제를 검토해 보자. 제한된 지면과 지면의 성격상 본격적인 영화의 비평은 다른 전문잡지나 학술지에서 하기로 하고, 이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 고찰해 보자.
 구십년 초부터 지금까지 개봉된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다룬 영화이거나 홍콩의 무술영화 그리고 헐리우드의 공상과학영화들이다. 이것은 영화관객의 대부분이 십대나 이십대 초반인 것을 잘 입증하고 있다. 부언하면 언젠가 필자가 텔레비전 대담에서 "운동화족"이라고 표현한 바로 그 무리가 우리 영화관객의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이 사실은 텔레비전의 모든 연예 프로그램만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충무로의 영리한 젊은 제작자들은 위에 언급한 부류의 영화들을 제작하여 흥행에 성공하였고, 뒤늦게 무릎을 친 구세대 제작자들은 "신세대 사랑이야기"의 제작에 혈안이 되어 다수의 아류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당연히 기대했던 만큼의 흥행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아직도 이런 아류를 기획, 제작하는 막차를 탄 손님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영리한 제작자들은 다른 새로운 기획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여튼 최근까지의 이러한 제작경향은 신세대를 제외한 많은 잠재적 영화관객 혹은 자칭 예술영화관객(주로 유럽영화나 수작이라고 소문난 미국영화만을 보는)들을 흡수하는데 실패하였다.
 이럴 무렵에 임권택감독에 의하여 "서편제"가 기획되었고 태흥영화사의 이태원씨가 제작하였다. 태흥은 이미 임권택이 연출한 "장군의 아들"로 흥행에 톡톡히 재미를 본 입장이고 요즈음 방화를 가장 많이 제작하는 회사임으로 "서편제"같은 작품을 영화화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감독에게 보너스로 해외영화제를 겨냥하여 흥행에 연연하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작품을 하나 맡긴 것이다. 더욱이 임권택의 해외영화제에 대한 특히 깐느영화제에 대한 집념이 주지의 사실이고 보면 이것은 더욱 자명해진다.
 우리 속담에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이 있다. "서편제"는 바로 이 매가 된 것이다. 이 매가 된 이유는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이 영화가 임권택의 다른 영화들(특히 한국의 전통적 풍물을 소재로 한)과 비교해 볼 때 같은 수준의 영화임을 고려할 때 흥행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자칭 예술영화 관객을 유치하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성공하였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서편제" 이전에 개봉되었던 다수의 신세대의 사랑이야기에 멀미하던 이 부류가 신선한 공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서편제"를 보기 원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부류는 제목의 의미를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런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는가"의 흥행을 통해 우리가 경험했던 일이다.
 그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편제"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전히 잘 모를 수도 있는) 순진한 대중들이 김영삼 대통령의 "좋은 영화"라는 한마디에 감동하여 극장으로 갔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우리가 과거 문민시대 이전의 독재정권 하에서 수없이 경험한 별로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비록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권위주의의 퇴락이 시작되었다 하여도 이 부류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방화는 물론 외국영화도 보지 않고 영화를 잘 모르는 그러나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현명한 대학생 및 지식인들이 이 영화의 출현에 박수를 보낸 데에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서편제"는 꿩 잡는 매가 되었다. 그러나 "서편제"가 영화관객의 혹은 대중의 공통적 관심사를 갈파하거나 검증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소위 다이댁틱 무비(Didactic Movie)즉 교육적 영화로서는 흥행의 성공만큼 성과가 큰 것이 사실이다. 많은 대중이 서편제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또한 동편제의 그것도 알게 되었으며 판소리와 소리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모 방송국의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음악교과목을 심층적으로 다룬 것도 이것을 방송하는 좋은 자료이다. 필자는 고다르가 표현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대중과 영화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을 우려하여 영화를 공부한, 또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쓴다.


 

작성자이영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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